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42화 (742/917)

#742

1.

아무리 아멜리아라도 저 수를 모두 상대하는 건 무리다.

시우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면 일을 그르칠 것이 뻔한 일.

따라서 아멜리아는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도로시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최대한 기다리다 적의 시선이 앞으로 쏠렸을 때 뒤에서.

어느 하나를 무력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광범위한 마법으로.

도로시의 조언을 받아들여 간섭한 아멜리아의 마법은 타이밍도, 방법도 완벽했다.

난데없이 흩뿌려진 빗줄기에 혼란이 온 공적들.

사실 마법 자체에는 살상력이 없었다.

그저 방어마법과 자율방어를 침식하는 호우를 쏟아 내렸을 뿐이니 파동에 맞춰 꽃을 피워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효과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저들은 불신하는 자들 사이에서 갑작스레 갑옷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다.

존재하지 않는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눈을 살벌하게 뜬 채 서로 노려보는 것이다.

벌써 몇몇은 빗줄기의 얼개를 파악하고 자율방어를 재활성화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시우!!!”

아멜리아도 도로시도 알고 있었다.

탈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문이 닫혔으니 현세로의 탈출도 요원한 일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시간을 번 것은 그가 위기에 처한 걸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던 시우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시우도 아멜리아를 식별할 수 있었다.

“아멜리아 님?”

시우의 품에 나비처럼 안겨드는 아멜리아.

그의 널따란 가슴팍에 뺨을 비빈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보고 싶었어요.”

이번에야 말로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헥센나흐트는 공적의 도시었고, 이미 한번 탈출 계획이 어긋났었으니 말이다.

이제 막 무의식의 공간에서 벗어난 시우는 난데없는 아멜리아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그녀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키스해주세요.”

“웁!”

두 사람의 이빨이 부딪칠 뻔한 만큼 격렬한 키스.

이제는 정말 남은 희망이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와 입을 맞추고 있다면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을 그의 옆에서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뭐야~ 질투 나게.”

정신을 잃은 린네를 품에 안은 도로시가 두 사람의 뜨거운 키스씬을 보고 휘파람을 불며 웃었다.

“도로시님도 계셨군요.”

“너무하네, 난 보이지도 않았다 이거야?”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삐진 시늉을 해 보이는 도로시.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투정을 받아줄 시간이 없었다.

가까스로 계단을 오른 탓에 겨우 손에 쥔 영감이 휘발하기 전에 마법을 구축해야 했으니까.

-우우우웅!

붉은가지의 왜곡장을 한껏 펼쳐낸 이후 그것을 극점에 집약했다.

노리는 건 단 하나, 도주로 확보.

“마침 잘 합류해 주셨네요. 도망치겠습니다.”

“도망이요…?”

“도망?”

도로시와 아멜리아는 잠깐 멍해졌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곳이 사지라는 걸 각오하고 들어선 두 사람이다.

새삼스레 뒷일을 생각하고 돌입한 독의 밑바닥이 아니라는 의미다.

창을 휘리릭 돌려 투창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천사의 고리와 시우의 거듭 증폭을 가동한다.

“다들 문으로 달릴 준비 해주세요. 만약 실패한다면…. 원망은 달게 받겠습니다.”

본격적인 자세까지 취하고 마력을 끌어올리는 시우의 모습을 보며 이게 농담이나 허풍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일행들.

“시간은 20초 정도일 겁니다.”

이곳에서 문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km.

한가지 마법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애석하게도 좌표이동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마녀라면 손쉽게 주파 가능한 거리 대비 시간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정말 마지막 희망이다.

“후읍…!”

시우는 창을 쥔 자세 그대로 전신의 힘을 끌어올려 문을 향해 내던졌다.

문에 간섭하는 ‘왜곡’을 품은 한 자루의 창이 불타오르는 도시와 바다와 맞닿은 절벽을 가로지른다.

물리적으로 제법 긴 거리를 비행함에도 한 점의 흐트러짐이 없는 직선이 거대한 문의 정 중앙에 다트처럼 꽂혀든다.

잠시후.

-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태엽장치가 구동하는 듯한 소리가 도시에 한가득 채워진다.

케테르 이외에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고 알려진 문이 강제로 그 틈새를 벌린다.

소용돌이 치듯 일렁이는 바다.

정중앙에 생겨난 직경 10M 남짓의 공혈 뒤로 보이는 하얀 백사장은 시우가 계산한 마법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를 뜻했다.

“달려요!”

갑작스레 생겨난 거대한 진동에 소요가 일었던 공적들의 시선이 문을 향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꼼짝없이 사로잡았다고 한 사냥감이 독의 밑바닥을 뚫고 도주하려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시점에서 갈등이고 대립이고 의미 없었다.

우선 전리품이 있어야 분배도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쫓아. 죽여도 좋으니깐 현세까지 추격해.”

리디아의 지시하에  어영부영 공중에서 머물던 솔리두스 상단 소속 마녀들이 일제히 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에 질세라 클리포트 소속의 마녀도 뒤를 쫓는다.

문을 벗어나는 걸 막기는 힘들 것이다.

벌써 그들의 실루엣이 문밖으로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직 현세로 통하는 균열이 남아있었다.

