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7화 (807/917)

#807

1.

게헨나에 잡혀 오는 모든 노예는 필연적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현세와의 ‘연’을 끊는다.

본래 비행기 사고로 죽어야 했을 시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법과 신비를 모르는 자는 누구 하나 시우를 떠올리지 못했고, 그건 부모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었다.

부모님에게 시우는 처음부터 없던 존재가 되었다.

암만 열심히 설득해 시우가 당신의 아들내미였다는 사실을 납득시켜도 며칠 뒤면 잊힐 터였다.

“후우….”

그럼에도 시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지어진 지 30년 된 구축 아파트 앞에 서 있었다.

한번 끊기는 순간 연결할 수 없다는 ‘연’을 이어주는 아티펙트.

그것을 이번 헥센나흐트 대 탈출 때 챙겨온 것이다.

즉, 시우는 7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생판 모르는 아들 호소인이 아닌, 아들 신시우로서.

침을 꿀꺽 삼킨 시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문의 도어락을 눌렀다.

-삑삑삑삑삑삑

바뀐 게 없는 도어락 비밀번호는 시우의 생년월일.

오늘은 주말이니 두 분 모두 집에 계시겠지.

“다녀왔습니다.”

마침 식사 시간이었는지 집밥 냄새가 훅 풍겼다.

거실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가족사진, 수학 천재 신시우라는 헤드라인이 적힌 신문기사.

아마도 연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던 시우의 존재가 되돌아온 모양이다.

거실 왼편에 바로 붙어있는 부엌엔 갑작스레 열린 도어락 문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두 분 모두 기억 속의 모습보다 훨씬 나이가 드셨다.

친구 어머니들 사이에서 가장 곱던 어머니도 눈가의 주름살이 느셨고, 80년대 마초 배우 인상인 아버지도 새치가 잔뜩이다.

“엄마 아빠. 아들 왔어.”

시우가 인사를 건넨 순간.

엄마는 젓가락을 툭 떨어뜨렸고, 아빠는 마시던 주스를 주루룩 컵으로 돌려보냈다.

마녀의 도시에 잡혀간 지 7년.

이제야 겨우 집에 돌아왔다.

2.

세 가족끼리 끌어안고 펑펑 울며 재회의 기쁨에 잠긴 것도 잠시.

“여태 뭐하다가 이제 왔니? 엄마가 얼마나, 얼마나 널 걱정했는데…. 눈은 또 왜 그렇고?”

엄마는 화를 내셨다.

“여보 내가 뭐랬어? 내가 우리 아들 언젠가 털레털레 돌아올 거라고 했지?”

아빠는 껄껄 웃으면서 붉게 변한 눈시울로 등을 두들겼다.

“당신 지금 웃음이 나와? 너 빨리 설명해, 어디서 뭐 했는지.”

“그래, 우리 아들 신수가 훤해 보이는데. 빨리 너희 엄마 좀 안심시켜줘라.”

집에 있는 걸 전부 다 깎아온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수북이 쌓인 과일 접시를 앞에 두고 시우는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장대한 모험극을 풀어놓았다.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마녀의 도시라는 곳에 잡혀갔어.”

점심이 끝나고 시작했는데 저녁이 넘을 때까지 이어진 이야기들.

솔직히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못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마녀의 도시에 잡혀가 노예가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남자 마녀가 되었다는 말보다,

실종되었던 아들이 조현병이나 정신분열증이 생겨서 돌아왔다고 보는 편이 신빙성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엄마는 작은 마법을 직접 보여 드린 이후에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철저한 검증 시스템.

“잠시만, 곧 이쪽으로 다들 올 거야. 다들 보고 싶다고 해서.”

한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증언해주는 게 신뢰도가 증가하는 건 당연한 사실.

시우가 전화를 하고 난 잠시 후 작은 거실이 북적북적하게 변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연인들은 아멜리아, 오딜, 오데트, 샤론, 엘로아, 르뤼에, 도로시, 린네 총 8명.

총 열한 명이 들어차나 거실은 궁둥이만 붙여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제각기 꽃처럼 꾸미고 온 며느리들은 아주 깍듯한 모습으로 부모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경국지색, 화용월태, 폐월수화, 만고절색의 마녀들이 일제히 시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는 모습은 뒤에서 봐도 장관이었다.

부모님께 설명해 드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7년째 사라졌다가 불쑥 돌아온 아들로서 부모님께 며느리의 얼굴을 비추는 게 도리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 이분들이 전부다. 마녀, 그, 마녀? 네 여자친구라던…? 하나, 둘, 셋….”

아까부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다 얼굴이 퉁퉁 부은 어머니는 이 광경에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으하하하! 그렇게 여자친구 사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길래 걱정했더니. 역시 아빠 닮아서 인기가 많네! 우리 아들!”

“당신까지 그러면 어떡해요?”

“뭐 어쩌겠어?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을 며느릿감으로 데려왔는데, 혼낼까?”

“여보!”

혼란은 틈타 잽싸게 앞으로 튀어나온 오딜과 오데트는 씩씩하게 배꼽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이 말씀하신 대로 귀염둥이 며느리 오딜 제머나이!”

“시어머님께도 효심을 다할 오데트 제머나이에요!”

흡사 아이돌처럼 발랄한 자기 소개를 하는 쌍둥이는 답지 않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조수님의 부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기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될 만큼 긴장하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 쌍둥이죠?”

““네! 그렇습니다!””

“세상에세상에세상에….”

시우가 알기로 엄마는 적당히 교양 있고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아무리 몇 년 만에 고생을 하고 돌아온 아들이라도 중동 석유왕 뺨치게 며느리를 우르르 데리고 온 것도 모자라, 쌍둥이 둘 모두를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기절초풍하는 모양.

