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25화 (725/917)

#725

1.

-쏴아아아아!!!

전투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차디찬 빗줄기에 리디아는 뺨을 훔쳤다.

마지막 순간 조각나버린 이면 결계.

그 결과 유리창이 모조리 깨지며 반파되어버린 복도.

리디아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벽에 길게 새겨진 검흔을 보며 불만스레 투정부렸다.

길게도 뻗어 나간 여파로 공방 일부가 망가졌기 때문이며, 린네가 신시우를 데리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검로를 틀어 낫을 빗겨낸 린네는 참격을 등 뒤로까지 날리며 리디아가 시우에게 걸어두었던 보호장을 분쇄, 동시에 이면결계를 찢고 도주해버렸다.

“진짜 열받네.”

무가치의 독나방을 온통 뒤집어쓰고도 정체불명의 기술을 활용해 달려들던 린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백은 리디아로 하여금 과잉대응을 하게 만들었다.

사신의 낫을 조금 더 일찍 휘두르게 만들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공격의 투자했던 마력 일부를 방어로 돌리게 했다.

리디아는 큰 거 올 줄 알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더니 정작 상대인 린네는 호다닥 도망을 친 셈.

“내 판단 미스네.”

리디아는 겸허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투쟁에 선 린네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무의식중에 재단하고 있었다.

설마 그 시점에서 도주 및 구출을 택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후속 대응이 느렸다.

심지어 린네가 신시우를 ‘낭군’이라고 부르며 주접을 떠는 모습을 보고도 간과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책인 셈이다.

이제와서 직접 뒤쫓는다 한들 당장 추적이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린네는 단독 행동 및 은밀 기동에 특화된 마녀다.

타인의 마력의 색채를 지울 수 있다 함은 자신의 마법도 무색무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니까.

만약 그녀가 정면 대결을 고집하지 않고 암살을 특기로 삼았다면 지금보다 배는 무서운 마녀가 되었으리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또 계율을 어긴 린네가 도주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봐야 강경파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린네가 잡히는 순간 신시우의 신병도 강경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리디아는 최측근 몇에만 진실을 알려 수색망을 펼치고 일단 회의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수상쩍은 정황을 포착했다는 걸 빌미로 린네에게 출국제한을 내린다면 도시 밖으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다.

“게다가….”

리디아가 린네를 고이 보내준 건 아니다.

쐐기는 분명 박혀있다.

리디아는 빠르게 지시를 내린 뒤 회의장으로 향했다.

2.

지금 시우가 차고 있으며, 앨리스도 착용 중인 이 목줄형 아티펙트가 보통 물건이 아님은 자명했다.

리디아가 회의장으로 향했을 때 혼자 남아있던 시우가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해제할 방법을 구하려 해도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목줄은 리디아 본인이 대마녀를 무력화한 뒤 거래하기 위해 직접 개발한 물건이다.

그녀의 마녀 노예사업은 꽤 오랜 기간 이루어졌고, 자력으로 탈출한 노예가 없음을 고려할 때 시우 혼자 목줄을 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직 리디아가 구매자에게 직접 알려준, 모든 목줄에 일대일로 대응되는 해제 코드가 있어야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안은 모든 마법식의 구조를 해석해 낼 수 있으니 시간이 충분하다면 시우가 길을 알리고 린네가 옆에서 거드는 식으로 해제가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거다.

두 사람은 지금 알막 타운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있으니 말이다.

“괜찮으신가요?”

린네의 등에 업혀있던 시우가 물었다.

마지막 격돌의 순간 린네의 허리춤에 낫이 박혀 드는 걸 봤는데.

착각이었던 걸까?

마안은 정상작동 중일지라도 마력으로 안력을 강화할 수 없던 만큼 그만한 고속전투를 전부 시인하는 건 어려웠다.

“문제없다.”

검은 마력을 한껏 둘러 존재감을 낮춘 채 조용히 잠행하던 린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지.

린네는 피가 흐르지도 않았고 옷이 찢어지지도 않았으며 몸을 움직이는데도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린네의 부상 여부와 별개로 시우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솔직히 입에 담았다.

“감사합니다. 절 구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시우를 위해 헥센나흐트를 적으로 돌린 파격적인 행보 자체도 놀랍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린네를 지켜본 시우의 판단 아래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녀는 원하는 것이 생기면 앞뒤를 돌보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파하니 말이다.

그러나 린네의 마지막 일격만큼은 그런 시우의 판단을 배신했다

주의 깊게 두 사람의 마법 전투를 살피던 시우는 수라의 길을 보았다.

린네 앞으로 길게 뻗었던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녀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그리고 린네가 끄트머리에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계단 앞에서 망설였던 것까지 똑똑히 보았다.

그 계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강함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린네가 시우를 위해 도전을 포기한 것쯤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린네가 이렇게까지 시우를 구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더라도 그 부분에 한해서는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해야 할 일이었다.”

