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32화 (732/917)

#732

1.

자성 마법은 그 용도가 하나로 집중될수록 효능이 극대화된다.

엘로아 티페레트 공작이 모든 마법을 전투와 관련된 마법으로 개조한 일례처럼 말이다.

그녀는 유연한 상황대처 능력과 연비를 포기했을지언정 단기 결전의 폭발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져지지 않는 압도적 무를 이룩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있다 해서 모든 마법을 극점에 집중시키는 경우는 꽤 드물다.

이유는 단순하다.

티페레트 공작에게 저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가 당시 그릇을 물려준 관계로 22 위계였으며, 머지않아 23 위계를 달성할 고위계 마녀였기 때문이다.

즉, 최소 22 위계 정도는 되어야 선택과 집중에 딸려오는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지, 보통은 마법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생겨버린다는 것.

치유 마법에 올스탯을 몰빵한 예빈 역시 그러했다.

‘치유의 마녀’라는 이명답게 역대 스미르나는 본인의 마법을 전부 인체와 영체의 치유 마법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약한 마녀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아직 19 위계 대마녀가 되지 못했음에도 치유 마법의 권위자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원인 모를 이유로 완치엔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낯뜨거운 해프닝이 있었으나.

곤죽이 되어버렸던 시우의 뇌를 원상복귀 했던 것도 예빈이지 않았던가?

“됐다!”

그녀는 약재 상점의 약재와 본인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사실상 사망 선고가 내려졌던 린네를 저승 입구에서 건져왔다.

시술에 필요한 장비가 없는 관계로 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1개월가량은 절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다른 마녀라면 흉내 내지 못할 성과였다.

리디아조차 린네의 느릿한 죽음을 완벽히 확정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

하지만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영체의 치유는 끝났다.

자연 회복만 기다리면 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린네는 여전히 반혼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한 자극을 주면 반사적인 반응을 보이긴 하지만, 자발적 움직임은 거의 없고 심지어 통증을 가해도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이건….”

예빈은 이것이 외과적인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영체와 신체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결국 감정과 의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린네는 스스로 깨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런 경우는 자체는 적지 않다.

자의적인 경우가 아니라 벽에 의식이 갇혀 각성하지 못하는 예도 있다.

기껏 치료한 환자가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뇌 병변이나 뇌사 상태에 달한다면 무용지물 인 것.

그걸 진단하고 깨워내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 무의식의 궁전이다.

예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린네의 무의식 속으로 뛰어들어 가장 눈에 띄는 문을 열었다.

“이게 뭐야….”

그리고 의술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독하게 먹은 예빈으로선 드물게 후회했다.

무의식의 궁전으로 읽어 들이는 심상은 자연스레 해당 인물의 생애를 반영한다.

그리고 예빈이 본 가장 첫 번째 풍경은 검은 밤하늘 아래 하얗고 거대한 유사(流砂)였다.

소용돌이치는 모래의 군데군데에는 날이 나가고 부러진 검이 빼곡하게 부유하고 있다.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심상은 ‘위험한’ 쪽이다.

자칫하면 관찰자인 예빈을 강제로 끌어들일 수도 있는 난폭한 무의식이다.

갈등 끝에 깊숙한 진입을 피한 예빈.

그녀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은 시우는 말했다.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예빈과 관계를 하여 얻어낸 자성마법 역시 공교롭게도 무의식의 궁전.

시우는 이를 통해 아멜리아의 기억을 엿보고 폭주 상태의 그녀를 일깨운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납치당한 처지라 한들 린네에겐 목숨을 빚진 상황.

그런 그녀가 위기에 처했다는데 수수방관할 만큼 시우는 냉혹하지 못했다.

무의식의 궁전에 진입해 유사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 시우는 그녀의 심상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린네를 구출해온 것이었다.

2.

“…….”

린네의 눈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아주 오랜 잠에 빠졌다 일어난 것처럼 뻐근한 몸.

여러 의미로 수면이 필요치 않던 린네가 이토록 오래 눈 감고 있던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괜찮으신가요?”

걱정하는 목소리와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혀진 감촉을 동시에 느꼈다.

옆을 보자 회상 속에서 보았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신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린네의 제자.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해 줄 사람.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찾은 가족.

투박하기 짝이 없는 울퉁불퉁한 손마디가 시우의 것임도 머지 않아 깨닫는다.

린네와 나란히 누워 있던 시우는 그녀를 꺼내줄 때처럼 손을 꽉 잡고 있던 것이다.

“아, 이건….”

린네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인 시우가 뒤늦게 덧붙였다.

“스승님을 구하려면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워낙에 빤히 바라보기에 변명은 했다만 몸까지 거하게 섞은 찰나에 순서를 역으로 밟는 것 같아 더욱 머쓱해진 시우.

조금 이상해 보여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일전까지 시우는 린네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심지어 당장 왜 시우를 구하기 위해 이토록 노력했는지조차 말이다.

린네가 부군으로 섬기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허무맹랑함이 앞선 게 사실이다.

