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1.
도로시는 대체로 겁이 없는 공적 사이에서도 대담한 편에 속한다.
예배당과 수녀복을 매개로 구현하는 그녀의 자성마법 ‘천사강림’은 공격은 몰라도 방어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비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지난번 시우와 싸웠을 때를 제외하곤 전투 중에 상처를 입어본 기억도 없으며, 그녀가 수비에만 전념한다면 그걸 뚫어낼 수 있는 마녀는 없다고 내심 자부했다.
“…흐음.”
그러나 지금은 무심코 우황청심환을 찾고 싶을 만큼 심장이 빠르게 뛴다.
느긋하게 피우며 맛을 음미해야 하는 시가도 평소의 배는 되는 속도로 타들어 가고 있다.
도로시가 대담하다는 것이 만용을 미덕으로 삼는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르뤼에의 중재가 있다고 해도.
또 도로시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도.
만의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신시우에게 받은 ‘암호’가 있다고 해도.
그 무시무시한 티페레트 공작을 독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세월 동안 그녀에 대해 들어온 소식이라곤.
옆집 공적 누구누구가 티페레트 공작에 의해 사업장이 개박살 났대.
윗집 공적 누구누구가 티페레트 공작 손에 걸려서 죽었대 이런 흉흉한 소문.
또한 사상 최악의 호문쿨루스로 거듭난 적기사를 부리는 비겁의 마녀가 죽는 모습까지 보았으니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게 되는 것이다.
“하아~ 별일 없겠지?”
그래도 마냥 쫄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은 도로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라고 말은 하지만.
“또또 거짓말이네.”
이번에도 본심은 따로 있다.
티페레트 공작은 신시우의 스승이자 연인이다.
드라마에서 본처를 만나 기도 못 펴는 내연녀가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없어 보이고 처량해 보이겠는가?
따라서 떳떳한 입장은 못 된다지만 기왕이면 팜므파탈 느낌 물씬 나는 내연녀로 인식되고 싶었다.
어쩌면 신시우를 향한 소유욕과 그의 연인을 향한 질투심의 소심한 발로일지도 몰랐다.
-후웅!
공간이 열리는 기척.
태평양의 한 무인도 해변에서 대기하던 도로시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로시, 데려왔느니라.”
가장 먼저 군청색 머리카락을 한 르뤼에가 보인다.
그 옆에는 금발과 별처럼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마녀가 보인다.
저쪽이 요새 향수로 이름값을 날리는 ‘향수의 마녀’ 아멜리아 메리골드이겠지.
추방자들 사이에서도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는 통에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는 도로시조차 알게 되었을 정도이다.
“…….”
살짝 감탄했다.
얼마전 새로이 23 위계로 등극한 강자라는 말은 들었지만 아멜리아의 외모는 미색이라면 지지 않는 마녀들 사이에서도 특히나 빼어나 보였다.
캐쥬얼한 현세 복식을 하고 있음에도 묻어나오는 기품과 우아함이 동화 속 요정을 연상케 한다.
르뤼에에 티페레트 공작에 이름 모를 예쁜 마녀까지.
딱히 일남일녀의 연애관을 지니진 않았으나 참 죄많은 남자가 아닐 수 없다.
“그대가 구도의 마녀인가?”
두 사람에 가려져 있던 티페레트 공작이 한 발짝 앞서 나왔다.
화질이 조악한 수정구로나 엿보았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도로시는 내심 놀랐다.
현세에서 가장 유명한 공적 슬레이어의 첫인상은 다음 셋과 같다.
쪼끄맣다.
귀엽다.
분홍색이다.
발걸음에서 뚜방뚜방 소리가 들릴 것 같으면서도 무심코 안고 싶어지는 쁘띠한 공작님이었다.
“이거이거 참.”
그러나 그러한 인상은 다부지게 다 물린 입술과 경계심에 곤두선 눈매에 이르면 조금 뒤바뀐다.
오래토록 단련된 무인의 의지가 엿보이는 준엄한 표정.
과연 적으로 만난다면 괜스레 기가 눌릴 것 같은 올곧은 눈빛이 한 점 흐림없이 쏘아진다.
“어떤 상황인지 상세히 듣고 싶군.”
“너무 공격적인 어조로다. 짐의 친우에게 예우를 갖추어라.”
포탈에서 이곳으로 오기까지 르뤼에에게 얼추 들었다.
도로시는 말하자면 르뤼에의 이모 격, 가장 신뢰하며 또 가까운 마녀라고 한다.
또한 구도의 마녀에 대해서는 엘로아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공적의 외모와 악행을 암기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로시는 토벌 우선순위에는 들지 않은 자였다.
무기상이라고는 점을 제외한다면 다른 공적에 비해 특출난 악행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위의 두 경우가 도로시에 대한 신뢰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수백년을 살아온 공적이라면 그 안에 구렁이 몇 마리를 키우고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법.
그에 비해 르뤼에는 위계의 고저와 관계없이 속이기 쉬운 철부지 마녀다.
최악의 경우 아멜리아와 엘로아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도로시의 책략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차라리 두 사람이 원래 세웠던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눈치 빠른 도로시가 그런 의혹을 간과할 리 없다.
그녀 역시 즉각 본론을 내놓았다.
“신시우는 지금 검의 마녀의 제자로 있어.”
“검의 마녀의 제자요?”
“응~ 맞아. 불과 며칠 전에 직접 만나고 왔으니 확실한 정보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이 필요하겠군.”
“잠깐, 그건 짐이 설명토록 하겠느니라. 아까부터 짐을 따돌리려 하는구나. 망망대해를 손바닥 보듯 들여보는 짐이 그 얄팍한 간계를 모를 줄 알았더냐?”
