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70화 (특전 3) (770/917)

#특전 3

1.

“하지만…. 난 소설 같은 거 써본 적 없는데…. 책도 많이 읽어본 적 없고.”

쌍둥이의 제안에 호기롭게 응한 것도 잠시 다시 현실에 직면한 샤론은 풀이 죽었다.

야설.

말이야 쉽다.

샤론도 게헨나에 떠도는 유명한 관능소설을 몇 편 읽어본 적 있지만, 막상 그런 걸 직접 써야 한다 생각하니 자신감이 시들시들해졌다.

“음, 그러면 저희도 샤론 언니를 도와드릴게요.”

“너희가?”

“네! 저희 매일 티타임 때 독서회가 있거든요.”

“미스 해서웨이에게 작문 작법 수업도 들었어요.”

그렇다.

마법에 필요한 건 학문적 지식과 계산 능력만이 아니다.

본디 마법은 예술적 영감과 소양 또한 요구하는 고도의 종합 학문.

명문 백작 가의 견습마녀인 오 자매는 다양한 교양 수업도 들어왔던 것이다.

다만 그렇다 해도 웹소설이란 분야 자체가 처음인 오딜과 오데트다.

현재 사이트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문까지 해야 한다면 어려움은 배가 되어버린다.

“대신 샤론 언니는 조수님 고향이 어떤 나라인지.”

“대충 어떤 느낌의 문화인지 가르쳐 주시면 되는 거죠!”

“덤으로 사이트 사용법도 알려주세요!”

또한 스낵 컬쳐란 필연적으로 해당 국가의 문화화 밀접하게 연관되기 마련.

샤론의 조언은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을 직감한 둘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도와주시는 대가로 상금 반 드릴게요.”

“저희가 반, 언니가 반. 어때요?”

애초에 조수님 선물은 1등 상금의 절반으로도 충분하다.

이번 선물의 의의는 가격이 아닌 노력과 정성에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그래도 돼?”

“물론이죠! 대신….”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과제랑 수업 빼주세요.”

집필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었다.

쌍둥이.

돈으로 시간을 사다!

2.

쌍둥이는 선물을 위해.

샤론은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수업이 끝나고 머리를 모은 세 사람.

말라비틀어져가던 화초에 물을 뿌린 것처럼 살아난 샤론이 생생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건 먼저 공모전 모집 요강을 봐야지.”

“공모전 모집 요강이요?”

“그래, 아무거나 쓸 수는 없잖아. 요기 있네.”

“어? 정말이네?”

“엄청 길어서 대충 읽었어요.”

쌍둥이가 상금을 보느라 정신이 팔렸던 페이지 아래는 공모전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줄지어 있었다.

“일단 참여 대상은 성인작가라면 모두가 응모 가능. 연재 분량도 살펴봐야겠지? 1회당 공백 미포함 3,000자 이상이야.”

“공백 미포함?”

“띄어쓰기를 빼고 글자 수를 세야 한다는 말이지.”

“그걸 언제 다 세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 프로그램 같은 게 있으니까.”

해당 페이지에는 연재 규칙, 공모전 이미지 사용, 표지 일러스트 수위 등에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아, 역시 있네.”

하지만 그런 복잡한 건 나중에 훑어보아도 충분하다.

“뭐가요?”

“여기 봐봐, 심사 기준 및 유의사항이 있잖아. 보통 이런 공모전 같은 건 주최자가 원하는 걸 쓰는 게 중요해.  근데 뭐…. 이것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심사기준 즉, 발전성, 독창성, 확장성, 대중성, 작품성 부문을 꼼꼼히 살펴있던 샤론은 갑자기 조용해진 쌍둥이 쪽을 바라보았다.

오딜과 오데트가 묘한 시선으로 샤론을 바라보고 있다.

“뭐, 뭔데?”

“죄송해요. 언니, 지금까지 샤론 언니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나 봐요.”

“역시 대마녀셨네요.”

“뭐야! 지금까지는 어떻게 봤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묘하게 빈정이 상한 샤론이지만 투닥거릴 여유는 없었다.

“일단 노벨피아에 다른 관능 소설은 어떤지 미리 봐보는 게 어떨까?”

“흐음…. 다른 소설이요?”

“별로 관심 없는데….”

오딜과 오데트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샤론 언니, 저희는 희대의 대작을 쓸 거라고요.”

“맞아요! 다른 아류 작품을 보느니 소재를 하나라도 더 떠올리는 편이 나을 거에요.”

아직 한 글자도 쓰지 않았으면서 1등 상을 목표로 하는 쌍둥이를 보면 알겠지만 둘은 초심자의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껏 쌍둥이가 봐왔던 귀축배달부나 나비백작 시리즈는 훌륭한 관능 소설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본다면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하긴 소재를 정해고 봐도 늦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웹소설엔 문외한인 샤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갓 마녀가 되자마자 빚쟁이 생활을 했던 샤론에게 작법이란 라디오 사연 코너 경품을 타기 위해 소설을 썼던 것밖에 없었다.

