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14화 (714/917)

#714

1.

비밀 옥션의 첫 번째 이벤트인 싸움이 끝나고 간략한 경매가 시작되었다.

일찍이 시우가 보았던 경매 때보다 훨씬 고가의 상품이 오가는 와중.

시우와 리디아는 침실 바로 옆에 딸려있는 드레스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갑자기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느니 하는 무서운 말을 꺼냈던 리디아.

성전환은 현세에도 현대의료의 힘을 빌려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며 마법의 힘을 빌린다면 훨씬 실현 가능성이 늘어난다.

최악의 경우 고추가 뚝 떨어지는 최악을 상정하던 시우에게 리디아가 건넨 건 목걸이였다.

“이걸 착용하도록 해.”

“이건 뭡니까?”

“브리싱가멘, 예전에 호문쿨루스를 사냥하고 얻었던 목걸이야.”

마치 여왕의 것처럼 큼직한 보석이 몇이나 박혀있는 목걸이는 제법 묵직했다.

이걸 온종일 걸고 생활하는 여왕이라면 목 근육과 승모근이 상당히 발달해 있으리라.

어쨌거나 누가 봐도 여성용으로 보인다는 말.

꺼림찍함을 느낀 시우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리디아가 말했다.

“내기는 반쯤 장난이었어. 네 모습 그대로라면 너무 눈길을 끌 테니까.

이건 이름대로 착용자에게 한없는 매력과 여성스러움을 뿜어내게 해주는 아티펙트야. 설령 남자가 착용한다 해도 겉에서 보기엔 경국지색의 아가씨로 보이게 되는 거지.”

시우는 조심스레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고추는 괜찮은 겁니까?”

“응, 넌 그대로일 거야. 다만 밖에서 보이는 게 다른 거지.”

한마디로 위장용 아티펙트라는 의미다.

고추를 자르고 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보다야 온건한 해결책이었기에 시우는 순순히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어때?”

화려한 전신 거울 앞.

거울 옆에 빼꼼 보이는 리디아는 입술을 꾹 모은 채 폭소를 참으며 물었다.

옆구리를 쿡 찌르면 그대로 자지러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묘하게 기분 나쁘네요.”

거울을 보던 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울 속긴 흑발을 찰랑이는 시순이 역시 쌀쌀 맞은 표정이었다.

오똑한 콧날과 탐스러운 입술.

제법 풍만한 가슴과 야리야리한 체형까지.

키가 엄청 커서 그렇지 외형 자체는 타고난 미녀의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막상 거울이 아니라 육안으로 몸을 보면 그대로다.

확인해보니 고추도 제대로 달려있고 체조 선수처럼 울퉁불퉁한 근육도 그대로.

그러니까 브리싱가멘은 일종의 현실에 덮어쓰는 VR아바타인 모양이다.

전세계 넷카마와 합법적으로 여탕에 들어가고 싶은 아저씨들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고 싶어할 것 같은 아티펙트였다.

“목소리도 예쁘네.”

“목소리도 바뀌나요?”

“나한테는 엄청 낮고 차분한 여자처럼 들려. 하지만 이래서야 역사상 가장 키가 큰 마녀이겠는걸?”

리디아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떨떠름해하는 시우 앞에서 눈물이 나올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웃던 리디아는 이것저것 옷을 건네주었다.

흰 바지, 검은 셔츠와 붉은 조끼, 발목 위로 오는 사냥용 부츠.

오딜과 오데트가 입었을 때도 본 적 있다.

여우 사냥에 사서는 귀족의 사냥복 차림이다.

나풀거리는 드레스가 아니라 남장으로 봐도 좋은 복장인 건 다행이었다.

시우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리디아는 옆에서 얼추 헥센나흐트의 세력 구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리디아의 브리핑은 탁월했다.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

그 사이에서 시우가 취하게 된 포지션과 중요도.

리디아가 그를 숨겨주는 이유까지.

