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0화 (800/917)

#794

1.

종로의 한 성인용품 가게.

젊은 남녀의 데이트 스팟이자 번화가 한가운데 입점한 만큼 매점의 규모는 컸다.

무려 4층짜리 건물 하나가 전부 어른의 장난감으로 가득한 것이다.

더 이상 성인용품 가게는 다 망해가는 구 상가건물에 은밀히 박혀있는 음지 느낌이 아니었다.

이색데이트 코스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사과스토어를 연상케 하는 밝은 조명과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양지로 올라온 성인용품점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린 공간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용객의 대다수는 커플.

더군다나 대다수가 여자인 직원들이 쉴새 없이 말을 걸며 원치 않는 살가움과 싹싹함을 선보인다.

남성용 자위기구 코너에서 오나홀을 구매하러 온 남자들은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 실로 인싸들의 성지인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인용품을 활보하는 두 남자 A와 B가 있었다.

며칠 전 교보문고에서 탈덕과 운동을 결심한 그 A와 B다.

탈덕을 결심했다 하여 여자친구 구매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는 노릇.

새로 나온 오나홀 ‘마녀의 유혹 ver.3rd’를 구매하기 위해 성인용품점에 과감히 발을 들인 것이다.

“찾으시는 물품 있으신가요?”

“아아, 오나홀을 구매하러 왔습니다.”

“한정판 오나홀의 재고가 있다는 첩보를 듣고 왔습니다만, 지금도 남아 있나요?”

“그, 그러시군요…. 남성용품은 3층에 있어요. 안내 도와드릴까요?”

“필요 없습니다. 하하하.”

달라붙는 직원까지 떨쳐낸 둘이 3층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에 발을 올렸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각종 진열대가 빼곡하게 들어선 까닭에 가뜩이나 북적이는 입구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경탄, 탄식, 감탄, 예찬으로 가득한 소란에 A와 B의 시선도 그대로 입구를 향했다.

“저 여인들은…?”

“소국의 공주와 여왕님들?”

아마 그녀들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실로 운명적인 재회였다.

얼음동상 같은 차가운 인상의 미녀, 요정 같은 녹색머리 누님, 인형 같은 쌍둥이, 바다의 여왕 같은 포스를 뿜는 여왕님.

교보문고에서 두 사람의 인생관을 바꿔놓은 미녀들이 무려 성인용품점에 들어선 것이다.

“어이어이, 농담하지 말라고….”

그게 끝이 아니다.

동행이 둘 늘어있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와 살짝 처진 눈꼬리가 특징인 초거유 누님까지.

유유상종이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동행들의 미모 역시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수준이다.

“…….”

“…….”

점내에 싸한 침묵이 감돌았다.

평상시에는 아싸들에게 커플이라는 권력을 과시하며 기만을 일삼던 하던 인싸들도 숨을 멈춘다.

두려울 정도의 친화력과 붙임성을 자랑하는 직원들조차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우뚝 멈춰 섰다.

“자~ 그럼 구경할까?”

단숨에 쏠리는 이목은 일상일 뿐이라는 양 태연하게 장바구니를 뽑아든 거유 누님 옆으로 다른 미녀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럴 리 없어.”

A는 가슴 속에 스며드는 거무칙칙한 감정을 느꼈다.

인정할 수 없다.

번호를 따러 갔을 때 애인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상쾌하게 단념했을 뿐 질투심 따위는 생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체불명의 눈물이 흐른다.

“여긴, 성인용품점이라고….”

이곳은 성인용품 가게.

서슴없이 장바구니를 빼 든 걸 보아 그녀들의 목적은 쇼핑일 것이 분명하다.

A의 인생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준 뮤즈들이 얼굴도 모를 놈팽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인용품점 쇼핑을 나섰다니.

가슴이 천 갈래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다.

“정신 차려라 A.”

그때 냉정하기 짝이 없는 B의 질책이 귓전을 때렸다.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더럽혔어…. 우리의 이상향을 더럽힌 사람이 있는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읍소하는 A에게 B는 조금의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A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너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

“그래.”

그런 A에게 B는 순순히 자기 생각을 말해주었다.

“상식적으로 저렇게 아름답고 순수하게 생긴 여성분들이 남자를 만날 리 없다. 하물며 남친에게 이벤트를 하기 위해 성인용품점을 찾는다?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노릇이지.”

B의 발언은 명백히 궤변에 가까웠다.

아직 사춘기가 채 끝나지 않는 소년이 동경하는 여가수를 보며 ‘ㅇㅇㅇ씨는 똥도 안 싸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현실을 외면하고 뇌내의 환상을 증폭할 뿐인 망상인 것이다…만.

“그런가?”

눈앞에 보이는 장면은 단숨에 B의 발언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 장면이라 함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아름다움’ 자체다.

뭔가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 같고, 이슬만 먹어도 살 것 같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 같고, 대단한 마법 같은 걸 사용할 것 같고, 남자를 만날 것 같지도 않은….

비현실적인 망상을 합리화하는 초월적인 아름다움.

듣고보니 B의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왜 그렇게 멋대로 단정 짓고 슬퍼했던 걸까?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어 B군. 그냥 신기해서 관광을 온 거겠지.”

“아무렴. 만에 하나 물건을 사러왔다 해도…. 그렇군. 이제 완벽하게 깨달았다.”

그 순간 A는 B가 자신과 똑같은 가설을 떠올렸음을 깨달았다.

