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
1.
옷을 갈아입고 알비레오 앞에 다소곳이 앉은 쌍둥이.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거실로 불려나온 둘은 풀이 잔뜩 죽은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스승님들에게 들키지 않게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며 조수님과 이것저것을 해왔다.
작은 스승님께 밀회를 걸렸을 당시 조수님이 혼쭐난 채로 지하감옥에 갇혔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딜과 오데트도 엄중하게 경고를 받았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로 서약까지 했다.
하지만 조수님과의 관계는 아니더라도 음흉한 목적으로 쓸 예정이던 무나홀을 걸려버렸으니….
엄격한 큰 스승님이 얼마나 화를 내실지는 자명한 노릇이었다.
“오딜, 오데트.”
“네, 스승님….”
“어휴, 이 개구쟁이들을 어쩌면 좋니…. 이리 오렴.”
하지만 알비레오는 쌍둥이를 엄하게 혼내지 않았다.
대신 새끼를 품는 어미 새처럼 팔을 벌려 두 쌍둥이를 끌어안는다.
“너희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성적인 욕구는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괘씸한 건 못된 사위일 뿐 귀염둥이들이 뭘 제대로 알겠는가?
더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견습마녀인 탓에 여러 가지 패널티를 안고 있는 오딜과 오데트이다.
다른 연인들은 멀쩡히 사랑을 나누고 있는 와중 계승을 받기 전까지 관계를 지양하라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가 있나.
심지어 최근엔 명석하다 믿어 의심치 않던 여동생 데네브조차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무언가’에 의해 온갖 바보짓을 저질러대는 중이다.
그런 여동생을 보며 조금 더 쌍둥이를 이해하게 된 알비레오였다.
“스승님….”
“죄송해요….”
“정말 괜찮단다. 화내지 않을게.”
예상 밖에 포근하게 안아주는 큰 스승님의 사랑에 눈물을 글썽이는 오딜과 오데트.
“그래도 이건 스승님이 보관하고 있을게. 계승이 끝나면 돌려줄 테니 이해해주겠니?”
“네, 스승님. 저희가 너무 경솔했어요.”
“그래, 들어가서 짐 챙기렴 잠시 들를 곳이 있단다.”
“어디요?”
이번 여행의 목적이 계승을 대비하는 것인 만큼 현세의 가신들에게 쌍둥이의 얼굴을 비춰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차 그들이 따라야 할 제머나이의 계승자이니 말이다.
“파티도 있고, 사교회도 있고, 모임도 있고…. 사나흘 정도는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거야.”
“네, 조수님 돌아오시면 인사하고 가도 괜찮나요?”
“그래, 그러렴.”
원래대로라면 더 놀고 싶다느니 조수님이랑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냐느니 쫑알거린 쌍둥이지만 오늘만큼은 말잘 듣는 아이가 되어 방으로 쪼르르 사라졌다.
“후우….”
무나홀은 압수했고, 이제는 이 발칙한 요물을 만든 사람을 추궁할 차례다.
물론 작동 방식을 살펴보았을 때 ‘그릇’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다만 왜 굳이 불필요한 바람을 불어넣었단 말인가?
“도로시.”
“응? 왜 백작님?”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주제에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도로시.
“이런 건 왜 만들어서 주신 건가요?”
“어차피 쌍둥이들도 알건 다~ 아는 것 같은데 기왕이면 안전한 방법으로 하는 편이 좋을까 싶었지…. 그렇지 않을까?”
항상 태연자약한 도로시지만 지금만큼은 뻔뻔하게 굴 수 없었다.
마녀에게 견습마녀는 귀중하다.
친딸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니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도 전적으로 알비레오의 손에 달려있다.
괜한 오지랖을 부린 꼴이니 찔끔하는 것이다.
“의도는 알겠지만, 앞으로는 주의해주세요. 오딜 양도 오데트 양도 저의 자식이니까요.”
“알겠어 백작님, 미안미안. 화내지 말아줘.”
2.
생각보다 조금 늦어진 복귀.
시우와 엘로아는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김에 적당히 빙수를 사왔다.
새벽 2시라 함은 간식을 먹기 딱 좋은 시간 아닌가?
저번에 쌍둥이가 찾아왔을 땐 아이스크림으로 실망하게 했으니 이번엔 게헨나에는 없는 빙수로 승부를 볼 심산이었다.
“다녀왔어요.”
하지만 신발을 벗고 현관에 들어서도 어쩐지 허전하다.
현관으로 뛰쳐나와 반겨줄 쌍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너무 늦었나 본데요?”
“아무래도 자고 있나 보네. 오딜 양도 오데트 양도 아직 견습마녀이니 말일세.”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거실로 들어선 시우를 반겨준 건 뚱한 표정을 알비레오와 눈치를 보고 있는 쌍둥이였다.
어쩐지 분위기가 싸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큰 장모님인 못난 사위로선 켕기는 게 없어도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시우 군 왔나요?”
“알비레오 님, 어쩐 일로…?”
