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24화 (724/917)

#724

1.

관념을 다루는 마법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

현실세계에 실존하는 것을 다루는 다른 마법에 비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모호함은 곧 높은 난이도로 직결되며 통제에서 벗어난 불안정함을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마법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많은 자연 마력을 요구하게 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컨트롤하면 되는지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여타 마법과 달리 모든 것을 감각적으로 수행해야 하기에 대부분의 관념 마법은 수동적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관념을 다루는 마녀의 대다수는 자신만의 ‘토템’을 사용한다.

행운의 마녀가 클로버를 활용해 이를 이뤄내듯 리디아의 경우엔 금화였다.

직접 ‘가치’라는 관념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금화를 통해 미리 간섭의 정도를 정해두는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폭주 상태에 휩쓸릴 수 있으니 말이다.

-팅

청명한 소리와 함께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금화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금화가 단순한 토템이 아니라는 점이다.

리디아는 선대가 해결하지 못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토템 자체를 관념 마법의 일환으로 편입했다.

토템을 단순히 마법 제어의 척도로만 삼는 것이 아니라 마법을 발현하기 위한 촉매이자 재료로 활용한다.

본디 리디아가 지불해야 했을 대가를 토템이 대신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설령 실패한다 해도 피드백이 미치는 영향을 금화로 한정함에 따라 리스크를 줄였다.

안정성과 효율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전투를 할 때마다 커다란 대가를 요구하게 되었지만, 리디아는 희생물을 얼마든 손에 넣을 재력과 권력이 있었다.

“증명하라.”

아직도 독나방과 고군분투 중인 린네.

리디아는 그런 그녀를 보며 여유롭게 영창을 외웠다.

로지로 만들어진 금화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 물결치며 출렁였다.

-참방!

그리고 환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연못 위에 조약돌을 던진 것 같은 소리가 울린다.

금화는 끝없이 끝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차갑고 검은 물결.

태양 볕이 닿은 적 없는 고독하고 사악한 강물 아래로 거품도 없이 가라앉은 끝에 누군가의 손에 닿는다.

-고오오오오…!

비명처럼 느껴지는 저주파의 포효가 복도를 한가득 채웠다.

어느샌가 들려오기 시작한 강이 흐르는 소리는 곧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잡아먹으며 복도를 가득 채운다.

무려 20 위계 마녀의 낙인을 통째로 갈아 만든 금화를 삼키고도 리디아의 마력을 4분의 1이나 뭉텅 요구한 그것은.

금화를 대가로 산 자를 죽은 자의 세계에 인도하는 신화 속 존재.

그 두 눈은 제대로 직시할 수 없는 광기의 총체로 번뜩이고.

어둠으로 직조된 로브를 둘렀다.

하얀 뼈만 남은 두 손은 커다란 낫을 쥐었고.

숨결마다 자욱이 내뿜어지는 사기(死氣)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뒤집어쓰는 것만으로 즉사할 만큼 죽음과 직접 맞닿아 있다.

리디아의 뒤편의 흐릿한 형체와 시나브로 흐르기 시작한 피안의 강은 독나방과 분투 중인 린네의 눈에도 포착되었다.

이어 죽음을 선고하는 사신이 수확을 위해 천천히 낫을 들어 올리는 모습까지 감지해냈다.

온갖 해괴한 술식을 사용한다 알려진 리디아답게 전투 경험이 풍부한 린네도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부류의 마법이었다.

그러나 저 낫을 끝까지 들어 올린 후 휘두른다면 피해도, 막아도, 설령 지구 반대편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초능력만큼이나 발달한 린네의 육감이 경고했다.

“…….”

무가치의 독나방은 전혀 빠르지 않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일반인이라면 무리 없이 따돌리고 피할 수 있을 만큼이나 느릿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숫자와 단 한 번의 접촉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까다로운 마법적 특성.

린네는 남은 독나방의 수를 헤아렸다.

아무리 우월한 검술과 신체능력을 지닌 린네라도 이것을 모두 피하며 대규모 술식을 준비중인 리디아까지 도달하기엔 시간이 맞지 않다.

애초에 그것을 위한 소환이었을 것이다.

태생이 근딜러인 린네에겐 무엇보다 적합한 시간 벌이용 사역마였다.

사방에서 성가시게 엉겨오는 방해물.

처형을 준비하는 길로틴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는 죽음의 낫.

누군가는 패닉에 젖을 만한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후후….”

린네는 웃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전율.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생명을 담보로 도전하는 아슬아슬한 전투.

전신에 힘이 끓어 넘친다.

근육 조직 하나, 세포 하나에 불타는 듯한 활력이 깃들고.

폐를 뜨겁게 달구는 호흡은 증기기관차처럼 거침이 없다.

린네의 몸이 정면을 향해, 죽음을 향해 튕겨나간다.

칼로 전부 쳐내지 못한 독나방이 헤드라이트에 부딪히는 날벌레처럼 몇 번이나 충돌했다.

그때마다 린네는 눈에 보일 만큼 느려졌다.

“…장난해?”

리디아는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흡사 모닥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건 아닌지 흑백세계 속에서 흑색의 마력을 몸에 휘감고 달려든다.

그러나 검에 집약해 쳐내도 모자랄 독나방을 저런 식으로 처리하려는 건 리디아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위계란 체급이다.

기술의 격차와 때때론 상성까지도 뒤엎어버리는, 마법전의 승패를 점칠 때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요소.

헌데 린네가 하는 짓은 설령 두 사람의 위계가 뒤바뀌었더라도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최소한의 방비만 한 채 적의 핵심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준다니.

