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1.
토호 사를 결전지 삼아 수십의 관군과 승병까지 베어낸 린네.
지옥에서 기어나온 린네의 몰골은 처참했다.
오랫동안 계곡에서 대충 씻었을 뿐인 몸에선 짐승의 악취가 났고, 헤질 대로 해진 옷자락 안에는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마땅히 도망칠 곳도 없는 절 한복판에서 전투를 벌인 까닭에 길쭉한 창날이 허벅지와 어깨를 관통한 상태였다.
린네는 나무 기둥에 기댄 채 격해진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좀처럼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흐릿한 눈에 비친 불상은 도살장으로 변해버린 금당의 모습을 보며 한탄하고 있었다.
‘…….’
몸이 식어간다.
어금니가 부서질 듯 떨리는 추위에 골수까지 얼어버릴 듯하다.
린네는 습관적으로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이 시점에서 린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 목걸이가 있어야 린네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잔당사냥꾼이 린네를 좀 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한 장치 정도였겠지.
그럼에도 눈을 감기 전 마지막 순간 이것을 붙잡은 건, 가족을 그리던 시간만이 유일한 구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혈액이 다량 빠져나가 차갑게 식었던 몸이 천천히 따뜻해지면서 포근함이 느껴졌다.
-뚜벅 뚜벅
그때 불상을 모시는 금당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간신히 고개를 든 린네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건 어머니.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격정에서도 린네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지 못했다.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어머니….’
몸을 웅크린 어머니는 허벅지에 부러진 채 박혀있던 창을 뽑아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그것을 감내한 직후 놀랍게도 린네의 몸은 회복이 끝나 있었다.
린네는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토록 보고 싶던 어머니의 눈을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눈동자에 새겨진 감정은 오직 깊은 실망감뿐이었으니까.
‘고작 이 정도에….’
기대하던 칭찬의 한마디는 짧은 탄식으로 대체되었다.
포근하게 안아주기는커녕 제힘으로 일어날 힘도 없는 린네를 일으켜 주지도 않았다.
알고 있었다.
린네가 애착을 지니던 어미라는 존재는 스승이 연기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과거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건 타인의 가족사진을 보며 향수를 느끼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스승은 선 채로 고민했다.
그녀의 손이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허리춤으로 향해 있다는 건 린네도 알 수 있다.
성에 차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 장인이 도자기를 망치로 부숴버리듯 린네의 폐기를 고민하는 것이리라.
그걸 본 순간 린네는 두개골 사이를 뜨겁게 부풀리는 열기를 느꼈다.
가족이라는 허상에 매달리느라 직시하지 않고 억눌러두었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처럼 메말랐던 가슴 속에 떠오른 짙디짙은 증오와 분노를.
린네의 몸이 작은 새를 덮치는 고양이처럼 튀어 오른다.
재빨리 바닥을 쓸어 손에 쥔 검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그러나 애초에 상대가 될 턱이 없다.
스승은 너무도 쉽게 린네의 찌르기를 쳐냈고 곧장 가슴을 발로 찍어누른 채 제 검을 뽑아들었다.
린네가 수십 번 반복했듯 검을 가볍게 밀어 넣기만 해도 죽어 버리겠지.
바닥에 제압당한 린네는 뿌연 빛을 발하는 칼끝 앞에서도 버둥거렸다.
‘…죽일 거야.’
용서할 수 없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죽는 날이 온다면…. 그 앞에는 내가 칼을 들고 웃고 있을 거야…!’
짐승의 울부짖음과 다를 바 없는 처절한 절규.
회한, 비탄을 장작 삼아 타오른 분노가 쩌렁쩌렁 금당을 울린다.
‘호오.’
악에 받친 독기가 흡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천살성(天殺星)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린네의 두 눈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스승은 검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러려무나. 기다리겠다.’
2.
그날 이후 린네는 스승을 따라 본격적인 계승 수업에 들어갔다.
결핍의 저주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도 이 시점이었다.
행복과 관련된 어떠한 감정과 감상도 느낄 수 없다.
행복했던 옛날을 떠올려도 굳은살이 박혀 딱딱해진 손바닥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
오직 강함을 향해 정진할 때만 비로소 허가되는 짤막한 휴식.
허나 린네는 괘념치 않았다.
낙인의 계승이니 뭐니 알 바 아니었다.
언젠가 린네의 밑에 무릎 꿇은 스승을 오시하고 마지막을 선사한다는 목표가 생겼으니까.
그렇기에 린네와 스승의 관계는 결코 섞여들 수 없는 액체의 혼합물처럼 기형적이었다.
스승을 따라 전국각지를 떠돌며 검술을 체득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수한 검술만을 활용해 낭인과 무사를 죽였고, 남은 시간에 마법에 대해 배웠다.
열도를 벗어나 저 멀리 서대륙까지 향하기도 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은 강해지기 위한 수련의 시간이었다.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났다.
아무리 용서할 수 없는 상대라 한들 그로부터 끝없는 배움을 받고 함께 사지를 누비며 강함을 추구한다면.
더욱이 죽을 뻔한 목숨을 몇 번이나 구원받는다면.
날카로운 원망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어찌 됐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스승뿐이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린네는 스승을 증오했지만 동시에 어머니를 사랑했다.
