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8화 (808/917)

#808

1.

“시우, 시우!”

아멜리아는 분주했다.

아침부터 제머나이 저택을 방문해 시우를 찾아낸 아멜리아.

평소 점잖은 아멜리아가 큰소리로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복도를 달리는 모습에 메이드들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다.

그 무렵 붉은가지의 도움으로 단란한 꿈에서 깨어난 시우는 당황하던 차였다.

어두운 숲길로 나와 방긋방긋 웃고 있는 돼지를 봤고.

보호장 안에서 편안한 잠이 든 것처럼 누워있는 연인들의 모습까지 확인했다.

배낭에 연결해 두었던 나침판 겸 시계를 확인해 실제 시간이 고작 몇 초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다.

당연히 이대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제머나이 저택의 침실이라니.

하지만 계속 당혹감에 젖어 있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붉은가지 한 방이면 이 꿈도 분명….

“엉?”

붉은가지가 없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격을 갖춘 마법은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가 수복 성질이 있다.

호문쿨루스가 마법을 펼치고 그것이 깨어지려는 조짐을 느꼈을 때 자동적으로 대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멋대로 마법을 깨고 나온 붉은가지는 배제 대상 1순위였겠지.

하지만 이에 대해서라면 시우도 대처법이 있었다.

이미 르뤼에의 왕국에서 ‘시련’을 할 때 외부의 붉은가지를 심상 세계로 가져왔던 경험이 있다.

심지어 공간을 넘어서 말이다.

실제로 지금 ‘바깥’의 시우에겐 붉은가지가 들려있을 터.

그때와의 난이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이 자리에 다시 창을 구현하여 공간을 찢어버리면 되는 노릇이다.

-벌컥!

“시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친 아멜리아에 의해 잠시 방해받은 고민.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그녀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는 엄청엄청 희귀한 제스쳐를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아멜리아!

꿈에서조차 귀엽다!

“아멜리아 님, 우선 나가서 뵐게요…?”

하지만 그녀를 바라본 순간 시우는 또 하나의 위화감을 느꼈다.

아까 전 꿈속에서 봤던 아멜리아와는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한결 더 색채가 선연한 느낌이랄까?

그 위화감은 상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멜리아가 소맷부리를 붙잡는 순간 더욱 선명해졌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역시나 꿈속이다.

하지만 꿈의 주체는 시우가 아니다.

여기에 있는 아멜리아는 거짓이나 환상 따위가 아닌 본인.

그렇다면 한번 꿈을 벗어난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함께 꿈속을 부유하게 된 아멜리아의 꿈으로 편입시켰다는 건가?

“시우! 지금 그게 아니에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얼추 상황을 파악한 시우는 침착하게 아멜리아를 다독이려 했다.

비록 현실에서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 이후로도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아멜리아 님.”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이건 전부 꿈이니까요.

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이제껏 보았던 것 중에 손에 꼽을 만큼 기쁜 표정을 지으며 달 뜬 숨으로 입을 여는 순간.

시우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스승님이…. 스승님이 돌아오셨어요!”

2.

예빈에게 듣길 영혼의 마녀는 19 위계.

반면 시우 일행은 전원 대마녀 이상이다.

자율방어 역시 굉장히 공고하며 일단 태생적인 자율방어가 없는 시우조차 엘로아로부터 ‘수호자의 계약’을 받고 있다.

또 꿈속에서 시간에 비해 현실 시간이 지극히 느리게 흘러간다는 걸 고려할 때 다른 마녀의 수작이 없다는 가정하에 당장 위험에 처할 일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몇 초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그녀를 끌고 나가는 것보다 아멜리아의 행복한 꿈에 어울려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느새 아르스 마그나 타운의 플로라 양장점까지 끌려 온 시우는 고민을 곱씹으며 새 양복을 맞춰 입는 중이었다.

시우가 꿈 속에서 연인들을 부모님께 소개해주었듯, 아멜리아도 그런 심정인 것이다.

가능한 때깔 곱게 차려 입혀서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그러고보니 여기서 아멜리아가 아직 부교수이고 시우가 관리인이던 시절.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우의 양복을 맞춰 주었더랬지.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플로라는 ‘거 봐? 둘이 연인 맞잖아?’라고 말하면서 비죽 웃어 보였다.

아무튼 남자 옷 만들기를 싫어하는 플로라에게 아멜리아가 향수를 서비스로 주고 양복을 맞춰가는 사이.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스승님이 돌아오시다니, 믿기지 않아요.”

“꼭 시우를 만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너무 기뻐요…. 어쩌죠? 날아갈 것 같아요. 혹시나 날아가 버리거든 시우가 잡아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기대했던 선물을 받아든 쌍둥이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멜리아라….

이건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이텐션이었다.

무심코 그 모습에 반사적인 아빠 미소가 새겨지다가도 이내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차피 이건 꿈.

깨고 나면 사라질 덧없는 환상이니까.

시우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길 택했다.

하지만 아멜리아도 그럴 수 있을까?

심지어 시우와 달리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괜한 거짓말을 하며 희망고문을 하는 것보다 조금 비정해도 현실을 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

“시우?”

“네.”

“긴장되나요?”

염려가 얼굴에 표가 나버린 모양이다.

