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38화 (738/917)

#738

1.

23위계 3인방, 르뤼에, 엘로아, 아멜리아와 접선했던 도로시는 ’문’의 마법식을 손에 넣기 위해  헥센나흐트로 돌아왔다.

도로시와 시우 간의 긴밀한 커넥션이 있는 시점에서 3인방의 역할은 비중이 크지 않다.

마법식이 시우에게 전달만 된다면 차원마법식을 완성해 가능한 조용히 빠져나올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23위계가 셋이나 있다 해도 정면돌파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인질을 위험에 처하게 할 확률이 높았다.

그의 연인들 역시 이것을 알고 있기에 도로시가 부탁한 역할을 도맡아 주었다.

그 역할이라 함은 만에 하나 포탈을 넘어 현세까지 추적이 달라붙었을 경우 추격자를 요격해주는 역할이다.

헥센나흐트는 게헨나와 달리 현세와 이어진 통로가 10곳 정도로 한정되어 있으니 자리를 잡아 대기하는 것도 용이했다.

그러나 르뤼에의 보증이 있다 한들 도로시는 공적이다.

이처럼 중요한 작전에 키를 잡게 되었다 하여 무한한 신뢰를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중 한 명이 동행해 도로시와 함께 헥센나흐트로 들어가겠다는 제안했을 때.

도로시는 그다지 놀라지 않고 응했다.

전력적으론 티페레트 공작이 함께해주는 게 가장 든든하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유명하다.

마력 패턴까지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처럼 비밀공작을 수행하는 데는 부적격했다.

르뤼에는 가장 열렬히 이 임무에 지원하고 싶어했으나 도로시가 만류했다.

귀여운 공주님은 전투 경험도 마땅치 않았고, 또 조심성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소거법에 따라 자연스레 동행이 된 사람은 아멜리아 메리골드였다.

‘향수의 마녀’는 대대로 외부활동이 없다시피 했다.

그 말인 즉, 입국 시 보안 검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판별점이 되는 마력 패턴 조회에서 정체가 발각될 일이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별일 없을 테니깐.”

긴 입국 심사 줄을 지나치며 궐련을 피우는 도로시.

새로이 입국하는 공적 및 추방자와 달리 그녀는 신원이 보증되어있기에 빠른 입국 수속이 가능했다.

“…알았어요.”

아멜리아는 긴장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어루만졌다.

이 목걸이는 솔리두스 상단에서 비앙카와 협력해 개발한 물건.

마녀를 노예로 부리기 위해 마력의 활용 제한하는 아티펙트 ‘목줄’이다.

도로시는 그녀를 현세에서 포획한 노예로 소개해 유유자적 입국을 시도할 셈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어렵다.

행여나 아멜리아의 얼굴을 아는 마녀가 있을 수도 있었고, 그 노예가 23 위계라면 그것만으로 불필요한 이목이 쏠릴 테니 말이다.

그렇기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멜리아가 두르고 있는 베일이다.

도로시의 수녀복과 마찬가지로 절대력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아티펙트 ‘수도녀의 베일’은 착용자의 외모와 능력치는 위장한다.

여기서 가장 특별한 점은 이 베일이 도로시가 사용하는 ‘계시’와 마찬가지로 거의 아무런 마법적 전조를 보이지 않고 해당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현세에서 공적으로 살아가려면 하나씩은 필수로 갖춰야 하는 물건으로 본디 시우를 단독으로 빼낼 일이 생기면 사용할 예정이었다.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요?”

바짝 긴장한 티가 역력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던 아멜리아.

그러나 출입국 관리소가 가까워짐에 따라 불안함을 느끼는 모양인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을 거야. 내 자성마법은 일반적인 마법 검색으로는 간파할 수 없거든.”

하긴 긴장을 느낄 법도 하다.

아멜리아 입장에서 도로시는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고, 여기는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공적의 도시이니.

그를 고려한 도로시가 조금 더 상세히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헥센나흐트는 최~대한 빨리 몸집을 불려야 하는 상황이야. 그건 알지? 그런데 엄청 복잡하게 입국심사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 헥센나흐트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 도로 나오는 게 어렵지.

그리고 내 이름값이 여기선 좀 먹히거든.”

도로시의 호언장담대로였다.

“수속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7일 안에 시청에서 노예의 신원등록을 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응~ 고생해~”

도로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봤지?”

2.

시우와 만나기로 한 날은 하루 뒤.

마지막 코드를 순조롭게 입수한 도로시는 우선 아멜리와 함께 제 저택으로 돌아왔다.

“신발만 갈아신고 들어와.”

잔뜩 긴장했던 아멜리아도 아주 조금은 마음을 놓은 수 있었다.

게헨나와 비교하자면 규모 면에선 타로타운에 있는 타운 하우스와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옛 귀족들의 별장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게헨나와 달리 도로시의 저택은 현세 부자의 별장을 연상케 할 만큼 현대적이라는 것이다.

비단 도로시의 저택뿐만이 아니라 헥센나흐트 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아르카나 타운이 훤히 내다보이는 통 유리뷰는 시우와 현세의 호텔에 묵을 때 보았던 것과 비슷했으니 말이다.

시우와 함께했던 여행을 떠올린 아멜리아는 초조함에 휩싸였다.

듣기로 도로시는 그가 머무는 장소를 알고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 만날 수는 없는 걸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심장이 타들어 갈 것 같다.

“이거 좀 마실래?”

소파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멜리아의 코앞에 위스키가 담긴 잔이 내밀어 진다.

