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79화 (779/917)

#773

1.

린네와 엘로아는 한마디 말없이 한가지 합의점에 도달했다.

먼저 이 싸움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생사결이 아니다.

또한 마녀의 싸움이 아닌 무인의 싸움이다.

따라서 본연의 검술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력만을 뽑아낸다.

허공에서 시선을 맞부딪치던 둘의 신형이 튕겨 나가듯 거리를 좁혀갔다.

탐색전이 배제된, 첫수부터 격렬한 격돌이었다.

-까가가각!

사방으로 튀는 마력의 불꽃과 함께 린네의 소태도에 엘로아의 계약검이 얽힌다.

분명 휘어지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단단한 강철임에도, 린네의 소태도는 먹잇감을 휘감는 뱀처럼 검신을 타고 올라 엘로아의 손목을 노려왔다.

동시에 자연스레 휘둘러지는 대태도는 허리춤부터 비스듬히 솟구치며 회피가 어려운 허벅지를 찌르고 있다.

-쾅!

엘로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도리어 몸을 내밀며 린네의 발등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마력 양을 조절하고 있다고는 하나, 발경의 묘리가 담긴 일보.

발등이 으깨지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과정에서 린네의 동작이 흐트러졌다.

엘로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물 흐르듯 동작을 이어 어깨로 린네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

-쿠웅!

“커흑!”

어깨 박치기라는 단출한 공격에 비해 북을 두드린 듯 크게 울리는 굉음.

숨을 토해낸 린네의 몸이 정원 위를 구르는 동안 엘로아가 그 뒤를 추격한다.

아직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린네에게 결착의 한 수를 휘두르는 엘로아.

린네는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 검격을 바닥을 구르듯 피하며 흘려낸다.

그러나 린네는 마냥 회피에 급급했던 건 아니었다.

-휘리릭!

구르기를 하던 도중 똬리를 튼 뱀처럼 몸을 웅크린 린네의 검이 길게 뻗는다.

웅크린 동작까지 염두에 둔 발도세.

소태도보다 훨씬 긴 대태도의 궤적은 기어이 엘로아의 추가타 사이로 카운터를 욱여넣었다.

분홍빛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나갔고, 이마를 찢을 뻔했던 서늘한 검풍이 엘로아의 기세를 멈춰 세운다.

“…….”

“…….”

여기까지가 고작 일 합의 마무리.

시간으로 따지자면 고작 2초 정도가 흘렀을 뿐이다.

자세를 바로 한 두 사람.

엘로아가 다시 공세에 들어선다.

머리까지 높게 올렸던 검이 대각선을 그리며 내리긋는다.

한 번이라도 검에 목숨을 바친 자라면 그려왔던 이상적인 한 수는, 검격 그 자체로도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기껏 안을 파고 들어도 승부를 따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장검과 양손 검의 약점을 이용하고자 가까이 붙어선다면 전신을 이용한 박투술로 간합을 다시 벌려낸다.

그녀가 맨손으로 내지르는 주먹은 검격만큼이나 위협적이다.

린네는 탄식했다.

엘로아의 검은 태산과 같다.

편법을 부리지 않고 가장 낮은 곳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무의 극의.

천 년의 세월조차 깎아내릴 수 없는 고결하고도 정의로운 검.

뿐만 아니라 비단 검술이라는 수단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신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뚫을 수 없는 방패요, 막을 수 없는 검이었다.

우직하게 내려오는 내려긋기를 필사적으로 흘려낸 린네의 몸이 허깨비처럼 엘로아의 사각을 잡는다.

그림자처럼 자유롭고 무게감이 없는 움직임 속,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치명적인 한 수.

엘로아는 감탄했다.

린네의 검은 두 마리 뱀과 같다.

예측 불가한 움직임과 날렵한 비틀림.

강함을 위해 기교와 기술, 그리고 투로를 극한까지 단련해낸 이도류.

본디 검의 다채로운 움직임은 손목의 움직임과 파지에서 온다.

허나 린네는 이도류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검격을 선보이며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기까지였다면, 지금껏 린네와 나눴던 앞선 전투와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마주하는 린네는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달라졌군.”

“…….”

엘로아가 기억하는 린네는 훌륭한 검술의 소유자이되 어딘가 쫓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린네보다 실력이 변변찮은 이에겐 그것이 박력과 위압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기야 매 순간 ‘널 죽일 수 없다면,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외치는 검을 대적하는 일이니 기세에서 지고 들어가겠지.

하지만 눈앞의 두려움에 속지 않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엘로아에게 그러한 린네의 검은 급조품에 불과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일격일격에 자신의 생명을 검날에 싣는 듯했던 초조함이 사라졌다.

대신 차분한 안정감과 확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여유가 보태졌다.

유일한 단점이 사라진 린네의 검은 이제 감히 내려다보며 평가할 것이 못되었다.

린네의 몸이 소리 없이 쏘아진다.

이번에는 린네 특유의 능력인 관성 제어가 섞여 있는 움직임이다.

바닥을 기어가듯 달리는 그녀의 검은 있을 수 없는 자세에서, 있을 수 없는 각도로 출수되었다.

엘로아는 기어이 그 일격을 잡아채어 검을 맞댄다.

-까가가각! 까각!

