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785화 (785/917)

#779

1.

파인 다이닝에 나올 법한 훌륭한 비주얼임에도 어쩐지 집밥의 포근함을 떠올리게 하는 엘로아의 소 요리.

료칸에서 온천에 몸을 지지고 나오면 주린 배를 채워주는 가이세키처럼 정갈하고 아름다운 린네의 은어 요리.

어느 쪽을 보아도 흠잡을 곳 없는 요리들이다.

근소하게나마 린네가 먼저 음식을 완성했기에 린네의 음식 먼저 맛보게 되었다.

도로시가 젓가락을 든 채 도자기 위에 담긴 요리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대단하네. 계절감, 요리 솜씨, 그릇까지 삼기를 모두 잡은 한 상이야.”

“도로시, 너는 조금만 먹어라.”

“너무해~ 나도 나름 생명의 은인이라고?”

“…….”

젓가락을 든 시우는 먼저 애피타이저로 보이는 냉채를 입에 넣었다.

세꼬시한 은어, 단새우, 해삼 위로 오이 식초를 버무린 전채 요리였다.

“와.”

사실 은어를 생으로 먹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절로 턱이 벌어지는 놀라운 맛이다.

잔뼈째로 오독오독 씹히는 은어, 꼬돌꼬돌한 해삼, 부드럽게 녹아 사라지는 단새우.

다양한 식감의 재미가 젓가락 한 꼬집에 담긴다.

그뿐만 아니라 달고 시고 짜고 씁쓸하면서도 녹진하게 혀에 감기는 감칠맛이 잠들어있던 미각을 일깨우고 침샘을 자극한다.

전채 요리라는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냉채였다.

다음은 소금구이.

도로시가 예상했던 대로 모양이 예쁘게 잡혔다.

살짝 수분감이 부족할 만큼 노릇노릇하게 익었음에도 어느 한 곳 탄 부위 없는 훌륭한 불 조절.

“머리부터 먹어라.”

도로시와 시우는 나란히 머리를 베어 물었다.

-바사삭!

잘 만들어진 애플파이를 베어 문 듯한 소리.

“어떻게 이런 맛이…! 훌륭합니다!”

“역시~ 민물고기의 귀족이야.”

솔직히 먹기 전까지는 조금 거부감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생선의 머리를 통째로 먹으면 비린 맛과 쓴맛이 장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로시의 장담대로였다.

뭉근한 열기에 천천히 익으며 기름을 듬뿍 흡수한 은어 대가리는 비린내도 잡내도 없었다.

대신 정체불명의 향긋한 수박향이 향수처럼 풀풀 퍼지는 한편, 짭조름한 고소함이 혀의 오르가즘을 유도한다.

“와아…. 어쩐지 수박향이 나는데요?”

“오~ 미각이 좋은 편이구나? 원래 맛있는 은어에선 수박향이 나. 그래서 중국에선 향어, 외국에선 스윗 피시라고도 불리지.”

게다가 몸통의 살은 달고, 부드럽다.

한껏 머금은 숯불 향까지 더해지자 여태껏 겪은 적 없는 고풍스러운 풍미가 느껴졌다.

다음은 솥밥.

먹기 좋게 정성껏 살을 발라내어 쌀밥과 비벼낸 것이다.

살짝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밥알 사이 사이로 은어살이 엿보이는 밥을 입에 한가득 넣었다.

생선 육수와 기름기로 코팅되어 솥밥임에도 볶음밥처럼 느껴진다.

“음~ 좋아! 생선 육수는 오래 우리면 안 된다는 원칙도 잘 지켰고, 무엇보다 이건~. 다시마와 재첩?”

“그렇다.”

린네는 단순히 육수로 밥을 짓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육수를 우릴 때 천연 MSG인 다시마와 재첩을 더해 감칠맛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솥밥의 맛을 풍성하게 장식하면서도, 은어 특유의 향은 죽지 않게 다른 재료의 향을 조절한 절묘함.

