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 6
1.
숨을 죽인 채 아멜리아의 방에 불법 잠입한 오딜과 오데트.
두근거리는 심장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하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스릴에서 오는 전율.
거기에 자작 관능 소설 캐릭터에 의도적인 몰입.
폭주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와중 둘은 완벽히 상황에 몰두해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담당 교수의 속옷을 멋대로 뒤적이는 변태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드르륵
방 한구석에 있는 서랍장이 소리 없이 열리고 오딜과 오데트는 나란히 침을 꿀꺽 삼켰다.
“우아….”
“쉿쉿, 언니.”
“괜찮아. 소리는 어차피 안 들리는 걸.”
오르골이 작동 중이니 실제로 쌍둥이가 대화나 수납장을 뒤적이는 소리가 아멜리아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서 심리상 위축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쌍둥이는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며 가장 첫 번째 속옷 수납장을 바라보았다.
“예쁘다….”
“그러게….”
달빛과 어스름하게 스며드는 가로등의 불빛을 조명 삼아 관람 중인 쌍둥이.
꼼꼼하고 세심한 아멜리아 부교수님의 성격답게 차곡차곡 정리된 속옷 세트는 흡사 잘 정리된 디저트 상자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체감되는 건 ‘어른스럽다’라는 부분이다.
색은 주로 검은색, 흰색 등이 많았으며 화려한 장식보다는 우아한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드로워즈와 소프트 브라 혹은 이너드레스를 애용하는 쌍둥이와 달리 성숙미가 풍겼다.
이는 아멜리아가 과거 부교수 시절 어른스러운 속옷을 입어야 남자에게 잘 보일 수 있다는 소피아의 사탕발림의 넘어간 결과물이기도 했다.
“하나 꺼내볼까?”
“그, 그래야겠지? 진지우도 자세히 살폈을 테니까.”
“구겨지지 않게 조심해 오데트.”
“뭐? 언니가 꺼내줘…. 나 무섭단 말이야.”
“뭐가 무서운데? 잘 개서 돌려놓으면 괜찮을 거야.”
시답잖은 투닥거림 속 결국 행동에 나선 건 오딜이었다.
행여 지문이라도 남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집게 손으로 조심조심 속옷 한 세트를 꺼낸다.
소재 자체에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 매끈함.
브래지어는 하프 컵에 천 자체가 굉장히 적어서 착용했을 때의 야릇함을 연상케 한다.
“빨리 흥분해서 냄새 맡아 봐 오데트.”
“왜 자꾸 나한테 시키는 건데…!”
“뭐라니! 속옷은 내가 꺼냈잖아!”
“으으….”
반박할 수 없게 된 오데트는 눈을 질끈 감고 킁카킁카 팬티의 냄새를 맡았다.
“더 흥분하면서 맡아야지.”
“킁킁킁킁킁.”
하지만 아무리 몰입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동성의 속옷 냄새를 맡으며 흥분에 젖을 리 없다.
“…뭔가 우울해졌어.”
묘하게 침울해진 오데트에게 오딜이 물었다.
“무슨 냄새 나?”
“응, 엄청 향긋한 냄새.”
“어디 봐봐.”
“좋지?”
“킁킁, 장미 냄새인가?”
“그런 것 같애.”
결국 나란히 쪼그려 앉은 채 팬티를 한쪽씩 쥐고 냄새를 맡는 오딜과 오데트.
옷가지를 세탁하면 이후 건조 때 조금씩 희석한 향수를 뿌리는 건 레이디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더군다나 ‘향수의 마녀’라는 이명을 지닐 만큼 향수에 조예가 깊은 아멜리아인 만큼 그 향기가 특출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참이나 킁킁거리던 쌍둥이는 속옷을 곱게 정리해 원상태로 복구했다.
그리고 약간 낙담했다.
“생각보다 대단치 않네.”
“그러게….”
소설 속 등장인물 진지우만큼 흥분하지 못한 기분이다.
몰래 잠입하고 서랍을 열 때까지만 해도 조마조마한 심정이 오길래 옳다구나 했는데.
막상 심장이 좀 잠잠해지자 딱히 아무런 전율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돌아갈까?”
