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13화 (713/917)

#713

1.

금화의 마녀, 리디아 마그누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걷히기 시작한 커튼.

커튼 쪽을 향해 나란히 놓여있던 소파에서 유리창 너머를 내려보게 된 시우는 그녀의 침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시작 안 했네.”

이곳은 헥센나흐트의 아르카나 타운.

더 정확히는 알막 클럽(Almack’s Club).

더 정확히는 과거 린네가 앨리스를 구매해 주었던 때의 경매장.

더 정확히는 2층부터 4층까지 층을 이루던 로얄 박스의 최상층이다.

그제야 시우는 커튼이 묘한 곡선을 그리고 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한층 전체를 통으로 사용하는 그녀의 방은 테라스처럼 돌출되어있는 유리벽을 통해 어디서든 경매장을 내려볼 수 있는 형태였던 것이다.

무대와 스포트라이트가 준비되어 있다는 건 변함이 없었으나, 그때와는 조금 풍경이 달랐다.

먼저 오페라 극장처럼 1층에 빼곡하게 놓여있던 의자가 없다.

대신 훨씬 커다란 무대가 1층 전체에 단단한 지면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의자에 앉아있어야 할 마녀도 없었다.

그러나 귀빈석만큼은 단 한자리도 비우지 않고 마녀가 앉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로얄 박스마다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위해 마력 패턴을 위조하는 검은 천막이 드리워 있었으나, 그 농밀한 마력의 부피만큼은 감출 수 없던 까닭이다.

놀랍게도 60명에 달하는 인원 전원이 대마녀이상.

태어나 이토록 많은 대마녀가 한자리에 집결한 것을 보는 건 처음이다.

최초의 핵실험을 목격했던 과학자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시우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대마녀의 힘은 누구보다 시우가 잘 알고 있다.

일인 일인이 하나의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는 비대칭 전력.

게다가 이들은 모두 공적 혹은 그에 준하는 사상을 지닌 추방자이다.

이 중에는 린네, 비앙카와 같은 전투력을 보유한 자도 적지 않게 섞여 있겠지.

지금까지는 케테르가 두려워, 서로를 의심해 따로따로 흩어져 살던 그들이 뭉쳤다.

이만큼 집결된 힘이 공통된 목적의식을 가지고 탈선한다면 그 파급력과 파괴력은 얼마 정도일까?

“이게 뭐죠?”

“겁먹었니?”

느긋하게 담뱃재를 터는 리디아는 무대가 아닌 시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겁을 먹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어차피 이런 장면을 본다고 해서 갑자기 상황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자 압도당했을 뿐이다.

가령 여기 모인 공적 중 하나가 ‘케테르도 없고 기분도 꿀꿀한데 미국이나 씹창내야겠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간다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 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살짝요.”

“대단하지? 클리포트가 무너진 이후엔 누구도 이렇게 많은 탈 게헨나 세력이 한자리에 뭉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을 거야. 원래부터 누려야 했을 영광을 이제야 만끽하게 된 거지.”

반박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리디아도 호응을 기대했던 건 아닌지 샴페인을 꺼내 잔에 나눠 따랐다.

“감사합니다.”

입이 적잖이 건조해졌기에 목이나 축이려 잔을 들었다.

“헥센나흐트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리디아가 건배를 권해오기에 마지못해 어울려 주었다.

상등품이 분명할 향긋한 포도향과 함께 혀끝에서 별이 굴러가는 듯한 청량함이 느껴진다.

“너무 겁먹을 것 없어. 다시 말하겠지만 헥센나흐트에서 폭력 행위는 엄금. 다들 즐겁자고 모인 자리에서 칼부림을 벌이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저는 왜 무사한 겁니까?”

“네가 무사한 편이 나에게 이득이기 때문이야. 아까 말했잖아. 우리의 이해관계는 아직 일치하고 있다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본론을 곧장 찌르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하는 화법은 비단 공적 뿐 아니라 많은 마녀에게 보이는 특징 중 하나다.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곧장 정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무지몽매한 자로 남으려는 아둔한 자의 품위 없는 소행이다.

