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4
1.
수상할 정도로 열성적인 예소드 백작의 합류.
쌍둥이와 샤론은 수업을 때려치우고 나란히 노벨피아 작품들을 감상 중이었다.
쌍둥이의 스마트폰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샤론의 패드가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와….”
입을 모아 감탄하는 세 사람.
한여름 모래사장에서 실컷 놀고 난 뒤처럼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 있다.
“엄청, 야하네.”
“맞아, 진짜 노골적이야.”
쌍둥이도 샤론도 게헨나 발 관능소설을 감상한 적 있다.
그건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녀의 끈적한 애정행각을, 혹은 변태적인 행위를 한 땀 한 땀 공들여 묘사한 예술품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웹소설은 세 사람이 이제껏 경험해 왔던 것과 달랐다.
차원이 다른 적나라함이 있다.
게헨나 발 야설이 야한 점묘화쯤이라면, 이건 그냥 야동이나 다름없다.
급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자극적인 맛이라는 의미다.
“솔직히 말하면…. 문장력은 그럭저럭 인 것 같아.”
“일부러 쉽게 쓴 게 아닐까? 책으로 볼 때랑은 다르게 집중력이 떨어질 거고….”
“맞아, 그런 것 같아. 무엇보다 은유적인 표현을 최대한 배제해서 뇌에 텍스트가 때려 박히는 느낌이네.”
진지하게 고찰하는 쌍둥이와는 달리 샤론은 이 상황이 퍽 부끄러웠다.
또 순간순간 ‘아무리 그래도 견습마녀에게 이런 걸 보여줘도 되나?’라는 양심의 가책도 간간이 들었다.
“샤론 언니.”
“응?”
“그런데 최면 어플이 진짜 있어요?”
“당연히 없지.”
“그러면 TS는요? 현세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가요?”
“어…. 어딘가에서는? 일단 트랜스젠더라는 것도 있고, 그게 꽤 보편화된 국가도 있으니까….”
“조수님도 TS 시키면 좋겠다.”
“맞아, 엄청 예뻐지실 것 같은데.”
가끔 삼천포로 빠지다가도 착실한 인풋을 바탕으로 ‘독자의 니즈’를 분석 완료한 쌍둥이와 샤론.
종이 한 장에 지금껏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의 시놉시스를 적어나갔다.
“주인공은 남자인 편이 좋아요.”
“TS라는 태그가 붙은 작품도 있긴 한데 그건 거의 야설이 아니더라고요.”
“응응, 확실히 남성향을 겨냥해서 쓰인 글이 많았지.”
“오데트 적어 적어.”
“응, 언니.”
-주인공은 남자로.
“아, 하렘물이 특히 인기가 많아 보이더라.”
“조수님의 여성편력을 참고하면 되려나?”
“으으, 우리 진짜 기특하다. 바람둥이 조수님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런 노력까지 하다니.”
“맞아맞아.”
-히로인은 많이.
“제가 볼 때는요. 성애씬의 끈적함보다는 ‘주인공이 어떻게 여자를 함락시켜가는가?’ 여기에 주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오데트. 모처럼 똑똑한 소리를 하네.”
“난 언제나 똑똑한걸..”
“나도 동의해. 그리고 함락되기 ‘전’과 ‘후’의 갭에도 주목이 쏠리는 것 같아.”
-빌드업을 잘 짜자. 그게 아니라면 함락 전후의 대비를 잘 살리자.
“그리고 정상적인 게 아니라 조금…. 조수님 흥분했을 때 같은 걸 좋아하네.”
“맞아, 다들 진짜 변태야.”
“이벤트 같은 거 위주로 서술하면 되는 것 같단 말이지.”
세 사람은 이쯤 감상하면 된 것 같다고 판단.
과감하게 집필을 위한 깃펜을 들어 올렸다.
2.
이틀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났다.
그동안 쌍둥이와 샤론은 머리를 맞대고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본디 첫 집필부터 완벽한 공상 속에 탄생하는 건 버거운 일이다.
사전 조사를 통해 얻어낸 요건과 쌍둥이와 샤론 주변의 가장 가까운 레퍼런스를 조합한 결과.
누구보다 이상적인 야설 소재에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신시우 조수님.
실존 인물을 허가도 없이 모델로 삼는 것이 죄송스럽긴 했지만 뭐 어떤가?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선물을 사기 위함이라 말하면 흔쾌히 허락해 주실 것이 분명하다.
허락해 줄 것이 분명하다면 굳이 허락을 맡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마녀 도시의 노예’의 탄생 비화였다.
“흐음….”
루시 예소드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소설 원고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루시 예소드 백작의 검수일.
원소 수업도 빼먹고 밤잠도 줄여가며 써내려 간 야설의 평가를 받는 날이다.
“어떤 것 같나요?”
“열심히 써봤는데….”
그 어떤 과제를 제출할 때보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끼며 손을 꼭 마주 잡은 오딜과 오데트.
팔랑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원고 한 장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잘했어요.”
“그쵸?”
“희대의 역작 맞죠?”
루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웹소설에 완전히 적응한 그녀가 보기에도 썩 훌륭했다.
