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
1.
제각기 비장의 물건을 사와 오피스텔에 자리 잡은 연인들.
시우와 엘로아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술자리를 벌이기로 했다.
“자자~ 다들 여기 주목!”
모두 자신이 어떤 물품을 구매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꽁꽁 숨겨둔 가운데 도로시만이 자신이 구매한 제품을 공개했다.
아직은 어색한 관계 속 친목을 다질 겸 가벼운 엔터테이먼트 시간을 준비한 것이다.
한 상에 옹기종기 모인 연인들이 시선이 테이블 위를 향한다.
도로시가 꺼내 든 것은 팔뚝 정도 되는 크기의 분홍빛 실리콘 덩어리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으음? 오나홀 아니더냐? 다시 봐도 숭한 생김새니라.”
성인용품점의 3층 남성 코너에서 봤던 남성용 자위기구, 여성의 그곳을 본뜬 내부구조를 지닌 물품 그것은….
오나홀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중 3층 코너를 주의 깊게 본 사람은 없었다.
여성의 하반신이나 상반신을 정교하게 빚어낸 모형이 신기하긴 했다.
어떤 물품은 실제 여성의 성기를 본떠서 땀샘까지 구현했다고 어필하는 품목도 있었다.
하지만 자위기구는 자위기구.
아무리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그걸 이벤트에까지?’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음, 신기하네요?”
“젤 같은 걸 사용하는 건가요?”
따라서 호응은 해주되 대체로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린네의 경우엔 대놓고 시선조차 주지 않았고 말이다.
“맞아맞아~ 이대로는 영 쓸모없을 테지만…. 간단한 마법을 부여하면 재밌는 걸 할 수 있다는 사실!”
도로시의 눈이 마력으로 빛난다.
행하는 것은 연금술을 응용한 간단한 부여마법.
본인의 마법 이외에도 ‘성욕색상진단’처럼 잡기에 능한 데다가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방식이 더해졌기에 만들어진 간단한 아티펙트.
도로시의 자성마법 중 하나인 ’계시’를 오나홀에 부여한다.
이후 공명점을 이끌어내어 영체와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남겨 놓는다.
능숙하게 베틀을 짜는 직공처럼 섬세하게 부여된 마법은 오나홀을 순식간에 아티펙트로 만들어 내었다.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더 그럴듯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다.
어디까지나 술자리에서 쓸만한 조금 야한 장난감이니 말이다.
“자, 무선 연결 오나홀 완성이야.”
도로시의 마력 특성을 받아들인 오나홀은 전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어쩐지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마력의 광채마저 은은히 번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선 연결….”
“...오나홀?”
예사롭지 않게 변한 남성용 장난감에 가장 흥미를 보인 건 쌍둥이였다.
“응~ 효과는 아주 간단해. 마녀의 낙인과 이 장난감을 연동하면…. 오나홀 내부에 가해지는 자극이 연동한 사람에게도 가해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예를 들어 이 안에 뭔가를 삽입하면 연동된 측은 실제로 삽입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거지.”
“지, 진짜 그런 게 된다구요?”
쌍둥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야말로 신기술이었다.
“도로시 님, 근데 그거 위험한 거 아닌가요?”
기상천외한 성인용 아티펙트를 가리키며 묻는 샤론.
“만약 연동한 상태에서 찢어지거나 너무 과한 자극을 가하거나 한다면…. 너무 아플 것 같은데….”
“좋~은 지적이야. 그래서 통증 쪽의 연동은 아예 배제해 버렸어. 그 덕에 다른 감각의 전이율도 80% 정도로 대폭 줄어 버렸지만 안전이 제일이지.”
“아하.”
하지만 설명이 끝나도 분위기는 도로시의 생각보다 달아오르지 않았다.