언젠가 그녀를 죽이고 싶다는 깊은 원망과 동시에.
언젠가 그녀에게 예전처럼 사랑받고 싶다는 병적인 애착을 느꼈다.
견습마녀가 된 지 10년째가 지났다.
린네는 많이 달라졌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키도 커졌고, 머리도 다시 길렀다.
마법적 지식을 익혔고 세상의 비정함을 받아들였다.
과거 린네와는 아주 조금도 겹치는 면모가 없게 되었다.
스승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치관, 사고방식 무엇하나 바뀐 게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스승이 나약해졌다는 것이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향월루의 안채를 가득 채우는 비명.
익숙한 일이었다.
검을 휘두르던 린네는 짧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섰다.
‘더, 더…. 더는 못 견디겠어. 더는….’
방안은 빨간 그림이 얼룩덜룩 새겨져 있었다.
스승의 하얀 옷을 온통 붉게 물든 혈액과 마찬가지로 자해의 결과물이다.
결핍의 저주는 소유자가 강함을 향하게 함과 동시에 더 강해지지 못한다면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다.
아직 성장이 유망한 린네와 달리 스승은 3년 전부터 한계를 맞이한 상태였다.
‘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검격.
-챙!
린네는 어렵지 않게 칼을 휘감아 검을 내팽개쳤다.
매섭게 날아간 검이 바닥에 꽂혀 파르르 떨린다.
이미 순수 검술에서 린네의 솜씨는 스승을 아득히 능가하고 있었다.
‘흐윽! 흐으으!’
봉두산발이 된 머리로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은커녕, 누가 와도 단칼에 베어낼 것 같던 스승의 위엄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락해버린 스승의 모습을 볼 때마다 린네는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저열한 우월감과 연민을 느끼곤 했다.
‘그만해라, 꼴사납다.’
우월감과 연민엔 공통점이 있다.
분노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린네는 더 이상 스승을 증오하지 않았다.
그녀를 죽일 것이라는 목표 의식도 흐릿해진 이후였다.
그저 비웃었다.
이 모든 일이 그녀가 치르는 죄과라고 믿었다.
동시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심 바라고 있었다.
과거 스승의 나약한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스승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린네밖에 없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린네를 바라봐준다면.
예전처럼 린네의 가족이 되어준다면 못 이긴 척 그녀를 용서하겠노라고.
지금껏 백번을 소망했고, 백번을 단념했다.
그러나 실로 어리석게도 백 한 번째에 기대를 걸고 마는 것이다.
3.
스승은 린네의 어떠한 기대에도 부응하지 않고 죽었다.
근 2년간 가장 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말이다.
낙인을 계승하고 빈 쭉정이처럼 변해버린 스승을 린네는 망연히 바라보았다.
움직이지도,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천장을 바라보는 시체.
쫓기고, 쫓기다 주위에 민폐를 듬뿍 끼치고 죽어버린 비겁한 도망자의 말로였다.
이제 린네에게는 한 명의 가족도 남지 않았다.
어쩌면 가족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마저 사라져 버렸다.
허무했다.
너무나도 허무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린네는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스승이 견습마녀가 된 린네에게 처음으로 걸어주었던 목걸이다.
이제는 습관처럼 어루만진 까닭에 조금은 광택을 잃어버린 곡옥을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가장 큰 곡옥은 아버지.
제일 작은 두 곡옥은 오라버니.
두 번째로 큰 곡옥은….
‘어머니.’
처음으로 외톨이가 된 린네는 숨통이 조여오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한 번만이라도 그날처럼 다정하게 안아줄 수는 없었던 걸까.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투명한 눈물이 흐른다.
원망을 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던 어머니의 앞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울고, 지쳐 쓰러지고, 다시 깨어나 울기를 반복하던 린네는 검을 쥐고 일어났다.
그녀의 등뒤로는 하얀 달빛과 검은 그림자가 늘어서 있었다.
린네는 제 가슴에 앞으로 영영 채워지지 않을 상실의 흉터가 생겨났음을 깨달았다.
누구도 채워 줄 수 없이 영원히 린네를 갉아먹을 흉터가.
회상은 끝났다.
린네의 몸이 가라앉는다.
유사처럼 휘몰아치는 어둠의 밑바닥까지 한없이 가라앉는 린네.
그것은 고독의 바다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만큼 외로운 삶이었다.
힘겹게 눈을 뜬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굳이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승님.”
남자의 목소리.
린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스승님!”
오직 린네만이 있어야 할 이 기억의 공간에 들어선 사람은 신시우.
그제야 과거에만 얽매이던 린네의 기억이 역류한다.
“여기서 나가죠.”
모든 것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고독의 바닷속 그는 제 몸을 지탱하기조차 위태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린네를 향해 한 손을 뻗었다.
“빨리 오세요, 스승님! 저 오래 못 버팁니다 진짜!”
린네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그래.
왜 이제까지 잊고 있었을까?
더는 혼자가 아니다.
무의미한 표류를 반복하던 삶에서 간신히 찾게 된 가족이 여기에 있었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린네는 팔을 뻗어 시우의 굳은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무척이나 투박했고.
또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