“미사여구를 과감히 생략하고 액기스만을 담은 간결체. 스피디한 진행과 승전결기 구성으로 홀린 듯 다음 화를 누르게 하는 센스와 뭐…. 어디서 본 듯하지만 독특한 소재까지. 이건 충분히 먹힐 거에요.”
확실히 어려서 그런지 처음 접해보는 장르를 익히는 속도가 남다르다.
쌍둥이는 그 짧은 시간 안에 까다로운 채점 기준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들고 온 것이었다.
쌍둥이는 예소드 백작의 만족스러운 웃음에 스프링처럼 뛰어올랐다.
“아아, 첫 작품 만에 이런 대작을 써버린다니….”
“역시! 우린 천재가 분명해 오데트!”
“잘했어 애들아!”
현대인의 사고방식이나 주인공의 독백에서 많은 첨언을 해준 샤론 역시 제 일처럼 기뻐하며 손뼉을 쳐주었다.
예소드 백작은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실 시작은 오지랖이었다.
야설 작가로서 긍지를 품고 있는 그녀가 관능소설의 새싹인 쌍둥이를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이다.
따라서 비기를 전수해 줄 생각도, 아주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 생각도 없었다.
적당히 감만 잡게 해주고 하산시킬 예정이었단 말이다.
“…….”
하지만 적응력, 소재 선정, 적당한 단어 사용과 야릇한 시츄에이션을 뽑아내는 기획력까지.
후계를 이을 재목을 발견한 은거고수의 마음이 이러할까.
만약 쌍둥이가 그녀의 가르침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혹독하고도 거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면….
이 둘이 보여줄 재능의 끝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깐 목소리에 흠칫하는 쌍둥이.
“이 글은 전혀 스윙하고 있지 않아요!”
-탕!
책상을 두드리며 외치는 예소드 백작의 일갈이 강의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스윙? 재즈?”
예소드 백작은 헝클어진 앞머리를 멋지게 뒤로 넘기며 가르침을 사사했다.
“시류에 따라가는 발 빠른 적응력. 아주 좋아요, 솔직히 말해 기대 이상이에요. 여기까지 해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글이에요. 무릇 관능 소설 작가라면 스스로 읽고도 젖을 만큼의 글을 써야 하는 법인데. 이건 독자의 니즈만을 생각하며 충족시킨 흉내에 불과하네요.”
“…저기 백작님?”
와중 샤론이 이상할 정도로 흥분한 백작을 말려보려 했다.
그러나 대문호의 아우라가 줄기줄기 뻗어 나가는 예소드 백작은 논 스탑퍼블이었다.
“가령 이 장면을 볼까요? 노예 진지우가 금발 남작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다 팬티를 훔치는 장면!”
아무리 겸허하게 피드백을 받으려 해도 작가에게 글은 제 새끼 같은 존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글이 회초리를 맞는 만큼, 본디 감평은 따가운 법.
“그 장면이 어때서요?”
“맞아요, 공들여 쓴 부분이라고요!”
따라서 쌍둥이는 발끈하며 덤벼들었다.
“공들였다고요? 저 이 에피소드를 보며 조금의 긴박감도, 흥분감도 느끼지 못했어요.”
“…….”
“오딜 양, 오데트 양. 정말 이 장면을 쓸 때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을 느꼈나요? 아슬아슬한 관음의 미덕과 배덕의 비장함이 느껴졌나요?”
일단 대들고 보았지만 쌍둥이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사실 그 부분은 쓰고 싶어서 넣은 게 아닌 어디까지나 ‘빌드업’을 위해 욱여넣은 장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진지우가 팬티를 훔치려고 하는 동기나, 예쁜 금발 남작의 은밀한 곳에 맞닿았던 팬티에 가지는 애착. 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음흉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강렬한 동기가 여기에 그려졌다고 보시나요?
“…….”
“작가 본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글이 과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
뭔가 명언 같은 걸 남긴 예소드 백작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강의실을 완전히 나서기 전 한마디를 덧붙인다.
“오늘 저의 수업은 여기까지 에요. 내일모레 만날 땐 작가로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소드 백작이 바람처럼 퇴장한 후 살짝 얼이 빠져 있던 샤론이 물었다.
“바, 방금 걸로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샤론 입장에서는 엄청 두루뭉술한 조언.
그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조언이었는데….
쌍둥이는 볼이 발갛게 상기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크나큰 영감을 얻은 마녀처럼 말이다.
“샤론 언니. 저희 깨닫고 말았어요. 예소드 백작님은 분명 관능소설 작가일 거에요.”
“게다가 상당히 내공이 깊은 분이죠.”
“에이, 설마.”
그 예소드 백작이 뭐가 아쉽다고 관능 소설을 쓰겠는가?
그러나 반신반의하는 샤론과 달리 쌍둥이는 확고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심오한 조언은 말이 되지 않아요.”
“네, 뭘 해야 할지 한 번에 깨달았는걸요.”
“해야 할 일이 뭔데?”
세상 진지한 두 쌍의 눈동자가 가만히 샤론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조금 일찍 가봐야겠어요. 오데트.”
“응, 언니 가자.”
“해야 할 일이 뭐냐니까?!”
샤론의 궁금증을 뒤로한 쌍둥이는 오르골을 보관하고 있는 보물창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