이렇듯 공모전 도전기가 통째로 수렁에 빠지는 분기점에 놓인 그때.

-쾅!

“안 될 소리에요!”

카랑카랑한 외침과 함께 강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펄럭이는 커튼 환한 빛이 후광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성녀처럼 강림한 한 마녀.

모성애 넘치는 가슴과 순산력 넘치는 골반.

잿빛이 도드라지는 은발에 토파즈 같은 눈동자를 한 마녀가 그곳에 있었다.

“예소드 백작님?”

갑작스러운 제3자의 등장에 세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글을 쓰기 전에 독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건 작가의 필수 덕목이에요!”

맹렬한 어조로 작가론을 설파하는 귀부인의 이름은 루시 예소드.

게헨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자이자, 수십 년간 관능소설을 집필하며 맹활약해 온 야설작가였다.

물론 후자는 은밀한 취미생활로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아 왔다.

그리고 게헨나에 인터넷이 연결된 뒤 나흘 새.

예소드 백작은 누구보다 빠르게 노벨피아의 작가로 데뷔해 있었다.

이제껏 살롱에서 비밀스럽게 들려오는 칭송만 듣다 실시간 댓글과 후원을 받으니 그야말로 신세계!

하루 30연 참 씩을 난사하며 초신성으로 떠오른 필명 [백작마망]의 정체가 바로 예소드 백작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인풋도 없이 명작을 쓰겠다는 건 오만! 실패와 좌절을 겪고 흑화 지망생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요!”

이미 웹소 작가의 마인드를 갖추게 된 예소드 백작으로선 우연히 엿듣게 된 쌍둥이와 샤론의 대화를 듣고 지나칠 수 없어져 버렸다.

“…죄, 죄송해요.”

“…….”

“…….”

엉겁결에 사과하는 샤론과 얼이 빠진 쌍둥이의 반응에 예소드 백작은 뒤늦게 자신이 지나치게 열을 올렸음을 자각했다.

우아하게 부채를 꺼내 들고 팔락팔락 열을 식힌다.

“아, 아무튼…. 웹소설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거에요.”

“백작님께선 웹소설을 잘 아시나요?”

“샤론 언니!”

“쉿쉿쉿.”

예소드 백작에 갑작스러운 참견에 오딜과 오데트가 난색을 보이는 건 이유가 있었다.

쌍둥이는 아직 견습마녀다.

또한 마녀사회에서 견습마녀는 남성과 격리되기 마련이다.

남성의 오염된 정을 받게 되면 그릇이 더럽혀지며 낙인을 물려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오딜과 오데트가 야설 공모전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예소드 백작의 귀에 들어간다?

예소드 백작은 스승님들과 교류가 잦다.

쌍둥이의 일탈 역시 자연스레 고발당하고 귀때기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갈 것이 뻔했다.

스마트폰 압류는 말할 것도 없고.

“숨길 것 없어요. 어차피 전부 들었으니까.”

“백작님, 백작님….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조수님 선물 사드리려고 하는 거에요! 이상한 생각은 조금도 안 했어요!”

뒤늦게 쌍둥이가 염려하는 바를 깨달은 샤론이 나섰다.

절대 돈을 벌 기회가 날아갈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다.

“백작님, 쌍둥이들이 엄한 짓 못하게 제가 책임질게요. 부디 눈감아 주셨으면 해요.”

“걱정 마세요. 제머나이 가문의 총명한 견습마녀가 고작 이 정도 일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믿으니까요.”

이리 쉽게 넘어가 주리라 생각 못했던 쌍둥이도, 쌍둥이를 변호하던 샤론도 어리둥절하다.

“커흠, 먼저 바로 잡겠어요. 관능소설을 그저 추잡한 성욕의 발산으로 여긴다면…. 그것부터가 잘못된 상식이죠.”

“……?”

거기에 그치지 않고 뭔가 일장 연설을 시작한 예소드 백작.

“남녀의 성이 비단 숨기기에만 급급해야 하는가? 아니에요! 본디 예술의 본질은 승화와 초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집필은 아주 건전한 자기 수양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세계적인 기업의 CEO이자 대마녀 중에서도 특출난 예소드의 한 문장 한 문장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저, 저희는 딱히 욕망 해소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닌데….”

“쉿, 오데트! 가만있어!”

눈치 없이 끼어드는 오데트와 그걸 만류하는 오딜.

“하지만 오딜 양도 오데트 양도 아직 어린 마녀죠? 관능소설 집필에서 엇나가지 않게끔 당연히 도움도 있어야겠죠?”

야설 고인물 예소드 백작은 희번들한 눈빛으로 야한 뉴비 냄새를 풀풀 풍기는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기백에 서로 손을 꼬옥 잡고 오들오들 떠는 쌍둥이.

“마, 맞아요.”

“그러니 제가 친히 수업을 해주겠어요.”

얼떨떨해하는 샤론을 뒤로하고 쌍둥이의 공모전 파티에 합류하게 된 예소드 백작.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오딜과 오데트의 좌충우돌 공모전 도전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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