다시 한번 소드 파이팅에 들어간 두 사람.

엘로아의 눈가가 좁아졌다.

끈적끈적한 검이다.

남성에게 교태를 부리는 여성처럼, 혀와 혀가 꼬이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끼리 젖은 몸으로 침대 위에 몸을 꼬는 것처럼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엘로아를 향해 네 개의 나선을 그리는 검격이 쇄도한다.

-콰아앙!

엘로아는 정확히 그 중심부를 잡아내어 뿌리치듯 힘으로 찍어 눌렀다.

“그대는….”

엘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검의 대화란 얼핏 우스운 말이다.

고작해야 쇠붙이를 맞댄다 하여 서로의 본심이 전해질 리 없다고 범인은 단정 지을 것이다.

그러나 엘로아는 확실히 읽어냈다.

지금 린네의 검에서 내비치는 그녀의 마음은….

‘낭군이 보고 싶다’라는 일편단심과 ‘이 여자에게서 낭군을 빼앗고 싶다’라는 승부욕.

검의 경지를 개척하는 데 있어선 다양한 경험 또한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린네의 검은 결정적인 ‘경험’을 가졌어야 가능한 내적 성장이 내포되어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험이 그녀를 변화시켰는가?

머리로는 알되 자세히 떠올리는 건 거부했던 사특한 상상이 엘로아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건 바로 나신의 린네를 끌어안고 있는 제자의 모습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엘로아는 그제야 자신이 린네에게 느끼는 근본적 거부감을 발견해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웃음이 나올 만큼 유치한 발상이었다.

엘로아는 다른 연인과 경쟁하려 들거나 투닥투닥 다툰 적이 없다.

그녀는 시우의 연인이지만 동시에 스승이라는 자각이 있었던 까닭이다.

최초에 그것은 엘로아에게 양심의 가책을 얹는 멍에였으나, 지금 와선 소중하고 특별한 지위가 되어 있었다.

시우의 연인은 여럿이지만 스승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엘로아 하나였으니까.

그렇기에 엘로아는 ‘스승’이라는 특별함을 뺏어간 도둑고양이를.

그것도 모자라 그를 ‘낭군’이라고 칭하는 여자를 뿌리 깊은 곳부터 부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반드시 숙청해야 할 악독한 공적이 아님을 알게 되었어도 위 사실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엘로아는 선언했다.

린네야말로 엘로아의 운명의 연적임을.

“나는 그대를 인정할 수 없네.”

그리고 드디어 마음이 맞는 말이 나왔다는 양, 린네 역시 작은 웃음을 올리며 고한다.

“나 역시 널 인정할 수 없다.”

엘로아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건 린네 역시 마찬가지다.

린네는 그에게 연인이 많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모든 처첩과 화목할 것임을 다짐했다.

본인의 성격이 괴팍하며 어우러짐이 없다는 자각은 있다.

그럼에도 지아비 된 시우와 가화를 위해선 설령 평생의 숙적으로 여겨왔던 엘로아 앞에서도 기꺼이 고개를 숙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엘로아와 대면하는 순간부터 린네는 깨달았다.

결코 린네는 그녀와 가까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는 뒤처질지언정 눈앞에 저 여인에게만큼은 무릎 꿇고 싶지 않음을.

어쩌면 그것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그러나 서로 다른 천품을 지닌 무인의 본능적 오만함이 충돌하는 것이리라.

-스릉

린네는 두 자루의 검을 납도 했다.

엘로아 역시 계약검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이어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처럼 긴장이 감돌던 두 사람의 몸에 힘이 이완되었다.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큰 격차가 없던 두 사람의 무위.

린네는 새로운 경지를 밟았으며 증명했다.

엘로아는 그것을 인정하고 수긍했다.

이제 린네는 엘로아와 동등한 눈높이에 섰다.

승부를 가리기 위해선 자칫 목숨을 빼앗는 사고를 담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제자가, 낭군이 얼마나 슬퍼할지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양자 모두 검을 거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가려야겠지.

2.

디아나와 게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에 시우는 우선 제머나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너무 늦은 밤에 찾아가는 건 실례기도 했고, 어쩌면 협상이 끝난 스승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참고로 이번에는 전에 없이 압도적인 승리.

안대를 벗지 않고 승부에 임했음에도 디아나는 시우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위치보드 계의 알파고 로지와 자웅을 겨루는 게 실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디아나마저 시원스레 탄복할 승부였다.

“어라?”

그렇게 정원을 거닐던 시우는 린네와 엘로아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왜 두 스승님이 한 자리에 있는 거지?

뭔가 큰일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자니 머잖아 두 사람이 동시에 시우를 바라본다.

“낭군….”

“시우.”

시우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화색이 된 채 품에 안기려던 린네의 앞을 엘로아가 가로막는다.

실로 절묘한 태클이었다.

“네, 스승님.”

“검의 마녀와 승부를 겨루고 싶네. 그대가 심판을 맞춰주었으면 좋겠군.”

“무슨 승부요?”

그러한 엘로아의 블럭을 마르세유 턴으로 탈 압박한 린네가 나서 말했다.

“요리 승부다.”

“네?”

그렇게 시우배 천하제일 스승님 요리 대회가 개최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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