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53화 (753/917)

#753

1.

시우를 비롯하여 현세에 도달한 일행들.

전력만 놓고 본다면 화해가 아닌 전쟁하러 간다고 해도 믿을 만큼 든든한 인원이다.

태생적인 트러블 메이커 시우를 위해 다들 나서 준 것이다.

“오오, 저것들이 전부 빌딩이란 말이더냐….”

“어휴, 하여간 촌티를 낸다니까.”

“이 정도 풍경에 놀라다니. 누켈라비 왕국도 별거 없구나?”

“짐이 언제 놀랐느냐? 저런 건 영화에서 몇 번 본 적 있도다. 뉴욕의 야경에 비하면 별것 없구나 탄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뉴욕은 가봤어?”

“…곧 갈 것이니라!”

난생처음 이런 대도시에 와보는 르뤼에가 입을 떡 벌리며 마천루를 보며 감탄하고.

현세 방문 고작 2회차인 쌍둥이가 덩달아 감탄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사이.

-부우우웅

한강공원 주차장으로 검은 리무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일행 앞에 정차했다.

무슨 의전에나 쓰일 법한 길쭉한 리무진이 보일 때부터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였던 모양이다.

운전석에서 내린 노년의 신사는 모자를 벗으며 알비레오와 데네브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회장님, 강녕하셨습니까.”

“어머나, 굳이 마중 나올 필요는 없다니까요.”

“윌리엄, 오랜만에 보니 좋네요.”

“2년 만에 두 분을 직접 모실 기회가 왔는데 이 늙은이가 어찌 빈둥거릴 수 있겠습니까.”

“후후, 늙은이라니. 제 눈엔 아직도 한창의 청년인데요.”

“소인의 재주로는 세월을 빗겨갈 수 없더군요.”

장모님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그는 ‘다재다능하고 충실한 노집사’라는 단어를 의인화한 것 같은 인물이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수염도 하얀데 눈에서 흐르는 열기와 영문 모를 중압감은 젊은이의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나저나 저 할아버지 뭔가 낯이 익은데….

기분 탓인가?

“딸 아이는 잘 지내나요?”

“모두 회장님 덕분이지요.”

“마침 잘 됐네요. 오딜, 오데트 인사드리렴. 현세 사업 안건을 도맡아주시는 윌리엄 씨 란다. 워낙 어릴 때 뵌 거라 기억 안 나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딜 아가씨, 오데트 아가씨.”

““안녕하세요.””

쌍둥이는 언제 떠들고 있었느냐는 듯 예법을 지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윌리엄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알비레오를 바라보았다.

“두 분 모두 아리땁게 자라셨군요. 무척이나 총명해 보이십니다.”

“그럼요, 제가 누군데요. 알비레오 제머나이라고요?”

노집사와 장모님은 소소한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이따금 이런 장면을 볼 때면 마녀가 마녀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계승과정에서 이별의 아픔을 알고 시작하는 마녀들.

그런 마녀들에게 속도가 다른 시간선을 살아가는 인간과 가까워지는 건 참 씁쓸한 일일 것이다.

“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지자체에 교통통제 협력을 받아두었으니 쾌적하게 모실 수 있을겁니다.”

정중히 문을 열어 에스코트한 그는 운전석으로 향했고.

시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리무진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었다.

“우와.”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쌍둥이의 호화마차 현실판 같다.

물론 공간확장 마법 같은 건 걸려있지 않았지만 데네브, 알비레오, 오딜, 오데트, 아멜리아, 엘로아, 르뤼에, 시우까지 총 8인이 아주 여유롭게 누워서 갈 수 있을 법한 실내크기.

리무진이 그런 용도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캠핑카로 써도 괜찮을 것 같다.

고급스러운 목재바닥과 실내 한쪽의 와인 셀러, 붉은 커튼과 쁘띠한 샹들리에까지.

이 정도 되는 시설이라면 전에 시우가 부숴 먹은 벤틀리와 가격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엔진음도 거의 들리지 않고 승차감도 이루 말할 것이 없다.

알비레오와 데네브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편히 자리를 잡고 칠링 중이던 샴페인 한 병을 꺼내 들었고,

세쌍둥이는 지하철 바깥 풍경을 보는 것처럼 등받이를 안고 실외 풍경을 보는 중.

아멜리아는 현세의 탈것에 놀이공원 때 트라우마가 발동한 것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시우의 옷깃을 잡는 중.

의외로 스승님은 굉장히 태연했다.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있을 뿐이시다.

“스승님,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린네와의 문제로 서먹서먹한 재회였더랬지.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았다.

아마 스승님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마구마구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데 중간에 문제가 끼어서 강제로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 말이다.

시우와 묘하게 떨어진 자리선택이 그를 증명했다.

“과거에도 많이 타보았네.”

“하긴 그렇겠네요.”

위치포인트를 설립해 정계와 게헨나의 핫라인을 이어준 당사자기도 하고 호문쿨루스와 공적 토벌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스승님이니….

이 정도 대접이라면 많이 받았을 수도 있겠다.

“…….”

“…….”

하지만 대화는 거기까지 사람이 많아 그다지 티는 나지 않았지만 뚝 끊겼다.

“시우, 여길 보게.”

그것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엘로아는 시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동시에 분홍빛 마력과 함께 시우의 몸에 깃드는 힘.

엘로아의 계약 마법 중 하나인 ‘수호자의 계약’이었다.

