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6
1.
체육고 자퇴, 소년원 입소 다수, 전과 8범, 길거리 싸움 다수, 여태 폭행 합의금으로 쓴 돈만 5천만 원.
양팔과 등을 수놓은 이레즈미 문신, 현재는 최근 핫한 불법 홀덤펍 바지사장.
박형칠은 소위 양아치라 불리는 부류였다.
대낮부터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을 마시던 형칠은 담배를 피우다 툭 담배꽁초를 떨어뜨렸다.
“와, 씨발 빵댕이 보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술집 골목을 걷는 한 여자.
단언컨대 박형칠의 28년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작은 키, 그러나 절대 작지 않게 느껴지는 우월한 비율, 또렷한 이목구비와 헐렁한 옷차림으로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 탄탄한 몸매.
이때까지만해도 형칠은 자신이 너무 취했거나, 눈앞의 광경이 모종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포니테일 스타일로 질끈 묶여 꼬리처럼 흔들리는 머리칼의 색이 분홍빛이었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게 꾸미는 청춘이 많은 이 거리에서 저 정도로 독특한 색상은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탈색약과 염색으로 모발손상이 잔뜩 와 부스스한 머릿결 따위가 아니다.
막 피어난 벚꽃처럼 연한 분홍빛을 자랑하는 생머리.
이런저런 점이 조합되어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미모였다.
“하아 쓰읍…. 영어 못하는데. 하우두유두? 나이스투미츄?”
상대는 딱 봐도 외국인.
하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
듣자하니 요즘 케이팝이니 한류이니 하며 한국 남자에 대한 외국 여자의 호감도가 하늘을 찌르는 상태라고 한다.
또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를 선호하는 한국 여자의 기형적인 취향과 달리 외국에선 이렇게 곰처럼 풍채 좋은 체구가 인기가 좋다지.
즉, 박형칠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급한대로 불법 주정차해둔 애마 BMW의 백미러로 스타일을 확인한 형칠.
이후 잘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팽팽 굴리며 어떻게든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보려던 뒤늦게 옆에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울리지도 않는 푸근한 미소를 짓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키는 180 초반.
대충 차려입은 듯한데도 스타일 좋게 보이는 맵시와 옷 위로 적당히 펌핑된 근육.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이 장난 없다.
박형칠이 가장 증오하는 기생오라비 부류였다.
“저거 딱 봐도 걸레년이네.”
겉으로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으나 무의식중에 패배를 인정한 형칠.
동시에 아까까지 그렇게 예뻐 보이던 여자의 모습이 추악하게 일그러져 보인다.
결국 잘생긴 남자를 보면 누구라도 다리를 벌리는 골빈 걸레년이 분명하다.
그리고 옆에 저 새끼는 고추가 3cm일 것이 분명하다.
자격지심과 질투에 취기까지 더해지자 자연스레 치미는 짜증.
둘이 백허그를 하거나 키스를 하며 꽁냥대는 모습을 보니 더욱 복장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사나이 박형칠은 좆같은게 있으면 뇌내 필터를 제거하는 남자였다.
때마침 먼저 나와 담배를 태우던 박형칠을 따라 우루루 몰려온 일행의 모습에 더욱 든든해진 박형칠은 들으라는 듯 시비를 걸었다.
“거 시발 길거리 전세 냈다. 모텔을 가라 모텔을.”
“하지마~ 오빠~ 왜그래~ 듣겠어~”
“뭐, 어때 시발. 들으라고 해.”
때마침 여자도 옆에 있겠다.
수컷의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건들거리며 침을 탁탁 뱉던 형칠은 내심 놈이 이 시비에 호응해 주길 바랐다.
“나?”
얼빵하게 되묻는 기생오라비 놈의 표정만 봐도 견적이 나왔다.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곱상한 생김새.
옆에 여자가 있으니 쫄아서 꼬리를 내리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싸우고 싶지는 않기에 나오는 소극적인 자세.
형칠의 키는 185, 체중은 110의 타고난 체격.