이 역시 비린내는 조금도 없었다.

이후 남은 육수로 만든 된장국까지 후루룩 먹고 눈을 감은 도로시.

“아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의 은빛 꼬리 짓이 느껴져, 요리가 되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은 감동 그 자체!”

“정말 잘 먹었습니다.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생선 요리는 처음 먹어봐요.”

“그런가?”

시우는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이 이상의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없다고 단정 지어도 좋을 수준이다.

“은어가 연주하는 다양한 변주곡! 모든 색을 맛보았다 장담해도 좋을 만큼 오색 창연한 한 끼! 아주아주 훌륭해!”

옆에서 중얼중얼 길게도 찬사를 표한 도로시는 골몰하게 생각하더니 물었다.

“한가지 질문이 있어. 왜 굳~이 은어인 거야? 사실 이런 솜씨면 다른 재료를 선택해도 좋았잖아.”

린네의 솜씨는 훌륭했고, 그 결과물도 상상을 웃돌았다.

그러나 아무리 양식어를 썼다 한들 ‘다른 제철 재료를 썼더라면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

‘내가 왜 너한테 그런 것까지 얘기해줘야 되나?’라는 눈빛으로 도로시를 보던 린네였으나, 이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지난번 탈출 과정에서 린네를 구해주었던 도로시다.

그래서 저렇게 해설이니 뭐니 옆에서 구시렁대는 것도 묵인한 것이고 말이다.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린네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가족과 함께 먹었던 최고의 만찬을, 이제는 새로운 가족이 된 시우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즐라타의 만류에도 구태여 은어 코스를 대결의 카드로 올린 것이다.

린네는 투쟁심에 불타는 눈으로 엘로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너에게는 지지 않는다. 티페레트.”

“두고 볼 일이지.”

엘로아는 두 사람의 극찬을 들으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요리를 선보였다.

“스테이크를 먼저 맛보고 다른 음식을 먹으면 되네.”

가장 먼저 맛볼 것은 역시 원육 본연의 맛에 충실한 스테이크.

올리브 오일과 버터를 넣은 팬 위에 타임을 넣고 고기를 굽는다.

굽는 내내 녹은 버터와 고기에서 빠져나온 지방을 고기에 끊임없이 끼얹어주는 ‘아로제’라는 테크닉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고기에 열을 균열하게 전달하고 겉을 크리스피하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함께 익힌 통마늘을 껍질째로 문질러 향을 입혀주면 완성.

사실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건 스테이크는 재료가 9할 실력이 1할이다.

그만큼 고기의 질이 중요하다는 말.

“오~ 정말 잘 구웠는데?”

그런 의미에서 드라이에이징은 최고의 스테이크를 위한 한가지 방법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도로시가 말한 치즈향까지는 아니었지만 농축된 육향이 씹자마자 터졌다.

그리고 수분감이 부족한 드라이에이징 고기의 단점을 덮기 위해 흥건할 정도로 뿌려놓은 버터와 기름이 매우 적절하다.

“맛있습니다, 스승님.”

하지만 스테이크는 어디까지나 위에 ‘고기’가 들어간다 알려주는 준비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엘로아가 준비한 메인요리가 무엇인지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바로 뵈프 브루기뇽.

레드 와인으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고 얼핏 보기에 평범한 스튜처럼 보이는 뵈프 브루기뇽에 포크를 꽂는다.

“흐음~ 좋은 울림이야.”

건식숙성 탓에 살짝 질겨진 고기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들어가는 포크.

그 끝에 건져 올려진 큐브 형태의 고기가 탱글탱글 떨린다.

향을 조금 음미하고 입에 넣는 순간 펼쳐지는 건….

“우오오옷! 이건!”

감탄을 내뱉는 도로시.

시우 역시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맛이다.

그럼에도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있다.

이것은 향을 음미하는 음식이다.