“괜히 죄송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아냐, 오데트. 그래도 잠입할 때의 두근거림은 기억해 둘 수 있잖아.”
“응, 언니. 긍정적으로 생각할게. 그래도 기왕 왔으니까. 아래 것까지 살펴보자.”
“그래, 그러자.”
그렇게 아랫단 수납장을 열어본 오딜과 오데트.
그 안에 담겨 있는 건 시들시들해져 가던 오딜과 오데트의 흥미를 단숨에 유발할 귀물이었다.
“와….”
“이게 다 뭐지…?”
그렇다.
수납장의 위쪽이 아멜리아의 생활 속옷이었다면 아랫단은 뜨밤용 즉, 시우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입는 ‘엄청엄청 야한 속옷’이었던 것이다.
오딜과 오데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천이 없다시피 하다.
어떤 건 의도적으로 소중한 곳을 노출하는 구멍이 뚫려있다.
또 어떤 것은 브래지어임에도 컵이 없이 검은 와이어만 존재한다.
소피아가 전력으로 제공한 속옷들은 ‘의복’으로 분류해도 괜찮을지 의문인 신문물 투성이었던 것이다.
“이건 반칙이지….”
“부교수님 진짜 너무해. 앞에서는 얌전한 척하더니…!”
오딜과 오데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녀 사이에서도 가뜩이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가 이런 속옷까지 입는다면 그야말로 반칙 중의 반칙이다.
더군다나 쌍둥이는 견습마녀이고 스승님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이런 속옷을 갖출 수도 없었다.
솔직히 잘 소화해 낼 자신도 없었고 말이다.
새삼 견습마녀와 마녀의 출발선 차이에 울분을 토하는 쌍둥이.
“이건 응당한 복수야. 오데트 빨리 냄새 맡아.”
“응, 언니!”
아까까지 조금은 쌓여있던 양심의 가책이 구조적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에 눈 녹듯 사라졌다.
오딜과 오데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속옷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쌍둥이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하아… 하아…. 뭐지?”
“언니…. 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아멜리아의 필살 속옷 모음에는 여지없이 향수가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향수는 정향 및 사향을 빚어 만든 페르몬 향수.
즉,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아멜리아 특제의 마법 향수이다.
그걸 코에 박고 숨 쉬듯이 킁킁거렸으니 자연스레 그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드디어…. 주인공에 완전히 몰두한 걸까?”
“그런 것 같아….”
“조금만, 조금만 더 해보자….”
“킁킁킁….”
뭔가뭔가 계속 맡고 싶어지는 향기의 파티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쌍둥이의 등 뒤로.
“지금 뭐하는 거죠?”
스산한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야아아아악!”
“쿵팟퐁!”
과제를 개판으로 제출했을 때보다 100배는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쌍둥이가 비명을 질렀음은 물론이다.
2.
아멜리아는 아직도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무릎 꿇은 쌍둥이를 내려보았다.
지은 죄가 있기에 울상이 된 채 손을 바짝 들어 올린 오딜과 오데트.
당연히 시우가 몰래 놀라게 해 주려는구나 싶어 자는 척하며 기다리고 있었건만.
정작 아무런 반응이 없어 뒤를 돌아보자 쌍둥이가 아멜리아의 속옷 냄새를 맡으며 숙덕거리고 있던 것이다.
어둠 속에 웅크린 둘의 모습을 봤을 땐 정말이지 심장이 내려앉는 줄만 알았다.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요.”
무단 주거 침입, 심지어 속옷 수납장을 뒤적이고 있었다니.
쌍둥이의 행동은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당장 알비레오 백작과 데네브 백작을 찾아가 따져 물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멜리아는 우선 화를 가라앉혔다.
상세한 내용을 듣고 화내도 늦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쌍둥이.
그러니까 시우의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야한 소설 공모전에 참가했다 한다.
그러던 중 예소드 백작의 말을 듣고 주인공에게 몰입이 부족하다 여겨 비슷한 경험을 하기 위해 잠입을 시도했단다.
“…정말 죄송해요…. 스승님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어떻게든 저희가 배상할게요…!”