린네는 잠깐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다시 고개를 돌렸고, 르뤼에는 술을 마시는 데 더 집중했으며, 아멜리아와 샤론은 굉장히 남사스러워하는 듯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던 도로시는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평소에 이런 분위기가 아니구나? 미안~ 미안~”
이는 전적으로 도로시의 오해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여기 모인 연인들은 말하자면 신시우의 하렘.
성인용품점도 함께 가는 것을 보아 술자리에서는 제법 수위 높은 대화와 장난이 오갈 줄로만 알았다.
‘언니는 어디가 약하잖아요’ 라던가 ‘그이는 이런 자세를 좋아해요’라던가 하는 대화 말이다.
따라서 그 후끈후끈한 분위기에 흥을 돋우고자 무나홀을 술게임 상품으로 걸 셈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무궁무진한 플레이로 파생할 수 있는 아티펙트 아닌가?
가령 수유대딸을 하며 삽입 섹스의 쾌감을 느낀다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체위도 즐길 수 있다.
“아쉽게 됐네. 이건 그럼 도로 넣을게. 그럼~ 평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가뜩이나 어색함이 감돌던 분위기가 지저까지 처박히는 걸 본 도로시가 머쓱하게 무나홀을 재포장했다.
2.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뿐이었다.
원래 인간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에 술만 한 것이 없는 법이다.
연인들의 뺨이 복숭앗빛으로 달아오르며 무르익기 시작한 술자리는 처음보다 훨씬 발랄하게 이뤄졌다.
도로시의 능숙한 언변이 샤론의 친화력과 더해지자 입이 무겁던 린네도 한 두 마디씩 대화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아~ 그럼 이번 주제는 뭘 할까?”
서로의 마녀 명을 걸고 진실만을 답하는 간단한 술게임을 진행하던 도중.
주제를 정할 차례가 된 도로시는 싱글벙글 웃으며 한 가지를 제안했다.
“신시우! 이 점은 진짜 별로다! 다들 기탄없이 말해봅시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술자리라 해도 다소 민감한 주제를 선정한 도로시.
조금만 선을 잘못 타도 사랑하는 님의 뒷담화가 될 수 있는 주제였다.
“괜찮을까요?”
“다른 주제는 어때요?”
“이러지들 마~ 여자들끼리 한 대화는 비밀 엄수니까. 알지? 이런 얘기 언제 해보겠어?”
대답해야할 가장 첫 번째 순번은 르뤼에였다.
소파에 반쯤 누운 채 병나발을 불던 르뤼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짐의 국서가 별로인 점이라….”
염려와 호기심 섞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르뤼에는 툴툴거리며 털어놓았다.
“아랫도리가 너무 크니라. 그리고 쓸데없이 절륜해서 가끔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도다.”
“하긴 그렇지~”
르뤼에 답게 명쾌하고 알기 쉬운 불평.
살짝 긴장했던 연인들 사이에도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제 차례인가요?”
다음은 무릎을 안고 몸을 좌우로 기우뚱거리던 아멜리아의 차례.
주목된 시선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멜리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시우가 조금만 배려를 덜 하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우우, 아멜리아 부교수님. 혼자 이미지 챙기시면 어떡해요?”
“맞아요, 그게 무슨 별로인 점이에요!”
“하, 하지만…. 정말인걸요….”
술 취한 쌍둥이가 호기롭게 불만을 토했지만 아멜리아는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지켰다.
다음은 술기운에 열이 올라 머리를 올려묶은 샤론의 차례.
“음…. 저는 시우가 조금만 더 자기 몸을 챙기면 좋겠어요.”
“…맞아요. 전적으로 동의해요.”
“조수님이 목숨 한 네댓 개 있는 것처럼 행동하긴 하지.”
아멜리아 때와는 달리 꽤 많은 동의를 얻었다.
연례행사도 아니고 분기마다 한 번씩은 위험한 짓을 꼭 하는 시우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던 연인들이니 말이다.
다음은 귀염둥이 마스코트 오딜과 오데트의 차례.
“조수님은 여친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앞으로 자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질지도 모르겠어요!”
“바람둥이.”
