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
1.
쌍둥이 특.
호기심 엄청 많음.
“헤큥?!”
“부교수님이 재채기 하는 거 처음 봐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이슈에도 쌍둥이가 얹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딜과 오데트는 눈을 반짝이며 아멜리아의 주위를 서성였다.
하지만 이번 참견은 비단 호기심 탓에 시작된 대화는 아니었다.
오딜과 오데트도 어느 정도 용기를 낸 부분이었다.
아멜리아 부교수님은 여전히 무섭다.
심지어 그녀 밑에서 일주일간 아르바이트 경험을 했음에도 그다지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았다.
엘로아 공작님과는 또 다른 무서움이 있달까?
사실 공작님의 경우 세간에 퍼진 위명과 그녀의 관록에서 나오는 거리감일 뿐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엘로아는 쌍둥이를 볼 땐 스승님들보다도 자상히 대해주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아멜리아 부교수님은 뭐랄까, 다가가기 힘든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가 엄청 독특하시네요.”
“뭔가 귀여워요.”
“그냥 재채기 인걸요? 평범하잖아요?”
그냥 대답했을 뿐인데 ‘별게 다 궁금하네요. 그런 게 궁금할 시간에 논문을 한 글자라도 더 읽는 건 어떤가요?’라는 뒷말이 딸려올 것 같다.
부교수 시절 그녀가 선보였던 철혈수업이 PTSD로 남은 탓인지 자연스레 오딜과 오데트를 위축시키는 프레셔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멜리아 부교수님도 조수님의 사랑을 다투어야 할 연적!
쫄아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된다.
맨 처음 눈이 훼까닥 돌아 치정 싸움을 벌였을 때처럼 대등하게 맞서야 할 상대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해져야 한다.
일단 좀 친해져야 나중에 맞먹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샤론 언니로부터 배웠다.
“아니에요! 분명히 독특해요. 귀엽구요.”
“보세요!”
오딜은 소파 등받이 베개에서 삐져나온 깃털 하나를 뽑아냈다.
그리고 오데트의 코밑을 간질인다.
콧잔등을 찡그리며 입을 뻐끔거리던 오데트는 이내 입가를 가리더니 시원한 재채기를 선보였다.
“헤, 헤에…! 푸에취!”
“이게 정상이라구요! 드래곤 브레스처럼 보기만 해도 호쾌한 재채기!”
“쓰읍, 맞아요!”
자고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잡담이 최고인 법.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런 부류의 대화가 낯선 듯 눈만 끔뻑이고 있을 뿐이다.
대신 다른 물고기가 떡밥에 꾀였다.
“흠, 참으로 경망스러운 대화 주제로다.”
롤챔스를 보며 캔맥주로 목을 축이던 르뤼에가 육포를 질겅이며 걸어온 것.
“자고로 숙녀란 재채기를 하지 않는 법이니라.”
“윽, 넌 좀 빠져라.”
“눈치가 없어요. 눈치가.”
“또 같잖은 도발을 하려 드는구나. 여왕에 대한 존경을 모르는 풋내기를 상대하기란 피곤한 일이도다. 어린 것들을 향한 짐의 인내가 영원할 성 싶으냐?”
“허세의 마녀 등장.”
“재수 없어!”
아멜리아는 눈동자만 움직여 르뤼에를 한번 살피고, 쌍둥이 쪽을 한편 살폈다.
잠깐의 개별 여가 시간 동안 아멜리아는 책 한 권을 훑어보았다.
제목은 ‘쉽게 떠먹는 대화 기술 라자냐’.
암기의 신 아멜리아는 154페이지 2번째 단락부터 156페이지에 걸쳐 기술되었던 테크닉을 떠올렸다.
또한 지금 이 상황이 그 테크닉이 적용 가능한 대목임을 알아차렸다.
“샤론 언니는요?”
“나? 나는 그냥 에취! 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맞아, 그랬던 것 같아.”
이른바 ‘시시콜콜한 스몰 토크에 끼어들기’.
꼭 명확한 주제를 지닌 대화만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일상 속 잡담이 거리감을 좁히고 유대를 쌓는데 탁월한 효과를 부여한다.
스텝 원, 우선 듣고 공감해주어라.