라는 식으로 포장하긴 하는데….

시우가 보기엔 그냥 성격이 비비 꼬인 걸로만 보인다.

그래도 흐름을 보아하니 대뜸 무대 한가운데로 시우를 집어 던지며 ‘오늘의 상품은 남자 마녀입니다!’라고 하진 않을 것 같다.

“오, 시작한다.”

리디아의 말에 시우는 그녀의 수수께끼를 곱씹으며 아래를 보았다.

-팟! 팟!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위로 두 명의 마녀가 등장한다.

한쪽은 흑발, 한쪽은 백금발.

둘 다 처음 보는 마녀였다.

다만 목에는 마력 운용을 제한하는 아티펙트가 걸려있어 각기 15 위계로 출력이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지고 무대 전체에 조명이 들어서며, 동시에 충격을 감쇄하는 강력한 마법장이 펜스처럼 전개된다.

거기까지 보고 난 이후 시우는 곧장 한 단어를 떠올렸다.

콜로세움.

현대 관점에서 보자면 온갖 잔혹한 내용의 쇼가 대중의 축제라는 명목하에 구경거리로 제공되었던 유명한 건축물을 말이다.

그 중엔 분명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의 사투도 있더랬지.

“설마 서로 죽이는 건가요?”

“그 말 그대로 설마야. 얼마나 비싼 상품인데.”

리디아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둘 다 18 위계나 되는 마녀라고? 사고 방지를 위해서 위계도 제한해두고 의료팀도 배치했어.”

첫 만남 때 보여준 모습도 그렇고, 그녀의 방 풍경도 그렇고.

대충 성향이 잡힌다.

“보시다시피 이건 알막 클럽에서 제공하는 비밀 옥션이야. 최고위 마녀만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입회할 수 있지. 엔터테이먼트와 상품을 함께 제공하는 건 구매자의 지갑을 여는 좋은 방법이니 말이야.”

이명에 걸맞은 황금만능주의.

오직 이득과 손해만을 저울질하는 냉혈한의 사업가 정도려나.

“그중에서도 마녀 간의 마법전투 공연은 인기가 좋아. 구매할 상품의 상태를 미리 확인할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원래 싸움은 개싸움 구경이 재밌는 거 알지?”

경박한 말투의 해설 따위는 없이, 대척점에 서 있던 두 마녀가 맞붙었다.

격돌 끝에 튕겨 나간 힘이 사방팔방으로 퍼지는데도 관중을 보호하는 역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용솟음 치는 물과 대지를 달리는 불의 싸움.

두 사람 모두 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한정된 힘을 짜내고 있다.

“필사적으로 싸우네요.”

“과거의 검투사와 같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살아남을 일말의 희망이 생기니까.”

이 시점에서 시우는 그녀에게 마음의 선을 긋고 있었다.

도로시 때처럼 혹은 린네처럼 아리까리할 필요도 없다.

리디아가 스테레오 타입의 공적에서 ‘흉포’를 빼고 ‘계산’을 넣는다면 나올 법한 인물이란 판단을 끝냈으니 말이다.

“그냥 보기 심심하면 베팅이라도 해볼래?”

“괜찮습니다.”

“나는 검은 머리가 이긴다에 걸겠어. 너는?”

“…반대에 걸어야겠죠.”

“하긴, 우리 두 사람뿐이었지?”

하지만 시시한 농담 이후 소박한 웃음을 짓는 리디아의 모습은 굉장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리디아는 로지처럼 타인의 유열과 비극을 소비하며 즐거워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에아처럼 약자를 유린하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도,

비앙카처럼 특별한 존재는 범속함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독특한 도덕관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다만 마치 아무래도 좋을 지루한 동물 다큐를 보며 수다를 떠는 것처럼.

