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72화 (특전 5) (772/917)

#특전5

1.

늦은 밤.

아멜리아는 피로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최근에 생겨난 막대한 빚 배상을 위해 조향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언뜻 조향이라는 단어는 우아하고 세련된 예술 작업을 연상케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모두 담당하는 건 막노동과 큰 차이가 없었다.

수만 송이의 꽃이나, 이끼, 나무껍질이나 향신료 따위를 창고 단위로 쌓아두고 에센스 오일을 추출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보람마저 느끼고 있다.

어찌 됐건 시우와 함께할 수 있지 않은가?

기약도 없이 미뤄졌던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자면 이깟 노동쯤은 별거 아니다.

피로감과는 별개로 하루하루가 행복한 아멜리아였다.

“하암….”

작게 하품을 한 아멜리아는 가볍게 몸을 씻고 침대로 향했다.

“흐음…. 시우….”

어젯밤까지는 그의 너른 품에 안겨 잠을 잤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시우가 옆에 없다.

마음 같아선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지만, 항상 아멜리아 옆에만 붙여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쉬운 대로 그의 체취가 조금 남아있는 푹신한 침구를 끌어안은 아멜리아가 눈을 감은 그 시각.

오딜과 오데트는 말쿠트 갤러리의 외진 골목길, 아멜리아의 향수 가게 앞에서 전의를 다지는 중이었다.

“언니, 우리 그냥 돌아갈래…?”

“오데트,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야.”

오데트는 영 불안하다는 눈빛으로 두 손에 꼭 쥔 오르골을 힐끔거렸다.

어지간한 사건은 당차게 주도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오딜 역시 오늘만큼은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지금 하려는 일은 이전까지 하던 장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을 내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치만 언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예소드 백작님의 귀중한 가르침을 벌써 잊은 거야?”

오늘 오전 예소드 백작의 통렬한 감평은 쌍둥이의 마음을 찌르르 울리기 충분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열변을 토하던 예소드 백작의 명강의가 다시금 재생된다.

‘오딜 양, 오데트 양. 정말 이 장면을 쓸 때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을 느꼈나요? 아슬아슬한 관음의 미덕과 배덕의 비장함이 느껴졌나요?’

‘진지우가 팬티를 훔치려고 하는 동기나, 예쁜 금발 남작의 은밀한 곳에 맞닿았던 팬티에 가지는 애착. 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음흉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강렬한 동기가 여기에 그려졌다고 보시나요?’

‘작가 본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글이 과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쌍둥이는 자신들에게 부족한 걸 깨달았다.

명배우가 배역에 감정을 이입하듯 작가는 주인공에 몰입해야 한다.

하지만 오딜과 오데트는 그런 도착적이며 관음적인 행위를 실천해보지 못했다.

작중에 아슬아슬한 배덕감을 재현하려면 그와 같은 경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정된 목표가 바로 전 부교수 아멜리아 메리골드 님.

더 정확히는 소설 속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그녀의 팬티를 훔치는 것.

만약 들키게 될 경우 어떻게 될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벌써 주인공과 한걸음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오딜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비장하게 말했다.

“오데트 잊지 않았지? 위대한 창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번은 미쳐야 한다.”

“응, 알겠어. 언니….”

“심호흡해 심호흡.”

“후우, 후우, 후우, 후우.”

협력자 샤론이 들었다면 ‘애들아, 그거 아니야!’라고 치맛자락을 붙잡아서라도 막았겠지만….

불행히도 이 자리에 쌍둥이의 폭주를 막아줄 중재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쌍둥이가 그럴 줄 알고 샤론을 배제하지 않았던가?

“오르골 작동. 고요함의 노래 전방위 은폐장 작동 확인.”

“확인…!”

그렇게 쌍둥이는 야음을 틈타 조향점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게헨나 둘째가는 부촌 레노먼드 타운인만큼 치안이 안전한 것도 있지만, 그 누가 23 위계 마녀가 상주하는 가게를 털려고 들까?

-끼익!

-딸랑딸랑!

최근 게헨나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아멜리아의 향수점.

오딜과 오데트 역시 용돈을 털어 장만했던 적이 있는 만큼 향수 가게에도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던 마루 소리와 도어벨이 지금은 우레 같다.

두 사람 모두 숨을 집어삼켰다.

사전 조사에 따르면 향수 가게는 4층.

1층은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 겸 매대와 조향실.

2, 3 층은 창고.

4층까지 도달해야 부교수님의 프라이빗한 공간이 등장한다.

“언니…. 나 숨이 잘 안 쉬어져….”

“걱정하지 마 오르골이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을 거야.”