‘그렇게 섹스가 기분 좋았나?’ 같은 단편적인 생각을 하였으니.

하지만 이제 시우는 린네가 어떤 인물인지 안다.

그녀의 생애를 빠르게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린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움직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시우에게 그토록 애착을 보였던 것인지까지.

다른 이에게 있어 살을 맞대고 자며 느꼈던 온기란 하룻밤의 달콤함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였을지 몰라도

린네에겐 평생을 걸쳐 바라왔던 따스한 온기였던 것이다.

이렇듯 단순한 말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을 만큼 깊게 이해해 버렸다.

그런 만큼 린네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제 손 뺍니다?”

“…….”

물어도 대답이 없는 린네.

시우가 슬그머니 손을 빼려는 순간 꽉 껴지는 깍지.

“놓지 마라.”

결핍의 저주는 여전하다.

린네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손을 놓고 싶지 않다는 건, 이 손이 포근하다고 느끼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이대로 조금만 더 있어다오.”

그렇기에 린네는 더더욱 꽉 시우의 손을 잡았다.

그것도 모자라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그에게 안기려던 순간.

“…커흠.”

짧은 헛기침에 이곳이 둘만의 공간이 아님을 눈치챘다.

옆에서 얼굴을 붉힌 예빈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딴청을 피우고 있던 것이다.

린네가 티가 나지 않을 뿐이지 보기보다 부끄러움이 많다는 걸 아는 시우가 괜히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 재빠르게 예빈을 변호했다.

“예빈 씨가 스승님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목각인형처럼 우뚝 굳었던 린네가 슬그머니 손을 놓는다.

그리고는 예빈을 만나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예빈 스미르나.”

“네, 넷…!”

“신세를 졌다. 감사를 표한다.”

“아니에요. 본분을 다했을 뿐인걸요. 당분간은 무리하시면 안 돼요.”

아무일 없는 것처럼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는 린네.

그리곤 아주 미약하게나마 머물던 부드러운 분위기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일변한다.

“상황은 어떻게 됐지?”

한배를 탄 처지에 구태여 숨길 것도 없다.

드디어 린네와 시우의 이해관계가 ‘헥센나흐트 탈출’로 대동단결했으니 말이다.

시우는 그간 있던 일을 간략하게 간추려 설명해주었다.

무사히 약재 상점에 도착한 이후 즐라타의 협력을 얻은 것.

약 3일에 걸쳐 린네의 치유를 돕는 동안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실은 탈출을 위해 차원마법식을 정립했고, 이제 도로시와 합류해 ‘문’의 마법진만 받으면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린네를 깨어낸 경위까지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서 당분간은 잠자코 박혀 있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

특별한 이슈도 없기에 아무렇지 않아 할 것 같던 린네가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아, 그리고…. 지금껏 피치 못하게 탈출 사실을 숨겨왔던 점도 죄송합니다.”

“이해한다. 신경 쓸 것 없다.”

뭐, 이 부분에서 책망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사건의 시작은 린네가 시우를 납치하며 벌어졌고, 린네 역시 시우가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

하지만 린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는 분위기.

아니, 더 자세히 묘사하자면 딱 이거다.

마음에 있던 여사친과 술자리를 한 뒤 필름이 끊겼는데 다음날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묻기 꺼려지는 상황 말이다.

요컨대 굳이 물어봐서 부끄러운 기억을 들추고 싶지 않다는 심정과 자신이 치태를 보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심정의 교차점이다.

“…한 가지만 묻겠다.”

“네.”

“무의식의 궁전은… 기억을 엿보는 마법인 건가?”

“그런 용도는 아니지만…. 얼핏 보기는 했습니다.”

린네는 아주 조용히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시우의 태도가 묘하게 평소와 다른 이유를 알았다는 양 말이다.

“…….”

오직 강함만을 추구했던 인생이다.

그런데 어렸을 적 모습은 린네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약한 모습 그 자체다.

“어디까지 봤지?”

덥썩 시우의 소매를 쥔 린네가 물었다.

린네가 이토록 절박해 보이는 건 처음이다.

더군다나 린네가 흉흉한 소문과 달리 아무 마녀에게나 칼부림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시우로선 다행인 감상이 컸다.

린네에게 적잖은 도움과 헌신을 받았고, 서글픈 과거사가 있다 한들 그녀가 악인이라면 참 씁쓸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린네가 노린 것은 언제나 그녀보다 강한 마녀였으며, 죽을 각오가 선 상대 혹은 후환을 남기면 안 되는 공적이 아니면 구태여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특히 견습마녀를 비롯하여 견습마녀에게 계승을 앞둔 마녀라면 강박증이 느껴질 만큼 살생을 피했다.

“꽤 많이…. 그러니까 견습마녀 시절과 계승을 받은 이후입니다.”

즉, 시우가 보기엔 그저 애잔한 삶의 발버둥이었으니 저렇게까지 부끄러워할 필요 있나 싶었던 것이다.

허나 할복을 앞둔 무사처럼 눈을 감은 린네의 하얀 뺨은 복숭앗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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