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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
1.
침대 위로 쏟아지는 푹신한 햇볕.
하품이 나올 정도로 나른하고 느긋한 온도감.
맨살에 맞닿은 극세사 이불의 포근함.
“일어났어?”
그리고 반쯤 엎드린 자세로 베개를 안은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샤론까지.
익숙한 장소이고, 익숙한 앵글이고, 익숙한 상황이다.
샤론과 동거하는 내내 질리도록 본 장면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도 식상 하다던가, 지겹다는 느낌이 없다.
낯부끄러운 말이지만, 이런 게 바로 사랑의 힘이겠지.
“오늘은 내가 이겼네? 매일 시우가 나보다 먼저 일어났었는데.”
샤론은 졸음 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눈으로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 표정이다.
연인의 모든 흠결을 상냥하게 포옹해줄 것 같은 미소.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이 순간이 사랑스러워 마지 않다는 듯 행복하게 올라간 입꼬리.
일어나자마자 재차 실감이 났다.
샤론과 헤어지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몇 시야?”
“으음, 2시.”
“늦잠이구나.”
“어쩔 수 없지. 우리 10시 넘어서 잠들었는걸.”
샤론은 부끄러운 듯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하긴 부끄러울만했다.
그간의 회포를 풀겠다는 듯 정신없이 몸을 섞던 중 온갖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샤론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것도 모자라 플레이의 하드함 역시 역대 수위를 가뿐히 돌파.
대충 기억나는 대로 통계를 내자면 앞에 사정 3회, 뒤에 사정 3회, 그 외 사정 2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샤론은 기절과 각성을 반복하며 앞뒤로 족히 두 자릿수는 가버렸고 말이다.
“시우는 왜 이렇게 변태야? 하여간, 괴롭히는 걸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샤론도 자신이 보였던 치태를 수습하고 싶은 건지 책임 전가를 시도하려 들 정도로 광란의 밤이었다.
“그래? 누가 변태인지 확인해 봐?”
그런 샤론을 잠재울 비장의 무기는 이미 확보해두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촬영은 비단 삽입 때까지 만이 아니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시우에게 셀카봉을 만드는 건 너무도 쉬운 일.
어젯밤 있던 모든 순간이 착실하게 녹화되어있는 것이다.
“뭐, 뭐야! 그거 진짜 다 찍었어? 언제부터? 언제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찍었습니다.”
“아, 안 돼! 그건 압수야! 빨리 폐기해!”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샤론이 증거인멸을 위해 시우를 덮쳤다.
“내놔! 내 놔!”
스마트폰을 뺏기 위해 이리저리 팔을 뻗어보지만, 시우가 누구인가?
침대 위 한정으로 EX급 그라운딩 능력이 각성하는 스킬의 보유자, 쥬지떼로이다.
“샤로니가 찍어달라고 했잖아.”
“샤로니라고 하지 마! 아, 진짜 어제 제정신 아니었단 말이야!”
가벼운 농담을 내뱉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샤론의 팔을 휙휙 피하며 샤론의 다리에 다리를 걸어 무게중심을 휙 뒤집었다.
꼼짝도 못하고 시우의 아래 깔려 등을 내어주게 된 샤론.
“까불어? 또 혼날래?”
“하앙…!”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꽁냥꽁냥의 연장이다.
목덜미를 콱 깨물며 그녀의 알몸을 짓누르자 순식간에 탁해지는 샤론의 호흡.
밤새 불을 지피다 못해 용광로가 되어버렸던 샤론의 몸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이후에도 불씨가 남아있던 것이다.
“하아…. 흐응….”
그렇다곤해도 목덜미를 깨물었을 뿐인데 이렇게 달콤한 콧소리를 낼 줄이야.
얼마나 됐다고 또 순식간에 딱딱해진 물건이 샤론의 탱글한 엉덩이를 짓누른다.
