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55화 (755/917)

#755

1.

이번 현세행의 지상과제는 시우와 샤론의 화해, 그리고 샤론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었다.

쌍둥이의 경우 실의에 빠져 전의를 상실한 샤론 언니를 격려하려고.

아멜리아와 엘로아의 경우 시우의 안전을 책임짐과 동시에 일전 일을 사과하기 위해 쫓아온 것.

하지만 두 사람의 극적인 화해를 본 이상 나머지 네 사람은 마음고생이 심했을 샤론을 위해 둘만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호위를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

일행은 바로 아래 오피스텔, 과거 엘로아가 머물던 방에 자리 잡았다.

샤론의 화려한 자폭탓에 마냥 훈훈한 기류보단 어딘가 머쓱한 분위기가 맴돌았지만….

오데트는 그 중 유독 꽁기해있는 언니를 보고 물었다.

“왜 그래 언니?”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샤론 언니랑 조수님이랑 잘 화해했으니까 됐잖아.”

“그게 아니야!”

분명 샤론 언니가 이대로 조수님과 헤어진다고 했을 땐 이루 말 할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다.

그래서 적극 만류하기 위해 헐레벌떡 쫓아오긴 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순식간에 화해하는 두 사람을 보자 질투와 더불어 우선순위를 뺏겼다는 심정이 드는 것이 문제다.

곧이어 샤론이 보인 잔망스러운 애교와 혀짧은 소리가 오딜의 공격지점이 되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분개한 듯 말하는 오딜.

“다들 봤죠? 샤론 언니 완전 불여시라니까요. 샤로니래 샤로니,  그새 샤론이에서 진화했어. 으아아아! 내가 다 부끄러워! 오데트! 넌 저런 거 할 수 있겠어?”

“그치만 언니, 우리도 메이드와 주인님 놀이한 적 있잖아.”

“이거랑 그거랑 같아?! 저건 통상회화 중에 나온 거잖아!”

“그건 그래. 그래도 뭐, 감정적으로 격양돼 있었을 테니까.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으으, 넌 너무 흐물흐물해서 탈이야.”

뜻밖에 넓은 아량으로 샤론 언니를 감싸주는 여동생의 모습에 오딜이 고개를 휙 돌렸다.

아군을 찾는 시선이었다.

“아멜리아 부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요?”

“네, 부교수님이요!”

‘시우한테 샤론처럼 안겨있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들어온 지목에 깜짝 놀란 아멜리아.

“…샤론 양은 단둘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샤론이 애굣덩어리인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뭔가 낯뜨거운 회화이긴 하다.

그러나 아멜리아 역시 그에 못지않은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있다.

야외 노출 플레이라던가, 부교수와 조교의 주종역전 상황극이라던가를 최근까지도 했었다.

평소에는 차가운 부교수인 척을 하다가 침대 위에선 져주는 플레이는 매번 해도 시우의 반응이 좋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슬슬 다른 걸 준비할 때가 되긴 했다.

그 와중에 샤론은 시우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연인이다.

그런 샤론이 무기로 내세울 말투나 귀여운 척이라면 한 번쯤 배워서 인용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불발 신형탄두를 획득한 경쟁국의 심정으로 고뇌 중이었던 것이다.

“아니죠! 그래도 레이디가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점잖고, 교양 있게! 혀짧은 소리 같은 걸 내는 게 아니라요.”

“샤론 양은 술에 취해 있었잖아요.”

괜스레 찔리는 마음이 든 아멜리아가 슬그머니 샤론의 변호를 해보았으나 곧장 오딜의 반박과 마주했다.

“그럼, 아멜리아 부교수님은 술에 취하시면 조수님한테 저렇게 하시나요?”

“그, 그건 아니죠. 저는 저렇게 말하지 않아요.”

오딜의 추궁에 ‘미안해요 샤론 양’을 속으로 읊조리며 손절하는 아멜리아.

