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67화 (767/917)

#767

1.

순찰차를 타고 도착한 지구대는 시끌시끌했다.

“거 순경 아저씨! 이거 살인미수 아니에요?”

“아니, 신분증 좀 달라는데 자꾸 왜 딴 얘기해요? 많이 취했어요? 유치장 좀 들어갔다 나올래요?”

“그게 지금 폭행 피해자한테 할 말이에요?”

“이 친구가 많이 취해서 그래요. 저희 진짜 안 싸웠어요. 일방 폭행이에요.”

“이거! 이거 보이죠? 코피 아직도 안 멈추는 거 봐요.”

“그래서 누가 먼저 때렸는데요.”

“저 저 저기 앉은 기생 오라비 새끼가 먼저 때렸다고요!”

내가 피해자다, 저놈이 죽일 놈이다.

내가 먼저 맞았다, 저 놈이 먼저 쳤다.

조 경위는 언제나와 같은 지구대 손님의 개지랄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경감 승진을 포기하고 지구대에서 짬을 쌓아온 조 경위가 보기엔 그림이 바로 나왔다.

저 꼬락서니로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경찰서 오는 건달치고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놈이 없던 까닭이다.

“김 순경, 너도 가서 좀 진정시켜라. 여기가 지들 방구석이야.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 쯧쯧.”

“옙.”

혀를 두어 번 찬 조 경위는 소란 탓에 끊겼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디 보자….”

그런데 나름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그가 보기에도 이번 사건은 조금 특이했다.

시답잖은 폭행 사건.

평소라면 대충 순경들에게 지시했을 진술을 굳이 도맡은 것도 그 특이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1급 서기관 그러니까…. 외교관이시라고?”

조 경위는 앞에 분홍머리 외국인이 건넨 외교관 신분증과 그녀의 모습을 휙휙 번갈아 보았다.

위조 방지 장치로 반짝거리는 신분증엔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아리따운 모습의 여인이 있는데, 실물은 한층 더하다.

“그러네.”

“그럼…. 옆에 계신 남성분은?”

“내 남편일세.”

“성함이랑 주민등록번호 좀 확인할까요? 아니면 신분증이라던가.”

“미국인일세.”

“여권도 없으시고요?”

“지금은 없습니다.”

조 경위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외교관과 그 가족은 기본적으로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지닌다.

물론 이 정도 드잡이로 체포까지 가는 일은 없겠지만….

정확한 신분을 확인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외교관의 남편이 폭행 사건에 휘말렸을 때에 대한 대응 메뉴얼이 전무한 것이다.

“이거 머리 아프네….”

일단 이 신분증이 위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염두에 두었다.

왜냐하면 눈앞의 여자는 도저히 신분증에 적힌 33세로는 보이지 않는 앳된 용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얼굴이면 배우를 하지 외교관을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혹시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아들이 말한 개꿀잼 몰카? 이런 건가?

“아가씨, 이거 혹시라도 공문서위조면 처벌 크게 받습니다.”

위조라도 외국인임이 분명한 분홍빛 여인의 처벌 가능 여부는 둘째치고 으름장을 놓고 보는 조 경위.

그에 대해 분홍 여인은 담담히 말했다.

“위조가 아닐세. 확인해보도록 하게나.”

“위에서 절차를 거치고 있긴 한데….”

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면 자연스레 윗사람 같은 위압감이 묻어나온다.

조 경위가 좀 전부터 느끼고 있는 인지 부조화의 원인도 이것이다.

관록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난생 처음 독대하는 외교관이라는 신분에 뇌가 비벼져서 착각하는 건지.

컬러렌즈를 낀 것처럼 아리땁게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잔뜩 위축된다.

너무나도 올곧고, 반듯하여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스무 살 넘게 더 어린 여자에게 반말을 듣고 있음에도 굳이 바로잡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거기서 오는 굴욕감 따위는 조금도 없다.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조 경위는 한결 조심스러워진 말투로 물었다.

“연락처만 남겨주시고, 먼저 귀가하시겠어요?”

“그리하겠네.”

그렇게 엘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지구대 문이 벌컥 열렸다.

헐레벌떡 뛰쳐들어온 사람은 값비싸보이는 양복을 입고 있는 노인.

머리가 하얗게 셌음에도 불구하고 부리부리한 안광과 정기가 느껴지는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양아치들을 응대하던 김 순경은 창백한 안색으로 휙휙 주위를 둘러보는 노인에게 다가갔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쩐지 처음 보는 데도 얼굴이 눈에 익더라니.

양복 카라에 반짝반짝 빛나는 ‘국회’ 두 글자가 새겨진 벳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추… 충성!”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지역구 6선 국회의원이자 국회의장인 김준법.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더라도 뉴스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원로급 정치인이었다.

“오빠, 저 할아버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TV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연예인인가?”

하물며 길거리 양아치들도 말이다.

“충성!”

빨리 이 골치 아픈 사건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자 했던 조 경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갑자기 입안이 바짝 말랐다.

으레 각종 대중 매체 따위에서 ‘정치인’이라는 캐릭터가 희화화되고 우습게 소비되는 탓에 간과하기 쉬우나 정치인이란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의 정점이다.