“…또 커졌어. 진짜 변태.”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잠잠해진 샤론은 샐쭉하게 눈을 흘기며 시우를 타박했다.
“누가 누구보고 변태래. 그리고 너가 큰소리칠 때야? 나한테 빚진 게 얼만데.”
금전적 혹은 인간관계상의 부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어제 샤론과 시우 사이에 오간 SM 플레이의 연장, 절정 참기를 논하는 것이다.
샤론은 시우가 사정할 때만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뒤로 당하면서 허벅지에 쥐가 날 때까지 마구마구 멀티오르가즘을 느껴 버렸고, 당연히 앞으로도 갚지 못한 채 대량의 빚을 지게 되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이겨…. 가는 거 참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하앗…!”
조금 강하게 몰아붙이며 촉촉하게 젖은 꽃잎을 자지 끝으로 살살 비벼주자 곧장 순한 양이 되어버린 샤론.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볼멘소리로 웅얼거린다.
“지금 빚진 거 갚을까?”
통상 샤론이 10번은 큰 오르가즘을 느껴야 한번 사정하는 시우다.
점점 능숙해지는 시우와 섹스한다면 아마 평생이 지나도 샤론이 부채를 탕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엔 어디로 갚아볼래. 샤론이 골라봐.”
“으우우, 됐네요 됐어.”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시우와 2차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샤론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잖아.”
샤론이 시우를 독점한 건 어디까지나 다른 연인들의 배려에 인한 것.
벌써 해가 중천인데 계속 시우를 독점하고 있을 순 없다.
“그것도 그러네. 준비하자.”
머쓱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려는 시우의 손목을 샤론이 붙잡았다.
그리고는 슬쩍 허리를 들어 엉덩이 한쪽을 벌려 보였다.
그새 바깥까지 촉촉해진 샤론의 선홍빛 꽃잎이 먹음직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딱 15분 안에 끝낼 수 있어?”
입술을 삐쭉 내밀며 새초롬하게 말하는 샤론.
“30분 안에 끝낼게.”
이런 샤론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2.
속성 사랑나눔 코스를 끝낸 샤론과 시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채비를 끝냈다.
“왜 그래?”
거울 앞에서 갑자기 심란해진 샤론의 표정에 시우가 물었다.
직접 몸을 씻어주고, 닦아주고, 속옷과 옷을 입혀 줄 때까지만 해도 파릇파릇하던 샤론의 낯빛이 어딘가 어두웠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너 때문은 아니야.”
뇌내 5종 행복 호르몬 세트의 효과가 어느 정도 가시고 자기객관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 샤론.
그제야 어젯밤 보였던 추태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우와 극적인 화해 끝에 애교를 부리느라 ‘샤로니가 그로케 기여워?’라는 희대의 망발을 모두의 앞에서 내뱉고 만 것.
그리고 이제 곧 그 명장면을 관람한 관객을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것.
“와, 숨이 턱 막혀.”
아멜리아나 엘로아는 그렇다 쳐도 쌍둥이가 문제다.
과연 어떤 식으로 놀림 받을지 상상하기 두려울 정도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불행한 직감은 현실이 되었다.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아멜리아와 눈이 벌건 엘로아의 인사를 받으며 오피스텔에 입성한 시우와 샤론.
테이블에 앉아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던 쌍둥이는 샤론이 시야에 보이자마자 시우를 반기지도 않고 속이 시꺼먼 대화를 선보인다.
“언니 언니, 오늘따라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우웅? 모가?”
오딜은 오데트의 질문에 턱밑에 두 주먹을 붙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자색 눈동자가 쓸데없이 반짝반짝 빛난다.
“눈도 반짝반짝하고, 헤어 컬도 너무 꼬시랑꼬시랑 이쁘고,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인형 같달까?”
“우우, 오데트는 거짓말쟁이야.”
“아니야, 난 항상 언니를 볼 때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다니까?”
