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787화 (787/917)

#781

1.

도로시의 말마따나 신시우는 우유부단하다.

타고난 성정이란 쉽게 바꿀 수 없는 법.

엘로아와 린네가 갑작스럽게 결단을 요구한다 한들 바람대로 이루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시우가 노빠꾸 상남자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하나는 전투 때.

또 다른 하나는 잔뜩 흥분한 잠자리에서다.

어느 때보다 본능과 욕망에 솔직해진 시우라면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가려주겠지.

“뭐, 뭐죠?”

갑작스러운 두 스승님의 난입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시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간의 고단함을 달래고자 식사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기’모드 였던 시우.

그 과정에서 엘로아도 린네도 침실에 들이지 않았다.

아직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두 사람이다.

오늘 요리대회만 봐도 피부가 찌릿거릴 만큼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던 엘로아와 린네 아닌가?

여기서 괜히 둘 중 한쪽에 섣부르게 관계를 제안한다면 자칫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모두 침대에 올리는 일도 영 못할 짓 같았고 말이다.

“…….”

“…….”

불쑥 들어와선 한마디 말도 않고 결의에 찬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는 두 스승님.

게다가 린네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제머나이 백작가의 메이드복에 머리띠까지 풀세팅을 장착하고 왔다.

스승님 역시 하얀 시트를 망토처럼 둘렀지만, 삐죽 튀어나온 토끼 귀가 보였고 말이다.

이건 그러니까 그거겠지.

설마하니 다짜고짜 쓰리썸을 하자고 온 건 아닐 테고.

오늘 요리대회를 했던 것처럼 누가 더 마음에 드는지, 다시 말해 어느 스승님과 더 밤일을 하고 싶은지 결정해달라는 승부 요청.

“…저기 스승님, 린네 님. 어?”

엘로아와 린네의 눈이 빛난다.

각기 무위의 정점에 도달한 마녀들이다.

순식간에 돌아선 둘은 시우를 가뿐하게 제압한 뒤 코밑에 번갈아 정수리를 가져다 대었다.

시우가 또 애매하게 도망칠 수 없도록 하는 과정이다.

“자, 잠깐만요! 쿠헉!”

워낙에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

그럼에도 반사적으로 호흡을 멈춘 시우의 옆구리를 린네가 푹 누르자 저절로 들숨이 턱 들어간다.

그 결과 두 사람의 체취를 듬뿍 들이마시게 된 시우.

“이게 대체….”

어안이 벙벙해진 시우를 풀어준 둘은 자세를 바로 해 섰다.

“자, 이제 골라라.”

“그녀와 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나.”

그렇게 말한 린네는 다소곳한 자세로 제 맵시를 뽐내었다.

오늘 저녁 있던 요리 대회에서 각기 준비한 재료를 선보였듯,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타임이었다.

린네는 이를 위해 시녀에게 옷을 구매해 환복해왔다.

무릇 아내란 잠자리에서 또한 지아비에게 헌신해야 하는 법.

이 하녀복은 린네의 헌신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상징이다.

적어도 침대 위에서의 린네는 시우보다 아랫사람임을 보여주며, 그의 아랫도리에 성심성의껏 봉사하겠음을 나타내는 상징.

또한 이 가문의 사용인들이 입는 의복은 심미적으로도 매우 빼어나다.

활동력을 지나치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여쁜 프릴이 달려 있으며 리본이 듬뿍 달려 생화로 장식된 머리띠 역시 곱다.

무엇보다 린네가 높이 산 점은 하얀 스타킹이 딸려온다는 것이다.

신시우는 하반신의 라인을 강조하는 의복을 좋아하니 이 복장은 분명 먹혀들 것이다.

린네가 준비한 비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낭군, 여기를 봐라.”

입을 떡 열고 제정신을 못 차리는 시우를 부른 린네는 슬쩍 치맛자락을 들친다.

예절에 맞춰 인사할 때 드레스 자락을 잡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속옷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의 높이로 활짝 펼쳐 보인 린네.

커튼처럼 하얗고 풍성한 프릴 사이로 보이는 건 스타킹에 감싸여 각선미를 뽐내는 린네의 아름다운 각선미다.

“낭군이 맛보기 좋도록 속옷은 미리 벗어 두었다. 낭군의 기쁨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하도록 하겠다.”

여전히 색기 없는 대사이지만 그렇기에 더 색기 넘치는 대사와 행동.

시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궁리하고 행동으로 옮긴 실천력이 엿보인다.

“여기 티페레트보다 훨씬 잘해낼 자신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린네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 엘로아를 바라보았다.

벌써 내심 승리를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방에 들어오기 전 그리고 지금까지 엘로아의 차림을 눈대중했다.

하얀 시트를 두르고 토끼 머리띠를 쓴 분홍머리 공작.

시트의 안이 어떤 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은 간다.

얼핏얼핏 시트가 몸에 달라붙을 때마다 윤곽을 읽어낸 바로는 알몸, 혹은 속옷에 준하는 노출이 많은 차림이겠지.

퍽이나 고지식해 보이는 엘로아치고는 제법 노력했다.

하지만 남심이란 오묘하다.

완전히 벗은 나신보다는 벗겨 내는데에도 큰 정복욕을 느끼는 법.

더군다나 알몸이란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얄팍한 선택지 아니겠는가?

이 시점에서 엘로아보다도 자신이 훨씬 앞선다고 자부하던 린네는 시트를 벗어 던지기는 커녕 꾸욱 붙잡는 엘로아를 보며 확신이 섰다.

옆머리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귀가 붉다.