시우도 이런 식으로 관념을 사용해 문을 열어보는 건 처음이기에 여닫는 걸 마음대로 설정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리디아를 비롯한 수십의 공적이 균열이 닫히기 전 현세로 따라나서는데 성공했다.

널따란 모래 해변 위.

아직 게헨나로 들어서지 못한 쥐새끼들의 모습에 리디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게헨나의 시민권은 깨끗한 수면만 있다면 현세 어디서든 입국할 수 있지만 약간의 사전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에 맞췄다.

전력비는 보시다시피 헥센나흐트 쪽이 압도하는 수준.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시나?”

리디아의 손 틈 마디마디에서 네 개의 금화가 찬란한 빛을 발한다.

다소간의 소모는 있겠으나 그 덕분에 저 많은 대마녀를 모두 사로잡을 수 있다면, 설령 공을 강경파와 나누게 된다 하더라도 이득이다.

난처함에 쩔쩔맬 줄 알았던 시우는 리디아의 말에 응했다.

“집에 가야죠.”

“누가 보내준대?”

지금 본인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최후의 교섭 같은 것을 기대했던 리디아로선 조금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감히이이!!! 공적 떨거지 년들이!!! 짐의 국서를 핍박하려 드는 게냐 아아?!!!!”

그때 기차 화통 같은 쩌렁쩌렁한 노호성이 하얀 백사장을 가득 덮쳤다.

“깊게 잠겨라!”

뒤이은 영창과 함께 검은 파도가 솟아난다.

높이를 논하자면 수백 미터.

그 안에 내포된 마력의 방대함은 측정이 어려운 수준.

인류 기록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대한 해일이 사방에서 무뢰배를 짓누르기 위해 치솟는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박력은 여타 마법에 비견하기 어렵다.

“심해의 마녀…?”

그 마법의 특이성을 알아본 몇몇 마녀들.

하지만 심해의 마녀가 부리는 마법의 특이성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오오오오오!

-쿠우우우우!

-뀨우우우!

하늘 끝까지 치솟은 검은 파도의 안에 엿보이는 거대한 사역마의 그림자.

각기 전설 속 바다 괴수의 형태를 취한 그들은 여왕의 앞에 선 적을 향해 일제히 포효한다.

“뭘 놀라고 있어. 전리품 하나가 늘어난 것뿐이잖아.”

리디아는 빠르게 소요를 진정시켰다.

설마하니 여기서 옛마녀 중 하나인 심해의 마녀가 등장할 줄은 몰랐지만, 이만한 전력이라면 능히 감당하고도 남는다.

“울어라.”

거기에 파도의 그림자의 덮인 섬 위로 내리는 여우비.

헥센나흐트에 광범위하게 흩뿌릴 때와는 비교불허한 ‘위대함’을 지닌 비가 작은 무인도 위를 뒤덮는다.

단순히 방어 마법을 깎아내는 용도였던 일전과는 달리, 직접 영체를 파고들려 하는 입자의 움직임.

그 안에 담긴 힘은 간접적으로 술자의 역량을 예측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공적들의 발길을 붙잡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계약한다.”

모든 공적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영창.

이 소란을 뚫고도 확실하게 시인되는 한 소절의 영창과 함께 검을 쥐고 등장한 인물은….

분홍빛 마력 반사광을 흩뿌리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엘로아 티페레트 공작이다.

흉흉한 살기로 번뜩이는 눈빛은 ‘너희 중 한 명은 반드시 데려간다’라고 으름장을 놓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을 터다.

23위계인 것도 모자라 모든 마법이 전투를 위한 세팅.

더군다나 수백 회에 가까운 전투를 거치면서도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대마녀 전의 최강자.

그것이 티페레트 공작이니까.

“분홍 공작까지?”

“이런 말은 없었잖아!”

그녀의 등장이 불러일으킨 소란은 두말할 것 없었다.

공적에게 티페레트의 존재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공포의 대상이다.

이리하여 단순 전력만 놓고 본다 해도 23위계가 셋.

그럼에도 전력적으로는 아직도 헥센나흐트 측이 한참 우위이다.

지금 당장 현세로 나선 23위계 마녀만 두 명.

22위계가 7명.

그 아래 대마녀가 26명이 아닌가?

헥센나흐트의 핵심 전력에서 추려내어 쫓아온 만큼 정면으로 붙는다면 다소간 피해를 감수해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더불어 두고두고 후환이 될 티페레트 공작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기다려. 상황을 살펴.”

그럼에도 리디아는 손을 들어 돌격을 저지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남자 마녀를 쫓아 현세로 나왔더니 티페레트 공작이 기다리고 있다?

일련의 상황이 너무도 작위적이다.

만약 이것이 게헨나의 침공 준비라면?

애초에 덫을 놓고 헥센나흐트 측의 핵심 전력이 이격되는 상황을 유도한 것이라면?

이런 리스크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쿠구구구구궁!!!

높게 들이치던 파도가 작은 섬을 조각낸 이후.

리디아는 바짝 긴장한 채 주변을 살폈다.

“…빌어먹을.”

리디아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신시우를 포함한 다른 마녀들이, 심지어 티페레트 공작의 모습까지 포함해, 자취를 감춘 까닭이다.

그들이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명명백백했다.

“…철수한다.”

닭 쫓던 개꼴이 된 리디아는 이를 갈며 솔리두스 상단에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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