“언니 왜 이렇게 흥분했어.”

“샤론 언니는 항상 얌전한 척하면서 항상 부뚜막엔 먼저 올라가잖아!”

씩씩거리는 오딜 옆, 엘로아도 간접적인 데미지를 받는 중이다.

“…….”

사실 엘로아만 해도 잔뜩 흥분한 상태가 되면 시우에게 존댓말을 한다든가 자신을 일인칭으로 칭하지 않던가?

오딜의 지적은 비단 샤론에게만 향해지는 게 아닌 것이다.

토라져 쫑알쫑알 투정을 부리는 오딜과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한 아멜리아, 엘로아.

이 기묘한 구도는 상당히 오랫토록 지속되었다.

2.

“시우야, 보고 싶었어.”

-쪽

“정말로 보고 싶었어.”

-쪽

“정말정말정말 보고 싶었어.”

소파에 앉은 시우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걸터앉은 샤론은 보고 싶었다는 한마디를 할 때마다 키스를 졸랐다.

한번 입이 맞닿을 때마다 세상을 전부 안겨준 것 같은 미소가 흐린 눈물로 번졌던 샤론의 눈가를 씻어낸다.

감정과잉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제 열등감을 드러냈다.

또한 아기처럼 혀짧은 말투로 귀여움을 칭찬해달라는 모습을 들켰다.

평상시 샤론이라면 중첩된 흑역사 파동기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 채 괴로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아마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죽여줘! 날 죽여줘!’라고 신음하다가 담담히 유서를 쓰러 갔겠지.

하지만 이별 위기 끝에 재결합한 지금.

샤론의 뇌는 세로토닌, 도파민, 멜라토닌, 엔도르핀, 다이돌핀 즉, 행복호르몬 5종 세트의 폭주가 일어나고 있었다.

방금 일어나 울다가 청승 떠느라 좀 꼬질꼬질한 모습이면 어떤가?

쉴 새 없이 훌쩍이느라 코맹맹이 소리가 좀 나면 어떤가?

다른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어린 애처럼 떼쓴 모습을 보이면 좀 어떤가?

귀여운 척 잔뜩 하던 걸 들키면 좀 어떤가?

여기에 시우가 있다!

꿈에도 그리던 시우에게 안겨 키스하고 있다!

안 헤어져도 된다! 사랑해도 된다!

이런 심정이라면 내일 아침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하이퍼 샤론 모드가 된 샤론에게 그깟 흑역사는 ‘뭐 어때. 예전에 섹스하는 모습도 들켰는데’ 정도로 쿨하게 넘어갈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헤, 시우다 시우. 진짜 시우다.”

행복 만개한 미소를 지은 샤론은 시우의 뺨에 제 뺨을 비비적거리며 살결이 맞닿는 감촉을 즐겼다.

“샤론, 그보다 앞으로의 이야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싫어, 안 할 거야. 지금은 이 순간을 만끽할래.”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너무 막 데려온 것도 있고, 또 널 너무 걱정시키는 것 같아서….”

“아니야, 내 말을 기억해서 나 데리러 올 때도 아멜리아 양이랑 공작님이랑 함께 온 거잖아? 다른 사람이랑은 뭐, 또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시우가 해명이나 향후 방침을 논의하려 해도, 애초에 샤론이 그를 떠났던 이유는 질투심 때문이 아니다.

응어리져있던 문제가 풀려나간 이상 재결합한 남자친구와의 시간을 만끽하면 될 일이다.

“시우야, 대신 우리 오랜만에 밤 산책할까?”

“그럴까? 그립긴 하네.”

“그치?”

어쩌다보니 나머지 인원이 자리를 비켜주어 단둘이 되긴 했는데….

너무 멀리 가긴 그렇다.

스승님께 수호자의 계약도 받았고, 마녀의 기동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이 근방에서만 쭉 돈다면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 멀리 가는 건 위험하니까 이 근방만 돌자.”