부끄러워하는 게 역력한 모양새.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애교를 피우는 것조차 쑥스러워하는가? 그렇다면 각오조차도 린네에 비해 모자란 것이다.

“우우…. 우우우….”

거의 울먹일 지경이 되었던 엘로아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정말 이 차림이 맞는 건가?

아무리 남자는 야한 걸 좋아한다고 해도 연적 앞에서, 제자 앞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꼬락서니를 보이는 게 정녕 맞는 일인가?

지금이라도 갈아입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러다 시우를 빼앗겨 버린다면?

바야흐로 고뇌의 폭풍이었다.

도로시에게 반나절 특강으로 가치관을 다시 세웠다 한들 기존 엘로아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고지식한 관념을 완전히 벗겨 낼 순 없었던 것이다.

“흥.”

고장나버린 엘로아의 옆 통수에 꽂히는 린네의 비웃음.

“자신이 없다면 돌아가라.”

다른 이라면 몰라도 린네의 도발을 듣고 넘어설 순 없던 엘로아는 이를 꽉 물고 침대 시트를 벗어 던졌다.

-펄럭!

날개짓하는 나비처럼 너훌너훌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시트.

이윽고 드러난 시트만큼이나 하얀 엘로아의 반나신.

“내, 내가 더 맛있네…! 날 잡아 먹어주게…!”

손을 대는 순간 파멸할까 두려워 미뤄두었던 결전 병기가 달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

“…….”

시우의 턱이 땅까지 닿을 정도로 내려간다.

표정이 거의 없는 린네조차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 엘로아의 차림은 굉장히 천박했으며, 또한 음란했기 때문이다.

남심을 공략하기 위한 필살기.

바니걸의 한계를 다시 한번 돌파한 그 의상의 이름은 역 바니걸, 또는 리버스 바니 슈트.

그 복장은 이름 그대로의 외견을 지니고 있다.

통상 바니 슈트의 여집합.

본디 바니걸 세트에선 가슴과 하반신을 가려주던 레오타르가 없다.

대신 팔과 목에 몸통 부위가 없는 셔츠, 다리부터 골반 위까지만 가리며 사타구니는 전혀 보호해주지 않는 레깅스가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젖꼭지와 성기를 고스란히 노출하느냐?

그것은 꼴알못들의 발상이다.

엘로아가 구매한 바니 슈트는 ‘하트 스티커’ 20매를 세트로 동봉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색 스티커는 가슴에 있는 한 쌍의 돌기와 여성의 은밀한 비소를 가려준다.

허나 속옷이라기엔 너무 빈약한 수비력을 지닌 스티커는 인스턴트 식품을 개봉하는 정도의 노력만 들이면 손쉽게 벗겨낼 수 있다.

비닉과 노출.

은폐와 개방.

착의와 탈의.

일찍이 인류가 의복에 대해 지니던 개념을 과감히 탈피해버린 혁신 앞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시우와 린네.

린네는 눈을 비비며 엘로아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로 시선을 옮긴다.

문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에도 저 몽실몽실한 토끼 꼬리가 도대체 ‘어디에 달린 건지’에 대한 의문이 차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엘로아의 복장은 몸통 부위에 기믹을 달만 한 곳이 없지 않은가?

“말도 안 된다….”

린네는 아연실색했다.

꼬리는 원래 엘로아의 것인양 제대로 박혀 있었다.

엘로아가 구매한 역바니 슈트 세트에 구성품은 총 셋.

토끼 헤어밴드, 하트 스티커 그리고….

대망의 토끼꼬리 애널 플러그(삽입을 돕는 1회용 러브젤 3매 동봉).

“이게…. 무신…?”

노팬티 노브라 메이드복 차림으로 낭군에게 봉사하러 온 전직 검귀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것과 별개로 린네는 참담한 패배를 확인했다.

이건 사전 준비, 혹은 소품의 우위를 운운할 문제가 아니다.

린네가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했더라면, 조금 더 각오를 다졌더라면 이보다 더한 차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못했고, 엘로아는 해냈다.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후욱…. 후욱….”

시우의 숨이 거세진다.

쓰리썸은 이미 경험이 있다.

쌍둥이와도 해봤고, 도로시 르뤼에 콤비로도 해봤다.

그러나 두 사람 몫의 체취를 한 번에 들이마신 건 처음이다.

그것도 각기 23 위계, 22 위계의 고위계 마녀.

애써 참아보려 했던 흥분은 두 사람의 섹스 어필과 함께 뇌 신경을 불사 지르며 활활 타올랐다.

눈앞에 말도 안 되는 음란한 광경.

파괴력 쪽에서는 스승님이 훨씬 위였지만, 가상함 면에서는 린네도 못지않다.

스승님 덮밥 곱빼기가 배달비도 받지 않고 방으로 배달된 비현실적인 상황.

그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취향이던 끈적농밀민달팽이 레즈 야스를, 그것도 두 스승님이 주연 관객인 노모 보빔을 직관할 수 있는 상황.

이대로 린네를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잘 봤습니다. 두 분 모두 너무 예뻐요.”

생각보다 냉철한 목소리가 나온다.

흥분이 극에 달하고, 극에 달한 흥분이 어떠한 정신적 한계점을 돌파하면 놀랍도록 냉철해진다는 걸 시우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제 맛을 보고 평가해볼까요?”

그렇다.

요리 대결도 플레이팅만 보고 끝나는 건 아니다.

비록 의복 대결에서 승부가 갈렸다 한들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야 맛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시우배 천하제일 현모양처 스승님 대회.

자웅을 가릴 2라운드가 여기, 침대 위에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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