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39화 (739/917)

#739

1.

“흑색의 마녀가 누군데?”

즐라타의 입에서 의아하다는 듯 흘러나온 말.

그 말을 듣자마자 시우는 정체불명의 한기를 느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본능적 직감에 가까운, 흔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기를.

왜냐하면 즐라타의 표정에서 아주 조금의 농담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아무리 장난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견습마녀를 잃고 온종일 슬퍼하는 마녀를 농담거리로 삼을까?

여태 지켜본바 즐라타가 그 정도의 악질은 아니다.

오히려 경우를 지키는 쪽에 가까웠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죠?”

그런 직감을 부정하고자 린네 쪽을 바라보는 시우.

어느새 옷을 갖춰 입은 그녀가 이 기현상에 뚜렷한 답을 내려주기를 바랬다.

“…….”

그러나 린네 역시 시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아미를 찌푸리고 있을 뿐이다.

즐라타와 달리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지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잠시만 비켜요.”

여태 장롱 옆에 기대어 세워두었던 붉은가지가 시우의 손으로 빨려들듯 날아온다.

달리듯 계단을 내려가 마마와 피나가 머물던 방으로 달렸다.

뭔가 일이 더럽게 꼬여가고 있다.

그 생각만이 경종처럼 머리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벌컥!

“…….”

본래 창고용도로 쓰던 방에 허름한 방안.

그 안에는 마마가 피나를 끌어안은 채 하염없이 그 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주위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 모습은 여느 때와 같다.

마마는 즐라타의 저택에 머무는 내내 언제나 저랬다.

비탄과 슬픔에 잠식되어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것처럼 간혹 시우가 상태를 보기 위해 문을 열어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뭐, 뭔데? 쟨 누구야?”

“…….”

헐레벌떡 달려가는 시우의 뒤를 따라온 즐라타와 린네도 놀란 눈치이다.

원래부터 없던 존재가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 방을 내어준 건 즐라타 본인.

더불어 마마의 목줄을 제거하고 힘들게 챙겨 온 사람은 린네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노이즈가 발생한다.

아니.

정말로 힘들게 챙겨 왔던가?

로지의 저택부터 즐라타의 약재상점에 이르기까진 천운에 가까운 힘겨운 잠행이었다.

시우는 등에 업은 린네를 돌보고 은폐를 위한 합동 마법을 손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냐와 말리샤는 시우를 쫓아오는 것만으로 버거워했다.

하지만 마마가 어떤 식으로 동행했는지에 대한 부분만이 마치 도려낸 듯이 사라져 있다.

“당신 뭐야.”

시우는 창을 겨누며 물었다.

마마는 그런 시우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피나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입을 연다.

“진실과 거짓은 얇은 카드의 양면과 같아.”

이어지는 나른한 음색은 분명 마마의 것이지만, 전혀 다른 이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색이 달랐다.

닳고 헤진 천처럼 너덜너덜했던 음색에 싱그러운 독초 같은 생기가 맴돌았다.

“네가 보고 있는 건 진실일까?”

정체불명의 마녀는 시우와 눈을 마주했다.

불투명한 거울처럼 변해버렸던 눈동자가 지금은 기이할 만큼 투명하게 번들거린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그게 아니었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는데, 마마의 품에 안겨 있는 피나의 모습이 어린애가 좋아할 법한 어여쁜 인형이 되어 있다.

그 인형은 피나가 입고 있던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얄팍한 거짓일까?”

인형으로 빼앗겼던 시선을 위로 올리자 보이는 건 더는 칠흑의 마녀가 아니다.

풍성한 금발과 잔혹한 미소.

온갖 아티펙트를 활용해 시우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공적 비앙카 벨릴리이다.

“어때 재밌지?”

그녀는 인형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웃는 표정, 말투, 몸짓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비앙카와 완벽하게 흡사한 마녀의 변모.

-붕!

시우는 더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상대의 정체를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마녀 역사상 가장 많은 혼란과 파멸을 야기한 장본인.

속삭임의 마녀.

무슨 꿍꿍이로 저런 수작을 부리는진 모르지만 적어도 선의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호흡을 맞추는 린네.

허리춤의 검을 순식간에 뽑아들고 릴리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외부로 유출될 만큼 큰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좌우에서 쇄도하는 검격과 창격은 날카롭기 짝이 없다.

“쯧, 쯧, 쯧.”

그러나 릴리스의 목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확실히 판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린네의 검과 시우의 창은 각기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릴리스는 자세도 고쳐앉지 않은 채 느릿하게 혀를 찼다.

“무슨 꿍꿍이냐. 릴리스.”

“린네, 미안한지만 이번엔 너한테 볼일 없어.”

적의를 담고 꿰뚫어오는 린네의 시선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릴리스.

“칠흑의 마녀는 어디 있지?”

사고에 혼선이 온다.

흑색의 마녀는 언제부터 릴리스 였던 것일까?

또 피나는 언제부터 인형이었던 것일까?

“알고 싶어?”