진중한 대화를 나누려는 세 사람 사이에 르뤼에가 뿅 끼어들었다.
“하기야 애가 닳을만하도다. 도로시는 짐과 막역한 지음. 친우의 공훈은 곧 짐의 공훈과 같을 터. 시우를 구출하게 된다면 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가겠지.”
아멜리아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천방지축 말괄량이 쌍둥이의 수업도 감당했던 그녀지만 르뤼에가 상대가 되면 굉장히 피로해진다.
“그런 건 아니었어요. 르뤼에 양이 말해주세요.”
“좋다. 이 장대한 이야기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꼬…. 그래, 누켈라비 왕국의 적법한 후계로 태어난 짐은 어진 어머니이자 스승 밑에서 마법을 갉고 닦았느니라.”
아니나 다를까 본인의 출생부터 이어지는 설명.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 엘로아와 아멜리아를 보곤 도로시가 조곤조곤 타일렀다.
“공주님, 이 뒤로는 제가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그때 짐의 스승이 이르길…. 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너무 길어요.”
“그런 것이냐?”
“네, 바쁘신 모양이니 제가 후~딱 끝낼게요.”
“알겠도다. 잘 간추려 설명해보도록 하거라.”
오만불손한 르뤼에이지만 충신의 직언을 듣는 것이 군주의 덕목임을 안다.
르뤼에는 아멜리아가 깜짝 놀랄 만큼 순순히 물러가 불가사리와 조개껍데기 따위를 주우러 뽈뽈 돌아다녔다.
“그대를 잘 따르는군.”
그 모습에 엘로아는 조금 더 부드럽게 변한 말투로 도로시에게 말했다.
안하무인이던 르뤼에가 저렇게 잘 따르는 모습에서 가산점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엘로아 역시 견습마녀와 어린마녀에게 관대하며 귀여워하니 말이다.
“나 역시 많~이 아껴. 정말이지 견습마녀 같다니까.”
한편 아멜리아는 뭔가 불안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르뤼에가 저만치 사라지자 참아두었던 질문을 와르르 쏟아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그를 만나서 무엇을 했길래 무사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가요?”
도로시는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과 시우와 협력한 계획을 풀어 설명해주었다.
그가 린네의 제자로 나름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것.
당장 큰 위험성은 없어 보인다는 것.
조만간 다시 접촉할 때 도로시가 그에게 ‘문’의 마법식을 전달하게 될 것.
단, 그 과정에서 헥센나흐트의 출입국 포탈은 제한되어 있고 만에 하나 추적이 뒤따를 수 있으니 외부까지 따라온 마녀를 요격하는 걸 부탁하려 한다는 것까지.
그러나 희보를 접했음에도 둘의 표정을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 경우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메신저의 신뢰성이 문제였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뭐든 말해봐. 성심껏 대답해줄게.”
“왜 시우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단순히 르뤼에 양의 애인이기 때문에?”
“음~ 말하자면 현지처이지?”
현지처라는 말을 듣자마자 휘둥그레지는 엘로아의 눈.
그리고 조금 있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 아멜리아.
“아아, 그날도 엄~청 뜨겁게 놀다 왔거든.”
둘의 시선이 나란히 도로시의 가슴에 꽂힌다.
저리도 펑퍼짐한 옷을 입었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굴곡과 볼륨감.
소피아 이상의 거유.
다른 모든 점은 칭찬할만해도 여성 편력만큼은 난잡한 시우가 무던히 넘어갈 리 없다는 생각이 퍼득 스친다.
도로시는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생각보다 당당하게 내연녀 발언을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주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은연 중의 자랑을 이어나간다.
“처음 아쿨라에서 관계를 맺었을 땐 낙인의 부상치료가 목적이었어. 그런데 내가 아주 푹~ 빠져버렸지 뭐야? 그 밖에 이것저것 고마운 것도 있고.”
사실 성관계 자체보다는 도로시와 르뤼에의 어긋날 뻔한 관계를 바로잡아 준 점.
르뤼에를 게헨나에 입국하게 해준 점.
도로시가 알던 것과 다른 강함 즉, 유대의 힘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점이 더욱 컸지만 은근슬쩍 빼고 말했다.
어쩐지 쑥스러웠던 까닭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
“어머? 시우가 말 안 했구나?”
그런 사실이 있었더라면 왜 제대로 말하지 않았던 걸까?
심란한 마음을 감추면서도 엘로아는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네. 이해해주게.”
“나도 알아~ 공작님은 공적을 엄청 싫어한다며.”
도로시는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엘로아를 향해 손짓한다.
“잠깐 귀 좀 빌릴 수 있을까?”
“나 말인가?”
“응, 공작님. 이 말을 해주면 공작님이 내 말을 믿을 거라고 전해줬거든.”
엘로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도로시에게 다가갔다.
도로시의 입술이 작게 달싹이더니 한 동물의 이름을 말했다.
“토끼.”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엘로아.
“토끼?”
그러다가 퍼득 깨닫는다.
샤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절대 모를 시우와 엘로아만의 비밀.
그걸 도로시에게 알려주었다는 건 어찌 보면 가장 효과적인 신뢰의 증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와는 별개로 당황한 엘로아가 위를 올려보자 빙글빙글 웃으며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보내는 도로시가 보인다.
“후훗, 그렇게 말하라고는 하던데 무슨 의미야? 암구호인가?”
어쩐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에 휙 시선을 돌린 엘로아가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이 자를 믿어도 좋을 것 같네.”
“네? 무슨 말을 나누셨길래….”
“마녀 명을 걸고 보장하지.”
극도록 심각한 표정이 되어 단언하는 엘로아의 모습에 아멜리아도 더는 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