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04화 (704/917)

#704

1.

정확히 놀이방 규모에 맞춰 펼쳐졌던 이면결계가 걷힌다.

다시 반구형의 형태를 되찾은 놀이방엔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거인이 일으킨 해일의 여파만이 흩날리는 싸라기눈처럼 금빛의 마력을 흩어놓고 있을 뿐이다.

“…….”

이렇듯 마법 전투를 끝내고 여운에 잠겨들 때면 오만방자한 마녀의 사고방식이 이해되곤 한다.

필멸자라면 단신으로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기적을 연거푸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야 어지간한 인간은 하찮게 보일 법도 하다.

우매한 군중과 달리 세계의 진리에 맞닿은 듯한 감상에 젖노라면 특권의식이 스며들지 않는 편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양은 혈중의 아드레날린 농도와 심박 수가 여상 해짐에 따라 잦아든다.

“게흑…. 그윽…!”

그리고 피로로 절은 육체와 정신이 싸움의 패자를 포착한다.

거인이 뿜어낸 충격파에 얻어맞은 로지는 몰골이 처참했다.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떠올리는 모양새.

실제로 마법 및 물리적 충격이 로지에게 가한 피해는 평범한 인간이 맨몸으로 덤프트럭에 치였을 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로지가 피떡이 아닌 인간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공방에 비축되었던 마력으로 방어와 초재생을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크흑….”

피거품을 뿜으며 부러진 팔다리로 몸을 일으키는 로지는 알 수 없는 색으로 뒤엉킨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릿한 회복 끝에 짓뭉개졌던 기도가 확보되고.

공기 반 혈액 반의 목소리를 낸 로지의 첫 대사.

“너…. 이 씨발 새끼…. 반칙이나, 하고….”

그녀 입장에선 이건 제대로 된 결투가 아니었다.

시우가 위치보드 도중 판을 뒤엎고 죽빵을 날린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쏘아지는 원망을 무덤덤하게 받아내며 생각했다.

이제껏 겪어온바 마법 전투는 단순히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는 달랐다.

비록 서로의 목숨을 판돈으로 내거는 ‘싸움’이라는 점에서는 총격전과 다를 바 없는 행위이나 그 안에는 수많은 머리싸움과 심리전이 오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의 기지에 감탄하고, 경악하고 때로는 내심 찬사를 보내며 기묘한 연대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살인을 꺼리는 시우의 방어기제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마녀가 되었다고는 하나 고작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시우는 아직 현대인으로서의 가치관이 훨씬 강하게 자리 잡아 있다.

미디어에서는 살인이 아주 가볍게 묘사되지만, 타인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알고 있다.

하물며 그것이 전투 도중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투 이후의 ‘처형’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몇 명이나 무방비한 사람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겠는가?

혹자는 나약하다고 비웃을 만한 자기만족의 선을 시우는 마녀가 된 이후에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나약함을 뚫고 다짐한 살의이기에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

“이, 위선자 새끼! 좆 같은 새끼!”

비틑비틀 일어서며 엄포를 놓는 로지의 모습은 패배하기 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만약 그녀를 살려 보낸다면 조금의 반성도 없이 또 다른 비극을 양산하여 그 위에 걸터앉아 피와 눈물을 마시겠지.

시우는 창을 꺼내 들었다.

지금으로선 이 창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버거운 까닭이다.

과분한 힘을 다룬 대가로 전신의 마력회로가 달아올라 작열통을 선사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의 거듭 증폭도 신체 강화도 무리였다.

“힉…!”

로지의 안색이 창을 보자마자 뒤바뀐다.

너무나도 늦게 현실을 인식한 것처럼 괴성이 끊기고 대신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로지.

로지가 마음을 먹었다면 결계의 범위를 저택 바깥까지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전투가 끝나기도 전에 방해꾼이 난입했겠지.

그러지 않은 것은 로지가 단순히 시우를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실로 그 인식은 패배해 땅을 구르는 순간조차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짓밟고, 절망을 음미하던 오만한 마녀라도 직관적인 폭력의 전조 앞에는 몸을 움츠리기 마련이다.

로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우리 대화로 하자…!”

-그그그그긍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창끝이 땅을 긁는 섬뜩한 소리가 로지의 안색을 한층 하얗게 질리게 만든다.

뒷걸음질치는 로지와 그녀에게 다가서는 시우.

“너, 너가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헥센나흐트에서 날 죽이고도?”

놀이방은 좁다.

로지는 머지않아 벽에 가로막혔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도망칠 곳을 찾던 로지는 연약한 가면을 집어 던졌다.

이런저런 타협안을 제시함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눈빛에서 다짐을 읽어낸 것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어차피 뒤질 견습마녀랑 마녀인 거 아니야?! 나는 둘 중 하나는 죽이지도 않았어! 조금 같이 놀아준 거뿐이잖아!”

