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52화 (752/917)

#752

1.

정처 없이 걷던 샤론은 어느덧 신촌 인근을 거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익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시우와 함께하던 생활반경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불빛이 샤론을 반긴다.

“여긴….”

번화가에서 살짝 빗겨나간 곳에 있는 빌라촌이자 샤론의 옥탑방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결계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다른 곳으로 빙 둘러갈까 고민하던 샤론.

그러나 펑펑 울고 나니 속이 좀 풀리기도 하고,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당장 막대한 빚이 다시 생겨나지 않았는가?

일단 익숙한 서울을 거점으로 두고 호문쿨루스 토벌을 위해 부지런히 반경을 넓혀 나가야지.

“좋아, 뭐 별거 있겠어?”

이별 문제에 관한 건 잠시 내려놓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쥐어짜 낸 샤론은 입술을 꾹 물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긴 여전하다.

젊음의 거리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은 후줄근한 건물과 노포. 1, 2층을 상가로 내어준 빌라.

이 늦은 밤까지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 창문이 열린 감성주점에서 흘러나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뭔가 익숙한 활기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어쩐지 포지티브한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옛날엔 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호문쿨루스를 수색하기도 했고, 전단을 붙이기도 했고….

샤론과 시우의 밤 산책 코스이기도 했다.

그를 만나게 된 이후엔 언제나 혼자하던 호문쿨루스 추적도 전단지 붙이기도 함께 하게 되었다.

“…….”

무심코 발걸음을 재촉하던 샤론은 한 간판을 보고 우뚝 섰다.

‘대게, 킹크랩, 랍스타 쪄드립니다 포장 가능’라고 적힌 간판이었다.

뿌연 증기가 뿜어지는 킹크랩 가게를 발견한 샤론은 망연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샤론에게 현세 생활 조언을 듣는 대가로 시우가 처음으로 밥을 사주었던 가게이다.

그 덕에 현세에 나온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끼 5만원이 넘는 식사를 했더랬지.

그날 이후 샤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킹크랩이 되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여전히 성업이다.

공복을 달구는 고소한 갑각류 냄새가 연기라도 되는 양 콧날이 시큰거리게 했다.

“처, 처음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잖아….”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다짐이 꺾인다면 언젠가 바보처럼 시우를 향해 달려갈 것이 뻔하다.

그 뒤로는 또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겠지.

아아아주 만약 그의 앞에 다시 서게 된다면 최소한 21 위계로 거듭나자고 굳게 다짐한 샤론이다.

“아니지, 무슨 말 하는 거야…. 이제 끝인 건데.”

돌아가지 않을 심정으로 모진 말도 왕창 내뱉고 왔다.

뒤늦게 그에게 되돌아간다는 조그만 가능성을 머리에 두는 것조차 이기적인 행위이다.

이별로 협박하며 더 사랑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철부지와 다를 게 무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잡념을 떨쳐낸 샤론은 무거워진 발걸음을 재촉했다.

빌라촌을 벗어나 젊음의 거리 쪽으로 나오자 길거리가 한결 깔끔해졌다.

눈에 익은 건물이 보였다.

호문쿨루스가 나타나 난동을 부렸던 백화점이었다.

샤론의 마녀 생에 처음으로 마주한 위험이었다.

그 거대한 어미 개에게 쫓기고 쫓겨 로터리 쪽까지 도망치고, 결국 기지를 발휘한 시우가 건물을 무너뜨려 그 하중을 이용해 토벌했었지.

그때는 정말 명줄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것처럼 무서웠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뭔가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시우 생각.”

사실 하지 않는 게 더 어렵다.

이 거리 어느 곳이건 그와 함께하지 않았던 장소가 없으니까.

일년만에 재회한 거리는 샤론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신기루처럼 추억이 한 송이씩 피워낸다.

가령 저 길목 백화점 지하 1층 식품 코너는 장을 보고 두 손 가득 봉투를 들고 있는 두 사람.

‘오늘은 내가 요리해볼게. 비록 밀키트지만!’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아냐아냐, 네 집에서 머무는 대신 집안일은 내가 하기로 했잖아.’

‘에이, 그렇다고 어떻게 너한테만 시키겠어.’

시우의 등위로 샤론이 폴짝 뛰어 업히거나 하는 모습을 끝으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던 뒷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진다.

가령 단둘이 스티커 사진을 찍었던 가게.

항상 번쩍이는 오렌지빛 조명과 큰 음악 소리가 들리기에 눈여겨봤었지만 사진 한 장에 오천 원이라는 쇼킹한 가격 탓에 구경만 하던 가게였다.

‘와, 시우야 너 눈 엄청 크게 나온다.’

‘뭐야 무서워, 눈이 얼굴 절반인데?’

‘뽀뽀하는 사진도 하나 찍어보면 안 될까?’

큰 마음먹고 샤론이 지갑을 열었는데 묘하게 보정이 과장되어 들어갔기에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있다.

오천 원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오천만 원짜리 행복한 시간이었으니까.

가령 저 3층짜리 오락실.

‘보기보다 잘하는데?’

‘엣헴! 그럼! 이래 봬도 견습마녀 때 테니스 엄청 쳤었거든?’

‘한 판 더 가능할까요?’

‘많이 배웠습니다. 한 수 부탁합니다 누님, 이라고 하면 해줄게!’

심심할 때마다 찾아와 다트나 에어하키를 하며 내기를 하곤 했었다.

거의 대부분은 샤론이 이겼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우는 항상 샤론을 봐주었을 것이다.

