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
1.
마녀 사회에서는 ‘결혼’이라는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문화’라는 인식이 훨씬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현모양처나 내조 등의 단어는 마녀와는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다른 연인들이 시우에게 청혼을 하거나 혹은 청혼을 기다리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허나 그 틀을 깨버린 린네는 엘로아와의 대결을 이제껏 없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바로 ‘누가누가 더 현모양처인가?’ 에 대한 겨룸이다.
그렇다면 현모양처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온 정성을 쏟아 지아비를 섬기는 것, 굳은 지조로 남편을 지탱하는 것,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지고지순한 것.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정량적 측정이 어렵다.
인간의 마음이란 단순히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까닭이다.
집안일이라면 어떨까?
청소나 빨래 따위는 마법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끝나는 일이며 중요도도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요리.
사랑하는 님을 위해 진수성찬을 대령하는 것.
이건 마법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도 없으며, 또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린네와 엘로아는 다음 대결 항목을 요리대결로 결정지었다.
시간이 너무 늦기도 했고, 엘로아도 잠을 자야 했으니 준비 기한은 내일 저녁까지.
린네는 시우를 통해 즐라타를 불러들였다.
식재료를 대신 구매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새로운 음식을 배워야 했으니 말이다.
엘로아는 엘로아대로 곧장 제머나이 저택의 주방으로 향해 내일 대회 요리 준비에 골몰했다.
그동안 시우는 무엇을 했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아…. 좋다….”
정말로 오랜만에 하는 ‘아무것도 안 하기’.
지금껏 너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석 달에 한 번씩은 큼직한 사건에 휘말리고, 최근에는 헥센나흐트에 잡혀가 온갖 비자발적 모험에 시달렸다.
게다가 돌아온 즉시 변변한 휴식 없이 큰 장모님께 혼쭐나기, 샤론의 이별 선언 후 재회, 두 스승님의 반목에 대한 염려, 현세 둘러보기까지 마쳤으니.
언제 번 아웃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아무런 생각 없이 누워있다가 이따금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잔잔한 휴식이 조금은 필요했다.
-딸깍
하지만 기분 좋은 적막과 고요도 잠시.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온다.
시우는 침대 위에 대자로 뻗었던 몸을 슬쩍 일으켰다.
“누구세요?”
“누굴까아~?”
“도로시 님이네요.”
“응, 정답~”
객실 문에서부터 침실까지 가까워지는 발소리.
린네가 지하감옥에서 풀려났듯 함께 풀려난 도로시이다.
제머나이 저택 바깥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스승님께 부탁해 저택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아무리 그래도 생명의 은인을 뇌옥에 박아두는 건 아니다 싶었으니 말이다.
슬리퍼를 직직 끌며 침대로 다가오는 도로시.
그녀는 한눈에 봐도 푹신해 보이는 양털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일개 파자마 주제에 엄청난 볼륨감과 섹시함을 연출해내는 건 착용자가 도로시이기 때문이리라.
“살면서 게헨나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네 덕분에 좋은 경험 해보네?”
“가능한 바깥도 구경 드리고 싶은데…. 뭔가 죄송하네요.”
“아냐아냐~ 죄송하긴. 이 저택만으로 훌륭한 관광명소인걸? 제머나이 백작이 소문대로 돈이 많은가 봐.”
“그건 그렇죠.”
하기야 어떤 시대, 어떤 왕궁을 뽑아와도 제머나이 저택의 화려함에 비하면 빛이 바라고 말 것이다.
그냥 정원이나 갤러리만 걸어도 관광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도로시는 침대 옆에 털썩 걸터앉았다.
여러모로 지쳐 있는 시우지만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홀대할 만큼 박정하진 않다.
“재밌는 얘기를 들었지 뭐야?”
“네?”
“린네랑 티페레트 공작이 요리 대결을 한다며?”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지만 자연스레 조금 피곤한 목소리까진 감출 수 없었다.
“뭐야~ 모처럼 찾아왔는데 맥 빠지네. 벌써 내가 질린 거야?”
“아닙니다. 요새 이 일 저 일이 많았잖아요. 뭐랄까, 이제야 마침내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라고 하나?”
요번은 특히나 심했다.
비록 크게 다치거나 목숨의 위협을 겪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쇠약해질 만큼 긴장한 채 하루하루를 넘겼으니 말이다.
“그런 거라면…. 잠시만 엎드려 볼래?”
“도로시 님, 제가 지금은 조금 피곤해서요.”
“에이~ 시우 어린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 안마 해줄게.”
“하이고…. 이 누님 참.”
쓴웃음을 지으며 엎드린 시우.
그러자 슬리퍼를 벗은 도로시가 허리에 올라타 조물조물 어깨를 주물러준다.
“와.”
의외로 엄청 시원해서 깜짝 놀랐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어때~? 도로시 에스테틱은?”
“엄청 능숙하시네요.”
“그럼그럼~ 왕년엔 이런 스킬로 여럿 꼬셨었다고. 그나저나 정말 딱딱하네.”
“악! 악! 도로시 님!”
“괜찮아~ 괜찮아~ 엄살 부리지 말고 좀만 참으렴.”
팔꿈치까지 활용해 어깨와 등근육을 전체적으로 문질러주는 도로시의 야무진 손.
단언컨대 살면서 받아본 안마 중 가장 시원한 안마이다.
“이런 거 해드려도 제가 해드려야 하는데….”
“우리 사이에 뭐 그런 말을. 좋지?”
“네.”
아픔과 시원함의 절묘한 경계 속에서 긴장으로 뭉쳐있던 근육을 싹 풀어주는 기분이다.