또한 그 시스템의 말단쯤 되는 조 경위라면 일반인보다 훨씬 가깝게 그 권력을 체감한다.

6선도 모자라 당 대표를 거쳐 국회의장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라면 조 경위에게 까마득한 상급자인 경찰총장도 쩔쩔매야 할 거물급 인사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왜 이 시간에 지구대 같은 곳에?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가운데 김준법 의원이 체통도 지키지 못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게 보인다.

“아이고오,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오랜만이네, 김 의원.”

“수아 어르신께 말씀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이토록 귀한 발걸음 해주셨는데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신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괘념치 말게나.”

목적지는 다름 아닌 자칭 1급 서기관이라던 여인이었다.

김 의원은 제 손녀뻘로 보이는 여인에게 거듭 고개를 숙이며 쩔쩔매고 있었다.

조 경위는 눈을 끔뻑이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까 전화 한 통을 했다고는 들었는데 왜 국회의장이 오지?

국회의장이면 의전 서열 2위, 대통령 바로 밑 아닌가?

주한 미국 대사관 1급 서기관의 권력이 조 경위가 모르는 사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가?

설령 대사를 만난다고 해도 저렇게 어려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선거 유세 기간도 아닌데 연신 허리를 숙이던 김준법 의원이 조 경위에게 말했다.

“불철주야 노고 많으십니다. 여기 조용히 대화할 만한 장소 없습니까?”

2.

마녀의 존재는 세간에는 극비로 다뤄진다.

따라서 인간 대다수는 호문쿨루스나 마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김 의원쯤 되는 배분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일급기밀에도 접할 수 있는 거물.

코엑스 학살 사건과 빗물 터널 사건 당시 티페레트 공작과 접선하고 조율하던 사람도 김준법 의원이었다.

따라서 티페레트 공작이 어떤 인물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현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마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위치포인트를 설립하여 마녀와 인간의 상생을 도모한 친 인간 성향의 마녀이자, 한국의 수호신이나 다름없는 수아 어르신의 막역한 친우.

1등 서기관이라는 직책 따위는 허울에 불과하다.

당장 얼마 전 그녀의 조력이 없었더라면 무시무시한 괴물이 서울 시내에서 대학살을 벌이며 돌아다녔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마녀 사회는 혼란 그 자체.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인사다.

이미 큰 은혜를 입었고, 앞으로도 조력이 필수 불가결한 상대.

그런 그녀가 길거리 양아치들에게 시비가 걸려 지구대까지 행차하게 된 초유의 사태는 그 어떤 외교 결례보다 막중한 사안이다.

회의실에 앉은 그는 비 흐르듯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만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한국에 오신 줄 몰랐습니다. 사전에 이 김모에게 연락이라도 주셨다면 국빈으로 극진히 모셨을 텐데 말입니다.”

“괜찮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네. 다만 이번 일에 대해선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일이 있던 것인지 말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조심스레 묻는 김 의원에게 엘로아가 답했다.

“저 무뢰배들에 희롱당하고 제자를 욕보였네. 제자가 나서 무례에 걸맞은 실력 행사를 했네.”

희롱? 게다가 그녀의 제자를 욕보여?

김 의원은 거품을 물고 싶은 심정으로 또박또박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제 선에서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맡기겠네.”

공작 본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하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던 중 김 의원의 시선이 시우에게 쏠렸다.

“저, 혹시…. 신시우 씨 되십니까?”

티페레트의 제자이자 역사상 최초의 남자마녀, 게다가 그 실력은 대마녀급.

마녀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을 모를 리 없다.

더불어 한국인 출신이라면 반드시 포섭해야 할 인물이다.

“네, 맞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설마 자신도 대화에 끼게 될 줄 몰랐던 시우는 머쓱하게 대답했다.

“역사상 최초의 남성 마법사가 우리 한국에서 나왔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게 바로 국위선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번 꼭 식사 함께 나누고 싶은데 시간 되실 때 연락해주시면 바로 뛰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혹시 어려운 점 있으시거든 곧장 연락 주시고요.”

얼굴 가득 금칠에 이어 악수 요청, 명함까지 받은 시우.

김 의원이 급히 챙겨온 고급 위스키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엘로아.

두 사람은 원래 예정대로 게헨나로 돌아가기 위해 지구대를 나섰다.

“후우….”

그렇게 회의실에 홀로 남은 김 의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원만하게 해결된 듯 싶어 수아 어르신을 뵐 낯이 섰다.

다행히 대화재로 번지기 전에 진화한 불길.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엘로아는 공명정대한 해결을 요청했다.

그녀의 성격상 권력에 기대려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시비가 이후 쌍방 폭행이라면 큰 뒷말 없이 덮을 수 있겠거니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 일을 가벼이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밖에서 경위에게 상황 설명을 듣던 수행비서를 불러들였다.

“어, 최진경이.”

“예, 의원님.”

“저 밖에 양아치 놈들, 주머니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서 나한테 직접 보고해.”

그로부터 며칠 뒤.

서울 일대에 대대적인 불법 홀덤펍 단속이 벌어졌고, 불법 가게를 영업하던 사장들이 굴비처럼 엮여 도박 알선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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