워낙 요점을 잘 잡아 조목조목 일러준 탓에 별다른 질문 없이도 처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너는 골든 스니치가 된 거야. 해리포터 봤지?”

시우는 두 가지 의미에서 놀랐다.

가뜩이나 남자마녀의 처지로 헥센나흐트에 잡혀 온 것이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데 원치 않게 정치적 주요인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 번.

헥센나흐트에 전쟁을 원치 않는 파벌이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이다.

“그래서 저와 마그누스 님의….”

“리디아 누나, 아니지 언니라고 불러.”

“…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거였군요.”

“그래. 네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린네의 밑에 있는 것보다 내 그늘에 있는 편이 마음이 놓였거든.”

이유 없는 호의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게 좋다.

생전 처음 보는 공적의 호의라야 두말할 것 없다.

리디아의 설명을 듣자 대략적인 그림이 잡히며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일단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가 강경파 손에 잡혀서 걸레짝이 되기 전에 게헨나로 돌려보내는 게 최선이지. 에렐림 공작과 대화가 오갔거든. 널 넘겨주는 대가로 평화협정을 추진하겠노라고.”

“에렐림 공작?”

갑자기 등장한 생뚱맞은 인물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시우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인물이다.

“티페레트 공작이 아니라요?”

“티페레트 공작이 우리와 협상? 제자라더니 그녀를 잘 모르는구나? 나도 그녀는 무서워. 진지하게.”

게헨나 측에서 평화 조약을 추진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상한데 그 대가가 시우의 신병을 양도받는 것이라니.

그나마 유력한 것은 예소드와 제머나이 백작님, 그리고 스승님이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다.

애석하게도 붙잡힌 처지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만 잘 풀리면 나로선 굉장한 이득이지. 한번 꼽아볼래?”

그녀가 정말 전쟁을 막으려고 한다는 가정하에 볼 수 있는 이득은 다음과 같다.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온건파의 수장으로서 헥센나흐트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지겠네요. 강경파에 대한 간접적인 견제는 덤이고요.”

“음음, 시순 양은 똑똑하네.”

흡족한 얼굴로 끄덕이는 리디아.

아무튼 이렇게까지 술술 말해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건 설득이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걸 알려주었으니 허튼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설득.

“잘됐네. 학습이 빠른 아이는 싫어하지 않아.”

언뜻 모두 잘 풀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린네의 아래 계속 있었다면 도로시에게 문의 마법식을 받고 변수로 대입, 차원이동식을 완성.

완성 이후에도 제법 험난하겠지만, 자주적인 탈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리디아가 정말 약속을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또한 시우의 수령 처가 에렐림 공작이라는 것도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설령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예빈과 앨리스, 마냐 말리샤는 포기해야 하는 상태니 로지를 죽이며 일이 꼬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지만 어찌 됐건 적당한 선에서 변수를 노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어떤 식으로, 언제 에렐림 공작에게 가게 되는 건가요?”

“방법은 비밀. 시기는 앞으로 사나흘 뒤쯤이려나?”

고작 사나흘.

생각보다 촉박하다.

아무리 시우라도 예빈 외 다른 사람의 탈출까지 리디아에게 부탁할 정도로 나이브하진 않다.

훗날 일이 틀어졌을 때, 그 자체가 약점으로 이용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고보니 린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직접 물으려던 시우는 즉시 질문을 되 삼켰다.

질문으로부터 파생되어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

리디아는 언뜻 시우에게 모든 걸 말해준 듯했지만 그렇지 않다.

이 거래에 리디아 본인이 지는 ‘리스크’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 솔리두스 상단, 혹은 온건파 전체의 계획일까?

모른다.

알 수도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건 리스크의 초점을 시우에게만 돌리는 리디아의 태도다.

앞서 리디아가 설명했던 이번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

그것이 어디까지나 ‘에렐림 공작과의 거래가 비밀일 경우 가능한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보자.

시우는 로지를 죽였다.