스텝 투, 상대가 말을 꺼내기 편하게끔 질문을 던져주어라.
두뇌풀가동 중이던 아멜리아는 가열찬 말싸움을 이어가던 르뤼에를 불렀다.
“르뤼에 양.”
“흐음? 별일이구나 금발이 짐을 부르다니.”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윤허한다.”
“르뤼에 양의 재채기 소리는 어떤가요?”
르뤼에는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 당당히 팔짱을 꼈다.
“말했지 않느냐? 그런 경망스러운 짓 짐은 하지 않느니라. 짐이 앞서 뱉은 말을 되묻다니. 불경한 진의가 느껴지도다.”
“…….”
아멜리아에겐 불행히도 르뤼에는 말문이 턱 막힌다는 경험을 하기엔 최적의 상대였지만, 대화 연습 상대로 삼기엔 하드한 상대였다.
“얍!”
여기서 빈틈을 살피던 쌍둥이가 두 개의 깃털이 르뤼에의 콧구멍 한쪽에 집어넣었다.
완전한 기습이었기에 르뤼에가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반사뿐이었다.
“르뤠에!!!!! 푸하!”
뱃고동 소리를 연상케 하는 요란한 재채기 말이다.
쌍둥이가 기다렸다는 듯 깐족댄다.
“뭐야? 재채기하네.”
“하여간 입만 벌리면 구라라니까.”
“이, 이런 간악한 놈들!”
“소리 완전 웃겨. 르뤠에!!!! 래.”
“나도 앞으로 재채기 할때 오디루! 라고 해야겠다.”
“그럼 샤론 언니는 샤로니!!!”
“난 또 왜?!”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르뤼에를 열받게하고 낄낄대던 쌍둥이가 우뚝 굳는다.
“…….”
정면에 앉아있던 아멜리아가 르뤼에가 분사한 침에 흠뻑 젖은 채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머리에 르뤼에가 씹다 뱉은 육포가 매달려있다.
“부, 부교수님….”
“르뤼에! 당장 무릎 꿇고 사과드려!”
“너, 너희가 짐의 코에 깃털을 쑤셔 넣었기에 그런 것 아니더냐! 너희가 사과해라! 짐은, 짐은 모른다!”
참고로 르뤼에 역시 초대면의 안 좋은 기억 탓에 아멜리아를 적잖이 무서워한다.
그 결과 쌍둥이도 르뤼에도 혼비백산.
“괘, 괜찮아요.”
오늘 아멜리아는 스몰 토크의 어려움을 배웠다.
2.
“하아! 여긴! 완전! 파라다이스야!”
본래 목적을 위해 레바나 대욕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시우.
더 정확히는 추방자 4인방이 임시거처로 제공받은 개인 풀장 겸 별장이었다.
비키니를 입은 즐라타가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칵테일 잔을 들어 올렸다.
딱 봐도 얼큰하게 취해있는 즐라타.
라틴계 특유의 건강한 갈색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고, 즐라타의 눈동자는 그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항상 부한 히피 복장만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 누님 꽤 공격적인 몸매다.
즐라타는 시우를 발견하자마자 첨벙첨벙 욕탕 밖으로 뛰어나와 어깨동무를 했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동생도 한잔할래?”
“잘 지내고 계신가 보네요.”
“물론이지! 세상에나! 세상에나! 내가 게헨나 정식 시민이 되다니! 이 녀석, 믿고 있었다고!”
“덕분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즐라타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탈출은 불가능했다.
은신처도, 협력자도 구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애초에 속일 생각으로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말이 아니었기에 즐라타는 공로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역시 너는 신의를 아는 녀석이야. 첫눈에 봤을 때 알아봤다니까?”
인생 역전 베팅에 성공한 셈.
처음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협력했던 즐라타도 막상 일이 술술 풀리니 시우가 복덩이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즐라타는 한참이나 레바나 대욕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신이 게헨나에 얼마나 오고 싶었는지, 기껏 대안으로 찾은 헥센나흐트가 이곳에 비하면 얼마나 똥통 같은 동네였는지를 털어놓았다.
“나중에 시간 나면 공방에 들려. 최고의 식사를 대접해줄게. 그나저나….”