제 손으로 빚어낸 장면을 보면서 아무런 죄악감 없이 웃고 떠든다.

만약 우연히 만났더라면 위트있는 대마녀 아가씨로 생각하게 될 것 같은 행동거지를 보이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평범한 악.

비정상적인 장면을 아무런 도덕적 필터링 없이 숨 쉬듯 받아들이는 뒤틀림이 그녀를 더욱 위험해 보이게 만들었다.

“먼저 제안해놓고 미안하지만, 내기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스레 합석한 술자리처럼 TMI를 늘어놓는 리디아.

금빛의 눈이 위로 아래로 시우의 몸을 훑는다.

“내 눈엔 사물의 본질이 지닌 가치가 보이거든. 그래서 한번 값을 매겨보자면, 저 검은 머리 마녀는 금화 다섯 닢. 백금발 마녀는 네 잎 정도네. 그러니까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길 거야.”

제 입으로 정보를 털어놓겠다는데 마다할 필요 없다.

적당히 맞장구를 놓았다.

“자성마법인건가요?”

“일종의 마법이지.”

“조금 비겁한데요.”

솔직담백한 시우의 말에 팔뚝을 툭툭 때리며 웃는 리디아.

여전히 금화 자루가 짤랑이는 것 같은 웃음소리다.

“정형화된 마법은 아니야, 무의식 속에서 하는 계산에 가까워.”

“그게 무슨 말인가요?”

“너는 그런 경험 없어? 어쩐지 느낌이 쌔하다 라는 거, 과학적으로는 입증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체로 얻어맞잖아.”

“그렇습니다.”

리디아는 ‘그렇지?’라고 말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무의식이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표층의식이 간과한 정보를 규합해 경고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만큼은 인지 능력 이상의 정보처리가 가능해지는 거지.

나야 하도 가치를 판단하고 손익을 계산한 세월이 길었다 보니 이제 뭔가를 보기만 해도 반짝이는 금화들이 보여. 직업병이랄 수도 있겠지만, 참 예쁘고 보기 좋은 광경이야.”

문득 호기심이 든 시우가 물었다.

“그럼 전 금화 몇 개 정도로 보이는 건가요?”

그 질문에 눈을 시우를 빤히 바라보는 리디아.

반짝반짝 빛나는 금안이 담긴 눈이 원석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공사처럼 좁아진다.

그리고.

-짤랑

리디아가 좋아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으로 떨어져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돌아가는 금화 한 잎, 또 한 잎.

-짤랑 짤랑 짤랑

처음엔 무르익은 열매를 떨어뜨리듯 한 닢 두 잎씩 떨어지던 금화가 계속하여 끝도 없이 쏟아진다.

그 기세는 멈출 줄을 모르고.

-촤르르르르르륵!

마침내 777잭팟을 맞은 구형 슬롯머신처럼 소나기처럼 흘러내리는 금화의 향연.

바닥을 죄다 덮다 못해 언젠가 이 방을 꽉 채울 만큼 경이로운 ‘가치’.

-쾅!

리디아가 입술을 달싹일 무렵.

별안간의 굉음과 함께 콜로세움에서의 싸움이 끝났다.

백금발의 마녀는 심한 화상을 입은 채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승자는 검은 머리의 마녀.

곧 이번 내기는 리디아의 승리였다.

“내가 이겼네.”

“그렇네요.”

어차피 내기의 패배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경마만 해도 경주마의 컨디션과 혈통 및 기질을 파악하는 건 승패예측에 중요한 요소이다.

정보가 하나도 없던 시우와 달리 해당 ‘물품’의 소유주인 리디아는 빠삭하게 정보를 꿰고 있는 것도 모자라 마권을 고른 것도 리디아다.

그녀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냉정을 유지하려 해도.

타인의 변덕에 오롯이 안위를 맡기는 건 불안한 일이다.

시우가 침을 꿀꺽 삼키자 리디아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너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

"........"

이 미친년이 뭐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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