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2
1.
“마침 잘됐네.”
“언니 나랑 같은 생각한 거 맞지?”
“물론이지 오데트.”
“곧 조수님 생신이잖아.”
사랑하는 연인, 신시우를 위한 생일 선물.
이것이 쌍둥이가 마스터피스 공모전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힌 제 1 원인이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제머나이 백작은 억 소리 나는 부자다.
오딜과 오데트를 금쪽처럼 여기는 백작이 쌍둥이를 위해 쓰는 씀씀이가 인색할 리도 없으니, 둘은 물건의 가격을 제대로 보고 사본 적이 없을 만큼 풍족한 용돈생활을 해왔다.
알음알음 돈을 모으던 저금통만 깨도 타로 타운에 번듯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쌍둥이에게 생일 선물은 그렇게 부담이 아니다.
그러나.
선물이 과연 금액만 많다고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는 조수님한테 뭘 해줄 때 항상 용돈에서 해결했잖아. 이번에는 우리 힘으로 벌어서 선물을 드리는 거야.”
그렇지 않다.
크리스마스날 아내의 머리빗을 위해 시계를 판 남편과 남편의 시곗줄을 위해 머리카락을 판 아내.
결과론적으로 둘의 선물이 무용지물이 되었음에도 훈훈한 미담으로 치장된 건 그 선물에 정성,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 다시 말해 사랑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선물을 사주면….”
“조수님이 좋아 죽겠지?”
“맞아맞아.”
그리하여 우선은 펜을 잡는다.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타이핑을 통해 집필하는 게 일반적이나 쌍둥이에겐 깃펜과 종이쪽이 친근했다.
“5,000만 원이면 충분하겠지. 언니?”
“암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쌍둥이의 목표는 대상 5,000만 원.
고귀한 제머나이 백작가의 견습마녀가 진심으로 나섰을 때 1등을 차지하지 못하는 건 수치다.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음…. 글쎄? 일단 목록을 정해보자.”
그렇게 쌍둥이는 밤새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조수님 선물 리스트를 작성했다.
2.
샤론의 강의시간이 시작되기 전.
오딜과 오데트는 일찍부터 강의실에 나와 앉아 있었다.
당연히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한 소설을 집필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견습마녀인 오딜과 오데트가 야설 집필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스승님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
또한 강의실이라면 전담 시녀 ‘페챠 레나 마샤 베라’의 수다에 휘말리지 않아도 되고,
무시무시한 갈리나 시녀장의 감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샤론 언니라면 딱히 들켜도 상관없을 것 같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작업실인 셈이다.
그러나 이토록 좋은 환경임에도 집필은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글자도 시작하지 못했다.
“흐으음…. 어렵네.”
“흐으음…. 어려워.”
동글동글한 안경까지 갖춰 쓴 쌍둥이는 각기 인중에 만년필을 얹은 채 텅 빈 종이를 응시하고 있다.
뭘 써야 할 지 모르겠다.
게헨나 발 야설이라면 여러 편 본 적이 있다.
쌍둥이에게 시녀들이 몰래 빌려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작가의 입장이 되자 느낌이 다르다.
어떤 소재를 사용할지, 어떤 캐릭터를 등장시킬지, 배경은 어디일지 기타 등등.
너무 많은 생각이 일제히 떠오르다 보니 되려 사고의 가닥이 헝클어지는 느낌이다.
“오데트, 안 되겠어. 이러다가 한편도 쓰지 못하고 말 거야.”
“으으, 창작의 고통이 이렇게 괴로운 거였다니. 몰랐어….”
“그냥 포기해야 할까…?”
그 흥미진진한 웹서핑도 마다한 채 구상에 몰두 중인데 정작 나오는 결과물이 없다니.
몸이 비비 꼬이던 그때.
“애들아, 수업하자.”
강의실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제머나이 백작에게 고용되어 쌍둥이에게 원소마법을 강의하는 샤론 에버그린이었다.
“안녕하세요. 힉!”
“안녕하세요. 호!”
습관적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서야 샤론의 몰골을 파악한 쌍둥이는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샤, 샤론 언니!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응? 무슨 일 있냐니?”
샤론 언니는 조수님의 연인 중 하나.
숲 속의 요정을 연상케 하는 짙은 녹발과 상큼하게 빛나는 민트빛 눈동자.
무려 E컵이라는 흉악한 가슴으로 조수님을 홀리는 요녀.
즉, 쌍둥이에게 있어선 강력한 연적이다.
하지만 연적이고 나발이고 그런 생각을 벗어던질 만큼 샤론의 몰골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푸석푸석한 피부와 잡초처럼 누리끼리하게 변한 머리카락.
흐리멍덩한 눈동자와 그녀가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휘몰아치는 알코올 브레스.
“그거 술병 아니에요?”
“응? 아, 들고 왔네.”
심지어는 손에 술병을 달랑달랑 들고 있다.
“미안 얘들아, 오늘은 자습하자.”
“…….”
“…….”
오딜과 오데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샤론 언니의 강의라 함은 아멜리아 부교수님보다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저 거대한 칠판을 판서로 세 번은 채워야 분필을 내려놓는 그녀가 자습 선언이라니.
“샤론 언니. 무슨 일이에요?”
“아냐, 진짜 아무것도 아냐.”