“이것 먼저 풀어주세요.”

“응응.”

목줄을 풀고 마력을 되찾은 아멜리아는 도로시에게 짧은 감사를 전했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 우리 역할은 어디까지나 그가 잘 탈출하는지 보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끼어드는 거니까.”

“꼭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조급한 마음은 자알~ 알겠지만, 검의 마녀는 눈치도 빠르고 의심이 많거든. 괜히 일정을 바꿨다간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도로시는 내심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콕 짚어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도시 전반에 술렁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겼다.

어쩐지 평소보다 디그니티 타운을 돌아다니는 대마녀 수가 많다던가.

경비체계가 다른 때보다 삼엄한 느낌이 든다던가.

그러나 확실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가중할 필요는 없다.

“마침 시간도 남는데 이야기나 할까?”

어차피 곧 도시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나갈 예정이었다.

그전에 아멜리아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어주기로 한 도로시.

소파에 걸터앉아 술잔을 홀짝이며 자연스레 운을 텄다.

“무슨 이야기 말인가요?”

“이것저것 궁금한 게 있을 것 같은데.”

“딱히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멜리아의 얼굴을 도로시는 꼼꼼히 뜯어보았다.

예쁜 건 둘째치고, 차가운 미녀 상이라고 해야 하나?

언제나 까불까불한 르뤼에와는 정반대에 있는 차분한 타입이었다.

더불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임이 분명했다.

저렇게 말하고 싶은 게 한가득 쌓인 표정으로 ‘딱히 없어요’라니.

“정~말 궁금한 거 없어? 친해지면 좋잖아? 앞으로 일주일은 같이 있어야 하는 사이인데.”

잠시 망설이던 아멜리아.

“왜 시우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요?”

“르뤼에가 말해줬잖아. 그는 내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고, 또 여러모로 빚진 게 아~주 많거든.”

원체 감정 표현이 없는 사람 같기도 해서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한차례 문답 이후 도로시는 아멜리아에게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던 원인을 파악했다.

아주 쉬웠다.

‘소중한 친구’라는 말을 하는 순간 아멜리아의 얼굴 위로 옅은 안도감이 스쳐 갔으니 말이다.

물론 아멜리아는 시우를 독점하려 드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도로시는 지금처럼 게헨나의 일원이 아닌 공적.

공적이라는 점에 대한 선입견 탓이 아니라, 만약 시우가 그녀를 따라 게헨나를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 불안함을 가속하는 건, 수녀복으로도 채 가릴 수 없는 도로시의 무시무시한 가슴.

“…….”

언뜻 소피아보다도 커 보이는 풍만함을 볼 때마다 은근히 콤플렉스를 자극받는다.

동시에 이런 긴박한 순간에 질투와 초조함을 느끼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생기는 바람에 두 배로 울적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흐음~”

그리고 능수능란한 도로시는 아멜리아의 미묘한 표정 변화만으로 얼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해는 간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이성만으로 움직이겠는가?

당장 도로시도 아멜리아, 엘로아를 보며 은근한 경쟁심과 질투심을 느끼고 온 판국이다.

“물론 보통 친구보다는 아~주 조금 더 긴밀한 사이긴 하지.”

“그게 무슨 말이죠?”

“엄~청 괴롭힘당하는 처지라고 할까? 정말이지…. 약점을 단단히 잡히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하고 당하고만 있다니까?”

갑작스러운 수위에 당황한 아멜리아.

도로시가 어떤 목적으로 저런 화두를 꺼낸 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안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아 죽겠는데 덜컥 시비가 걸리니 부아가 치밀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거죠? 시답잖은 대화를 할 바엔 차라리 명상을 하겠어요.”

“하지만 아~까부터 내 가슴 보던데.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갈 수가 있어야지.”

“안 봤어요.”

“아니~ 봤는데? 열다섯 번이나.”

“열 다섯 번까진 안 봤어요.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인데, 제 친구 소피아도 당신과 비슷해요. 그렇게 대단할 것 없다는 말이에요.”

“뭐, 그래그래~ 그럼 그건 됐고.”

잠시 위스키를 홀짝인 뒤 말을 잇는 도로시.

“그러는 너는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건데?”

“…사랑하니까요.”

아멜리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좋네.”

어떤 의미에서는 부러웠다.

사랑 같은 오글거리는 단어를 바로 입에 담을 수 있다니.

아마 도로시는 평생 가도 하지 못할 말일 것이다.

그렇게 순수하고 귀여운 말을 입에 담기엔 너무 순수하지 못한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도로시는 손을 뻗어 아멜리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까까지 죽상이더니 표정이 훨~씬 사네.”

“뭐, 뭐죠?”

“너~무 굳어있지 말고 느긋하게 있으라는 의미야. 이렇게 예쁜 나를 꼬실 만큼 수완 좋은 사람이 곤경에 빠져 있겠냐고. 어~쩌면 검의 마녀도 애인으로 데려올지도 몰라.”

그제야 아멜리아는 이것이 도로시 나름의 배려였음을 깨달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부정적인 상념이 머리에 열이 확 오르며 사라졌으니 말이다.

“…굳이 배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수 있었어요.”

뭔가 소피아랑 비슷한 능글능글함이다.

가슴이 큰 마녀는 죄다 저런 걸까?

“하지만, 고맙다고 해두죠.”

“좋아 좋아. 그럼 잠시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주위 분위기를 살펴야 하니까.”

그렇게 저택을 나선 도로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다.

검의 마녀가 헥센나흐트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남자 마녀와 함께 도주했다는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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