하긴 워낙 오랫동안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땐 카사노바도 이런 카사노바가 없을 것이다.

“커흠.”

그 다음 질 새라 끼어든 것은 르뤼에였다.

쌍둥이에게 선수를 채였으니 그 뒤라도 따라야 한다는 각오가 빤히 읽힌다.

르뤼에의 성격이라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종종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말이다.

어떤 아찔한 발언을 내뱉을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차.

“안녕하세요. 짐은 아니, 저는 르뤼에 누켈라비라 하느니라. 아니, 한다. 에잇…! 합니다.”

오래된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굳은 동작은 쌍둥이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쌍둥이처럼 긴장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태어나 처음 사용하는 존댓말이 어색한 듯 몇 번이나 말실수를 했을 뿐이다.

곁눈질로 나머지 인원을 보자 눈을 마주친 채 고개를 끄덕이는 샤론과 엘로아가 보인다.

다행히 여기 오기 전에 K-유교 사상을 어느 정도 주입한 모양이다.

“귀하의 아들을 대 누켈라비 제국의 국서로 책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

“하지만 그대들도 이와 같은 지복에 마땅히 감격을 표해야 할 것.”

“…….”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결국 고장 난 르뤼에.

뭔가 망했음을 실감한 듯 도망치듯 도로시의 뒤로 몸을 숨기며 투정을 부렸고.

“아무리 국서의 부모라도 여왕 앞에서는 예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 현세 예절은 왕족의 명예를 전혀 고려하지 않도다.”

도로시는 그런 르뤼에를 다독여 주었다.

“잘하셨어요 여왕님~”

나머지 인원의 소개 이후엔 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호화롭거나 특별한 건 없었지만 그토록 먹고 싶었던 엄마의 특제 김치찜이 주메뉴였다.

두 분 모두 궁금한 점도, 이해가 가지 않은 점도 많았을 테지만 일절 내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렇게 많은 질문을 던지지도 않으셨다.

다만 때로는 눈물을 훔치고, 때로는 흐뭇한 웃음을 짓고, 몇 번이나 밥 공기를 리필하며.

평범하게 아들의 며느리를 환대하는 부모님처럼 행동해주셨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배려와 사랑이 함유됐는지 아는 시우로서는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 이후 아버지와 산책에 나섰다.

“아들, 남자들끼리 산책할까?”

“그래요. 근데 엄마 혼자 괜찮으려나?”

“훌쩍 가출하더니 너희 엄마가 누군지 까먹었어?”

“하긴….”

엄마의 친화력이라면 어딜 가도 알아줬다.

동네 부녀회 반장, 카페 사장님이면서 손님이랑 몇 시간씩 수다를 떨곤 하시던….

아들이 이런 말 해도 괜찮은진 모르겠지만 카피바라 아줌마다.

변함없이 익숙한 산책길을 걸으며 아빠가 건네준 담배를 물었다.

부자간의 맞담배, 이건 또 얼마 만일까?

회색빛 연기가 폐부에 차올랐다가 길게 흩어졌다.

“내 아들이 이런 방면에도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내가 말했지? 넌 하면 된다니까. 그럼, 누구 아들인데.”

“아빠는 담배 좀 끊어. 나이 생각해야지.”

“너부터 끊어라 녀석아. 아직 10년도 안 핀 얼라가 쯧쯧.”

“나는 이제 폐암으로 안 죽는다니까?”

20살이 되자마자 결혼하셨던 부모님.

어머니 22살에 시우를 낳았더랬지.

그래서인지 언제나 아빠보다는 형 같았던 아버지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던 아버지가 말했다.

“또 가는 거냐?”

“…….”

어째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위화감과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모든 행복한 순간은 찰나의 백일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어렸을 때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진작에 재건축으로 허물어졌으며, 나이 먹은 나무들이 주르륵 늘어선 운치 좋은 산책로도 덩달아 사라졌으니까.

그러니 이런 순간은 아마 평생을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이다.

“가야 해. 아마 이번에도 오랫동안 못 올지도 몰라.”

“그래?”

“근데 어떻게 알았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부모 속이는 자식도 없어. 다 속아주는 거지.”

섭섭하다는 모습을 애써 감추는 아빠.

살짝 비틀린 입술 사이로 타들어 가는 담배까지 정말 현실 같다.

“사내자식이 울상이냐.”

“내가 언제.”

등을 툭 두드리는 아버지의 손길.

이것이 호문쿨루스의 마법일지, 아니면 그저 머릿속에서 빚어낸 찰나의 착각일진 모른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다.

분명 아버지라면, 어머니라면 이러한 순간에 같은 표정과 마음으로 같은 행동을 해주셨을 것이다.

비록 환상일지라도.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부모란 말이야. 자고로 자식이 행복한 게 제일이다.”

“…나도 알아.”

“빨리 가 이 녀석아.”

시우는 어느샌가 손에 들려있는 붉은가지를 꺼내 들었다.

허공에 그어 휘두르는 것만으로 공간이 찢어지듯 갈라지며 뒤편이 엿보인다.

낙엽송이 빼곡한 어두컴컴한 숲길이었다.

“다녀올게요.”

이별의 순간을 직감한 것인지 아버지가 소리치듯 외친다.

“자랑스럽다. 멋진 내 아들. 넌 어딜가도 삐뚤어지지 않고 잘하고 있을 거야. 엄마한테는 내가 잘 이야기 해둘게!”

뜨거운 것이 가슴부터 차오르는 느낌.

어두컴컴한 숲길로 나아가기 직전 아버지 쪽으로 큰절을 올렸다.

“정말 많이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곤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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