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1화 (801/917)

#795

1.

가게는 충분히 넓었지만, 아멜리아 외 6인은 가게 곳곳으로 흩어지는 것을 택했다.

진열대나 진열장이 있는 까닭에 다 같이 뭉쳐있다면 통행에 방해될 것은 염려한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이 쇼핑이 지닌 본래 의미가 두 번째 이유였다.

단순히 백화점을 떠돌며 옷가지를 쇼핑할 때와는 다르다.

비록 우정과 친애로 서로를 대한다고 해도 제각기 한 사람을 두고 사랑다툼을 벌이는 연적지간이다.

여기서 구매할 물품은 하나하나가 사랑을 쟁취할 비장의 아티펙트인 만큼 다른 연인들보다 빠르게 독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

그렇게 빠르게 2층으로 향한 아멜리아는 숨을 멈췄다.

음지 사업의 양지화라는 목표를 지닌 채 세워진 성인용품점답게 1층은 비교적 건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2층부터는 그야말로 마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전반적인 색감부터가 다르다.

죄다 살색, 빨간색, 검은색.

야릇한 포즈를 취한 모델들이 성인용품을 실착용하고 있는 브로마이드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철망처럼 생긴 진열대에 굴비처럼 매달려 있는 야릇한 속옷들.

형용할 수 없는 음란함을 풀풀 뿜어내고 있는 정체불명의 도구들.

거기에 성인용품 특유의 노골적인 포장박스까지 더해지자 아멜리아는 차마 눈을 둘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쩜 이런….”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 아멜리아.

애초에 성 경험이라고는 시우와 나눈 것이 전부인 그녀이다.

최근 책으로 조금 공부를 했다지만 성적인 자극에 대한 면역력은 응애 수준에 불과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춘기 공주님이 사창가를 처음 보았을 때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참아야 해요.”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얼마전 엿 본 샤론과의 관계에서 깨달았다시피 아멜리아는 여전히 시우의 일방적인 배려를 받고 있었다.

그에게 이제는 아멜리아도 준비되었다는 걸,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샤론 못지않은 과감한 도구를 챙겨갈 예정이었다.

“후우… 하아….”

한차례 심호흡 이후 지뢰 매설지역을 거니는 신중함으로 진열대 사이를 나아가는 아멜리아.

먼저 익숙한 것들도 눈에 두며 마음의 진정을 꾀했다.

여기 보이는 이 야릇한 속옷 .

비록 재질은 소피아가 선물해준 것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노출도와 야릇함 면에서는 같은 용도의

속옷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봐라.

현세라고 해서 특별히 겁먹을 것 없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당차게 걸음을 옮기던 아멜리아의 전진은 고작 두 걸음 만에 멈춰 서게 되었다.

“…….”

그녀의 시선이 꽂힌 곳은 한 선반.

실물을 볼 수 있게끔 박스에서 견본품으로 진열된 그것은 아마도 바이브레이터의 일종으로 보였다.

다만 1층에 전시된 것과는 두 가지가 다르다.

우선은 그 모양.

1층에서 봤던 바이브처럼 현대적이며 매끈하고, 어딘가 애교 있어 보이기까지 한 디자인이 아니다.

실제 남근을 형상화한, 거기에 음핵을 자극하는 기믹이 가지처럼 뻗어있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사이즈 때문이었다.

명백히 시우보다도 컸다.

아니, 애초에 인간은 이 사이즈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30cm는 될법한 크기, 어른주먹보다 조금 작은 귀두 부분.

고문용품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는 괴물이었다.

참고로 상품 이름은 진격의 바이브라고 한다.

이게 정말로 아멜리아가 생각하는 그 용도이긴 한지, 과연 여성이 이걸 감당할 수는 있는 건지.

조심스레 살펴보는 아멜리아의 등 뒤에서….

“오호~ 아멜리아 양은 취향이 과감한대?”

도로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한 DVD코너를 기웃거리다 들킨 중학생처럼, 화들짝 시선을 떼며 모르는 척 발길을 돌리려는 아멜리아의 어깨에 도로시의 손이 얹힌다.

“어디로 가려고?”

“용무가 뭐죠?”

“용무라니, 그냥 쇼핑이나 도와주려는 거지.”

“도움은 필요 없어요. 그리고 구매하려고 본 것도 아니에요. 절대로요.”

애잔할 만큼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아멜리아를 여유롭게 놓아준 도로시.

“그래? 하긴~ 이건 조금 하드코어하긴 하네.”

두 사람은 일전에 인연이 있다.

시우를 구하기 위해 함께 헥센나흐트에 잠입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도로시는 아멜리아가 겉보기와 다르게 순진한 구석이 있으며, 서툴기 짝이 없는 아가씨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넣어본다면 생각보다 쉽게 들어갈걸? 실리콘과 ABS 재질이라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우리는 영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그 사람한테 이벤트 해주려고 사려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럼 개인적으로 원래부터 이런 물건에 관심이 있었어?”

“자꾸 말 걸지 마세요.”

도로시를 피해 잰걸음으로 이리저리 도망치는 아멜리아와 진득하게 추격하는 도로시.

아멜리아에겐 어쩐지 소피아를 연상케 하는 능글맞음이었다.

가슴이 큰 여자는 다 성격이 비슷한 걸까?

그리고 매사에 진지한 아멜리아는 이런 유들유들한 성격과는 궁합이 최악에 가까웠다.

이쪽은 진지하게 항의하는데도 번번히 놀림을 받고 끝나는 것이다.