체대는 가지 않았지만 체고생 시절까지만 해도 유도를 했었다.
길거리 싸움이라면 대적할 자가 없는 피지컬인 것이다.
일이 커질 것 같자 만류하는 여자와 궁시렁거리더니 뒤돌아서는 남자.
그 순간만큼 형칠은 승리자였다.
기왕이면 덤벼든 놈을 두들겨 패버리는 게 최선이겠지만, 여자 앞에서 쫄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얼마나 쪽팔리겠는가?
형칠의 친구들도 같은 마음을 느낀 것인지 함께 남자를 비웃어준다.
깊어가는 우정을 느끼며 소소한 해프닝을 끝내려던 무렵.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분명 쫄아서 도망갈 줄 알았던 남자가 뒤를 돌아 소매를 걷으며 다가왔다.
2.
당시 사건을 목격하고 신고했던 카페주인 A씨는 당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싸움이요?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술집도 모여있고 왕왕 이런 일이 있죠.’
‘딱 봐도 견적이 나왔죠. 남자라면 알잖아요. 아, 이거 붙겠구나 하는 긴장감. 그때부터 신고 먼저 하고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잘생긴 남자 하나랑 양아치들 여럿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가 불쌍했습니다. 엄하게 시비 걸리고 싸움까지도 붙게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무조건 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왜 길거리 싸움에서는 체급이 절반 이상 먹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근데 남자는 양아치에 비해서 40kg은 덜 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의도대로 미끼를 문 먹잇감.
형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계속 빈정거렸다.
가슴을 두들겨 경쟁자를 위협하는 고릴라처럼 한껏 어깨를 편 채 말이다.
“왜 음험하게 엿듣고 지랄이야. 어쭈? 한 대 치시게?”
“어, 넌 좀 맞자.”
“한 대 내줄게. 돈 많으면 쳐 봐.”
카페주인 A(34)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후에 문신 돼지가 계속 시비를 거는데 아무래도 먼저 맞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 폭행 사건이라는 게 시비를 누가 걸었느냐보다 누가 먼저 손찌검을 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그 잘생긴 남자 쪽도 단단히 화가 났는지 바로 달려들더라고요. 참 안타까웠죠….’
한편 시우는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우에게 싸움이란 늘 인외의 영역에 있는 마녀와의 사투였다.
디아나가 납치 사건에 휘말릴 뻔했을 때 노예를 상대로 힘을 썼던 적은 있지만, 그건 워낙 쓰레기 짓을 한 새끼들이라 죽으려면 죽어라 하는 심정으로 팼던 것.
하지만 고작 뒤에서 욕한 것 정도로 반신불수를 만들기엔 조금 과하지 않은가?
화도 나고 본 때도 보여줘야 하긴 하겠는데 얼마나 세게 때려도 되는지 감이 잡히질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뺨 때리기였다.
적어도 죽거나 장애가 남을 것 같진 않았으니 말이다.
-빠악!!!
“쿠엑!”
카페주인 A씨(34, 동정)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뭐랄까…. 도저히 뺨을 때리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엄청 두꺼운 고무풍선을 터뜨리는 느낌?’
‘그 거구가 한 방에 휘청하더라고요.’
‘그래도 확실히 덩칫값을 하는지 문신돼지가 곧장 남자의 오른 소매랑 오른 깃을 붙잡았습니다.’
‘제가 또 유도 5년 차입니다. 그런 제 눈에는 확실히 보였죠. 그 미친놈이 아스팔트에서 양팔 업어치기를 시도하더라고요.’
‘아시겠지만 유도라는 무술은 매트 위냐 길바닥이냐에 따라 위력이 천양지차 아닙니까? 두 사람 체중 차이도 있고 하니까 최소 골절이다 싶었죠.’
박형칠은 아직도 이명이 들려오는 귓방맹이에 어안이 벙벙했다.
뭘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방에 다리가 풀릴 뻔했다.
