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784화 (784/917)

#778

1.

요리계에는 유명한 말이 하나 있다.

음식의 맛은 재료가 7할 솜씨가 3할.

그만큼 재료의 품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이 요리 대결의 시작은 재료 상자를 연 시점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다.

먼저 엘로아의 메인 재료는 갈빗대에 살이 두툼하게 붙어있는 커다란 프라임 립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거뭇죽죽하게 변조된 고기 위로 하얗게 덮인 곰팡이, 심지어 뼈 부위는 까맣게 변해있다.

시우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스승님이 요리해주시는 거니 일단 먹겠지만 딱 봐도 어딘가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고기였다.

금방이라도 상할 것 같은, 아니 이미 상한 것 같은 모양새.

“아니 저건…!”

도로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녀답게 도로시 역시 미식의 길을 섭렵해왔으며, 그 안목 또한 우수했다.

먹는 즉시 식중독 예약일 것 같은 고기의 진가를 간파했다.

“드라이 에이징…!”

“알아보는군.”

엘로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정육용 칼을 따로 꺼내 들었다.

능숙한 손길로 색이 변한 부위를 잘라내는 엘로아.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고기를 내버리는 가운데 빨간 선홍빛 육질과 마블링이 곰팡이 뒤로 드러났다.

“드라이 에이징이 뭔가요?”

“저온에서 고기를 숙성시키는 방법이야. 말 그대로 건식 숙성이지. 고기의 응축된 육향을 느낄 수 있는 궁극의 조리법. 고깃속 아미노산과 지미성분이 증가하면서 육질이 연해지는 건 물론, 치즈의 풍미를 더하게 된다고.”

“그렇군요.”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는 시우와 달리 군침을 삼키는 도로시.

엘로아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 고기는 게헨나 방목우 중에서도 상위 1%를 골라 6주간 숙성시킨 물건이라네. 게헨나에 존재하는 소고기 중 가장 뛰어난 물건이지.”

비단 도로시에게 설명하는 게 아니다.

엘로아의 시선이 날카롭게 라이벌에게 향한다.

요리 싸움 이전에 기 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린네는 어떤 재료를 준비했을까?

기대감에 가득 찬 도로시가 린네 쪽으로 향한다.

“은어?”

나무상자에 가득 찬 얼음 위로 은빛 자태를 뽐내는 식재료는 바로 은어.

크기는 성인 남성의 손바닥보다 조금 크며 갓 건져낸 것처럼 신선하다.

너무 크면 되레 맛이 떨어지는 은어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딱 적당한 크기였다.

그러나 도로시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는다.

도리어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은어는 제철이 아닌데.”

일반적으로 은어는 제철을 여름으로 치며 지금은 11월이다.

육류와 달리 계절에 민감한 해산물은 제철을 놓친다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그 맛이 뒤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건 재료에서부터 승부가 났다.

도로시는 씁쓸하게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 다시 봐라.”

잠잠히 있던 린네의 자신만만한 한마디.

뭔가 놓친 게 있나 싶어 꼼꼼히 은어를 살피던 도로시가 말한다.

“설마 양식인가?”

“그렇다.”

이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생선의 맛은 확실히 계절에 따라 좌우되며, 이는 산란기와 수온의 영향이 크다.

반대로 말해 발달한 현세의 양식 기술이라면 딱히 제철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최고의 품질을 내올 수 있다는 의미.

도리어 은어는 양측 회유성 어류로 기생충을 염려해야 하는 생선이지만, 양식이라면 날 것으로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게다가 게헨나에까지 납품된 것을 봤을 때 저 양식 은어의 품질은 최상급.

자연산이 최고라는 허상을 포기하고 실리를 취한 린네의 은어라면 엘로아의 드라이에이징 립아이에도 크게 뒤처지지 않을 터.

“이 대결…. 두 사람 다 보통이 아니야.”

도로시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느껴지는 짬밥이 이 대결의 수준이 예상보다 높을 것임을 시사한 까닭이다.

가볍게 고기 손질을 끝낸 엘로아는 곧장 채소류를 손질했다.

도마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칼질에 현란하게 손질되는 채소들.

이후엔 큼직큼직하게 썬 당근과 양파 셀러리, 으깬 마늘과 오렌지 껍질.

파슬리 줄기, 타임, 월계수잎, 로즈마리 등의 허브를 꽃다발처럼 묶은 ‘부케 가르니’를 무쇠 냄비에 넣는다.

재산은 없어도 술만큼은 일류만을 취급하는 엘로아가 고급진 부르고뉴 와인을 한가득 쌓인 채소 위에 콸콸 부었다.

아직 알 수 없는 린네에 비해 엘로아의 요리는 밑준비부터 금방 윤곽을 드러냈다.

부르고뉴 와인이 들어가는 프랑스식 스튜는 하나밖에 없다.

“뵈프 브루기뇽이잖아?”

“그건 또 뭐에요?”

“전설적인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가 논하길 ‘소고기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요리’라고 했어. 하지만 드라이 에이징 립아이로 만드는 건 처음 보는데 과~연 어떤 맛이 날지….”

“아하.”

도로시의 훌륭한 해설 덕에 조금 더 보는 맛이 생기는 시우.

엘로아가 연금술의 기본인 ‘숙성’을 사용해 채소와 와인의 조속한 숙성을 도모하는 사이.

-와르르르!!!

마치 빼앗긴 시선을 되찾아오려는 듯 린네 쪽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나 봤더니 조리대 위에 오븐 트레이에 망설임 없이 모래를 쏟아붓는다.

“모래?”

요리와는 그다지 연이 없는 것 같은 장면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잠시.