슬쩍 다가서는 쌍둥이에게 손을 휘적이며 답하는 샤론.
혹시 조수님이랑 헤어지기라도 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망가진 모습이었다.
별 수 없이 잠자코 자리에 앉은 쌍둥이.
이렇게 된 김에 소설이나 더 구상해보면 그만이긴 했는데….
샤론이 앉아있는 강의실 한구석만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피어나는 게 영 신경 쓰인다.
게다가 창틀에 기댄 채 병나발을 불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데 그 내용을 슬쩍 들어보니.
‘코인’ ‘스테이블이라며 안전하다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같은 말이 들려온다.
그렇다.
새싹의 반란을 일으켜 거액의 빚을 지고 현세로 쫓겨났던 샤론.
쌍둥이의 과외 선생 노릇을 하며 빚도 청산했겠다, 알음알음 모아둔 돈도 있겠다, 슬그머니 욕심이 눈을 뜬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된다는 건 옛말이다.
재산깨나 있는 마녀라면 모두 투자를 한다.
모처럼 여윳돈이 있는 지금 열심히 굴리지 않는다면 평생 하루 벌어 하루 연구비를 충당하는 눈물겨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샤론은 게헨나에 인터넷이 개통되자마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코인 거래소를 다시 켰다.
주식은 전쟁이니 금리 인상이니 하는 이유로 하락장.
코인쟁이들이 안전 자산이라며 구라를 듬뿍 발라놓은 코인도 덩달아 하락장.
그러던 중 유일하게 눈에 들어온 코인이 있었으니….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으나 다양한 방법으로 최소한의 가치를 보장해주는 안전장치를 걸어둔 코인이었다.
과거 샤론이 당했던 만큼 터무니없는 눈탱이는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와, 와, 와…. 이게 얼마야?’
첫 사흘간은 왜 이 달콤한 꿀통을 이제 알았을까 아쉬울 만큼 큰 차익을 남겼다.
빚을 갚는답시고 알음알음 호문쿨루스나 사냥하고 다녔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돈 넣고 돈 먹고, 먹은 돈 또 넣고 돈 먹고.
진짜 돈복사 버그였다.
‘아…. 자본금만 조금 더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이 되자 뭔가 아쉬워진 샤론.
‘1, 2억이 아니라 10, 20억이 있더라면….’
그리고 손대면 안 될 것에 손을 대고 말았다.
바로 현물 거래가 아닌 선물 거래.
선물 거래는 레버리지라는 장치를 통해 투자 원금을 불릴 수 있다.
가령 원금 100만 원에 레버리지가 10배라면 실제로는 1,000만 원의 투자를 한 효과가 나는 것이다.
‘이걸로 진작에 100배 걸 걸….’
아쉬움을 달래며 여윳돈 전부를 롱에 배팅.
아무리 그래도 100배는 너무 욕심을 내는 것 같아 50배 정도로만 걸었다.
로스컷도 제대로 걸어놓지 않은 채 꿀잠을 자러 갔던 샤론을 반겨준 건 3시간 만에 청산 당한 투자원금이었다.
“아…. 위, 위 꼬여….”
그게 어떻게 모은 돈인데.
어째서 국제사회는 도박판이나 다름없는 암호화폐 시장을 본격 규제하지 않는가.
이 정도면 파산의 신이 성좌로 붙어있는 건 아닌가.
제대로 물리고 난 뒤, 온갖 잡생각에 병나발을 불던 샤론에게 쭈뼛쭈뼛 쌍둥이가 다가왔다.
“샤론 언니.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요. 코인 잃으셨어요?”
“어? 너희도 알아?”
손실에 가슴 아파하던 것도 잠시.
게헨나에만 있던 오딜과 오데트가 코인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의외였다.
“네, 잘은 모르지만요.”
“스승님이 대화하시는 거 들은 적 있어요.”
그제야 샤론은 가슴을 저미는 후회를 느꼈다.
진짜 호구 짓을 단단히 했다.
타임스 잡지에나 나와야 할 찐부자, 투자의 귀재 제머나이 백작이 바로 옆에 있는데….
하다못해 쌍둥이를 통해 한마디 조언이라도 구했으면 이런 대참사는 없었을 텐데….
“백작님도 하셔?”
“스승님은 거래소 같은 걸 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그냥 수수료 장사래요.”
“…….”
괜히 쌍둥이가 미워지려던 샤론.
“언니, 혹시 손해 메꿔보실 생각 있으세요?”
“손해?”
“네, 저희가 얼마 전에 엄청 좋은 걸 알아왔어요.”
샤론은 쌍둥이가 나란히 내민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마스터피스 공모전? 야설… 공모전 뭐 그런 건가?”
쓱쓱 스크롤을 내리더니 곧장 상황 파악이 된 듯하다.
쌍둥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저희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소소히 자축했다.
아무 생각 없이 샤론 언니를 조력자로 끌어들인 건 아니었다.
노벨피아는 한국 사이트.
그리고 샤론 언니는 한국 10년 차 베테랑.
시작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지금 그녀의 도움이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5,000만 원…? 이거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손해를 메꿀 수 있다.
“꼴깍 꼴깍 꼴깍.”
샤론은 병나발을 마저 불며 술을 전부 비우고 비장한 말투로 말했다.
“좋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