“괜찮아요, 스승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그리고 시우라면 분명히 스승님께서도 기뻐하실 거에요. 시우는 굉장히 멋지고 다정한 사람인걸요.”

아멜리아는 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본 시우는 알고 있다.

아멜리아에게 스승님이 어떠한 존재인지.

어떤 방식의 이별을 맞이했는지.

아멜리아가 어떤 식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는지.

그렇기에 이 재회가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까지도 말이다.

“시우…. 정말 괜찮아요? 문제라도 있나요?”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고 끝없이 다짐하고 있었는데 기어이 아멜리아로부터 두 번째 염려를 듣고 말았다.

시우를 걱정하는 와중에도 아멜리아는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시우가 부담스럽다면…. 시일을 미룰까요? 스승님도 이해해 주실 거에요.”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침을 삼켰다.

그대로 말을 이어가기엔 목이 잠긴 게 들킬 것 같았던 까닭이다.

“아멜리아 님,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아주 만약에요.”

“네, 시우.”

“…….”

매트릭스에 나오는 알약 예시를 들어볼까?

안된다.

그마저도 안된다.

아멜리아는 다른 문제는 몰라도 시우의 감정과 심정 변화에 한해서는 주머니쥐보다도 민감하다.

뭔가 단초를 주는 즉시 의도와 상관 없이 상황을 이해해 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선택지는 다시 두 가지로 좁혀졌다.

하나, 아멜리아가 조금이라도 행복에 젖을 수 있도록 모른 체 꿈에 어울려주는 것.

둘, 시우가 그랬듯 자각몽의 진상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어차피 언젠가 깨어나야 한다는 건 확정이다.

영원히 이 안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면 후자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게….

“시우.”

아멜리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시우의 손마디에 얽혀온다.

안심을 시켜주듯이 꾹 잡아주는 손깍지.

종종 아멜리아가 불안해 할 때면 시우가 해주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시우를 믿어요.”

사실 일련의 상호작용 속 아멜리아의 대사는 다소 생뚱맞은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진상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파문도 없는 조용한 연못처럼 시우를 올곧게 비추고 있었다.

“시우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저는 따를게요.”

그건 연인이기에 해낼 수 있는 교감.

이성과 지혜를 초월한 맹목적인 신용이자 직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고민으로 가득했던 머리가 말끔해졌다.

훗날 그녀가 진상을 알게 되어 슬퍼한다면, 그 슬픔을 이겨낼 때까지 옆에 있어주자.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냐는 원망을 듣게 될지라도, 한껏 그 원망을 받아주자.

대신 지금만큼은 아멜리아가 그래준 것처럼 그녀를 믿고, 짧지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자.

그렇게 다짐했다.

3.

어려졌던 시우와 아멜리아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굴피나무 숲 속의 오두막.

시우와 아멜리아는 각기 긴장한 표정으로 문 앞에서 잠시 대기했다.

“아멜리아 님, 저 괜찮아요?”

“괜찮아요, 시우는 언제나 멋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옷매무새와 넥타이를 점검하고 입장.

굴뚝에 불이 들어온 걸 보고 얼추 눈치는 챘지만 좋은 냄새가 난다.

달콤한 설탕의 냄새와 코를 간질이는 시나몬 향 거기에 알싸하게 뒤섞인 커피 향이 뒤섞여 이 오두막을 분위기 좋은 산장 카페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스승님, 왔어요.”

“어머머…! 벌써?”

부엌 쪽에서 그릇이 와장창 뒤집히는 소리가 나더니 분주히 움직이는 인기척이 들린다.

머릿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쓴 채 달려온 그녀는 일전 아멜리아의 기억 속에서 봤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인자하고 자애로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짓궂은 구석이 있는 눈웃음.

눈동자와 머리카락의 색이 아멜리아와 같다.

“어서 와요, 이름이 신시우 씨?”

뺨에 밀가루를 묻힌 채 생글생글 웃고 있음에도 기품 있고 귀족다운 말씨로 들려온 환영인사.

“네, 신시우입니다. 편히 불러주세요.”

“후후, 그럴까 사위?”

정말 살가운 환대였지만 ‘사위’라는 말에 몸이 움찔한다.

알비레오 장모님께 숱하게 정강이를 걷어차인 결과 조건반사가 몸에 새겨진 모양이다.

“마침 1시네.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에 좋은 시간인걸?”

그녀는 베이킹도 잠시 미뤄둔 채 앞치마 차림으로 거실 테이블의 자리를 권했다.

아멜리아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그녀의 앞에 사위로서 평가받는 자리.

면접을 보는 심정으로 뻣뻣하게 앉은 시우.

조금 전 시우의 부모님을 뵈러 왔던 아멜리아가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 알 것 같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말리카 메리골드는 애석하게도 가상의 존재다.

그러나 시우의 부모님이 그러하였듯 아멜리아의 심상을 빚어 만들어진 그녀는 더 없이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시우가 거들겠다 나선 걸 한사코 거절하고 홍차를 내온 말리카는 의자를 끌고 엄숙한 면접관처럼 자리에 앉았다.

“그럼, 우리 사위는 어떤 사람인지 들어나 볼까?”

시우는 물론, 옆에 앉아있던 아멜리아 등도 긴장으로 꼿꼿이 펴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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