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06화 (706/917)

#706

1.

시우가 납치 속 납치, 납셉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도로시.

그녀는 그녀대로 분주히 헥센나흐트를 떠돌고 있었다.

“천하의 도로시가 이런 출혈봉사를 하게 될 줄이야.”

시우에게 제공하기로 한 ‘문’의 코드.

현재 서로 다른 세 마녀가 나눠서 관리하고 있는 마법식을 입수하기 위해 가슴골에 땀이 차도록 뛰어야 했던 것이다.

헥센나흐트의 기밀유지를 위해 엄중하게 관리한다고는 하나 그 관리자는 결국 공적이다.

공적이란 족속이 개인의 이익 앞에서 얼마나 쉽게 공익을 져버리는지는 누구보다 도로시가 잘 알고 있었다.

주머니에 적당한 돈을 찔러 넣으며 자료를 요구하면 결국엔 술술 뱉게 되었다는 말이다.

허나, 신시우에겐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일련의 행동은 도로시에게 리스크가 있는 행위였다.

문의 마법식을 활용해 시우를 비롯한 인질들이 탈출에 성공한다면 도로시는 단숨에 용의 선상에 오를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토록 단기간에 문을 관리하는 세 마녀에게 부자연스럽게 접촉한 도로시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낼 거고, 조사를 통해 확신으로 바뀌겠지.

이 경우 죄목은 도시 내 일급기밀 탈취 혹은 유출 정도가 될 것이다.

안그래도 공적인 도로시가 헥센나흐트까지 등 져버린다면 그땐 정말 기댈 곳이 없는 신세가 된다.

먼 옛날 클리포트의 수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오히려 공적을 몇이나 죽이고 잠적한 옛마녀 ‘양자리의 마녀’처럼 말이다.

“이래서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하는 건데….”

이렇듯 손해뿐인 장사를 하고 있는 도로시지만 불만스레 투덜거리는 얼굴에는 그다지 불평의 기색이 없었다.

그는 이미 마녀로서 도로시의 삶을 구해준 은인이다.

거기에 귀여운 조카 르뤼에를 무사히 게헨나로 편입시켜 준 은혜가 있다.

명색이 구도의 마녀가 되어서 목숨 값으로 이만한 리스크라면 충분히 합당하지 않은가?

“나도 참….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또 하네.”

곰곰히 곱씹던 도로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말했듯, 그녀는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기엔 너무 똑똑한 사람이었다.

첫 만남 때 무기 밀매 사업을 지탄했던 시우의 투정에 맞춰 조용히 사업을 정리한 도로시이다.

그 이유는 언젠가 그와 다시 마주했을 때 ‘정말요? 저 때문에요?’라고 놀라며 기뻐하는 신시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재회하고 나서는 말도 꺼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번 일도 비슷하다.

도로시가 시우를 위해 헥센나흐트를 등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에는 부담감과 미안함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신시우처럼 순해 빠진 남자에게는 단순한 고마움보다 이런 부채의식이 직빵이기 마련.

그러면 아무리 공적인 도로시라도….

‘나 네 부탁 드려주려다 엿 됐어. 흑흑.’

‘정말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다 널 위한 일이었는걸.’

‘보상할 수 없을까요?’

‘그럼, 날 현지처로 인정해 주련?’

‘당근빠따죠!’

‘오호호!’

‘아하하!’

저런 식으로 현지처의 권리를 주장하게 될 수 있지 않을는지….

이런 마음이 섞여 있는 게 본심이라는 것.

“진짜 멍청하네.”

냉철한 분석을 통해 머릿속 싱그럽게 만개한 꽃밭을 발견한 도로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양아치 남자친구가 큰돈 빌려 달라니까 사채까지 써가며 ‘나 잘했지?’하고 칭찬을 기대하는 여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나쁜 남자에게 백날천날 뜯어먹히고 사는 멍청한 여자들의 사고방식이 이런 것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그게 본인이 하고 있는 짓거리라는 것엔 더 큰 한숨이 나왔고.

“하아….”

아무튼.

모아야 할 세 개의 마법식 중 빠르게 두 개의 마법식을 입수한 시점이다.