잔뜩 들뜬 어조로 신나게 떠들던 즐라타가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무방비함으로 가득했던 눈빛에 진지함이 깃들고 목소리는 한없이 낮게 가라앉는다.
“호스트바 VIP 회원권은?”
“안 그래도 챙겨왔습니다. 저기 가방에 명함 넣어두었으니까 찾아가셔요.”
“고마워 동생. 섭섭한 건 아니지?”
“그럼요.”
애교있게 윙크하는 즐라타의 모습에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챙길 거 다 챙겨가겠다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썩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당연히 주장할 권리이기도 하고 말이다.
“앞으로는 어쩌실 예정인가요?”
“아, 네가 쓰러져있는 동안 제머나이 백작이랑 얘기 좀 했는데 말이야. 꽤 좋은 조건으로 납품 계약을 맺었거든. 타로 타운에서 유유자적 장사나 하면서 살아야지. 동생 정말 뒷배가 장난 아니던걸?”
“네?”
“나 전부 봤다고? 제머나이 예소드 백작에, 티페레트 공작에, 무시무시한 공적 둘에, 심해의 마녀에 그에 버금가는 엄청 강한 마녀까지 널 구하려고 동분서주했잖아. 그런 어마어마한 인맥은 어떻게 쌓았어? 일반적인 마녀는 티 타임 한 번 갖기도 어려운 상대들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즐라타의 시선이 쓱 시우의 아랫도리를 향한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양 말이다.
“이 누나랑도 인맥 좀 쌓아볼래?”
“정말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칼 같네 정말.”
즐라타도 본심은 아니었는지 깔깔댔다.
뭐, 무사히 잘 지내는 모습을 봤으니 됐다.
다음은 같은 별장에서 머무는 앨리스 3인방을 확인할 차례.
“즐라타 님, 앨리스 님이랑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시나요.”
앨리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즐라타는 꺼림칙한 표정이 되었다.
“으으, 뒷담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난 걔네 미친 것 같아. 정말 온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니까?”
“아직도요?”
“여긴 방도 많도 넓기도 넓고 방음도 잘돼서 상관없긴 한데. 한번 끼고 싶으면 가보던가.”
“다음에 찾아와야겠네요.”
아무래도 세 사람은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인 모양.
인사만 전해 달라 부탁한 시우는 타로 타운의 예빈에게 향했다.
어차피 스승님이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괜히 왼손에 이상이 있는 걸 밝혀서 다른 연인들이 걱정하는 걸 원하진 않으니 이 틈에 검진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3.
한편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끝나버린 회담.
엘로아는 시우를 찾았으나 제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잘됐다.
어차피 자리를 비워달라고 부탁한 뒤 담판을 지으려던 상대가 있었으니 말이다.
-철컥
“나와라.”
“…….”
지하감옥에서 풀려난 린네는 오랜 시간 묶여있던 손목을 쓰다듬었다.
조금도 주눅이 들지도 위축되지도 않은 칼날 같은 눈동자가 담담히 빛난다.
엘로아는 시우를 통해 린네에 대해 아주 상세히 들었다.
치료 과정 중에 보았던 린네의 기억, 그녀가 검귀가 되어야 했던 이유, 또 여러 번 목숨을 걸고 시우를 지키려고 했다는 사실까지도.
그녀를 마지막 연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시우의 주장이 아주 경우 없이 나온 건 아니었다.
또한 시우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면, 린네는 엘로아가 단호히 구축해야 할 공적이 아니었다.
허나 엘로아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시우의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엘로아가 밟아온 오랜 삶의 발자취가 린네의 존재를 용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방황 속 엘로아가 선택한 방식은 간단했다.
널찍한 정원까지 나선 엘로아는 이면결계를 펼치며 계약검을 아공간에서 꺼내 들었다.
“검을 뽑게.”
린네는 아랑곳 않고 하늘을 올려본다.
빛 공해가 적기에 유독 어두컴컴한 밤하늘엔 휘영한 월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게헨나의 달은 아름답군.”
-스릉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대태도와 소태도를 손에 쥔 린네는 엘로아를 바라보았다.
“칼춤 추기 좋은 밤이다.”
“동감이네.”
마녀는 마법으로 말한다.
그리고 검사는 검으로 말한다.
엘로아도 린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