린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실제로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흑백세계에서 구현하는 수라의 길은 통상 사용자가 이끌어 낼 수 없는 잠재력을 강제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린네가 리디아의 독나방을 몸으로 돌파했던 것 역시 계단을 거치는 순간 잃었던 힘을 되찾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수라의 길은 모든 잠재력을 강제로 끌어내는 마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위로 향할수록 위태로워지는 그 계단은 편리한 버프기술 따위가 아니다.

우선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없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을 때.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나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시련이다.

또한 사용한다 해서 반드시 리턴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잠재력을 ‘강제로’ 끌어낸다는 건 자괴(自壞)의 가능성을 내포함을 의미한다.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유도된 재능과 잠재력이 제 몸을 부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린네는 계단의 존재를 기꺼이 반겼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층 높은 강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린네는 여태껏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던 층계까지 달려나갔다.

마지막 한걸음.

단 한 걸음만 더 뻗었다면 새로운 상승의 경지와 각성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린네는 발을 멈추었다.

마녀가 된 이후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아집을 포기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반복된 삶이 부여한 강박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린네의 지금 심정을 비유하자면 평생 찾던 보물상자를 확인하지 않고 뒤돌아서야 했던 모험가와 비슷할 것이다.

아직도 그 계단 위에서 린네를 손짓하던 백색의 광채가 눈에 아른거렸지만 잠시 지끈거리는 눈꺼풀을 감은 채 등을 기대었다.

두 사람이 임시로 몸을 피한 곳은 아르카나 타운 한 건물의 옥상.

격변하는 헥센나흐트의 도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가 예정된 폐건물이었다.

본디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린네는 곧장 무리한 도주를 감행해 꼬리를 밟히기보다는 미리 눈여겨보았던 여러 지점을 경유해 하루 내지 이틀에 걸쳐 안전하게 은신처로 숨어드는 것을 택했다.

짧은 휴식을 취하는 겸사겸사 신시우의 목줄도 풀어주는 중이고 말이다.

-딸그락

“이제 됐다.”

“감사합니다.”

마안으로 직접 목줄의 회로를 볼 수 있는 시우와 마법의 색채를 앗아갈 수 있는 린네의 협력 아래 불과 30분 만에 안전히 목줄을 해제한 시우.

반쯤 부서진 난간 너머로 보이는 아르카나 타운의 풍경을 바라보며 린네와 시우는 동시에 확신했다.

“생각보다 조용하네요.”

“적어도 대놓고 찾지는 않기로 했나 보군.”

그만한 소동이었다.

만약 리디아가 작정했더라면 아르카나 타운을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뒤숭숭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마녀들은 일상과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고, 심지어 불과 한 시간 전 전장이 되었던 알막 클럽에는 여전히 마녀가 드나든다.

이를 리디아가 정치적 파장을 염려했으며, 본인이 이득을 볼 기회를 남기기 위해 진실을 은폐했음을 의미했다.

“향월루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테고…. 어떻게 할까요?”

“은신처는 미리 구해두었다. 두 마녀와 붉은 창도 빼돌려두었다.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본 뒤 이동하겠다.”

린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우가 말했다.

“일단 침묵의 마녀의 저택으로 갈 순 없을까요?”

“…….”

“공방 안에 잡혀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이야 쉽게 꺼냈지만, 쉽게 생각해서 꺼낸 의견은 아니다.

로지의 저택에 갇혀있던 마마와 마냐 말리샤.

이 세 사람이 여전히 갇혀 있다는 게 신경 쓰이던 차였다.

“나도 로지의 공방에 들렀다. 누구도 찾지 못했다.”

“제가 숨겨진 위치를 압니다. 로지를 쓰러뜨리자마자 은폐되는 것을 봤어요.”

“지금 향월루 근처로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반쯤은 억지나 가까웠다.

그러나 린네마저 헥센나흐트를 등진 상황.

그 까닭에 문의 마법식을 쥔 도로시와의 합류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마냐와 말리샤, 그리고 비극에 휘말려 견습마녀를 잃은 불운한 마녀를 되찾을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아주 잠깐 리디아가 향후의 행보를 고민하고 있을 이 시간밖에 말이다.

시우는 이에 목줄이 풀리는 동안 린네를 설득할 다양한 변명을 떠올렸다.

마냐와 말리샤를 구해냄으로써 앨리스의 진실한 협력을 받을 수 있다거나.

이 상황에서 향월루 쪽으로 향하는 건 오히려 변칙적인 움직임이라거나.

이도 저도 통하지 않으면 마력 증폭의 진실을 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할 예정이다.

“무리한 부탁인 건 압니다. 하지만 먼저 제 말을 들어주세요.”

“가겠다.”

“…네?”

“네 뜻대로 로지의 저택으로 가겠다.”

그러나 애써 준비한 설득거리가 모조리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린네는 시우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한점의 거짓도, 꿍꿍이도 없는 올곧은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이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전후사정을 알 리 없는 시우는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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