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
1.
-화르륵!
어두컴컴했던 복도가 촛대에서 일어난 불길에 의해 새빨갛게 변했다.
그 모습은 점멸하는 경고등을 연상케 한다.
린네는 시우를 등에 업은 채 복도를 달려나갔다.
미리 예정해 두었던 탈출로를 따라 질주.
어차피 공방 문을 베어버린 순간부터 은밀한 탈출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사이사이에 있는 방범 장치는 모조리 무시한 채 최단 경로를 향해 내달렸다.
그렇다고 해도 직진만 할 수는 없었다.
침입자를 제거하는 온갖 공격 마법이 쏟아지며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자체로 치명적인 피해를 주려는 목적보다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인 장치.
목줄에 의해 0 위계 응애 상태로 변해버린 시우를 업은 채로 움직여야 하는 이상 린네의 운신에도 지장이 생겼다.
“더 꽉 잡아라.”
린네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게 꽉 매달리고 있던 시우는 확신했다.
역시이건 불법 침입이다.
린네는 정말 시우 한 사람을 위해 헥센나흐트 전체를 등지는 판단을 한 것이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은신처에 숨어서 헥센나흐트를 탈출할 기회를 엿본다.”
그렇게 답하며 아무렇지 않게 벽면을 밟고 달리던 린네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말려들 수 있으니 떨어져라.”
“…네.”
마법은 쓸 수 없어도 마안은 정상 작동 중인 시우 역시 순순히 린네의 등에서 내려 벽에 바짝 붙었다.
왜냐하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감출 생각도 없이 복도를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를.
-또각또각
구두굽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알막 클럽의 주인이자 23 위계에 달하는 강력한 공적.
금화의 마녀 리디아 마그누스.
“이거이거 웬 쥐새끼가 있네.”
대회의에 참가하던 중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를 감지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알막 클럽으로 돌아온 리디아.
붉고 검게 뒤섞여가는 어둠 속에도 전혀 빛바래지 않는 금안이 태연하게 웃고 있다.
“아까는 내 해피타임을 방해하더니….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어?”
“그를 돌려받으러 왔다.”
“눈치가 엄청 빠르네. 전혀 모를 줄 알았는데.”
리디아는 으레 가식처럼 행하던 존대를 내려놓았다.
대신 복도 전체를 감싸는 이면 결계를 펼친다.
헥센나흐트 내부에서 폭력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설령 불법 침입이 일어나더라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벌하는 게 헥센나흐트 구성원 전체의 합의다.
그러나 솔리두스 상단은 헥센나흐트 내부에서도 상당히 큰 세력을 자랑하는 조직이며 알막 클럽은 그 본거지나 다름없다.
허튼 짓거리를 한 침입자에게 자체적인 처벌을 내리기 위한 은닉 장치 정도는 마련되어 있었다.
이 안에서 결계를 펼치고 전투를 벌여도 눈치챌 사람은 없다는 의미이다.
그걸 알고 있는지 린네 역시 별다른 말 없이 검을 꺼내 들었다.
“그를 놓고 간다면 당신의 불법 침입은 눈감아줄게. 아직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어.”
“그를 보내준다면 조용히 헥센나흐트를 떠나겠다. 범죄 행각을 덮어준 것과 소유권을 이양해준 것에 대해서도 마땅한 성의 표시를 하지.”
두 사람의 대화는 시우의 생각보다 잔잔했다.
리디아는 린네가 공방에 불법 침입한 것을 책잡으며 화내지 않았다.
린네 역시 리디아가 시우를 몰래 빼돌려 놓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속은 놈이 병신.
규칙이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흐릿한 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한 재결을 내리는 건 오직 일신의 힘뿐.
본디 이것이 공적과 공적이 부대껴 살아가는 방법이다.
신시우를 두고 서로 다른 조건을 내건 리디아와 린네의 눈동자가 조용히 마주친다.
각기 머릿속에 현재 상황을 분석한다.
먼저 리디아의 경우.
린네는 홀로 다른 마녀의 공방을 불법침입한다는 중죄를 저질렀다.
다만 이것을 공론화하고 통상적인 절차를 거쳐 해결하려 든다면 필연적으로 시우의 존재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리디아가 신시우의 처분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없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서 린네를 매장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처럼 만드는 것.
다음 린네의 경우.
리디아가 시우를 빼돌린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독단으로 행해진 일이다.
대회의라는 중요 회의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리디아가 손수 사건을 매듭지으려고 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자리에서 리디아만 쓰러뜨린다면 다른 방해 없이 곧장 탈출이 가능하다.
쉽게 말하자면.
승자독식 패자독박.
“빨리 돌아가야 하니까, 5분 안에 끝내줄게. 덤벼.”
“…….”
별 다른 말 없이 합의점에 도달한 두 사람이 마력을 끌어 올린다.
22위계와 23위계가 끌어내는 중후한 마력의 떨림이 창문의 유리장을 파들파들 떨리게 하였다.
-우웅
시우의 주변에 흐릿한 결계가 생겨난다.
싸움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리디아와 린네가 각기 두 겹이나 되는 방어장을 전개해 준 것이다.
이 전투의 승패가 어찌 결정 나든 상품에 손상이 간다면 헛짓거리이니 말이다.
“베어라.”
시우의 안전이 확보된 이후.
먼저 움직인 것은 린네 쪽이었다.
영창과 동시에 린네의 몸이 녹아내리듯 허물어지고, 곧장 앞으로 쏘아간다.
필요한 힘을 일절 배제하는 완벽한 이완과 관성을 통제하는 린네의 자성마법, 그 두 가지가 더해진 폭발적인 도약이었다.
