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
1.
“뭐? 또?”
“싫어요! 조수님! 저희도 따라갈래요!”
쇼핑백을 양팔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쌍둥이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입이 댓 발 튀어나와 투정을 부리는 것.
“저번처럼 오래 걸릴 일은 아니고 한두 시간 정도 게헨나에 들렀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조수님, 수상한데? 우리 몰래 여자 만나러 가는 거 아니지?”
언뜻 무방비해 보여도 이상한 곳에서 촉이 날카로운 오딜이다.
여자를 만나러 가는 건 사실이지만 음흉한 목적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호출이라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그런 거 아니니까 다른 분들이랑 현세 구경 좀 하고 계세요. 정말 금방 올게요.”
“…조수님은 그런 말 하면 항상 실종되던데….”
시우는 토라진 쌍둥이를 열심히 다독이며 스승님께 호위를 부탁했다.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고, 설마 한강까지만 가면 되는데 별일이 있겠나 싶지만 게헨나 내부에서도 납치된 전적이 있는 만큼 만전을 기울였다.
“시우, 저도 따라갈게요.”
“정말 별일 아닙니다. 후딱 다녀올 텐데 번거로우시잖아요.”
“시우랑 함께 있는 건 번거롭지 않은 걸요….”
“아멜리아 님은 현세에서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을 보호해주세요. 아무래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현세 쪽이 더 급박할 테니까요.”
“조수님 저러니까 더 수상한데….”
조금 부자연스러웠지만, 아멜리아와 샤론의 동행제의까지 정중히 사양한 시우는 스승님과 한강으로 향했다.
“휴우….”
“시우, 예의 검사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굳이 본래 목적을 숨기고 동행마저 뿌리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괜한 걱정을 할 연인들의 염려를 줄이기 위해서, 특히 아멜리아를 위해서이다.
시우가 왼팔을 잃게 된 계기는 아멜리아의 폭주.
난수화된 공간 속 그녀의 기억에 멋대로 휘말려든 시우는 아멜리아를 구하기 위해 팔을 잃었다.
영체의 기저 레벨에서 심각한 훼손이 발생한 나머지 영구히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이었으나 현대 생명 공학 기술 뺨치는 ‘자기 의수’를 이식받아 장애인이 되는 신세는 면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제대로 감각이 전해지지는 않기에 완전히 정상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우 본인은 큰 신경은 쓰지 않다해도 아멜리아는 다를 터다.
본인의 실수로 사랑하는 사람의 팔을 잃게 하였으니 그 속이 속일까?
따라서 시우는 엘로아 이외의 연인에겐 이상 증세를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
그런데 조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예빈은 분명 검사까지 사흘 정도가 걸릴 것이라 말했다.
고작해야 검사 결과라면, 그것도 별문제가 없는 검사라면 이렇게 급하게 통보할 필요가 있을까?
반 영구적인 이면결계에 둘러싸인 게헨나와 현세 사이의 연락절차는 상당히 까다롭다.
그런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심란함이 옆 얼굴에 내비쳤나 보다.
소매를 꾸욱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는 것을 보면.
“별일 아닐 걸세.”
“감사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걱정이 절반 정도 있는 한편 나머지 반은 ‘뭐 별일이겠어?’ 싶다.
하루만에 다시 출입국 관리소를 거쳐 타로 타운의 진료소에 들어선 엘로아와 시우.
1층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유심히 살피던 예빈은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둘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티페레트 공작님, 시우 씨.”
“늦은 시각까지 고생하는군. 노고가 많네.”
“아니에요, 홍차라도 내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책상 가득 쌓인 책들을 치우고 홍차와 함께 두툼한 서류 뭉치를 가져온 예빈은 자리에 앉았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네?”
“시우 씨의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예빈은 담담하게 자신의 서류를 펼쳐 보였다.
“검사 자체는 정말로 여러 방면에서 살폈어요. 먼저 코하브 백작님의 자기 의수가 어떤 원리인지는 알고 계시죠?”
“네, 설명이라면 들었습니다.”
코하브 백작의 ‘자기 의수’는 말 그대로 특수한 흙을 빚어 가마에 구워낸 도자기로 만든 의수이다.
많은 신화에서 인간을 흙을 빚어 만든 피조물이니 그 상징성을 이용해 ‘의수’를 ‘신체’로 변환하는 게 마법적 원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영체구성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시우 씨의 팔은 완벽하게 기존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코하브 백작은 훌륭하게 자신의 마법을 수행한 거죠.”
“돌팔이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요, 백작인걸요.”
그렇게 말하며 정말 MRI 검사지와 비슷하게 생긴 사진을 보여주는 예빈.
그녀의 말대로 왼팔과 오른팔은 마법 회로부터 골격과 근육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차이도 없었다.
“하지만 시우의 말을 듣자하니 감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하던데…. 그건 어찌 된 겐가?”
“아마도 영체가 아닌 혼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니지,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질 않아요.”
“……?”
갑자기 시작된 오컬트 발언에 따라가지 못하는 엘로아.
물론 과학적인 관점에서라면 몰라도 마법적인 관점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혼과 인연을 마력으로 치환했을 때 발생하는 마력 즉, 자원으로서의 활용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귀신이나 사후세계 존재 유무, 영혼을 활용한 마법 부분에서는 마녀 대다수가 같은 입장을 취했다.
마력으로 치환되지 않은 ‘영혼 그 자체’는 세계의 법칙에 유의미한 영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론이다.
“실례되는 말이네만…. 초점이 벗어난 게 아닌가?”