“욕심쟁이.”
속사포처럼 우다다 말을 쏟아놓는 쌍둥이였으나 마무리는 솔직했다.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기는 건 좋아요. 그치 오데트?”
“맞아 언니, 예전이었다면 생각도 못 했을 거야.”
“매일이 즐겁고, 다들 좋아요.”
“그래도 사랑싸움은 사랑싸움이에요! 봐주지 않을 거에요!"
당찬 견습마녀의 풋풋하고 당찬 발언이 박수로 호응을 얻은 가운데.
질문자인 도로시를 제외하고 마지막 답변자, 린네에게 순번이 돌아왔다.
“…….”
허나 린네는 아주 느릿하게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뒤늦게 눈치챘다.
끔뻑끔뻑 금방이라도 잠들어 버릴 것처럼 둔중하게 움직이는 눈꺼풀.
시우에게 결핍의 저주를 제거 받았다 한들 린네의 주량은 여전히 바닥에 가까웠다.
태생적으로 알쓰 체질을 타고난 것이다.
“린네 네 차례야.”
“무슨 말이지?”
“신시우가 별로인 점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었어.”
“…별로인 점?”
평소 날카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느릿한 말투로 되물은 린네는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무릇 아내란…. 낭군의 허물을 알고도 입 밖에 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야 하는 법이다.”
“…….”
“헌데 한낱 술자리 여흥으로 지아비를 욕보이다니 이해할 수 없다.”
“…….”
“자~! 여기까지. 린네는 내가 재우고 올게.”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 한 린네의 발언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기 직전 도로시가 린네를 번쩍 들어 침실로 옮겨 버렸다.
“그럼 여기까지 할까요?”
“슬슬 시우가 돌아올 시간도 됐으니…. 그게 좋겠네요.”
아무튼 한 명이 빠졌으니 자연스레 술자리가 파하는 분위기.
술상을 정리하고 도로시가 취침 전 샤워를 위해 욕실로 발을 들였을 때.
“도로시 언니.”
“잠시만요.”
오딜과 오데트가 은밀하게 접선해왔다.
“음? 무슨 일이니?”
오딜과 오데트는 잔뜩 머뭇거렸다.
“그….”
“무선연결…. 그거 있잖아요?”
조수님을 향한 과감한 사랑과 호기심으로 두드러지진 않지만 쌍둥이도 어엿한 요조숙녀이다.
아직 그다지 친하지 않은 타인에게 이런 종류의 부탁을 하는 것이 쑥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도로시가 즉조한 아티펙트는 쌍둥이에겐 몹시 매혹적인 물건이었다.
오딜과 오데트는 견습마녀라는 특성상 앞의 경험이 아직 없었다.
조수님이 증폭하는 마력은 굉장히 순수하기 때문에 앞으로 넣어도 별문제가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만에 하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관계를 지양해 온 것이다.
하지만 무나홀이 있다면 비교적 유사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견습마녀가 써도 되는 거 맞나요?”
“그릇이 오염되면 안 되잖아요.”
“걱정할 것 없어~ 그런 부분에서는 허투루 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계시’는 엄밀히 말하면 마력을 쓰는 마법이 아니거든.”
그렇다면 더더욱 놓칠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게 확정된 셈이다.
“그거 저희가 살게요.”
“얼마면 될까요?”
오딜도 오데트도 큰 지출을 감당할 마음가짐이었다.
때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니 말이다.
어차피 간단하게 만든 물건이고 귀여운 견습마녀에게 푼돈 장사를 해야 할 만큼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보아하니 여왕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으니 이 정도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줘도 되지 않을까?
“으음~ 괜찮아. 어차피 술게임 상품으로 쓰려던 거니까 너희한테 줄게.”
“정말요?”
“진짜요?”
“대신 우리 여왕님이랑 계속 잘 놀아줘야 한다~?”
“네!”
“물론이죠!”
쌍둥이는 무선연결오나홀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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