흔히 고기 스튜하면 떠올릴 수 있는 묵직한 맛 대신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향긋함과 상큼함.

각종 채소, 와인, 향신료, 고기까지 더해진 향은 층층이 견고하게 쌓여 하나의 아름다운 합주를 이른다.

요리의 은어 정식이 은어라는 메인 연주자를 필두로 한 변주곡이었다면, 엘로아의 뵈프 브루기뇽은 온갖 악기의 음색이 일제히 화음을 자아내는….

“실로 맛의 오케스트라!”

도로시가 눈을 감은 채 부르르 떨며 감탄한다.

눈을 감고 맛과 향을 느낄수록 전혀 지겹지 않게 동일한 두께의 향 혀 위에서 선율을 뽐낸다.

그 밖에도 푸근푸근하게 익은 당근이라던가, 곁들여진 포슬포슬한 매쉬드 포테이토가 지원사격한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기에 언제 먹어도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는 스승님의 사랑이 담긴 가정식.

즐거운 시식 시간이 끝나자 결단의 때가 왔다.

도로시는 어디까지나 해설이었기에 멀찌감치 떨어져 남은 음식을 냠냠 집어 먹고 있다.

“부담 느끼지 말게.”

“그렇다. 기껏해야 식사다.”

“누구의 요리가 더 훌륭했는가?”

“누구의 요리가 더 입에 맞았지?”

반면 시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스승님의 시선을 느껴야 했다.

앞에서 세 시간 동안 주방 내를 동분서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편히 앉아 몇 술 뜬 게 전부인 시우의 한마디가 승패를 좌우한다.

한 명은 승자가 되겠고, 다른 하나는 씁쓸하게 패배를 곱씹겠지.

어떻게 부담을 느끼지 않으란 말인가?

“조금 더 생각해봐도 좋네.”

“느긋하게 해라.”

당장 괜찮다고 말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봐라.

둘 다 애써 강한 척하고 있지만, 불안한 듯 앞치마를 꽉 쥐고 있었고, 초조함이 엿보이는 눈빛으로 손을 조물거리고 있다.

만약 여기서 뵈프 브루기뇽의 손을 들어준다면.

‘괜찮다, 신경 쓰지 않는다. 앞으로 더욱 분발해야겠군.’ 라고 말하며 잔뜩 시무룩하지만 애써 감추는 린네의 모습이 눈에 밟힐 테고.

반대로 은어 정식의 손을 들어준다면.

‘알겠네.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네. 또 괜히 어려운 결정을 하게 해 미안하네.’ 라고 태연히 말씀하시고는 뒤로 가서 훌쩍이실 스승님이 걱정된다.

두 사람 다 시우를 탓하지 않고 자책할 것이 뻔했다.

물론 맛의 우열 자체도 가리기 어려웠고 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원망을 좀 듣고 끝내자.

그렇게 결단한 시우.

“무승부로 하겠습니다.”

“그건 안 된다.”

“시우, 너무 우유부단 한 것 아닌가?”

예상대로 즉각 반발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다.

시우만 조금 군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아아, 두 분 요리 전부 너무 맛있어야죠. 다음에도 또 했으면 좋겠네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너~무 곤란하게 만드는 거 아니야? 상대는 신시우라고? 이렇게 될 걸 예상 못 했어?”

주방 어딘가에서 가져온 빵에 스튜 소스까지 알뜰살뜰하게 찍어 먹던 도로시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정~ 그러면 내가 판정해 줄까?”

“넌 빠져라.”

“미안하지만, 그대의 판정은 중요치 않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린네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짓는 엘로아.

하지만 이건 도로시가 자진해서 미끼 역할을 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마 둘 중 하나를 슬프게 할 수 없던 시우가 그 틈을 타 냉큼 자리를 비웠으니 말이다.

결국 요리 대회의 승부는 무승부.

엘로아도 린네도 이런 식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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