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4
1.
그리하여 시우의 무사 귀환 환영회는 시우 하우스의 명물 배달음식 디펜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조수님의 무사태평한 앞날을….”
“위하여!”
상다리 부러지게 올려진 각양각색의 음식들은, 사실 제머나이 백작가에서 매일 펼쳐지는 저녁 식사에 비하면 식사의 양도 퀄리티도 다소 떨어진다.
백작가의 요리사는 한 명 한 명이 명인에 가까운 솜씨인데다가, 고급 식재료 수급에서도 예산을 아끼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국의 야시장에서 먹는 길거리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건 특별히 재료와 요리사의 솜씨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 지역 특유의 향토가 느껴지는 음식에 어딘가 들뜬 분위기가 더해지면 그 자체로 진미로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조수님 고향 음식 좋더라.”
“맞아요, 뭔가 불량식품 같은 느낌.”
한국의 배달 음식 문화란 기본적으로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니 저런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아무튼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쌍둥이의 입맛에 맞았다면 큰 문제는 없는 것이겠지.
“오, 이게 그대의 고향음식이라 이 말이더냐?”
한편 르뤼에는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포크를 쥐었다 놓았다.
아쿨라에서 함께 생활할 적 자연스레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먹을 것 얘기였다.
항상 바다 밑에서 생활해 온 르뤼에는 식단에 제약이 많았고, 그만큼 다양한 먹거리에 관심을 보였으니 말이다.
“이게 컵라면입니다.”
“오오, 이것이 한국의 어디에서나 판매하는 음식이란 말이냐?”
당연히 그녀를 위해 컵라면 하나를 끓여두었던 시우와 나름 맛있게 먹는 르뤼에.
그나저나 르뤼에는 어제 온종일 장모님들과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
저 조합으로 도대체 뭘 했길래 지금에야 온 것인지 의문이 든 시우.
“르뤼에 님.”
“음?”
“어제 백작님들과 뭐하셨나요?”
“현세의 호텔을 구경했느니라. 그리고 누켈라비 왕국의 국가 사업에 관해 중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도다.”
“국가사업이요?”
르뤼에는 컵라면이 썩 마음에 든 것인지 포크로 돌돌 만 면을 입에 밀어 넣어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석유 시추권 말이다.”
천연 자원에 의존도가 높은 현대 사회에서 석유는 문명의 혈액이자 흐르는 금이다.
탈 석유화니 전기차니 이야기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자명한 사실.
선대 누켈라비는 200년 전부터 이러한 양상을 예측하고 지금에 비하면 헐값이나 다름없던 유전을 취득하고 시추권 경매로 따냈다고 한다.
시우는 슬쩍 걱정되는 표정으로 르뤼에를 보았다.
르뤼에가 지닌 일신의 힘에 비해 정신연령은 쌍둥이와 맞먹는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지만 실상은 상당한 허당인 것이다.
“무릇 왕국의 국고란 다다익선이니라. 누켈라비 왕국의 여왕 된 짐의 현명한 행보가 어떻느냐?”
이거 봐라.
뭔가 ‘어른스러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턱 끝을 들어 올리고 까딱거리는 자아도취 버전 르뤼에를.
그런 르뤼에가 산전수전 다 겪은 사업가인 장모님들을 상대로 제대로 계약을 맺었을까?
시우의 머릿속에서는 제대로 이해도 못 하는 서류를 유심히 살펴보는 척하다가 대충 사인을 쓱쓱하는 르뤼에의 모습이 그려진다.
장모님들이 좋은 분들인 건 알지만….
사업가로서의 모습은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시우 군, 실례네요. 공정한 계약이었어요. 지분 참여도 합리적인 가치 책정에 따라 이루어질 예정이고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게 족발을 드시던 큰 장모님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딱히 장모님을 의심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요?”
시우가 쓴웃음을 머금자 상황 판단을 끝낸 르뤼에가 끼어들었다.
“짐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누가 감히 속일 수 있겠느냐? 이로써 20년 이내로 누켈라비의 대함대를 구축할 군비가 갖춰질 예정이니라. 저 푸른 태평양 위에 그림 같이 떠다니는 항모 전단을 떠올려 보거라. 어떠냐? 전율이 흐르지 않느냐?”
“르뤼에 양, 계약사항에 군사행동 금지조약이 있다는 거 기억하시죠?”
“공해 위에 띄워놓기만 한다는데 왜 자꾸 잔소리냐. 주인장은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아무리 공해라도 항모전단을 띄우는 게 말이 되나요? 저희 기업까지 말려들잖아요. 요즘 세상은 자금 출처 같은 건 털어보면 나온다고요!”
“시우 군이 말 좀 해줘요. 어제 밤새 저 얘기하길래 간신히 설득했는데 도루묵이네!”
보아하니 장모님은 장모님들대로 나름 고생을 한 모 양.
하긴 르뤼에는 어디에 꽂히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편이니, 그 성정을 아는 시우로선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르뤼에 님.”
“듣지 않겠다. 아무리 국서의 부탁이라도 왕조의 부국강병은 포기할 수 없느니라.”
“르뤼에 님께선 항모전단 없이도 충분히 강하지 않으십니까?”
“뭐 당연한 걸 묻느냐? 바다 위에서라면 설령 최강의 7함대라도 짐 홀로 상대할 수 있느니라.”
그 말에 조금의 허풍도 섞여 있지 않을 것이다.
군대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개인’을 상대하기 위해 발전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아무리 대단한 함대면 뭐하겠는가?
수백 미터 인류 종말 급 파도에 휩싸이면 그대로 두 조각이 날 것을.