“조금만 도와줄까?”

“…….”

“이런 쪽에 꽤 많이 아는데.”

빨리 도로시를 따돌려야겠다고만 생각하던 아멜리아지만 그 제안에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여자가 보아도 색기가 줄줄 흐르는 도로시이다.

비단 저 파괴적인 가슴 때문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다.

그런 도로시의 도움이라면 ‘자신도 그럴듯한 이벤트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던 것이다.

“왜죠?”

“그냥~ 우리 나름대로 전선을 함께한 전우잖아?”

“…좋아요, 용도만 몇 가지 물어보겠어요.”

조금의 망설임 이후 아멜리아는 포도처럼 매달려 진열된 물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얇고 낭창이는 꼬치에 동글동글한 구슬이 주르륵 연결된 그것.

어쩐지 과일 꼬치를 연상케하면서도 용도조차 짐작할 수 없던 물건이었다.

“이건 뭐죠?”

“애널비즈라는 거야.”

“애널… 비즈…?”

“엉덩이에 하나하나씩 밀어 넣는 거지. 그다음에 주르륵 뽑아내는 용도랄까?”

내심 기대를 품고 아멜리아를 바라본 도로시는 기대치를 초과하는 리액션에 감탄했다.

뇌 정지가 온 듯 멍하니 있다가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입을 뻐끔뻐끔거리는 아멜리아.

“처, 천박해요…”

“원래 뜨거운 사랑일수록 천박한 거야. 하나하나씩 뽑을 때마다 엄~청 부끄러워하는 아멜리아 양을 보면 시우도 끔뻑 죽지 않을까?”

만취한 것처럼 벌게진 아멜리아의 발걸음이 비틀댔다.

애초에 목적 자체는 야한 이벤트긴 했다.

그러나 막상 상상해보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아직 뒤로는 경험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초심자에게 좋아. 성감은 개발이 필요한데 크기가 다른 구슬이 이완과 감각 향상을 돕거든.”

“…도로시 양도…. 해봤나요?”

“뭘?”

“…뒤로….”

어느덧 개미 목소리처럼 작아진 아멜리아가 조심스레 묻는다.

“음~ 했어. 완전 변태처럼 당해버렸지 뭐야.”

시원스레 답하는 도로시의 답변에 어쩐지 조바심이 깃든 아멜리아.

쌍둥이도 했다.

샤론도 했다.

도로시도 했다.

심지어 근엄한 엘로아 님도 했다.

르뤼에나 린네 쪽은 아직 모르지만….

어쩌면 아멜리아 혼자 미경험자인 건 아닐까?

“…….”

아멜리아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그런 건 싫다.

또 일방적인 배려를 받으면서 거기에 안주하고, ‘아직 미숙하니까’ 라는 이유를 변명 삼아 곱씹고 싶진 않다.

스승님이 말씀했던 대로 후회가 남지 않게끔 더욱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그런 속마음까지는 모르는 도로시라도 아멜리아가 침울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다.

전에도 느꼈지만 감정 전환이 꽤 격렬한 아가씨다.

“으음…. 이건 나만 쓰려고 했던 비장의 무기인데~ 어쩔 수 없네.”

마녀에게 은원 관계는 중요하다.

그리고 도로시는 아멜리아에게 한 번 목숨을 빚진 입장이다.

아멜리아의 적절한 지원사격이 없었더라면 도로시는 린네와 함께 공적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겠지.

어찌보면 지금은 한 번의 은혜를 떨이로 갚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따라와 볼래?”

도로시가 아멜리아를 이끌고 코스프레 코너로 향했다.

2.

조용한 언행과 얌전한 외견과 달리 행동력만큼은 야만인 돌격대장에 비견되는 린네.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4층 코스프레 코너에 도착해 있었다.

물론 가게가 가게인 만큼 일반적인 의미의 코스프레라기보다는 온갖 야릇한 의상의 총집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엘로아가 준비했던 충격적인 토끼 의상처럼 말이다.

린네는 마네킹에 입혀진 옷가지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옆트임이 골반 위로 올라오다 못해 옷감 전체가 반투명해 살갗을 내비치는 씨스루 차이나 드레스.

엉덩이와 고간 사이를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메시 수용복.

심지어 유두와 국부만을 겨우 가리는 V자 모노키니, 슬링샷.

메이드, 간호사, 스튜어디스처럼 특정 직업군을 떠올리게 하는 복장까지.

정말 별것이 다 있다.

“…….”

린네의 미간이 구겨진 채 펴질 줄 모르는 건 비단 의상의 천박함이 불러오는 민망함 때문이 아니었다.

일찍이 낭군을 위해서라면 제 품위 따윈 얼마든지 저버릴 수 있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상의 복장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노출이 많거나 몸에 달라붙는 만큼 타고난 몸매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린네의 체형은 유감스럽게도 흉부의 굴곡이 다소 부족하다.

위 의상의 파괴력을 살리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그냥 다른 물품을 둘러보는 게 좋을지 고민하던 린네의 시선을 붙잡는 한 의상.

“이거다.”

바로 ‘큐트캣 망사 전신 스타킹 세트’.

가슴 사이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오히려 작은 크기이기에 훨씬 어울리는 이 옷이야말로 린네에게 어울리는 필살기.

마침 시우는 동물 흉내를 내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니 이보다 적절한 초이스는 없어 보였다.

“…….”

린네는 불끈 주먹을 쥐고 작은 기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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