절로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나른한 콧소리가 나온다.
사실 도로시는 시우를 냅다 덮칠 셈이었다.
도로시가 게헨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길어야 요 하루 이틀.
이렇게 근사한 저택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공적인 그녀가 다시 게헨나에 찾아오게 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몹시 지쳐있는 시우를 보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을 단념했다.
아쉽긴 해도 원래 이런 건 연상인 쪽이 배려하는 거다.
“그나저나, 하루 동안 어디 다녀온 거야?”
“현세에 좀 다녀왔어요.”
“현세?”
“연인들이랑 여행차요.”
“그렇니?”
“네.”
지금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와 자신의 사이에 아득한 벽을 느끼자 씁쓸해진다.
마녀 사회에서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사형선고, 그것이 바로 공적 낙인이다.
아무리 도로시가 개심하고 노력해봐야 공적이라는 굴레는 벗을 수 없다.
그 벽을 새삼 자각한 것은, 시우를 구하기 위해 그의 연인들과 접선했을 때의 일이었다.
시우는 게헨나 소속 엘리트 중 엘리트.
그 성취는 둘째치고 지인이란 지인은 죄다 게헨나의 고위직이며, 그의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말인즉, 도로시는 평생 현지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따금 얼굴이나 보고, 몸이나 섞고, 그러고 나면 그가 연인들에게 돌아가는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봐야겠지.
“어휴~ 주책이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야.”
도로시는 변했다.
먼 과거엔 그의 앞에서 현지처로 만족한다는 말을 자연스레 늘어놓았는데.
이제와서 새삼 한 번도 한탄해 본 적 없는 공적으로서의 삶에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예전엔 어떤 싸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게 두려워 농담으로 본심을 에둘러 감출 뿐이다.
심지어 그에게 칭찬받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접어놓고, 무기상 그만뒀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나중에 자연스레 밝혀지는 게 더 극적이잖아?’ 라며 이유를 대지만.
그것 역시 결국 핑계를 대면서 본심을 여유와 장난스럼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활한 척하지만 한없이 어설픈 헛똑똑이.
좋아한다는 말을 직접 꺼내기는커녕 사소한 단서를 주는 것조차 꺼리는 겁쟁이.
그게 바로 지금의 도로시이다.
“아, 도로시 님.”
“응응.”
“이번에 현세에 나가면 한동안 같이 여행하실래요?”
“응, 그러자. …응?”
대수롭지 않게 답하던 도로시지만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웃한다.
듣자하니 지금 그는 여자친구들과 같이 현세 여행을 즐기는 모양.
거기에 도로시를 끼워 넣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허락받아뒀습니다. 말도 없이 일을 진행해서 뭔가 죄송하네요.”
시우의 말투에서는 겸연쩍음이 잔뜩 묻어나왔다.
린네나 도로시의 사정을 열심히 설명하며 ‘마지막’이라는 조건까지 덧붙여 동의를 받아낸 시우다.
그러나 연인 편입이 기정사실인 린네와 달리, 도로시는 영 본심을 알 수 없었다.
여차하면 깔깔 웃으며 ‘그렇게 내가 여자친구로 있어줬으면 했어? 현지처가 아니라? 흐음~ 난 그런 끈적끈적한 관계는 영~ 성가셔서 마음만 받을 게. 가끔 놀러나 와~’ 같은 반응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김치국 한 사발 들이켠 입장에서 굉장히 뻘쭘하겠지.
반면 도로시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애매하게 헛다리를 짚는 시우와는 달리, 도로시는 눈치가 무척이나 빨랐다.
그의 어물거리는 말투로부터 ‘동의’가 비단 여행에 관한 동의가 아닌, 관계 전반을 아우르는 동의라는 걸 눈치챘다.
너무나도 받고 싶었지만, 차마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해 사양하던 선물을 받아든 기분.
가슴이 꾸욱하고 조여오면서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다.
“그래?”
정말로 다행이다.
지금 그가 엎드려있지 않으면 순진한 처녀처럼 달아오른 뺨을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뭐~ 감당할 수 있겠어?"
"뭐가요?"
"나 마음을 주면 부담스러울 만큼 헌신하는 타입이거든, 일단은 알겠어.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할게.”
도로시는 자꾸만 주책없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꾹 억눌렀다.
“이런 말씀 드리기엔 뭐하지만…. 제가 괜한 짓 한 건가요?”
“응, 정~말 괜한 짓이지. 그래도 귀여우니까 조금 더 기분 좋게 해줘야겠는걸?”
도로시는 제 양털 파자마의 단추를 톡톡 풀었다.
보들보들한 옷자락 사이로 모유 수유하는 마망처럼 젖가슴을 드러낸 도로시.
폭유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풍만한 과실이 그녀의 작은 몸짓을 따라 출렁출렁 요동친다.
“많이 피곤하다고 했지?”
영문도 모른 채 엎드려 반쯤 졸던 시우의 옷이 스르륵 벗겨진다.
“도로시 님?”
“옳지~ 착하지?”
도로시는 시우의 머리를 들어 허벅지 위에 눕히고 생글생글 웃었다.
순식간에 모유 수유 대딸 포지셔닝이 된 두 사람.
시우 얼굴 위로 묵직하게 얹히는 젖가슴은 부드럽고 말캉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은 손가락하나 까딱 않고, 나한테 다~ 맡기면 돼. 최대한 편안하게 좋게 봉사해줄게.”
그 말을 끝으로 시우의 입술 사이로 말랑말랑 젤리 같은 젖꼭지가 물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