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6화 (806/917)

#806

1.

게헨나의 아케이드 상점가 말쿠트 갤러리에선 각종 보석, 예술품, 장신구, 의복 등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가치의 사치품이 거래된다.

마녀란 대체로 부유하며 그중에서도 부촌 레노먼드 타운에 거주하는 마녀들은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금화를 던지길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 중 최근 가장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끄는 것은 메리골드 향수점.

‘향수의 마녀’ 아멜리아 메리골드가 주문 조향하는 니치 향수였다.

천연재료에 마력수의 증기를 뿜어 추출한 에센셜 오일.

거기에 천재적인 조향사 메리골드의 실력이 더해진 ‘세계에 단 한 병뿐인 특별한 향수’.

유행에 민감한 마녀들에게 이처럼 특별한 사치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주위 상점에 불이 모두 꺼진 와중에도 홀로 은은한 황금빛 조명을 밝히고 있는 메리골드 향수점.

수년 치 예약이 단번에 차버리는 바람에 아멜리아는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조향 작업에 매달렸다.

“…….”

아멜리아는 손수건 끝에 가볍게 향수를 찍어 바르고 휘둘렀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손수건이 지나간 궤적에 남은 향기를 음미한다.

“…오늘도 끝이네요.”

완벽하다.

자신에게도 엄격한 완벽주의 아멜리아가 이런 평가를 내리는 건 딱히 집에 일찍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이 이상으로 어울리는 향수를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수확제에서 아멜리아는 큰 사고를 일으켰다.

그 대가로 남작 작위를 박탈당하고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본래 연구용도 이외에 향수 만드는 것을 즐기지 않던 아멜리아가 수년 치의 예약을 받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위의 염려 어린 시선과 달리 아멜리아는 딱히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 과정이 어떻건 시우와 화해할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 관계가 되었다.

10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마법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이렇게 향수 만들게 되었으니, 오히려 소피아의 조언대로 재충전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에센셜 오일 추출을 위한 지루한 반복 노동도 아멜리아에겐 그다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고 말이다.

아멜리아는 끈기가 넘쳤고, 작은 작업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얻는 타입이었다.

만약 마녀가 아니었더라면 취미로 미니어처 같은 걸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유일한 불만은 시우와 365일 24시간 꽁냥일 수 없다는 것 정도?

조향선반 위에 나열한 에센셜 오일을 차곡차곡 정리한 아멜리아는 가게 문을 잠그고 길거리로 나섰다.

완연한 겨울 공기가 뽀얀 입김을 자아냈다.

오늘은 시우가 없는 날이다.

간만에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묵을 셈이었다.

사람의 손을 오랫동안 타지 않은 건물은 쓸쓸하게 변하는 법이니 말이다.

“……?”

견습마녀 시절을 보냈던 굴피나무 숲에 도달했을 때 아멜리아는 의아함을 느꼈다.

오두막의 격자창 너머로 오렌지색 불빛이 흐르고 있다.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의아함에 더뎌졌던 아멜리아의 발걸음이 곧장 나풀거리는 깃털처럼 변한다.

시우가 분명하다.

원래 오늘은 티페레트 공작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을 테지만 어쩌다 보니 남은 시간에 오두막에 먼저 와 있던 것일테지.

종종걸음으로 달려간 아멜리아는 오두막 문을 활짝 열었다.

“시우?”

아멜리아는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1층 부엌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이건 살구 잼을 졸이는 냄새다.

시우와는 딱히 관계가 없는 냄새였기에 살짝 경계하던 아멜리아.

불청객은 아멜리아가 수색에 돌입하기 전 제 발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어머나, 아멜리아 왔니?”

“…….”

탐스럽고 폭신폭신한 금발, 비취처럼 파란 눈동자.

보울을 품에 안고 휘핑기를 휘휘 저으며 아멜리아를 반겨준 사람은 다름 아닌 스승님.

말리카 메리골드였다.

“스승님?”

그렇지 않아도 사슴처럼 커다란 아멜리아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섬세한 눈꺼풀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킬 정도다.

“디저트 만드는 중인데 도와줄래?”

스승님은 그런 아멜리아에게 애교 넘치는 윙크를 해 보였다.

기억 속에서 보았던 것보다 조금은 짓궂고,

어떤 면은 또 침착지 못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2.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 ‘자허토르테(Sachertorte)’이다.

다크 커붜처를 넣어 구운 스펀지 케이크에 새콤한 살구 잼을 바르고, 그 위를 쌉싸름한 초콜릿으로 코팅한다.

그 옆에 촉촉한 휘핑크림을 곁들이는 것으로 완성.

의외로 커피가 없어도 먹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달지 않으며,

제과제빵이 특기이던 스승님의 디저트 중에서도 아멜리아의 호평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케이크였다.

“머랭 좀 마저 내줄래? 나는 살구잼을 끓여야 하거든.”

얼떨떨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보울과 휘핑기를 받아든 아멜리아는 휘휘 그것을 저었다.

제법 힘들고 마법을 사용하면 시간과 노력을 단축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스승님의 베이킹 철학에 마법은 용납되지 않는 조리기구다.

그 동안 스승님은 작은 냄비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잼을 주걱으로 눌어붙지 않게 저어주고 있었다.

“아멜리아, 레몬 있니? 깜빡하고 못 사왔구나.”

“여기 있어요.”

자연스레 잼에 넣을 레몬을 요구하는 말리카.

홍차에 넣어 먹기 위해 사두었던 레몬을 꺼내주는 아멜리아.