물론 그를 위해 무지막지한 현금을 사용해야 했지만, 가뜩이나 사업을 정리하는 통에 현금 부자가 되었던 도로시로서는 충분히 값을 치를 수 있었다.

문제는 마지막 마법식을 관리하는 ‘다면의 마녀’가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뒷돈도 뇌물도 쓸 수가 없다.

그녀가 헥센나흐트로 돌아오는 이틀 뒤까지는 시간이 붕 뜬 셈.

기왕 이렇게 시간이 빈 거 알뜰살뜰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르뤼에라는 소통창구를 통해 그의 무사와 용태를 게헨나 측에 알리기로 한 것이다.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싶긴 한데....”

본지 얼마나 됐다고 신시우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취중에 시우 앞에서 엉덩이를 까던 린네의 추태를 눈감아 주는 것으로 받아낸 관계 횟수는 2회이다.

다음에 만날 땐 마법식을 전달해 주어야 하니 허투루 기회를 쓸 수 없는 것이다.

“뭐, 잘 지내고 있겠지.”

처음 그가 납치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지만 그는 특유의 제비 같은 무빙으로 나름 안정적인 위치에 둥지를 튼 듯하니, 굳이 나무를 흔들어 의심을 가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요 근래 좋아하는 시가를 느긋이 피울 틈도 없어 애용하던 양절 궐련을 입에 문 도로시는 디그니티 타운의 출입국 관리소로 향했다.

커다란 항구처럼 보이는 출입국 관리소에는 수많은 마녀로 바글거렸다.

커다란 짐가방을 든 마녀 전원, 입국을 위해 대기하는 인원이다.

헥센나흐트가 번창함에 따라 몸을 의탁해오는 공적과 추방자의 수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그동안 배타적이고 경직되었던 게헨나의 추방 정책이 역효과를 불러들였다 해야 할까?

처음엔 미심쩍은 눈으로 헥센나흐트를 바라보던 중립 성향의 추방자마저도 하나둘 시민권을 얻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반면 현세로 나가는 길은 상당히 한적했지만, 보안 검색은 한층 까다롭다.

공적 중엔 밀수나 인신매매 등 음성적 경제활동의 종사자가 많은 만큼 검색의 정밀함은 따로 말할 것 없다.

먼저 신체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도 꼼꼼히 수색하는 아티펙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검사에 응할 땐 어떠한 마력 반응도 일어나면 안 되기에 마법적 은폐는 불가능에 가까우며, 출처를 입증할 수 없는 물건은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소지품을 검사하는 동안 가림막 너머로는 3명의 보안감독관이 체류 기간 및 도시 내에서의 행적을 열람한다.

셋 모두의 승인이 떨어진다면 비로소 바깥 땅을 밟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구석이 발견된다면 출국은 불가능하다.

임시 출국 불가 판정이 떨어지면 재판을 청구해 의심정황에 대한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약 일주일이 소요된다.

위계에 상관없이 이상의 조사에 불응하거나 난동을 부린다면 무시무시한 클리포트 언니들이 떼거리로 찾아와 응징해준다.

언뜻 불합리하고 번거로운 과정이다.

그러나 도리어 불편한 절차가 있기에 마녀들은 헥센나흐트를 신용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믿지 못하는 게 하루 이틀 있는 일이냐만, 이토록 적나라한 물증을 보면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구도의 마녀님.”

“응?”

잿빛 연기를 내뱉으며 느긋이 판정을 기다리던 도로시.

출신과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얼굴과 목소리를 감춰주는 가림막 너머로 한 감독관이 말을 걸어왔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만 몇 가지 질문에 답해주셔야겠습니다.”

“뭔데?”

“현세로 향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친구 보러.”

“현세에는 며칠 정도 체류하실 예정이시죠?”

“한 이틀?”

도로시는 태연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출입국 절차가 까다롭다 한들 머리를 열어 꿍꿍이까지 검사하지는 못하는 법.

“알겠습니다. 수속 완료되었습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고마워~”

도로시는 출입 인가 도장이 새로이 찍힌 시민권을 쥐어틀었다.

검문은 모두에게 공평을 기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구도의 마녀라는 이름이 공적 사회에선 꽤 유명한 만큼 다소 설렁설렁 통과한 도로시.

