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19화 (719/917)

#719

1.

리디아가 자리를 비운 시각.

시우는 그녀가 선물로 준 끈팬티를 대충 침대 위에 올려놓고 침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야, 이거 예쁘네. 오, 이건 비싸 보이네.”

다시 말하지만 이대로 사태에 편승해 헥센나흐트를 빠져나오겠다는 계획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우 혼자만 빠져나오는 것도, 리디아의 거래 대상이 일면식뿐인 에렐림 공작인 것도 문제고.

근본적으로 리디아가 약속을 지킬 지부터가 의문이다.

따라서 시우가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침실을 둘러보는 건 그녀의 방을 수색하되, 만일 감시 장치가 있다 해도 탈출을 궁리하고 있다는 의심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건…. 또 뭐지?”

그렇게 뱀이 기어가는 듯한 동선으로 집무 테이블까지 도착한 시우.

엉뚱하게도 스탠드에 매달려 있는 드림캡처를 구경하는 척 고상한 필체가 휘갈겨져 있는 서류를 힐끗댔다.

사방팔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서류 더미는 추측건대 솔리두스 상단주로서 결제해야 할 문서로 보였다.

선박 번호라던가 화물을 집하할 항구 위치 따위가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리디아는 굉장히 중구난방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임은 알아차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쓸만한 문서는 없어 보인다.

만약 산업 스파이였다면 몇 가지 건져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시우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

그나저나 누굴 만나러 간 거지?

괜히 서랍까지 들쑤셨다가 경계를 받으면 곤란하니 얌전히 침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떠오른 의문이었다.

2.

린네는 발견한 중대한 정보를 리디아와 공유했다.

아마도 신시우가 로지를 죽이고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말이다.

또한 상황이 한결 급박하다는 점을 들어 솔리두스 상단의 즉각적이고 은밀한 협조를 요구했다.

이는 리디아에게 약점을 제공하는 행위였으며, 동시에 린네가 급박하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린네의 행동원리를 완벽히 이해한 리디아는 그에 대한 경악을 잠시 미뤄두었다.

“일이 그 정도로 복잡하다면 저도 그냥은 들어주기 힘들어요? 이해하시죠? 자칫 헥센나흐트의 범죄자를 빼돌리려 한 매국노 취급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이해한다.”

대신 급박한 린네의 처지를 이용해 협상의 고지를 차지했다.

리디아가 요구한 조건은 둘.

절대적인 비밀 엄수.

그리고 신시우의 신병을 확보하는 즉시 리디아에게 판매하리라는 계약이었다.

이런 조건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디까지나 ‘시늉’이긴 하다만 아득바득 이득을 끌어내는 것이 리디아의 평소 스타일이니 이 정도는 해 주어야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예상대로 궁지로 몰려있는 린네는 순순히, 그러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으로 수색을 부탁하겠다.”

“정말이시죠? 가능하다면 이쪽 계약서에도 서명을.”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어찌 됐건 그는 규율을 어겼으니까.”

린네가 한참 손해를 보는 구조였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걱정 말아요. 꼭 저희 측에서 먼저 확보할 테니.”

“고맙다. 나 역시 바로 수색에 나서겠다.”

가볍게 린네를 위로한 리디아는 그녀가 나선 방문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미안하게 됐네.”

설마 저 무뚝뚝한 린네에게서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마녀는 이래서 사랑을 하면 안 된다.

당장 저렇게 멍청해져 버리고 말지 않는가?

아무튼 귀찮은 방해꾼을 제거하는 건 성공.

시야가 좁아진 린네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새도 없이 신시우가 없는 헥센나흐트를 뒤지고 다닐 것이다.

앞으로는 부하 넷 정도에게 지시를 내려 수색하는 모습을 내보이면 충분하다.

“린네 양의 낭군은 내가 잘 먹을게.”

흥겨운 발걸음으로 침실로 돌아온 리디아는 자연스레 방의 풍경을 살폈다.

그가 무언가 건드리지는 않았는지 기억력과 대조하는 것이다.

어수선하다해도 제 방 수집품의 위치를 밀리미터 단위로 기억하는 리디아에겐 쉬운 일이다.

하지만 신시우는 침대에 누워있을 뿐 뭔가를 뒤적인 기색은 없었다.

“오래 기다렸지?”

“누가 찾아왔었나요?”

“그냥, 중요한 손님.”

상황적으로는 아까와 별로 다를 것이 없지만 리디아는 방을 나서기 전보다 고양된 심장을 느꼈다.

아직은 이것저것 확인 절차를 거쳐야겠지만  신시우를 향한 린네의 맹목적인 사랑을 일차로 확인했다.

그를 잘만 길들인다면 검의 마녀를 일회성 알리바이 대용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음껏 부릴 수도 있다는 의미.

여러모로 소득이 크니 절로 콧노래가 나오면서도 당장은 성적인 흥분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남의 연인을 빼앗는다는 것에 배덕적인 흥분을 느끼는 건 비단 남자만이 아니다.

NTL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오랫토록 사랑받은 장르가 아닌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린네가 무릎을 꿇고 애원할 정도로 소중한 남자를 침대에서 멋대로 취한다는 건 정신적 쾌감을 더해주는 소스로 충분했다.

허리끈을 풀고 단숨에 드레스를 벗은 리디아.

“이리 와.”

“네?”

“츄우웁…!”

리디아는 거의 달리듯 시우에게 안겨 대뜸 입술을 겹쳤다.