“정마알? 오딜이 그로케 기여워?”
“웅웅, 기여워 기여워.”
여전히 손발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의 꽁트.
아주 오랜 기간 연습해 온 것처럼 샤론의 명치가 오목해질 치명타를 가한다.
“오딜, 오데트! 너희 적당히 안 할래?!”
홍시처럼 얼굴을 붉히며 역정을 내는 샤론이지만, 쌍둥이에게 씨알이라도 먹힐 리가 있나.
오딜과 오데트는 각기 커피를 홀짝이며 결정타를 먹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샤로니 언니도 충분히 귀여운걸요.”
“맞아요, 샤로니 언니.”
“꺄아아악! 예상은 했는데 예상보다 열 받아!”
샤론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탕탕 바닥을 내려치고.
쌍둥이는 마치 원주민처럼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정신 공격을 감행했다.
“와, 정말 상상도 못했지 뭐에요?”
“샤, 로, 니라니.”
“샤론이도 모자라서 샤로니라니!”
“저희도 샤로니 언니를 마음껏 귀여워해도 될까요?”
“으아, 으아악! 으아아아!”
흑역사를 강제로 재생하는 마법에 걸려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샤론.
“하긴, 조수님을 독점하려면 그 정도 애교는 있어야죠.”
“하아~ 정말 부러울 정도라니까요?”
“조수님보다 어린 저희도 감히 그런 수위의 귀여운 척은 상상도 못하는데. 솔직히 창피하잖아요.”
“연상임에도 뻔뻔하게 초강수를 두시다니! 샤로니 언니! 역시 걸어 다니는 애교덩어리! 정말 존경스러워요!”
“다시 저희 가정교사가 되어주실 때 새로운 과목도 맡아주시면 안 될까요?”
“애교학개론! 저희도 배우고 싶어요!”
등장만으로 대화 볼륨이 풍성해지는 쌍둥이의 수다 능력이 오롯이 공격에만 쓰이면 어떻게 되는지 목도하는 중이다.
정신적 충격으로 이미 빈사상태가 된 샤론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쌍둥이는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낮춰 매도를 거듭한다.
“설마하니…. 베갯머리에서도 그렇게 하신 건 아니겠죠?”
“샤로니 더 괴롭혀줘어. 안대안대~ 샤로니 거기 약하단 말이야~”
“죽여줘…. 날 죽여줘….”
샤론을 훌륭한 저항불능 상태로 만들어가던 쌍둥이의 눈썹이 동시에 치솟았다.
““음?””
오딜은 오른쪽, 오데트는 왼쪽 눈썹이다.
이내 마약 탐지견처럼 몸을 숙여 샤론의 냄새를 킁킁 맡던 쌍둥이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으갸갹! 용서 못 해! 아침에도 했어!”
“아침에도 샤로니샤로니했어!”
“애, 애들아…! 30분밖에 안 했어! 30분밖에!”
샤론이 마지막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여 호소해보았으나….
“우리가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
“밤에 잔뜩 독점하고서! 탕녀! 욕망의 화신!”
잔뜩 혼이 날 뿐이다.
물론 이건 샤론에게만 튈 불똥이 아니었다.
쌍심지를 치켜세운 오딜과 오데트는 시우에게 쿵쿵 달려와 매달렸다.
“조수님도 너무해!”
“샤론 언니가 아무리 유혹해도 뿌리쳤어야죠!”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저희랑 할 차례에요!”
당장 시우를 침실로 연행해 훌렁훌렁 벗기려던 찰나.
-덜컥!
“이건 무슨 소란인가요?”
“오딜, 오데트! 얌전치 못하게 뭐 하는 거니?”
“호오, 이게 정녕 집이란 말이냐? 성냥갑이 아니라? 무척 비좁구나.”
알비레오와 데네브 그리고 르뤼에까지 현세에 나와 있던 모든 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어쩐지 북적북적한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