분명 아주아주.

아주아주아주아주 오랜만인 재회였다.

그토록 보고 싶고 그리웠던 스승님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잠시 외출했던 스승님이 돌아왔던 것처럼, 언제나 항상 함께 했다는 양 위화감이 없다.

이런 게 가능한 건 두 사람이 모녀 관계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둘이서 자허토르테를 완성하고 부엌 식탁에 마주 앉을 때까지.

아멜리아는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스승님은 분명 아멜리아에게 계승해준 이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라는 사실을 쪽지 한 장에 남겨둔 채 말이다.

처음엔 스승님을 그리워하면서도 원망하던 아멜리아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를 용서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으니까.

그저 다시 보고 싶다는 간절함만이 남았을 뿐이다.

“자, 먹을까? 이제는 코코아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구나? 정말 다 컸는걸?”

“…어떻게 돌아오신 건가요.”

“미안해 아멜리아, 그건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이다음의 질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인 건가요?”

그때 아멜리아 앞에 불쑥 들이밀어 지는 포크.

말리카는 대답 대신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아멜리아를 채근했다.

“다 설명해 줄 테니까. 일단 아~ 하렴.”

아멜리아는 난처한 듯이 볼을 부풀렸다.

“스승님, 전 이제 견습마녀가 아니에요.”

“하긴 그렇지? 하지만 꼭 해주고 싶은걸? 내 눈엔 여전히 쪼꼬미 아멜리아거든.”

“쪼꼬미도 아니에요!”

잠깐의 실랑이.

그러나 아멜리아는 결국 스승님이 먹여주는 케이크를 물었다.

혀에 닿는 대로 무너지는 폭신한 스펀지의 감촉, 새콤한 살구 잼과 쌉싸름한 초콜릿의 조화.

살짝 퍽퍽할 수 있는 맛을 부드럽게 아우르는 휘핑크림.

맛있다.

이제 다시는 맛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언제나 스승님이 해주던 그 맛 그대로이다.

이제야 이것이 황홀한 꿈이나 망상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막혀 있던 둑이 무너지듯 가슴 속에 세차게 흐르는 감정의 격류.

“욱…. 우욱….”

아멜리아의 가냘픈 어깨가 들썩였다.

뿌옇게 변한 시야.

한 방울의 눈물을 기점으로 걷잡을 수 없이 뺨을 타고 구르는 투명한 물방울.

“스승님….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스승님은 그런 아멜리아를 안아주었다.

치자꽃이 자아내는 은은한 순백의 향기도 익숙하게 아멜리아의 가슴을 뒤흔든다.

“너므, 머무, 보고시펐허요….”

“응, 그래그래.... 나도 무척 보고 싶었단다. 갑자기 떠나서 놀랐지? 미안해 아멜리아. 정말 미안해….”

두 사람은 뜨거웠던 커피가 식을 때까지 눈물로 가득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3.

“어머어머, 이거 보렴. 아멜리아는 아직도 어리광쟁이가 맞잖니.”

“…놀리지 마세요.”

아멜리아는 스승님의 품에 아기처럼 안겨있었다.

벌겋게 눈을 비비며 잠깐만 놓으면 사라져버릴 것처럼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얼마나 이 순간을 그리워했던가?

스승님과 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쳐서 잠이 들던 나날을.

“내가 떠난 뒤에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주지 않을래?”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는 스승님의 손길을 느끼며 그간의 일들을 들려주었다.

사실대로 전하면 스승님이 걱정할 것이 뻔하니 최대한 행복한 순간들을 말이다.

스승님이 떠나고 마법 연구에 매진했던 일.

현세에 나갔던 일.

친구를 잔뜩 만들게 되었던 일.

좋은 일들, 행복한 일들만 잔뜩 이야기했다.

“그래? 정말 대단한걸?”

“잘됐다.”

“멋진 일이야.”

스승님은 지루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기쁜 듯이 아멜리아를 칭찬해주었다.

아멜리아는 마지막으로 스승이 쪽지에 남겨두었던 당부를 기억하며 입을 열었다.

아마 스승님이 가장 깜짝 놀랄만한 발언이었다.

“그리고 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정말? 정말로?”

“네.”

“남자친구야?”

“네.”

“하긴, 이렇게 예쁜 딸인데 여태 애인이 없다면 세상이 잘못된 거지. 그렇지 않니?”

“스승님, 자꾸 놀리면 저 이제 스승님이랑 말 안할 거에요.”

“후후후, 얼굴이 산딸기처럼 변했는 걸? 어휴, 귀여워.”

예상대로 파자마 파티 중 호들갑 섞인 수다를 이어나가는 여자아이처럼 기뻐하는 스승님.

놀림 반 축하 반을 와다다 쏟아내는 스승님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뿌듯하면서도 쑥쓰러웠다.

“그나저나…. 누가 우리 귀여운 아멜리아를 데려갔을까? 나도 만나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당연하다.

꼭 자랑하고 싶다.

아멜리아에게 제일 소중한 연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얼마나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지 스승님께 보여 드리고 싶다.

반대로 시우에게 스승님이 얼마나 인자하고 자상한 분인지 자랑하고 싶다.

“물론이에요, 스승님. 내일 꼭 함께 점심 먹어요.”

“그래그래.”

그날밤 아멜리아는 스승님의 품에 안겨 자장가를 들으며 단잠에 빠졌다.

이게 꿈이라면 절대로 깨지 않고 영원하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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