그럼에도 통증이 불러온 아드레날린의 힘을 빌려 의식을 되찾은 형칠은 즉각 기생오라비 놈을 바닥에 내던지기 위해 파고들었다.
단단히 붙잡은 오른 소매와 깃.
이미 여기까지 왔으면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라이라이차차차!!!”
그런데….
우렁찬 기합과 함께 힘을 줬음에도 꿈쩍도 않는다.
전봇대에 줄을 매고 업어 치려면 이런 느낌일까?
태어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당혹스럽다.
“놔 임마, 옷 늘어나.”
“이, 시, 시발….”
조금도 먹히지 않는 기술, 이 짧은 순간 느낄 수 있는 어마무시한 완력.
무심한 눈동자로 손목을 맞잡은 기생오라비의 비현실적인 태연함에 형칠은 직감했다.
좆됐다.
라고.
카페주인 A씨(34, 동정, M자 탈모 초기)는 어딘가 아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엔 남자가 그립을 풀더니 돼지의 머리채를 붙잡더군요.’
‘그리고 연신 싸대기를 내려쳤습니다.’
‘저는 머리 잡기랑 뺨 때리기가 여자들이나 쓰는 싸움법인 줄 알았는데…. 와, 그렇게 살벌할 수가 없더군요.’
‘쫙! 쫙! 소리가 들릴 때마다 무지개가 피었습니다. 네, 정말 무지개요.’
’입안이 다 터지면서 분사된 피가 네온사인과 만나서 핏빛 무지개를 그린겁니다.’
양아치에겐 양아치의 의리와 가오가 있는 법.
동료가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낄낄대던 넷이 일제히 시우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우리 대장 형칠이가 복날에 개처럼 맞고 있어!”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해!”
“우정의 힘을 보여주마! 기생오라비 놈!”
“나도 존잘로 태어나고 싶었다!”
“기가 드릴 브레이크!”
카페주인 A씨는 마지막 회상을 끝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홍콩 영화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네 명이 한 번에 달려들면 위축될 법도 한데 태연하게 스텝을 밟더라고요.’
‘거기서 확신했습니다. 저 사람…. 프로다.’
‘쓸데없이 위험한 공격도 하지 않고, 접근하면 가볍게 와사바리 털어버리고, 공격이란 공격은 죄다 피하는데…. 캬, 정말이지. 피가 끓었습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카페 사장을 하고 있지만, 저 역시 원초적인 힘을 추구하는 한 마리의 수컷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싸움이 마무리됐을 때 손을 툭툭 터는 남자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남자 다섯이 남았다.
여자도 하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까지 팰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내버려뒀다.
“오빠! 형칠이 오빠!”
시우가 딱히 적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형칠에게 달려드는 여자와….
“신촌 지구대입니다. 폭행 신고 들어와서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도착한 경찰 둘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길거리에서 벌어진 싸움은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일대 다 싸움이었다는 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먼저 때린 순간 폭행이오, 한 번이라도 밀친다면 쌍방.
어찌 됐건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바닥에 너부러져 죽은 척을 하던 형칠은 경찰을 보자마자 벌떡 일으켰다.
“경찰 아저씨! 저 새끼가 먼저 폭행했어요! 저기 CCTV도 있어요! 이거! 이거 피 보세요 피! 와, 씨발 이빨도 흔들리네!”
“자자, 아저씨도 진정하시고. 일단 서까지 동행해서 조서 작성해 주시죠.”
사실 이대로 튀어도 문제는 없다.
어차피 시우도 엘로아도 마녀.
‘신비’와 접해 있지 않은 인간은 시간이 잠깐 지나는 것만으로 둘의 존재를 잊게 될 것이다.
혹은 이면결계를 펼치고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우는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사태를 관망하던 스승님이 앞에 나서며 신분증을 펼쳐 보였다.
“나는 주한 미국 대사관 소속 1등 서기관, 엘로아 티페레트일세. 전화 한 통 가능하겠는가?”
스승님의 인맥을 믿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