문 근처에 도달하자 현세 곳곳으로 이어진 포탈이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수만 개 이상의 통로를 설정할 수 있는 게헨나의 ‘문’에 비해 헥센나흐트는 항상 그 통로를 10곳으로 한정하며, 그마저도 시시각각 장소가 바뀌었다.

이 역시 보안을 위해서였다.

도로시는 아쿨라의 좌표를 알고 있기에 태평양 인근 한 섬으로 출국한 뒤 곧장 바다로 향했다.

2.

“폐…폐하…. 시, 시, 시련의 시간…입니다….”

“에잇! 이만 되었다! 아나스타샤!”

“폐하….”

“짐이 물러가라 하지 않았더냐! 소신껏 알아서 하겠다! 짐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막상 하면 잘할 자신이 있도다!”

한편 그 시각 르뤼에는 영화관에 눌러앉아 영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다 먹어치운 팝콘 봉투와 빈 음류캔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상황.

“흐흐흑.”

읍소하는 충신의 간곡한 충언에도 르뤼에의 눈은 영화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차피 짐이 최강이거늘, 더 강해져서 무엇한단 말이냐?”

사실 르뤼에의 시련이 지지부진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호전적이고 오만하기는 하나 그 이상 강해져야 할 동기가 없는 르뤼에다.

예소드 백작의 약탕 치료로 부상을 극복한 지금.

이 상태로도 그 건방진 금발 마녀나, 분홍 공작도 단숨에 쳐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그 어느 누가 누켈라비의 마해 앞에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겠는가?

물론 오딜과 오데트는 친구니까 봐줄 예정이다.

은근히 르뤼에를 챙겨주고 쌍둥이가 잘 따르는 녹색 머리 마녀도 굳이 응징할 생각은 없고 말이다.

아무튼 지금 이 자리엔 르뤼에의 분투를 칭찬해 줄 시우도 없으니….

아프고 힘들고 필요없는 시련에 몰두하기보다는 마음 편한 아쿨라에서 요양을 택한 것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이라고 읊조리며 말이다.

그렇게 빈둥대던 르뤼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 내로 익숙한 사람의 마력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로시이!!!”

쌍둥이에게 선물 받은 구두가 벗겨진 것도 모른 채 우당탕탕 달려가는 르뤼에는 도로시를 보자마자 펄쩍 뛰어 안겼다.

“여긴 어쩐 일이냐! 짐이 여기에 있는 건 어찌 알았더냐!”

“여왕님, 오랜만에 뵈어요.”

한 일주일쯤 집을 비웠다 다시 찾은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헥헥대던 르뤼에는 도로시의 표정을 본 뒤 자못 진지해졌다.

“무슨 일이 있더냐?”

도로시의 얼굴에 떠오른 게 비단 재회의 반가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도로시는 현재의 상황을 간추려 설명해 주었다.

헥센나흐트의 존재도 모르고 있던 르뤼에의 얼굴이 시시각각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리고 그가 납치되어 도시에 구류되어있다는 소식까지 전해 들었을 때.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네? 공주님?”

“잠시만이다!”

그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도 전하기 전 도로시를 등진 채 어디론가 향하는 르뤼에.

잠시 후.

-쿠구구구구구궁!

심해를 가득히 울리는 진동이 일어났다.

해저의 화산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한 격렬한 진동의 정체는 봉인되었던 왕국이 비로소 새 주인을 인정하며 일으키는 파동.

왕국 주위를 떠돌던 심해의 사역마들이 새로운 여왕의 등위를 축하하며 거칠게 울부짖는다.

“준비가 끝났다.”

르뤼에가 다시 도로시 앞에 나타났을 땐 그녀의 주위로 흘러넘치다 못해 가시화된 마력이 아지랑이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짙푸른 군청색 눈동자에 서린 분노는 바다어미의 위엄과 분노를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그래서, 감히 짐의 국서를 해하려 한 년들을 족치러 가면 되는 것이냐?”

“여왕님….”

“길을 안내해라.”

다소 급진적인 상황 판단으로 전투 준비를 끝내고 온 르뤼에.

일단 그게 아니긴 해도 도로시는 르뤼에가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르뤼에는 하면 되는 조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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