“그렇다면 굳이 함대를 구축하는 건 국력 낭비 아닐까요?”
“낭비가 아니도다. 그대마저 이 로망을 이해할 수 없다니. 실망이 크도다.”
‘항모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라는 의견을 고수하던 르뤼에는 숟가락을 입으로 넣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꾸리 꾸리 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시우, 이 요상한 음식은 무엇이냐?”
“아, 그건 차돌 된장찌갭니다. 호불호를 좀 탈 수도 있겠네요. 발효식품이거든요.”
“실로, 실로 끔찍한 음식이도다. 초록 머리!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맛있다는 표정으로 먹는 것이냐?”
“음? 왜? 맛있는데?”
입맛이 로컬라이징 완료된 샤론은 차돌 된장찌개를 밥에 싹싹 비벼 먹고 있었고, 이어 대망의 킹크랩을 향해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샤론의 소울푸드는 뭐니뭐니해도 킹크랩이었으니 말이다.
르뤼에의 시비에도 아랑곳 않고 방금 막 발라낸 집게살을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아…. 너무 행복해…. 움….”
그런 샤론을 바라보던 르뤼에가 일갈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이상한 입맛답게 역시 먹는 법을 모르는도다.”
“뭐야? 샤로니 언니한테 왜 자꾸 시비 걸어?”
“조수님, 쟤 쫓아내죠?”
“내가 샤로니라고 하지 말랬지!”
역시 사람이 많다 보니 각자 한마디씩만 해도 떠들썩해지는 식탁.
평소 식사 예절을 강조하는 장모님들 역시 오늘만큼은 눈감아 주었기에 더욱 시끌시끌하다.
르뤼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샤론의 옆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자애로운 바다의 선물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애잔한 자에게 짐이 손수 맛있게 갑각류를 즐기는 법을 전수해주겠노라.”
그렇다.
항시 바다 밑으로 잠항하던 아쿨라의 식단은 압도적으로 해산물에 치우친 편.
따라서 르뤼에는 해산물 부심이 좀 심한 편이다.
시우도 성게 원산지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고 타박받으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손질부터가 글러 먹었느니라. 그렇게 하면 아까운 살이 껍데기 안쪽에 남아있지 않느냐?”
소매를 걷어붙인 르뤼에는 능숙한 손길로 쪽 가위를 들고 킹크랩의 다리 살을 발라냈다.
아주 조금의 살도 남기지 않고 붉은 부위까지 깔끔하게 뽑은 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게딱지를 벌리는 르뤼에.
그 안에 고인 내장에 탱글탱글한 게다리를 푹 담그더니 샤론의 손에 들려준다.
“자, 먹어보거라.”
“와, 진짜 맛있는데?”
우물우물 게를 먹은 샤론은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후후, 본디 내장이야 말로 게의 영혼이자 바다의 정수니라. 이참에 깔끔하게 손질하는 노하우도 알려줄 터이니 잘 따라해보거라.”
“응응, 알려줘 봐.”
“자, 이렇게 가위를 넣어서….”
르뤼에는 오만불손하지만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명한 경청자 타입의 샤론과는 썩 궁합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멜리아는 침묵을 지킨 채 유심히 테이블을 살피고 있었다.
원체 시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활발하게 하지 않는 아멜리아고, 특히나 식사 중에는 말수가 더욱 적어지긴 하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조용하다.
“…….”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멜리아는 후각과 더불어 미각도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시우와 화해하고 제머나이 가문의 저녁식사에 참여하게 된 이후에도 샐러드나 수란, 소금이 약간 들어간 빵 정도만 즐겨 먹었던 아멜리아다.
타고난 체질도 있지만, 자극적인 식사를 즐기지 않은 생활이 몸에 밴 것이다.
일반인 기준으로 매우 싱거운 음식을 선호하는 아멜리아에게 한국의 음식은 대체로 허들이 높았다.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음식 거의 대부분에서 풍겨오는 마늘 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더군다나 김치찜이라는 두려운 음식을 접한 기억이 있는 만큼 모든 시도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
그 결과 깨작깨작 음식을 덜어 먹으며 ‘이게 먹어도 되는가?’를 조심스레 탐색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멜리아 님, 입맛이 없으신가요?”
“아니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을 놓치지 않은 시우가 물어왔다.
입에 맞는 음식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추억이 깃든 고향 음식이란 소중한 법.
시우의 고향 음식 앞에서 편식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걸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에 있는 건 전부 시우의 고향 음식인 건가요?”
“고향 음식이라기보다는 게헨나에선 먹기 힘든 현세 음식이죠.”
마라탕 같은 건 중국음식이고, 거기 있는 초밥은 원조가 일본이고 말이다.
찬찬히 식탁을 살피다 뭔가 눈치챈 시우는 씨익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희 첫 여행 때 먹었던 음식 기억나시나요? 거기 배달도 하더라고요.”
“…네?”
“아, 멀리 있어서 가져가기 불편했겠네요.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이거 좋아하셨죠?”
시우에게 있어 김치찜은 두 사람의 추억을 공유한 특별한 음식이었다.
기억을 잃고 소년이 되었을 적 아멜리아에게 만들어 달라 했으나 실패한 음식이었고, 또 그녀와 화해하게 된 이후 첫 식사였으니 말이다.
아멜리아에게도 분명 그러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
시우는 아멜리아가 필사적으로 못 본 척하던 새빨간 김치찜을 앞 접시 한가득 덜어냈다.
“맛있게 드세요. 부족하면 말씀하시고요.”
“시우, 미워요.”
“얼레?”
오늘따라 시우가 밉살맞게만 보이는 아멜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