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12화 (712/917)

#712

1.

피곤함, 배고픔, 고통.

불길함, 위기감, 경게.

이렇듯 부정적인 감정과 감각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설계된 알림 장치이다.

그리고 저주받은 신체를 지닌 린네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위협과 위기에 대해 감지할 수 있었다.

“…….”

후각의 감지란 후점막에 흡입된 냄새입자가 화학 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하며 이뤄지는 과정이다.

요는 냄새는 결국 입자라는 것.

이러한 입자는 공중에 떠 있을 때보다 무언가에 흡착되었을 때 더욱 오래도록 희석되지 않고 남아있다.

곧장 사냥개처럼 바닥에 엎드린 린네.

눈을 감고 코를 간질이는 핏빛 냄새의 자취를 좇는다.

이내 공중에 떠돌던 것보다 훨씬 농밀한, 작게 방울진 냄새입자의 웅덩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역시 이 지면에 신시우의 피가 흩뿌려진 것이다.

그러나 양은 많지 않다.

많아야 코피 정도의 출혈일 것이다.

바닥을 기며 조금 더 돌아다니는 린네는 재차 후각신경을 자극하는 혈향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신시우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것.

아주 높은 확률로 로지의 것이다.

“……!”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냄새를 추적하던 린네의 어깨가 우뚝 굳었다.

장소는 벽의 끝.

무릎을 세워 천천히 일으킨 린네는 현장을 감식하는 형사처럼 그 위치를 바라보았다.

린네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검사라면 핏방울이 어떤 식으로 퍼져 나갔는지를 보고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후각으로부터 추출한 데이터를 뇌내에서 조합해 다시 바라본 결과.

새빨간 바닥과 벽면이 보인다.

물러질 대로 무른 토마토를 바닥에 내던진 것처럼 방사형으로 퍼진 핏방울.

그 중심의 피 웅덩이.

어찌나 기세가 거칠었는지 벽의 제법 높은 곳까지 핏방울이 튀어있다.

이러한 형태는 날붙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둔기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

린네는 시우의 주무기가 창임을 가정하여 손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아래로 힘껏 내려치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것이다.

그 시점에서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이지만 로지는 신시우에 의해 이런 방식으로 처형당했을 것이다.

거기에 혈액의 양을 단순비교하면 신시우는 로지에 비해 경미한 부상을 입었겠지.

“…어째서.”

린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헥센나흐트에서 폭력 행위가 금지된다는 점은 말해두었다.

그 경우 사실상 도시의 행정권을 쥐고 있는 클리포트에서 직접 제재에 나서리라는 것도 전달했다.

지금껏 지켜본바 순한 인상과 다르게 신시우는 멍청한 놈이 아니다.

겉과 속을 구분하여 행동하고, 사리분별이 가능하며, 은근히 꾀를 부리는 유형임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대책 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을 이유.

여기서 두 가지 가능성이 나온다.

하나, 신시우는 감시망이 엉성한 틈을 타 로지를 살해하고 린네의 밑에서 도주를 시도했다.

그렇다면 냄새를 지우고 로지의 시체를 처분한 것은 증거인멸을 위한 시도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첫 번째 경우는 가능성이 낮았다.

바로 벽까지 튄 거친 혈흔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혈흔에서 린네가 읽어낸 것은 지극히 격정에 휩싸인 두 번의 내려찍기.

그러나 신시우는 전투의 흥분 때문에 이성을 잃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혈중 아드레날린 농도가 짙어질수록 침착하고 냉정해지는 전략형 투사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22위계 린네의 전력으로 맞부딪칠 때도 말끔한 이성을 유지했던 그가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였던 로지에게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다?

이건 일어나기 힘들다.

만약 처음부터 계획한 살인이었다면 훨씬 냉정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겠지.

그렇다면 다음 경우로 무게추가 기운다.

둘, 모종의 우발적 갈등으로 로지를 죽이게 되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뒤 도주했다.

이 경우 린네가 그의 잘못을 가려주지 않으리라 짐작하고 도망친 것이다.

이쪽이 훨씬 설득력에 무게를 더해가는 가운데.

린네는 영문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나름의 유대를 쌓았다고 생각했다.

매일 함께 강함을 향해 정진했고, 심지어 잠자리도 같이 한 사이이다.

그를 향해 섭섭히 대한 일은 없었으며, 그를 위해 요리하는 법까지도 배웠다.

가마우지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앞으로도 남은 삶을 바치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허나 신시우는 린네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가 헥센나흐트 안에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사건보다 그쪽이 더욱 심리적 데미지가 크다.