시우도 스승님과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정확히 짚이는 부분이 있다.
“시우 씨 안에 그거…. 아직 남아 있나요?”
“그렇습니다. 아마 이쪽 때문인 것 같네요.”
시우는 한숨을 쉬었다.
무의식 속 신시우.
아인의 밑바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흑기사.
일전 누켈라비 왕궁에서 ‘시련’에 도전하며 침몰시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표층의식으로 고개를 들이민 적 없는 그놈.
무슨 꿍꿍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전 시우의 몸을 빼앗으려 했던 전과가 있는 놈이다.
“아마 그쪽이 문제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 볼 따름이에요.”
예빈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 코하브와 예빈이 서로 다른 결과를 도출한 것 역시 흑기사의 존재 여부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더 도움을 드리긴 힘들 것 같아요. 제 마법이 간섭할 영역이 아니어서요….”
“아닙니다. 애써 주셨는걸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스승님도 침울해하신다.
동네 병원을 가도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왔는데 결국 속수무책인 암담한 심정이랄까?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예빈이 다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스미르나는 육체와 영체의 치유를 자성 마법으로 삼은 마녀죠. 하지만 정반대의 노선을 걸은 마녀도 있어요.”
“영혼을 연구하는 마녀…? 그런 마녀가 있었단 말인가?”
“네, ‘원망의 마녀’ 네프티스에요.”
예빈은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이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원망의 마녀’는 선대 스미르나와 같은 추방자.
선대 스미르나와 네프티스는 오랫동안 함께 마도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거의 6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동연구를 진행했으나 마법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
스미르나는 초월의 경지가 육체에 깃들어있다고 믿어 영체와 회복에 몰두했고.
반대로 네프티스는 육체를 초월한 정신과 영혼에 주목했다.
연구 주제에 있어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한 두 사람은 결별 이후 독자 연구를 진행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저도 견습마녀 시절에 두 번 정도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공방의 위치도 알고 있고요. 소개장을 써드릴 수도 있어요.”
“그럼 그쪽으로 가서 나머지 검사를 진행하면 되겠군요.”
정확히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야 해결할 방도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마음을 놓는 시우.
“그런데 문제가 한가지 있어요….”
“어떤 문제요?”
말꼬리를 흐리던 예빈이 말했다.
“뒷담화 같아서 별로 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분 성격이 정말정말 괴팍해요.”
2.
시우와 엘로아가 잠시 게헨나를 방문하는 동안 백화점 쇼핑을 끝낸 연인들이 오피스텔로 돌아오던 길.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낸 것치고는 상당히 험악한 분위기였다.
쌍둥이와 샤론이 격렬하게 다투고 있던 까닭이다.
“뭐? 당연히 안 돼.”
“왜요?”
“그냥 구경만 하는 거잖아요.”
“너희는 아직 견습마녀잖아. 백작님이 믿고 맡겨주신 건데 그런 델 데려가면 날 어떻게 보시겠어!”
쌍둥이는 성인용품점에 가고 싶었다.
게헨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세의 이기를 구경할 수 있는 장소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조수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도 도움이 될테니 1석 2조.
당연히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여기가 게헨나였더라면 야밤에 담장을 넘어서라도 가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현세.
보호자의 동행 없이 움직이는 건 금지사항이다.
“아무튼 금지야. 안 돼.”
완고하게 거부하는 샤론에겐 샤론의 입장이 있었다.
쌍둥이가 암암리에 어른의 계단을 절반쯤 밟았다고 해도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견습마녀다.
가장 이 도시에 익숙한 관계로 보호자 겸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된 사람은 샤론.
그런데 쌍둥이를 인솔해서 성인용품점에 간다?
제머나이 백작가의 가정교사로서의 책무를 방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책임감 넘치는 샤론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샤론 언니 완전 너무해요….”
“자기만 실컷 즐길 거 즐겨놓고….”
쌍둥이는 더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차라리 그날 미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겠으나, 이미 샤론이 뭔가를 잔뜩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성인용품점을 가지 못하게 하는 샤론의 행동이 마냥 책임의식의 발로로만은 보이지 않았다.
“뭐?”
“다 알고 있어요!”
“조수님이랑 화해한 날 혼자 바리바리 싸들고 왔잖아요!”
“그, 그, 그걸 너희가 어떻게 아는데?”
미행사실을 몰랐던 샤론이 당황하는 와중 대화를 지켜보던 도로시가 끼어들었다.
“샤론 양이랬나?”
“네? 네.”
“그냥 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얼마나 궁금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마냥 숨기는 건 좋지 않아. 차라리 관리감독 아래에서 이것저것 경험하는 편이 건전한 성 의식을 배양하기 좋다고.”
“도로시의 말이 옳도다. 짐도 어른의 장난감 가게에 구미가 당기는구나.”
도로시에 이어 르뤼에까지 쌍둥이에게 가세.
샤론은 조언을 구하듯 아멜리아를 보았다.
쌍둥이는 전 부교수였던 아멜리아 양을 무서워하니 한마디 해준다면 이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고 여긴 까닭이다.
하지만….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아멜리아도 현세의 야릇한 아티펙트가 궁금했다.
과반수는 진작에 넘어갔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로이 합류한 ‘검의 마녀’, 린네 쪽을 바라보는 샤론.
기모노를 입고 정숙한 인상이 풀풀 풍기는 그녀라면 그나마 반대 의견을 하나 정도는 내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
그녀는 백화점 입구 환전 기계에서 어째서인지 원화를 인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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