“한 사흘 정도 쌍둥이를 데리고 있게 됐어요. 떠나기 전에 시우 군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고요.”
“그렇군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요, 막 도착했어요. 잠깐 옥상에서 얘기 좀 할까요?”
그렇게 말하고 시우를 옥상으로 끌고 가는 알비레오.
영문도 모르고 장모님께 끌려간 시우는 전전긍긍하며 이번엔 무슨 이유로 혼나야 하는 건지 속으로 추리고 있었다.
“하아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옥상에 도달하자마자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는 장모님.
“저기…. 갑자기 어쩐 일로….”
갑자기 정강이를 걷어차여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알비레오는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를 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았다.
“갑자기 스미르나 양이 호출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나요?”
알비레오도 좋아서 사위를 타박하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조금 전의 일은 시우의 의지와는 무관한 소소한 해프닝이 아니던가?
다만 앞으로 나눌 대화가 쌍둥이의 귀에 들어간다면 골치가 아파 질 수도 있기에 장소를 달리한 것뿐이다.
“전부터 있던 문제로 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수에 감각이 없는 문제 말인가요?”
“네.”
“뭐라고 하던가요?”
“자세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하네요. 그것 때문에 내일쯤 몽골로 출국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몽골이요?”
“다른 마녀를 소개받아서요. 또 혼자 다녔다간 위험하니 다 같이 가야죠.”
“쌍둥이도 요 며칠간은 저희를 따라다녀야 할 테니 마침 잘 됐네요.”
“아무튼…. 그렇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당장 심각해 보이는 문제도 아니고요.”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건가요?”
퉁명스레 답한 알비레오지만 명백히 걱정하는 기색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솔직하지 못하신 큰 장모님이다.
이후 자리를 비운 동안 쌍둥이가 잘 지냈는지, 다른 연인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간단히 보고를 끝낸 시우는 오피스텔로 돌아와 출국을 준비했다.
3.
5성 호텔이 빽빽한 광화문에서도 최고급 설비와 시설을 자랑하는 페리윙클 호텔의 최상층,
실내조명을 최소화하여 실외의 야경과 조망을 극대화한 프라이빗 바에서 알비레오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영업시간이 지난 바 전체를 대절하고 바텐더마저 물린 채 홀로 앉아있는 알비레오지만, 누군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홀린 듯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신비로운 자색 눈동자와 아무렇게나 올려 묶었음에도 기품이 넘치는 알비레오의 옆 모습은 본디 화려해야 할 바 내부의 실내장식마저 퇴색시키듯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
그러나 화보 속 한 장면처럼 보이는 광경 속 다소 이질적인 물체가 있다.
팔을 걸칠 수 있는 높은 테이블에 놓인 분홍색 실리콘 덩어리가 그것이다.
성공한 사업가의 카리스마와 경국지색의 미모를 겸비한 여인이 남성의 자위기구를 손끝으로 콕콕 찌르고 있는 장면은 흡사 알고리즘이 잘못 짜인 AI일러스트 같았다.
언제나 온갖 일감에 시달리는 알비레오에게 조용한 곳에서 술을 홀짝이는 건 중요한 휴식 루틴 중 하나였다.
본래라면 데네브가 옆에 있어야겠지만….
요새는 여러 문제로 통 사이가 소원하다.
대신 알비레오는 오늘 압수한 오나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심심풀이로 만들었다고는 하나 22 위계의 마녀가 자성마법을 부여한 아티펙트.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다.
마녀로서의 관찰과 묵상을 끝낸 알비레오는 오나홀 안쪽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음….”
윤활제가 없어 상당히 뻑뻑한 느낌이긴 했지만 정말로 감각이 연결되어있다.
데네브가 관계 시 느꼈던 자극과 흡사하다.
아마 지속적인 반복으로 압박 및 마찰을 준다면 유의미한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연동된다면 유효거리에는 달리 제한이 없었다.
자성마법이기에 자세한 해석은 힘들었지만 오나홀과 연동자 간 ‘마력과는 관계없는 절대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흥미가 동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알비레오는 금세 이 무나홀에서 흥미를 잃었다.
딱히 성적인 쾌감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아닐뿐더러 굳이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할 이유를 떠올릴 수 없는 까닭이다.
최근 각종 회의와 파티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알비레오는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만 눈 붙일까….”
무나홀을 아무렇게나 짐가방에 쑤셔 넣은 채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알비레오.
고른 숨소리가 방 안에 흐르기 시작했을 때.
어두컴컴한 방의 한구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둑고양이가 봉투를 뒤적이는 것처럼 알비레오의 짐꾸러미를 헤집는 인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데네브.
“…이거다.”
무나홀은 알비레오에겐 그다지 관심을 끌 수 없는 물건이지만 데네브에게는 달랐다.
쌍둥이로부터 알비레오가 진귀한 아티펙트를 획득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데네브가 잠입해온 것이다.
당장은 쓸모가 없을 테지만 언젠가 쓸 일이 올 터.
원하는 바를 손에 넣은 데네브는 등장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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