물론 이러한 사고 과정은 평소 린네가 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강함만을 추구할 필요 없이 안정감을 선사해 주는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한 린네는 극도의 흥분과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와 혼인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신부수업을 한답시고 요리를 배우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린네는 조금만 진정해도 되돌아볼 수 있는 진실을 바라보지 않았다.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된 린네의 집중력은 냉정한 내면의 목소리마저 배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린네의 삶은 언제나 한 점만을 향해왔으니까.

동시에 두 가지를 하는 멀티테스킹이란 늘 린네에겐 분에 넘치는 사치였다.

흐리멍덩하던 목표가 보다 또렷해진다.

“찾아야겠군.”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전후 사정은 상관없다.

그는 헥센나흐트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저택 안이라면 몰라도 헥센나흐트 외부 곳곳에는 감시장치가 놓여있는바 로지의 저택까지 그가 발을 들이는 모습이 관측되었겠지.

로지는 외부 활동이 잦은 마녀니 앞으로 하루 이틀 뒤면 갑작스레 묘연해진 그녀의 행적에 의문을 품은 이도 등장한다.

그 전에 그를 찾아서 보호해야 한다.

만약 린네가 같은 행동을 했더라면 적어도 공정한 재판대에 섰을 것이다.

누가 먼저 공격을 했는지, 어떤 연유로 전투가 벌어졌기에 불가피한 피가 흘렀는지 변호할 기회가 있겠지.

그러나 린네는 공적의 틈바구니를 뒹굴며 그 생리를 파악한 지 오래다.

신시우는 남자 마녀, 누구든 탐을 낼만한 전리품이다.

그를 차지하기 위해 없던 죄도 만들어 낼 판국에 공정한 재판이 있을 리 만무하다.

헥센나흐트가 온건파와 강경파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대마녀 개인 레벨에서의 추적이 아닌 한 개의 단체, 그러니까 최소 대마녀 수십으로 구성된 정예한 인력이 수색에 투입될 것이 관측된다.

“…….”

혹시나 하는 심정에 추가적인 저택 수색을 마친 린네는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영문 모를 껄끄러움을 곱씹으며 로지의 저택을 나서고 있었다.

어딘가 빠뜨린 것이 있다는 직감이 뇌리를 스친다.

무의식 중에 놓치고 흘린 정보를 다시 한번 걸러내며 경고하는 직감은 린네가 몹시 신뢰하는 제6감 중 하나였다.

다시금 상황을 반추한다.

“이상하다.”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보인다.

신시우가 현장을 정리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추적을 늦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핏자국을 지우고, 사체를 치우고, 청결 마법을 사용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청결마법은 분명 모든 냄새 입자를 제거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마녀에 이른 그라면 충분히 대비가 가능하다.

시체가 떡하니 놓여있던 자리의 냄새 입자까지 간과하고 내버려둔다?

어딘가 어설프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어딘가 의도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느낌.

그렇다면 왜 신시우가 로지를 살인한 증거를 은연중 남겨뒀을까?

아니.

정말 신시우가 남긴 것에 맞을까?

린네는 제3자가 이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

여기까지 떠올린 시점에서 린네는 자신이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음을 자각했다.

그저 신시우가 린네를 신뢰하지 못해 도망친 게 아니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런 내면의 속삭임을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증거만을 모아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을 나열한다.

-신시우는 로지를 죽였다.

-하지만 신시우가 사라진 것은 린네를 신뢰하지 못해 도망친 것이 아니다.

-제3자가 개입하여 신시우를 숨겼다.

-이상의 과정까지의 추리에 혼선을 빚기 위해 완벽한 증거인멸 대신 일부 조작된 증거를 남겼다.

그녀가 아무리 직감을 신뢰한다 한들 이 시나리오는 추리가 아닌 작두 타는 무당의 소행이다.

합리성을 져버린 어리석은 맹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린네는 신시우를 믿을 것이다.

설령 불합리하더라도.

부조리한 망상 뭉텅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현모양처의 덕목은 비단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현명한 아내는 제아무리 의심쩍은 정황이 있을지라도 지아비에게 한없는 믿음을 보내야 한다.

방황하던 린네의 목표가 뚜렷이 재설정된다.

남편이 사고를 치고 질책이 두려워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간악한 흉계에 빠져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온건파 혹은 강경파 세력이 그의 신병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강경파였다면 굳이 범법자를 몰래 빼돌린다는 귀찮은 절차를 거칠 필요 없다.

헥센나흐트의 규율을 세운다는 명분에 따라 그를 처형하고 동시에 티페레트의 분노를 이끌어 전쟁을 유도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러한 믿음에 입각한다면 가능성이 높은 쪽은 역시 온건파 즉, 솔리두스 상단이다.

린네가 움직였다.

헥센나흐트에서 범죄를 저지른 시우를 구해내는 건 곧 헥센나흐트 자체를 등지는 행위라 봐도 좋다.

허나 문제없다.

설령 헥센나흐트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신시우를 구해낸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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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장모님 일러스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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