음란한 소리와 함께 뒤섞이기 시작한 혀.

“뭐, 뭡니까?”

“하아, 하아…. 엄청 젖었네…. 키스 더하자 빨리. 츄웁, 츄우웁….”

진득하게 키스를 이어가며 매끈한 허벅지로 자지를 문질문질해 발기시키는 데 성공한 리디아.

그녀의 손이 뜨거운 기둥을 움켜쥐더니 여성 상위 밀착 체위에서 그대로 삽입한다.

“하앙…! 아앙…!”

“이상한 묘약이라도 마시고 오셨어요?”

“아니, 그냥… 갑자기 흥분해서….”

리디아의 흥분을 남자 쪽도 이해하기 쉽게 묘사하자면….

평소 마음에 안 들 던 직장 동료(린돌이)의 와이프 시순이를 마음껏 범할 수 있는 상황.

게다가 당근도 채찍도 리디아가 단단히 쥐고 있기에 시순이 쪽에겐 거부권이 없다.

“왜요?”

리디아는 시우의 위에서 찌걱찌걱 말을 타며 탁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아, 아앙…. 린네가 찾아왔어. 널 애타게 찾더라고.”

“저를요? 하긴 그렇겠네요.”

“제법이야 그 린네를 홀딱 반하게 만들고. 후후, 그나저나 호칭이 낭군이라니….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

“……?”

지나친 흥분과 낯선 성감대를 찌릿찌릿 찌르는 물건에 의해 리디아는 시우에게 의구심을 남길 정보를 경솔히 노출하고 말았다.

“나도 낭군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야? 아니면 서방님?”

“편할 대로 하세요.”

“하아, 서방님…. 그럼 우리 키스 좀 만 더 하자….”

린네가 시우를 찾아온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대뜸 제자가 실종된 것이니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건 당연하겠지.

그러나 낭군이라는 호칭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린네는 알막 클럽을 벗어난 즉시 아르카나 타운의 한 저택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

신시우의 소재를 찾으려 애쓸 필요 없다.

맹신에서 비롯한 린네의 추리는 이미 충분한 증거를 손에 넣게 해주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는 확신을 얻은 뒤이다.

리디아와 살벌한 대치를 벌이던 당시.

린네의 비상한 후각은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체취를 감지했다.

바로 흐릿하게 희석된 남편의 체취를.

신시우가 실종된 사실도 금시초문이라 밝히는 리디아에게서 그의 체취가 느껴졌다?

그 이후 어떤 대화가 오갔건 하등 관계없다.

린네는 일목요연한 그림이 그려지자마자 리디아에게 머리를 숙였다.

또한 그가 린네의 신랑이 될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로지를 죽인 것 같다는 약점이 될 일부까지 털어놓았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간절함과 거기서 기인한 빈틈투성이의 언행을 연출해 내었다.

리디아가 보기에 린네는 영락없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시간을 낭비하게 된 바보로 보이겠지만.

이는 린네를 향한 리디아의 경계가 한껏 낮아질 것을 노리고 취한 행동이다.

솔리두스 상단이, 그것도 탐욕스러운 리디아가 신시우를 손에 쥔 것이라면 순순히 놓아줄 리 없다.

린네에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것부터가 그렇다.

“조금만 기다려라.”

물론 린네 역시 시우를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3.

“존나 하기 싫다…. 일 재미없다…. 휴가 가고 싶다….”

일전 주점에서 시우와 시비가 붙었던 란다 실피드.

도로시까지 대동해 그를 혼쭐 내려던 란다는 되레 모욕을 당한 채 주점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그러나 란다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 채 분을 삭이면서도 딱히 복수의 칼날을 갈지는 않았다.

대마녀도 되지 못한 낮은 위계로 공적 사회에서 높은 배분을 지닐 수 있는 건 그만큼 란다가 유능하고 또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한낱 드잡이에 질질 시간을 끌만 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현세에 비치된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회계조작에 열심인 란다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벌써 사흘째 목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 중이다.

이미 나가버린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독한 위스키는 필수였다.

“더, 알코올 더….”

몽롱한 상태로 더듬더듬 잔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면서도 서류에서 떼지 않던 란다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푹

동시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뭔가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의아함에 시선을 돌려 앞을 본 린다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탄식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도신이 창밖에서 흘러오는 달빛을 유려하게 쪼개며 테이블 위에 세로로 서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

자율 방어도 무시한 채 란다의 손등 위를 관통해 테이블에 못 박고 있었다.

손바닥에 아래 깔린 하얀 종이 위로 뒤늦게 번지는 선혈.

그보다 느릿하게 번지는 통증.

“으, 으… 꺄….”

충격적인 광경에 비명을 지르려던 란다의 턱 끝에 희뿌연 칼날이 받쳐진다.

이윽고 어둠의 장막을 걷으며 등장한 인물은 린네.

소태도를 역수로 쥐어 손등에 박고 대태도를 길게 뻗은 린네는서늘한 시선으로 소리 없이 말했다.

비명을 지르려 하면, 그 전에 죽이겠노라고.

“…끄윽… 크윽…!”

어금니를 깨물며 통증을 삼킨 란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헥센나흐트에서 폭력 행위가 일어난 사례는 없었다.

그만큼 빡빡하고 철저하며 절대적인 규율 아래 존재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그러나 차츰 손등 위로도 뭉글뭉글 솟기 시작한 붉은 혈액이 현실감을 일깨운다.

“솔리두스 상단과 리디아의 일정을 보고해라.”

린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거짓을 고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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