쌍둥이의 말대로였다.

오르골은 명품 마도구 생산의 명가로 유명한 제머나이 백작가의 역작이다.

무려 자성마법을 반 영구적으로 재생하는 아티펙트인 것이다.

아무리 대마녀라해도 잠든 와중에 둘의 존재를 눈치챌 수는 없었다.

일전 조수님의 숙소에 숨어들 때도 시험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갈까?”

“으으으으….”

쌍둥이는 나란히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불법침입 완료.

지금 상태에서 걸려도 할 말이 없지만 만일 위층까지 향하다 걸린다면 더더욱 변명의 구석이 없어진다.

“난 역시…. 못 하겠어 언니.”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어하는 오데트에 비해 오딜의 의욕은 공포심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딜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우유부단한 여동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더니 구두를 벗은 오딜이 먼저 계단을 올랐다.

“그럼 넌 여기에 있어.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어, 언니!”

-끼익! 끼익! 끼익!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요란하게 움직이는 나무계단.

멀어지는 언니의 엉덩이를 바라보던 오데트도 눈을 질끈 감고 뒤를 따른다.

제머나이는 둘이서 하나다.

설령 이 앞이 지옥이라도 함께 해야만 하는 것이다.

“후우…. 후우….”

“하아…. 하아….”

고작 살짝 좁고 가파른 계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승마와 사냥으로 단련된 쌍둥이는 고작 두 층계를 오른 것만으로 등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긴장 탓에 호흡이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가파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마지막 층.

굳게 닫힌 나무문이 쌍둥이를 반겨주었다.

이 문만 열고 들어가면 아멜리아 부교수 님과 그녀의 속옷이 담긴 옷장이 있을 테지.

“…….”

“…….”

여기까지 온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계단을 오르는 동안 마음을 정리한 것인지 결연함이 깃든 오데트의 눈동자.

은폐장의 반경을 최소화했기에 대화를 나눠도 별 상관없을 테지만, 쌍둥이는 시선을 교환한 뒤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신경 줄이 굵은 쌍둥이라도 이 긴박감은 당최 견디기 힘든 까닭이다.

두 사람은 바짝 집중한 채 나무문에 귀를 대었다.

인기척은 있다.

하지만 생활 소음은 없다.

역시 주무시고 계신 모양.

소설 속 주인공 진지우처럼 눈을 감고 기도했다.

부디 이 문을 열고 무사히 팬티를 쟁취할 수 있게.

부교수님의 손에 걸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부족했던 용기를 가상의 욕망으로 채우고 문고리를 비튼다.

-끼이이이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나무문.

문고리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데트를 대신의 오딜이 문 틈새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4층의 생활 공간은 마치 원룸처럼 방 안의 모든 곳이 한눈에 보였다.

정면 창가엔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등을 보인 채 누워 있는 아멜리아의 둥근 뒤통수가 보인다.

미리 약속해 두었던 클리어 사인을 수신호한 오딜.

오데트도 주춤주춤 방 안에 들어온다.

과연 향수의 마녀라는 이명에 어울린다 할까?

가게에서 나는 좋은 향기는 그렇다 쳐도 방안에마저 황홀한 향수향이 가득하다.

그런 향기가 나름의 테라피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딜도 오데트도 그 자리에서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

어둠 속에서 갑자기 불빛을 비춘 햄스터처럼 꼼짝 않고 어정쩡히 굳어있던 오딜과 오데트.

5분이 지났다.

여전히 색색 들려오는 숨소리.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주무신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무신다.

그 무렵 쌍둥이는 벅찬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드디어 조금 알 것 같다.

그저 활자의 나열로만 표현되었던 긴박감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어야 했는지.

왜 예소드 백작이 그토록 통렬한 비판을 했는지도 뼈저리게 느껴진다.

이순간 오딜과 오데트는 등장인물이 된다.

침대 위 부교수님의 작은 몸짓까지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각성.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아슬아슬한 공작.

두 사람은 야밤을 틈타 걷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옷장 쪽으로 향했다.

그 시각 쌍둥이가 간과한 것 한가지.

아멜리아는 마녀가 된 이후 거의 자 본 적이 없다.

최근 들어선 스승님의 말씀대로 눈을 붙이는 습관을 들였지만 여전히 잠을 자는 게 서툴다.

오르골이 아무리 은폐 기능이 탁월하다 한들, 문이 열리며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만으로 잠결에 눈을 뜨고 외부인의 침입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시우 씨네요.’

아멜리아는 눈을 꼭 감은 채 자는 척을 하며 시우의 서프라이즈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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