잔망스러운 미소를 짓던 릴리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기억의 역류가 시작되었다.

극장에 들어선 것처럼.

로지의 컬렉션 룸에 들어섰을 때의 기억이 제 3자의 시점에서 관측하듯 재조명된다.

‘어서 들어오라니까?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니야.’

로지는 잔뜩 들뜬 음색으로 손짓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우가 오지 않으면 이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양 채근하는 로지 탓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 마마 어때? 예쁘지?’

로지는 마치 커다란 곰 인형을 껴안듯 마녀를 뒤에서 안은 채 뺨을 비비며 물었다.

아니다.

로지는 ‘커다란 곰인형을 껴안듯’이 아니라 커다란 곰인형 그 자체를 안고 있다.

“뭐야.”

이어지는 기억은 로지의 마지막 컬렉션의 정체를 깨닫고 충격을 받은 시우의 시점.

‘피나, 잘 지냈어? 요즘엔 같이 안 놀아줘서 섭섭했지?’

내팽개쳐둔 인형을 다시 안아 드는 아이처럼 로지는 피나를 앉혀 세운 뒤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었다.

헝클어졌던 머리카락도 빗으로 쓸어내린다.

그 인형의 외형 역시 지금 마룻바닥을 뒹구는 피나 인형과 완벽히 똑같았다.

누구보다 큰 혼란을 느끼는 시우에게 릴리스는 빙그레 웃으며 위화감에 쐐기를 박는다.

“흑색의 마녀과 그 견습마녀는 이미 죽었어. 200년 전에 말이지.”

그렇다면 로지가 10년 동안 모녀에게 부렸던 패악질은 인형놀이에 불과했던 것인지.

로지를 속인 당사자가 릴리스인 것인지.

도대체 어떤 술수를 부렸길래 이리도 많은 넷이나 되는 대마녀를 쉽게 속여넘길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러나 릴리스는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혼란을 음미하듯 당혹감에 젖은 시우의 얼굴을 관찰할 따름이다.

“나는 케테르가 정말 싫어. 하지만 네게는 썩 흥미가 있어.”

경계를 표하는 시우에게 릴리스는 선뜻 호의적인 말을 건넸다.

“그러니까 간단한 시험만 해보고 보내줄게.”

릴리스의 손이 하늘을 향한다.

겉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시우의 귓가에 흐르는 진동음은 기시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이이이익!

그것은 마치 거대한 활대를 당기는 듯한 소리.

비앙카의 예장인 하늘을 쏘는 할 ‘아크하트의 활’.

워낙에 광범위한 마법이라 좁은 저택의 내부에서는 관측할 수 없었지만, 활시위는 분명 천공을 향해 당겨지고 있다.

“쏘아라.”

속삭임의 마녀가 비앙카의 모습으로 비앙카의 영창을 읊는 순간.

————!!!!!

충격파의 영역에 다다른 굉음이 폐부를 울렸다.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 이후에 2층부터 깔끔하게 사라져 하늘이 보이는 저택.

수직 도시 헥센나흐트의 최심부에서 발출된 아크하트의 활은 거대한 직선의 파괴를 그리며 도시를 관통해 하늘 높은 곳까지 치솟는다.

난데없는 일격에 휘말린 저 위계 마녀 몇몇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갈려나간다.

“그러니까 잘 도망쳐 봐.”

“이 미친년.”

이건 신호탄이다.

최근 도시를 흉흉하게 만드는 만악의 근원이 이곳에 있으니 어서 잡아가라는 신호탄.

-까각 까가각

불과 10초도 지나지 않아 부서진 지붕 틈새로 손바닥만 한 꼭두각시 인형이 날아 들었다.

원숭이를 닮은 인형의 붉은 눈이 린네와 시우를 보고 있다.

시우는 붉은가지를 휘둘러 귀 아프게 딱딱 소리를 내는 꼭두각시를 박살 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가뜩이나 린네와 남자 마녀를 포획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판국이다.

꼭두각시 하나를 제거하는 것으로 존재를 은폐하기엔 너무 많은 감시의 눈길이 뻗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혼령과 유령에 의해, 박쥐에 의해,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 정령에 의해, 나침판에 의해, 천리안에 의해, 인형에 의해, 예지에 의해, 마안에 의해, 식신에 의해, 사역마에 의해.

린네와 시우의 위치가 곧장 포착된다.

그 즉시 사방에서 눈을 번뜩이며 쏠리는 이목은, 그 자체만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띄운 채 사냥감을 내려본다.

“그럼 힘내봐.”

월식이 일어나듯 그림자가 몸을 가리는 순간 허깨비처럼 사라진 릴리스.

-고오오오오오!!!

시우는 박살이 난 지붕 틈새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마력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마안에는 전투 채비에 들어간 마녀가 내뿜는 형형색색의 마력장이 직관적으로 보인다.

마력장의 짜임새와 정밀함을 보았을 때 수십에 달하는 모든 마녀가 전원 20 위계 이상.

마치 파멸과 종말을 선고하는 별 무리처럼 시우와 린네를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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