천사가 인간을 만날 수는 없다.

그들의 고귀함과 순결함에 비하면 그 어떤 인간조차 추악할 터이니.

그에 대한 해결책은 단순하다.

천사끼리 만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6명이 만들어낸 작은 원이 마치 금남의 화원처럼 보였다.

“설마, 백합….”

“그렇지.”

세계의 진리에 접한 듯한 크나큰 깨달음에 탄식을 내뱉는 A와 B.

그렇다면 저 아름다운 천사끼리 침대에서 영차영차를….

“크윽…!”

“끼에에엑!”

가게 내부의 남성들이 일제히 신음을 토했다.

그들 역시 AB와 마찬가지의 사고를 거쳐 같은 상상 포인트에 도달한 것.

그러나 마녀의 미모는 그 미모가 익숙하지 않은 자들에게 일말의 음흉한 망상마저 차단하는 숭고함이 있다.

그로 인해 두통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정욕과 번뇌가 휩싸이던 남심에 감전처럼 전류가 통한 이후 평온이 찾아온다.

3연 딸을 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하디진한 현자타임이 그것이다.

분명 여기 왔을 때까지만 해도 옆에 있는 여자친구를 잘 꾀어서 온갖 야릇한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 음심에 불탔던 마음이건만....

“돌아가자.”

“여보, 갈까?”

“여기는 다음에 오자.”

“우리 헤어지자. 몸뿐인 관계 질렸어.”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소년 시절로 돌아간 이 마음을 오늘만큼은 지니고 싶다.

“돌아갈까?”

“그래야겠군.”

신품 오나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A와 B도 마찬가지였다.

2.

어쩐지 빠져나가는 손님들.

그 연유는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 쇼핑에 몰두 중인 오딜.

“우와….”

심상찮음을 감지했던 오딜이긴하지만 막상 가게 앞에 발을 들이자 무심코 입을 쩍 벌렸다.

예상했던 만큼 음침한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백화점에서 가전제품을 팔던 곳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1층에 전시해 놓은 물건들은 마니악한 제품보다는 크게 문란해 보이지 않는 용품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성인용품은 성인용품.

아마 세상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용도와 쓰임새를 상상할 수 있는 물건일 것이다.

그만큼 형용할 수 없는 음란함이 풀풀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딜과 오데트는 나란히 딜도가 진열된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언니 이거, 그거지?”

“응, 그건 것 같아.”

“누가봐도 고추네.”

“형형색색의 모형 고추다.”

그 종류와 재질도 다양하다.

빨판이 달려 부착식으로 사용하는 것, 손잡이가 달린 것, 고무 같은 것, 투명한 유리 같은 것.

“기대가 너무 컸나?”

“그러게 별거 없네.”

다만 상상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지난 번 현세에 처음 왔을 때 일반 여성이 반쯤 헐벗은 차림으로 돌아다니길래 현세는 굉장히 개방적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게헨나 마녀들로선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기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여기까진 너무 심심하다.

“게다가 너무 작아.”

“맞아, 조수님 꺼보다 큰 게 없어.”

속닥속닥 귓속말을 나누며 품평을 주고받는 쌍둥이.

그때 등 뒤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르뤼에가 끼어들었다.

“오딜, 오데트 여기 좀 봐라.”

르뤼에의 손에는 체험용으로 포장이 벗겨져 있는 바이브레이터가 들려 있었다.

끝 부분도 그렇고 옆부분도 그렇고 말랑말랑한 돌기가 잔뜩 돋아있어 어딘가 징그러웠다.

“뭐야 그건?”

“엄청 흉물스럽네.”

“이거 꽤 재밌는 물건이니라.”

-부와앙! 부와앙! 부와앙!

르뤼에가 스위치를 켜자 주위 시선을 단숨에 집중시킬 굉음과 함께 꿈틀꿈틀 움직이는 바이브.

“뭐야뭐야뭐야!”

“꺼! 꺼!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내심 태연한 척했지만 백작가의 금지옥엽답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쓰던 쌍둥이가 얼굴이 벌게지며 르뤼에를 만류한다.

큰 소리 때문에 주위의 시선을 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 둘이서 편을 먹고 르뤼에를 괴롭히던 쌍둥이가 곤란해한다.

이는 르뤼에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어 주었다.

“호오? 설마 무서운 게냐? 하긴 너희 같은 애송이 견습마녀들에겐 아직 이른 물품이도다.”

“너, 너는 써본 적 있어?”

“이 정도야 짐에겐 거뜬하지 않겠느냐?”

“또 허세를 부리기는….”

실제로 꽤 마니악한 성인용품 세트를 몸소 체험했던 르뤼에는 어깨를 펴며 호언장담했다.

세쌍둥이는 세쌍둥이대로 시끌벅적한 한편.

아멜리아는 머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가뜩이나 현세는 오감이 민감한 아멜리아에게 은근한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다.

그냥 길거리에 서 있기만 해도 온갖 자극들이 넘실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그냥 자극 수준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1층부터 아멜리아의 대리 수치 임계점을 아득히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오딜 오데트 르뤼에는 물론.

샤론, 린네, 도로시까지 눈에 불을 켜며 제품을 구경 중이다.

여기서 아멜리아만 혼자 밖으로 나섰다간 경쟁에 뒤처지고 마는 것.

“후우….”

심호흡을 끝낸 아멜리아는 누구보다 먼저 2층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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