검귀라는 별명이 달리 붙을 마녀라도 궁지에 몰리면 이만한 오판을 하는 것일까?

누가봐도 자살 행위를 하며 광소를 짓는 린네의 얼굴이 더욱 기분 나쁨을 유발한다.

리디아는 방심하지 않은 채 술식의 완결을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냥 곱게 죽어 이럴 거면. 금화 괜히 썼네.”

-촤아악!

린네가 마지막 나방떼를 베고 나왔을 때 그녀의 몸은 높이 쳐 주어야 6 위계 수준으로 열화 되어 있었다.

단련된 신체도, 방대하진 않지만 잘 정련된 마력도 지금은 모두 엉망진창이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독나방에 부딪친 결과였다.

어느덧 사위를 물들이던 흑백의 풍경도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쿠오오오오오!!!!

낫을 거의 들어올린 사신의 모습이 보인다.

도저히 생명체의 발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끔찍한 포효에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다.

흑백세계.

마법 본연의 색을 빼앗는 린네의 자성마법.

많은 마녀는 린네의 흑백세계가 그 자체로 완성인 마법이라 알고 있다.

그 뒤를 보여주고도 살아남은 마녀는 티페레트 공작과 시우밖에 없으니까.

“…….”

린네는 눈을 감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고요히 침잠하는 의식.

다시 눈을 떴을 땐 흑색을 뒤집어쓴 공간 속.

삐뚤빼뚤하고도 하얀 계단이 있었다.

너무나도 허술하여 한 발짝을 내딛으면 그대로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계단이.

평지인 복도 위로 계단이 존재할 리 없건만 그럼에도 분명히 여기에 있다.

이 계단은 흑백세계 속에 투영된 린네의 심상이자 철학인 까닭이다.

언제나 린네가 오르던, 올라야 했던. 일평생을 관철한 강함을 향한 아집.

그 끝에 기다리는 게 덧없는 산화일지라도 반드시 오르리라 수없이 다짐하며 새겨두었던 심상은 하나의 마법으로 변모한다.

린네는 달려나간다.

쓰디쓴 고독이 심장을 난자하면 그에 반발해 강력한 아집이 피어난다.

그것은 곧 그녀의 삶에 퇴적한 모든 시간의 추체험이다.

난기류처럼 피어나는 심마를 헤집고 하나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린네를 둘러싼 기류가 달라진다.

리디아가 가치에 간섭하며 열화시켰던 힘이 되돌아온다.

이 길만큼은 누구도 멋대로 재단할 수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누구도 폄훼할 수 없다.

오직 끝까지 주어진 숙명을 외로이 관철하리라.

이것이 흑백세계의 파생기.

한걸음을 오를 때마다 린네의 모든 잠재력을 강제로 발현하는 마법.

‘수라(修羅)의 길’.

“미친.”

리디아는 마치 계단을 오르듯 평지를 내달리는 린네를 보며 등골에 감도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형편없이 약체화되었던 몸에 힘이 돌아온다.

무가치하다 부정되었던 능력이 전보다 더욱 선명한 흑백의 대비를 띄며 세계를 나눈다.

수확의 대가로 금화를 받아간 사신은 아직 모든 준비를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간 시점에서도 리디아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하나는 린네의 검이 리디아의 흉강을 헤집는 게 빠를지, 리디아가 마법을 완성해 ‘선고’를 내리는 게 빠를지 경쟁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비록 미완성이나 그럼에도 강력한 사신의 낫을 휘둘러 린네의 공격을 상쇄한 이후 다른 금화를 소모하는 것.

고민은 길지 않았다.

리디아는 사업가이지 도박꾼이 아니다.

토템으로 활용할 금화라면 얼마든지 여분이 남아있으며 금화의 가치는 리디아 본인의 목숨 값보다 명백히 저렴하다.

-부우우웅!

사신의 낫이 휘둘러졌다.

네 모서리가 팽팽히 매달려있던 천을 예리한 나이프가 가르듯 궤도를 따라 공간이 갈라진다.

찢어진 틈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함께 고통받을 동지를 누구보다 갈망하는 망자의 비명.

“하아… 하아…!”

계단을 오르던 린네는 가슴 끝까지 차오르는 고양과 흥분을 느낀다.

이제는 밟을 때마다 바스라 사라지는 계단을 두려움 없이 치고 올라간다.

이 순간만큼은 고독도, 괴로움도, 무미건조한 삶도 잊는다.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칼날 위의 춤.

지금까지 올라본 적 없는 높고 좁으며 불안정한 계단까지 올랐을 때 린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더, 더, 더 높은 곳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삶의 모서리를 깎아내는 단련과….

새로운 제자와의 대련 덕분.

-우뚝

오직 아집만으로 이어지던 린네의 발걸음이 멎는다.

앞에는 한 번도 오른 적 없던 경지의 계단이 보인다.

린네를 더 높은 상승의 경지에 데려다 주거나, 그녀의 숨을 거두어 갈 위태롭기만 한 계단이.

뒤로는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린네의 도움을 구하고 있을 신랑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가져다줄 신시우의 모습이.

새로운 계단에 발끝을 걸쳤던 린네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제자리에 멈춰섰다.

휘둘러지는 사신의 낫에 대응할 참격을 준비한다.

그 순간 계단 위에서 손짓하듯 하얀 빛이 환영처럼 스쳤지만 린네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베어라.”

“증명하라.”

————키잉!!!!

교차하는 두 개의 대각선.

나선으로 피어오른 검은 검기와 대낫이 잘라낸 공간이 뒤엉키며 비명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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