그의 동체시력과 신체능력은 샤론보다 훨씬 우월할 테니, 그렇지 않았더라면 승률이 0%로 수렴했겠지.

가령 저 눈꽃빙수 집.

다른 음식만큼은 배달을 시켜먹는 경우도 잦았지만, 디저트인 빙수만큼은 반드시 매장을 찾곤 했다.

그 편이 얼음이 더 사각사각하고 모양도 예쁘니 말이다.

‘그만하지 않을래? 알바가 아까부터 보는데.’

‘내가 너무 예뻐서 보는 거니까, 홀라당 뺏기기 싫으면 나한테 잘 맞춰라?’

샤론은 고집을 부려 언제나 시우에게 빙수를 떠먹여 주었고 그는 그때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묘한 고집을 계속했던 것 같다.

“…우리 빙수나 먹고 갈까? 오랜만에 옛날 떠올리면서.”

고약한 농담을 하듯, 당연히 옆에 있어야 할 사람에게 제안하듯.

샤론은 말했다.

“백화점은 닫았으니까 아쉽지만 패스하고, 저기 게임 센터에서 내기하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그치?”

당연하게도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울먹임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문 샤론.

어느덧 한 아름의 추억 다발이 되어버린 거리 위로, 쓰라린 향기가 너무 자욱해진 나머지 샤론은 도망치듯 등을 돌렸다.

2.

신촌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신축 오피스텔.

샤론이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이 있는 건물이자, 두 사람의 신혼방이었던 장소기도 했다.

그렇기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1층 공간마저 사연이 있는 장소였다.

불법 건축물 철거 탓에 쫓겨난 샤론이 1층 계단에서 웅크려 울고 있을 때 시우가 동거를 제안했던 장소니까.

“청승 그만 떨자 샤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익숙해 져야 하는 일이다.

오랜 세월 곱씹을 실연의 통증을 속성으로 농축해 감내하고 새 삶을 찾는다.

그걸 위해 굳이 시우와의 추억이 가득한 신촌으로, 오피스텔로 돌아온 게 아니던가?

샤론은 정신이 번쩍 들 때까지 뺨을 짝짝 두드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직 바뀌지 않은 도어락 번호, 익숙한 다이얼 소리를 들으며 발을 들인다.

“와, 생각보다 그대로네?”

어쩐지 기뻤다.

만약 아주 황량하게 텅 빈 방이 되어 있는 것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살던 때와 거의 차이가 없다.

생각해보니 이 저택은 제머나이 저택에서 시우에게 빌려준 안전 가옥 같은 느낌이라고 들었다.

가구나 생활용품이 채워진 채 관리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역시 집이 마음 편하다.”

사실 신축 오피스텔이라 해봤자 객실 하나하나가 특급호텔에 비견되는 제머나이 저택의 별채에 비하면 그저 그렇다.

그럼에도 이 낮은 천장과 익숙한 벽지,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어찌나 반가운지 샤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소파 위에 몸을 던졌다.

여기서 팝콘이랑 맥주 들고 같이 영화 한 편 보면서 끝날 때 즈음 쪽쪽 키스했었지.

그보다 더한 것도 가끔, 아니 꽤 자주 했었다.

“…….”

기분이 이상하다.

좋아졌다가 최악으로 내리꽂기를 반복한다.

조울증 환자가 돼 버린 것 같다.

“일단 자자.”

그래.

너무 오랫동안 잠을 안 잔 상태여서 그런 거다.

이젠 시우도 무사하니까 편안히 발 뻗고 자는 일만 남은 거다.

그렇게 가볍게 몸을 씻고.

몸을 씻는 동안 시우와 함께 샤워하곤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둘이 함께 눕던 침대에 눕고.

침대에 누워서는 혹시나 베개에 남은 시우의 냄새가 없을까 무심코 코를 파묻는다.

당연히 남은 체취는 없었다.

“히끅….”

베개에 얼굴을 파묻던 자세 그대로 샤론의 어깨가 들썩였다.

처음엔 잔잔했던 떨림은 이내 풍랑에 몰아치는 파도처럼 커다랗게 흔들렸다.

“나는…. 거짓말쟁이야…!”

말끝마다 시우를 위해서, 자신만 없으면 그가 행복할 수 있으니까를 입에 담는다.

마치 그를 배려하는 것처럼, 모든 결단이 시우를 위한 것인 양 위선을 떨어댄다.

하지만 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얄팍한 위선이 드러나지 않게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샤론의 선택에는 시우를 위한 마음뿐만이 아니라 이기심도 분명 들어 있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위기에 처하니까.

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바라봐야 하니까.

힘들었다.

지쳤다.

하루하루가 뜨거운 숯을 삼키는 듯한 나날이었다.

시우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만큼, 그 순간들은 지옥보다도 버거웠다.

그래서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홧김에 단정했다.

시우를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이런 일이 있어도 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없는 편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둥 비극의 여주인공인 양 꼴사나운 자조와 함께 도망쳤다.

시우가 옆에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일 줄은 몰랐다.

그가 인생을 이렇게 가득 채우고 있을 줄은.

그 자리를 비워내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약해빠진 것도 모자라 이별 선언에서까지 형편 좋은 이유를 찾으려 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꼴사나웠다.

“흐아아앙! 후에에엥…! 시우야…! 보고 싶어…. 보고싶어, 흐아아앙!”

줄창 목놓아 오열하던 샤론은 베개를 끌어안고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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