이만한 인원과 전력이 있더라도 현세에 나왔으니 빈틈없이 준비하는 것이다.

저번 사막에서는 누가 농간을 부렸는지 맥없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엘로아가 개량을 거듭해 체결을 단단히 한 상태였다.

“아, 감사합니다.”

“제자를 위해서 하는 일일세.”

무뚝뚝한 말투로 답한 엘로아는 다시 돌아가 자리로 앉는다.

역시 스승님은 스승님대로 여러 문제로 심란해 보였다.

“아.”

그러던 중 불현듯 떠오른 사실.

저 노집사의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린 시우.

워낙 오래전에 본 거기도 하고 이미지 차이가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었다.

“데네브 님.”

“네, 시우 군.”

알비레오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화색이 되어 시우를 바라보는 작은 장모님과.

“시우 군, 데네브에게 말 걸지 마세요. 물어볼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세요.”

철벽을 치는 큰 장모님,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가 저 집사분을 타임즈 잡지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세계를 바꾼 100명의 CEO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에서, 그것도 꽤 상위권에서.

“맞아요, 윌리엄 노드하우스 본인이에요. 현세에서 저희 백작가의 업무 대리를 맡아주고 있죠.”

“…….”

“처음 거두었을 땐 가판에서 사과를 팔던 소년이었는데. 세월 참 빠르네요, 후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경이로운 제머나이 백작가의 재력과 권력을 확인하는 사이.

리무진은 순조롭게 광화문 인근 페리윙클 호텔로 들어섰다.

2.

가장 좋은 객실에 짐을 푼 이후 즉각 ‘샤론을 되찾자’ 작전 계획에 즉각 돌입했다.

애초에 관광이 아닌 그걸 위한 현세행이었으니 말이다.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샤론에게 무릎 꿇고 다시 돌아와 줘!!! 를 외칠 시우.

그녀를 두고 단독 작전을 꾸린 점에 대해 사과해야 할 아멜리아와 엘로아.

그리고 ‘당연히 우리도 가야지 조수님! 무슨 말이야?’, ‘샤론 언니는 저희의 라이벌이라구요! 이대로 전선에서 물러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라는 주장 하에 쌍둥이까지 포함되었다.

하지만 타카쇼의 응원 덕에 가슴까지 차올랐던 자신감도 신축 오피스텔에 가까워지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찌그러진다.

샤론과의 추억이 곳곳이 새겨진 거리.

그 사이를 거닐 때마다 방긋방긋 웃고 있던 샤론의 모습이 떠오르는 한편, 싸늘하게 돌아섰던 어젯밤 샤론이 오버랩되었던 까닭이다.

“시우, 괜찮아요?”

“네?”

“얼굴이 창백해요.”

잘 생각해보면 그냥 행복회로를 태우고 있는 건 아닐까?

샤론은 이미 마음을 굳혔는데 우르르 몰려와서 ‘사실 네 진짜 마음은 그런 게 아닌 걸 알아!’라고 말하는 거라면….

그거야말로 정 싹 떼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거 아닌가?

“아, 네. 괜찮습니다.”

“정 힘들면 다시 오는 건 어떤가?”

“아뇨, 그럴 수는 없죠.”

사실 안 괜찮다.

불안해 뒤지겠다.

이런 경험을 또 할 바엔 차라리 목숨 건 일전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차분히 마음을 고른다.

해야 할 말이라던가, 꼭 잊지 않고 해야 할 사과, 앞으로의 개선 사항 등등을 되짚으며 말이다.

무거운 침묵 속 현관 앞에 도달한 시우.

큰 장모님의 말에 따르면 오늘 샤론이 이 오피스텔에 들어온 건 확인되었다고 한다.

즉, 이 늦은 새벽에 어디 갔을 리는 없고 이 문 바로 뒤에는 샤론이 있을 것이다.

초인종을 눌러야 하나?

아니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나?

아니지, 도어락을 누르면 거기부턴 그냥 스토커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 초인종을 눌러야겠거니 할 때 들리는 익숙한 다이얼 소리.

-삑삑삑삑삑 삑삑삑!

-삑삑삑삑!

“언니, 그거 아닌 것 같아. 거봐 틀렸잖아. 1321238815 이게 맞다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니까? 그건 완전 틀린 번호야.”

시우의 떨리는 눈동자에 아웅다웅 거리는 쌍둥이의 모습이 비친다.

쌍둥이는 살짝 무릎을 쪼그려 도어락 비밀번호 맞추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끄어어어….”

시우가 정체불명의 신음을 내뱉는 사이.

-띠리릭

“3743833991.... 봐봐, 언니 말이 맞지?”

“그럴 리가 없는데 뭐지? 전엔 분명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딜의 트라이에 경쾌한 신호를 내며 철커덕 열린 도어락.

오딜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조수님도 참 칠칠치 못하다니까?"

“맞아요, 저희는 한번 왔던 것도 기억하는데.”

“자, 가서 샤론 언니를 데리고 오는 거야!”

“조수님 파이팅!”

변변한 마음의 준비도 못 하고 툭 오피스텔 안으로 들이밀어 진 시우.

불이 꺼진 오피스텔은 제법 오랜만에 찾는데도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처럼 익숙하다.

“…….”

그리고 실내공간보다 더 익숙한 돌핀팬츠와 나시티 차림의 샤론이 캔맥주를 들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시우를 벌겋게 부은 눈으로 바라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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