“좋아! 나 옷 갈아 입을게!”

그렇게 길거리로 나온 두 사람.

신촌에 도착해 오피스텔로 향할 때까지 온갖 청승에 청승은 다 부렸던 샤론은 불과 몇 시간만에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우와 함께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샤론은 아주 파릇파릇 생기 넘치는 난초가 되어 있다.

“에헤헤헤…. 행복해, 행복해.”

아무리 신촌이라도 평일 새벽녘이 되면 인적이 드물다.

영업하는 가게도 끽해야 24시간 하는 패스트푸드 점이나 국밥집과 편의점 정도이다.

그런 만큼 주위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밤거리를 걷는 내내 팔짱을 낀 채 시우의 어깨에 기대어 헤실헤실 웃는 샤론.

그리고 그 뒤를 자연스레 미행하는 4인방이 있다.

시우와 샤론 단둘이 돌아다니게 두는 건 물가에 어린아이 둘을 풀어놓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특히 숨만 쉬어도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폭풍의 핵 시우는 절대 방치할 수 없기에 엘로아와 아멜리아가 따라나선 것이다.

쌍둥이 역시 샤론 언니의 데이트 코스를 염탐한다는 명목하에 미행에 동참했다.

“으으, 나도 조수님이랑 현세 데이트하고 싶은데….”

“샤론 언니 부럽다. 하지만 언니, 비슷한 상황이었으면 샤론 언니도 안 끼어들었을걸?”

“나도 알아. 그래서 보고 있잖아.”

이러니저러니해도 샤론이 마음고생을 많이 한 걸 알기에 배려해준 것이긴 했다.

이번 사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는 아멜리아와 엘로아라면 몰라도 쌍둥이라면 얼마든 저 사이에 끼어들 명분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분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저거저거, 가슴 은근슬쩍 밀착하는 거 보이지?”

“조수님도 참! 적당히를 모르셔! 길거리에서 엉덩이를 움켜쥐면 어떡해!”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데이트 코스를 살피던 중.

꽁냥거리던 샤론과 시우가 한 건물에 들어선다.

“저긴 또 어디야?”

“뭔가 조명이 번쩍번쩍하다.”

“오락실이라네.”

그나마 현세 경험이 풍부한 엘로아가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명해주었다.

“조수님이랑 오락실 갔던 때 생각난다.”

“맞아, 아쿠아리움도.”

“그 뒤에 난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어? 샤론 언니 혼자 나왔는데?”

하지만 갑자기 오락실에서 뛰쳐나온 사람은 샤론 혼자뿐이다.

의아해진 일동.

“또 싸운 걸까요?”

“그런 건 아닌 것 같네.”

“미행 눈치챘나?”

“오르골 잘 켜놨어. 언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샤론이 어디론가 뛰어간다.

오락실 바로 맞은 편, 이 시간까지 영업하는 듯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이었다.

핑크핑크하게 빛나는 간판을 바라본 네 사람의 눈에 들어온 글귀는….

이색데이트코스.

24시간 영업.

커플용품.

ADULT SHOP.

유리벽이 반투명해서 실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색 데이트코스…인데 왜 혼자 가지?”

“커플용품? 커플 잠옷 같은 건가?”

나란히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는 쌍둥이.

살아온 세월이 있는 만큼 본능적으로 뭔가를 깨달은 아멜리아와 엘로아.

“엘로아 공작님.”

“아멜리아 부교수님.”

““저희도 저기 가보면 안 될까요?””

일단 쌍둥이와 시우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걸 알지만….

알비레오와 데네브가 둘을 맡겼다는 건 사실상 보호자의 권리와 의무를 의탁한 셈.

견습마녀를 저런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 데려갈 수는 없는 것이다.

당돌한 견습마녀의 천진한 요청에 아멜리아와 엘로아는 연신 헛기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성인용품점에서 나온 샤론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달려가듯 오락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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