정신적 고양에 잠시 정신이 나가 있던 쌍둥이도 냉철하기 짝이 없는 아멜리아에게 소상한 전후 사정을 고하며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온 모양이다.
저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했는지 말이다.
실존 인물을 허가도 받지 않고 관능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것도 그렇고,
주인공에 몰입하기 위해 불법 침입을 한 것도 그렇다.
어느것하나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아직 시우에게 보여줄 때마다 부끄러운 속옷을 쌍둥이가 멋대로 뒤적였으니 화끈거리는 얼굴은 곧장 분노로 치환되었지만….
“후우…. 일어나요.”
“네….”
“팔도 내려요.”
“네….”
원래 견습마녀 때는 이런저런 사고를 치는 것이다.
아멜리아만 해도 어렸을 땐 참 철이 없지 않았던가?
다소 삐뚤어진 감이 있긴 했으나 쌍둥이가 이런 난동을 부린 것도 시우의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니 이해심을 발휘 못 할 것도 없었다.
“좋아요, 이렇게 하죠.”
이에 아멜리아는 한가지 타협안을 제시했다.
3.
-딸랑딸랑
경쾌한 차임벨이 울리며 들어선 시우.
““안녕하세요. 메리골드의 향수 가게에 어서 오세요!””
제공하는 서비스답게 화려한 로비엔 나란히 앉은 쌍둥이가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쌍둥이를 혼내는 대신 제시한 타협안은 간단했다.
쌍둥이가 필요한 것은 시우에게 선물을 사줄 돈.
견습마녀의 신분으로 상금을 노리고 관능 소설을 집필하는 것보다 건실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해 준 것이다.
따라서 빈 카운터를 대신 맡아주거나 에센스 오일을 추출하는데도 도움을 주게 된 쌍둥이다.
“아멜리아 님은 어디 계신가요?”
“우씨, 우리가 앞에 있는데 부교수님을 찾는 거야?”
“전해하기로 한 물건이 있어서요.”
“위층에서 조향 중이세요. 금방 오실 거에요.”
“조수님, 우리한테 좋은 냄새 안 나?”
“네, 시트러스 향이 엄청나네요.”
“오늘 오전에 감귤 껍질에서 에센스 오일을 추출했거든요. 집에 가면 꼭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싶어지는 냄새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쪼르르 달려들어 애교를 부리는 오딜과 오데트의 머리를 쓰다듬던 시우는 아멜리아를 만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시우, 어서 와요.”
“오딜 님이랑 오데트 님은 일 잘하시나요?”
“네, 손끝도 야무지고 일머리도 좋아요. 백작가의 영애인지라 기본적인 예의범절도 흠잡을 곳 없고요.”
말은 저렇게 해도 쌍둥이의 아르바이트가 아멜리아의 선심에서 기인한 것임은 알고 있다.
견습마녀의 조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시우지만 쌍둥이의 사회 체험을 아멜리아가 돕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셋이서 사이 좋게 지내는 것 같은 게 보기 좋은 건 당연한 일.
소피아를 지내면 외톨이나 다름없던 아멜리아가 서서히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넓혀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잠시만요, 이것만 끝낼….”
그녀의 기특한 성장에 뿌듯함을 느낀 시우는 조향 작업에 몰두하던 아멜리아를 뒤에서 껴안았다.
“시우, 참을성이 너무 없어요. 잠시만이라고 말했잖아요.”
“아멜리아 님이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저는 이럴 때마다 시우가 절 애 취급하는 것 같아서 싫어요.”
부드러운 체취가 코끝을 간질이며 아멜리아는 부끄러운 듯 볼멘소리를 했다.
이내 몸을 돌린 아멜리아와 시우의 입술이 가볍게 부딪쳤을 때.
“와! 악덕 고용주!”
“우리는 일하고 있는데 부교수님 혼자 조수님 독점하고 있어!”
“아니, 앗. 지금….”
벌컥 문이 열리며 쌍둥이가 소란을 떨어댔다.
씩씩거리며 날뛰는 오딜 오데트와 얼굴이 벌겋게 변해 횡설수설하는 아멜리아.
시우는 그 모습을 미소 띤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시끌벅적하고도 평화로운 게헨나의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