헥센나흐트 입장에서는 도시의 존재 근간인 ‘중립지대’라는 이념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 처벌해야 할 중대죄인인 셈이다.

이많은 공적과 추방자가 별 탈 없이 뭉쳐있는 건 도시가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믿음에서 비롯하니 말이다.

그런데 국가 간 범죄인 인도계약도 정치적 문제, 국제법문제에 부딪히는 가운데 헥센나흐트와 게헨나가 정치적 거래를 한다?

그것도 규율 위반으로 처형해야 할 범죄자를?

그것도 반반으로 세력을 나누어 첨예하게 대립 중인 온건파의 수장이 독단으로?

여기서부터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리디아의 계획이 온건파 내부에서도 반발에 부딪힐 법한 문제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비둘기파의 정책은 매파에게 이적 행위 또는 겁쟁이의 정책이라 비판받기 일쑤이다.

리디아의 행동은 내통자라는 비난을 받아도 반박의 여지가 없다.

리디아가 아무도 모르게 시우를 에렐림 공작에게 넘겨져야만 가시에 혀가 찔리는 일 없이 달콤한 과실을 베어 물 수 있다.

반면 그녀의 계획이나 꿍꿍이가 외부로 공표되는 순간 리디아는 과실과 가시를 함께 삼켜야 하는 처지가 된다.

즉, 시우의 존재와 에렐림 공작과의 계약을 감추는 건 그녀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조금 더 깊게 추측해보자.

그렇다면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범죄자 신시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그게 바로 린네다.

명목상 시우의 스승이고 소유주였으니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것이다.

시우가 알기로 린네는 인간관계가 지극히 협소하니 대변해 줄 이도 없겠지.

시우는 리디아의 철두철미함을 새삼 깨달았다.

까다로운 리스크는 모조리 린네에게 떠넘기고 본인은 과실만을 취한다.

리디아의 계획이 언제 어디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몰라도 지극히 계산적이었다.

아무튼 이 추론은 어쩌면 ‘변수’로서 활용될 수 있는 리디아의 약점.

그녀가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라면 시우 역시 속아 넘어간 자의 무방비함을 연출하는 게 좋다.

“자, 이제 목걸이는 잠시 벗어도 돼. 어차피 당분간 침실까지 오는 마녀는 없을 테니까.”

시우도 딱히 도내최고 미소녀로 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목걸이를 벗어 원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리디아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

“가까이 와볼래?”

조금 전까지 시우가 몸을 눕히던 침대에 살포시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의미심장한 미소를 시우에게 흘린다.

따로 침대나 침구를 가져온 것이 아닌 그녀의 침대에 시우를 눕혀두었던 것이 복선이었을까?

“저 혼전순결 주의잔데요.”

린네 때와 같은 이유로 섹스를 통한 마력 증폭이 발각되는 건 이롭지 않다.

눈도 깜빡 않고 새빨간 거짓말을 한 시우였으나….

“네가 여기 있는 동안엔 내 소유야. 어떻게 하든 내 마음 아니겠어? 원래라면 남자는 침소에도 들이지 않지만…. 남자 마녀를 시식할 수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아예 작정한 듯한 그녀가 이 정도 말로 단념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시우는 조끼를 벗고 셔츠의 단추를 풀며 리디아에게 걸어갔다.

“뭐, 좋습니다.”

마력 증폭 숨기기도 처음이 아닌바, 이번엔 린네 때 얻은 경험치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애매한 회피보다 강력한 정면 돌파가 진실을 숨기는 법이라는 걸 배웠으니 말이다.

털썩 침대 옆면에 앉자 리디아는 시우의 귀를 잡아당기며 작게 달짝지근한 귓속말을 속삭였다.

“누나 말 잘 들으면 집에 보내줄게.”

매혹적인 유혹을 흘려 들으며 시우는 다짐했다.

리디아를 자지로 존나 패서 어디에 사정했는지도 모르는 암캐로 만들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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