후속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발도는 어지간한 마녀라면 식별조차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가까스로 막아낸다 해도 허깨비처럼 휘어지는 린네의 기형적인 검술이 사지 중 어딘가를 잘라내겠지.
그러나 흉맹한 기세로 달려드는 린네의 신형을 놓쳤음에도 리디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건 닿았을 때의 이야기지.”
-팅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맑고 청명한 소리.
리디아의 엄지가 작고 투박한 금화 하나를 튕겨낸다.
파장을 일으키며 공중에서 분해된 금화는 인간의 영과 육과 혼을 녹여내어 주조한 것.
이 작은 금속조각 하나를 위해선 평균 21.7개의 건강한 성인남녀가 필요하다.
리디아가 뽑아낸 작은 마력이 촉매제 역할을 하자 금화 안에 축적되어 있던 방대한 마력이 폭주하듯 흩뿌려진다.
이로서 리디아는 대가를 바쳤다.
세계는 이에 응할 것이다.
“증명하라.”
리디아가 입술을 달싹여 주문을 외움에 이어 산산이 부서져 황금 조각으로 화했던 미립자가 일정한 형태를 갖춘다.
복도를 빼곡히 채우며 날개를 퍼덕이는 금빛 동체의 나방.
검은 포식자처럼 돌진하는 린네를 가로막기엔 너무도 연약해 보이는 사역마였다.
그러나 흑색 쐐기가 되어 돌진하던 린네가 정면돌파를 포기했다.
뱀이 기어가듯 부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꺾이는 동체.
더불어 린네의 달음박질을 따라 덧칠되던 흑과 백의 색채 역시 확산을 멈춘 채 기이하게 비틀린다.
멀찍이 지켜보던 시우에겐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린네와 시우의 파이팅 스타일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거리를 좁힌 순간 대다수의 마녀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이 그러했다.
비집고 들어가려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을 놔두고 초격의 기세를 스스로 꺾었다.
일견 저 나방이 그렇게까지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는데 말이다.
“어라?”
그러나 반 박자 늦게 린네를 쫓아 번져온 흑백세계가 찬연한 빛을 내뿜는 나방과 겹치는 순간.
시우는 그것이 방만에 불과했음을 알아차렸다.
또한 만약 저 자리에 린네 대신 자신이 있었더라면 제대로 싸움을 시도하지도 못하고 격침되었으리라는 것도.
나폴나폴 날갯짓을 하는 나방은 흑백 세계에서도 제 색채를 잃지 않고 있었다.
린네의 흑백세계는 마력 본연의 성질을 앗아가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제약 없이 뺏어갈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침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자성(自成)’을 지닌 마법에 한해서는 색채를 뺏어오지 못한다.
예시로 마력을 집중했던 시우의 붉은가지는 린네가 구현한 심상 속에서도 붉은빛을 유지했다.
이는 리디아의 나방이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힘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
반면 린네는 이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베일에 둘러싸인 리디아의 마법 중 그나마 잘 알려진 ‘무가치의 독나방’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위력도 상해를 가할만한 파괴력도 없다.
방비 없이 맨몸에 닿아도 흩어져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금빛의 독나방은 존재자의 ‘가치’ 그 자체를 좀 먹으며 부식시킨다.
일단 몸에 접촉했다면 뒤늦은 방어도, 회피도 의미가 없다.
대상이 마녀라면 자성마법, 마력, 신체능력, 생명력에 이르기까지.
마녀를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무가치’한 것으로 되돌린다.
고레벨 캐릭터를 가벼운 터치만으로 초심자 수준으로 퇴화시키고,
제아무리 견고한 방어를 전개해도 생명력을 일정 비율로 잃게 하는 부조리한 기술.
일반적인 대마녀라도 5마리 정도만 몸에 닿는다면 견습마녀 수준으로 힘이 제한되고, 그 이상부터는 나방을 떼어내지도 못한 채 확실한 죽음을 맞이한다.
즉, 이 나방떼는 리디아가 넓게 펼쳐놓은 죽음의 덫이다.
하나라도 몸에 닿는다면 그 즉시 패배가 확정되는 치명적인 덫.
이것이 원소도, 마법식도, 역장도 아닌 ‘가치’라는 관념 자체를 다루는 리디아의 자성마법.
비슷하게 관념을 다루는 마녀로는 ‘행운의 마녀’ 정도가 있지만 리디아는 23 위계, 정교함과 위력에서 격이 다르다.
“…….”
그러나 린네 역시 갖은 경험을 딛고 살아남은 투사이다.
쉬운 싸움이 되리라 낙관한 적은 없었다.
린네의 검을 타고 검은 마력이 타올랐다.
허공을 수놓던 먹물이 빨려 들어가듯 대태도와 소태도의 날 끝에 집중된다.
아무리 독나방의 힘이 강력하더라도 이만한 숫자다.
일 점에 집중된 힘과 흩어져 있는 힘 중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느냐를 비교한다면 자명한 사실.
비록 나방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한들 린네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독나방의 군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몸이 검은 폭풍처럼 흑선을 그을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악충들.
-촤악! 촤아악! 촤악!
그러나 리디아에게 독나방은 그저 시간 벌이용 수호 골렘에 불과할 뿐이다.
린네의 돌진을 일차적으로 붙잡아 준 시점에서 그 소명을 다하였다.
“증명하라.”
재차 맑은 소리를 내며 튕겨진 깨끗하고 아름다운 금화.
일전 로지의 사체를 회수해 주조해 내었던 금화가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았다.
이 시점에서 리디아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