평평하게 모래를 다진 린네는 캠핑 파이어를 하듯 숯을 놓고 발화를 사용해 새빨갛게 달아오르도록 만들었다.

손을 올려 온도를 살피곤 긴 꼬챙이에 헤엄치듯 끼워진 통 은어를 머리가 바닥을 향하도록 비스듬히 세웠다.

이쯤되자 시우조차도 모래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모래에 복사된 열기가 고르게 전파되게 하는 한편, 꼬치를 세울 수 있는 디딤대를 만들어주는 게 목적.

숯의 곁불을 이용해 굵은 소금을 넉넉히 뿌린 통통한 은어를 시오야키 하려는 것이다.

“대단한 디테일이야.”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도로시는 그 이상을 보았다.

“이번엔 또 뭔가요?”

“숯불 소금구이는 생선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이야.”

“그건 저도 압니다.”

“은어는 통으로 즐겨야 더욱 맛있는 생선. 저렇게 머리가 아래로 가도록 비스듬히 눕히면 은어 기름이 몸을 타고 머리에 맺히지. 즉, 맛과 풍미가 극한으로 농축된 최~고의 은어 머리를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뿐만이 아니다.

헤엄치던 모습 그대로 꼬치를 끼우는 ‘오도리구시’를 통해 보는 맛을 살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느러미에 소금을 충분히 바르는 ‘소금화장’으로 지느러미가 타지 않도록 유도했다.

얼핏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

요리의 근본인 ‘먹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듬뿍 들어있다.

지글지글 보기 좋게 익어가는 은어와 그 앞에서 부채를 들고 불의 열기를 조절하는 린네.

-치지지직!

엘로아도 본격적인 조리에 들어간 참이었다.

올리브유를 두른 냄비에 가볍게 고기를 시어링한다.

수분기가 적은 드라이에이징 원육답게 금세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

그 위로 와인에 담가 속성 숙성한 채소를 넣고 함께 익혀준다.

채소의 숨이 절반쯤 죽었을 때 마저 투입되는 와인, 소금, 후추, 송아지육수, 토마토 페이스트, 생강, 파프리카와 밀가루.

알코올 성분을 날려보내며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풍부한 와인의 향이 갖은 재료와 뒤섞여 달콤한 조화를 이룬다.

이대로 자글자글하게 될 때까지 국물을 조려준다면 완성일 테지만, 엘로아의 비기는 끝이 아니었다.

추가로 투하할 재료를 위해 새로이 팬을 꺼내든 것이다.

“베이컨, 양송이 버섯, 샬롯…. 정말 본격적인 레시피네.”

이 모든 것이 소스에 맛을 더해줄 부재료다.

버터를 넉넉히 부은 후라이팬 위에 베이컨 기름을 짜낸 뒤 양송이와 샬롯을 추가로 굽는다.

양송이와 샬롯이 넉넉하게 기름을 흡수하면 그것을 메인 냄비에 함께 넣고 끓여준다.

멀리서 보고 있음에도 한결 풍성해지는 향이 아름답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를 마지막 한 조각, 엘로아만의 비기.

향이 더 아로마틱해지는 데다가 풍미가 더 깊어지는 효과를 오는 그것은….

카카오 함량 70%의 다크 초콜릿 두 조각.

“대단해….”

어디까지나 정식 레시피를 골조로 삼되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도달한 자기만의 레시피.

도로시의 기대치가 하늘을 뚫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글보글보글

남은 건 스튜가 타지 않게끔 졸여주는 일이 끝이다.

따라서 엘로아는 곁들일 메쉬 포테이토와 스테이크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화구 두 개에 불을 얹었다.

“그렇다면 린네는…?”

어느 쪽이건 눈을 떼놓을 수 없는 경합.

린네는 동양식에 빠질 수 없는 밥을 준비 중이었다.

일반적인 밥이 아니다.

숯불에서 멀리 있던 은어 두 마리와 가장 가까이 두어 바싹하게 익은 은어를 골라낸 린네.

바삭하게 익은 은어는 육수용으로, 덜 익은 두 마리는 솥 위에 들어간다.

우려낸 생선 육수로 밥을 얹히고 그 위에 통으로 은어를 올려놓는다면 쌀알 한올 한올이 기름으로 코팅된다.

싱싱한 은어를 뼈 하나 버리지 않고 통째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바로 은어 솥밥인 것이다.

“이쪽도 훌륭해!”

도로시가 주린 배를 붙잡고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동안.

차곡차곡 완성되어가는 두 사람의 요리.

“5분 남았어! 빨리~ 빨리~”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엘로아는 미디엄 레어로 조리 완료한 스테이크를 레스팅하며 육즙을 가두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고,

린네는 솥밥에서 꺼낸 은어의 살을 먹기 좋게 발라내고 있었다.

“시간 종료…!”

그리하여 완성된 두 스승님의 요리.

엘로아의 코스는 스테이크, 뵈프 브루기뇽, 매쉬 포테이토.

보기만 해도 속이 든든해지는 고기고기한 가정식 코스.

반면 린네의 코스는 은어 냉채, 솥밥, 된장국, 소금구이.

소반 위에서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게 꾸며진 한 상.

두 사람은 상기된 표정으로 요리를 내왔다.

린네도 엘로아도 자부심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확실히 결과를 말해주게나.”

“가감 없이 부탁하겠다.”

어쩌다보니 어울리게 되었지만 두 스승님의 요리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우.

“그럼…. 먹어 보겠습니다.”

가슴이 무겁지만 일단 음식이 너무 맛있어 보인다.

먹고 나서 생각해보자.

“잘먹겠습니다아!”

지나치게 흥분한 도로시가 린네와 엘로아의 눈총을 받으며 시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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