변명이랍시고 주워섬기는 자기변호에선 추악한 악취가 흘러나온다.

그에 대한 시우의 반응은 하나였다.

-부웅!

부채꼴을 그리는 창의 궤도.

마력강화가 없다고는 하나 그 위력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다.

-쾅!

그러나 로지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 창격은 반투명한 막 앞에 가로막혔다.

벽에 접촉하는 데 성공한 로지가 마지막으로 남은 절망을 쥐어짜내 만든 방어막.

창을 휘두르는 기백에 주저앉은 로지는 코앞에서 멎은 창격을 보고 일그러진 미소를 띠었다.

“하하하!”

그 미소는 이내 폭소로 돌변한다.

로지 역시 시우의 상태를 얼추 파악하고 있다.

피차 기진맥진한 상황.

기력을 다한 창격이 방패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로지의 공방은 지금 이 순간도 느릿하게 축적된 고농축 절망을 마력으로 변환하고 있다.

“병신, 넌 뒤질 거야.”

게임은 터무니없는 반칙 플레이로 인해 패배했지만 결국 승자는 자신이다.

이렇게 버티는 것만으로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니.

“같잖은 정의감이 들끓을 때는 용감했지? 우리 클리포트 앞에서도 같은 위세를 보일 수 있는지 지켜봐 줄게. 등신 같…  꺅!”

-쾅!

시우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주둥아리를 방관할 생각이 없었다.

힘껏 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장작을 패는 나무꾼처럼 보호막을 내리쳤다.

로지에게는 아무런 충격이 가지 않았다 해도 그 굉음은 놀이방 전체를 울린다.

“소, 소용없다니까? 네 남은 마력으론…!”

-쾅!

다시 한 번.

힘껏 휘두른 검은 창이 보호막 위를 두드린다.

영체로도 감당할 수 없는 반탄력이 시우의 손아귀를 찢는다.

그럼에도 창을 단단히 움켜쥔 그의 손에는 힘이 빠질 기미가 없었다.

-쾅!

철판을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

전율을 일으키는 굉음 속 로지의 숨이 멎는다.

-쾅! 쾅! 쾅! 쾅!

위에서 아래로 연거푸 휘둘러지는 장창의 환영이 보호막 위를 뒤덮고.

로지는 땅바닥에 바짝 붙은 채 그 무지막지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읍…!”

호흡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전신의 힘.

이완되었다가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을 모조리 창대에 실어 진각과 함께 내리친다.

-쩍!

흠집하나 없던 반투명한 보호막 위로 거미줄 같은 실금이 달렸다.

그 위에는 창대를 따라 흐르던 핏방울이 후두둑 낙하하여 이슬처럼 걸려있다.

그제야 로지는 시우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마법의 세계에만 살아왔던 로지로선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설마하니 완력으로 보호막을 부술 생각을 하고 또 실현에 옮기고 있다니.

“자, 잠깐만…. 내가 했던 말 취소. 다 취소할 게.”

침을 꿀꺽 삼킨 로지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보려 했으나.

다시금 내질러진 창이 말 허리를 자른다.

-쩌적, 쩍…!

균열에 불과했던 실금이 점점 뿌옇게 보호막 위를 잠식해간다.

“아….”

로지는 떨리는 눈동자로 날아오는 창대를 보았다.

-쾅!

-쩌저적…

“그, 그만해! 부서진다고!”

최악의 상황 속에도 대책 없는 낙관을 유지하게 해주던 ‘자신만은 특별하다’라는 유아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현실 외면 능력이 망가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보호막이 깨지질 않길, 그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길 기원하는 처지에서 비로소 명확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독선과 아집을 껍질 삼던 로지의 정신무장이 깎여나가며 그녀는 비로소 먹물처럼 가슴에 퍼지는 감정을 느낀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절망을.

항상 먼발치에서 소비하는 입장이었기에 찬미할 수 있던 새까맣고도 질척한 절망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응? 여기서 벌어진 일도 내가 다 덮어줄게.”

-쾅!

“아, 아니다. 피나가 문제였지? 피나는 앞으로 절대 손도 안 댈게. 마마도 풀어줄게. 마냐도 말리샤도 너한테 넘길게.”

-쾅!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절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사포처럼 심장을 갈아내는 꺼슬거림.

무거운 닻에 매여 한없이 가라앉는 두려움.

선연히 느껴지는 죽음의 혓바닥이 뺨을 핥는 순간 로지는 필사적인 구걸을 시작했다.

“사과, 사과할게! 용서해줘! 제발 부탁이야….”

-쩌저저저적!!!!

마침내 로지를 지켜주던 얇은 껍질이 무너져 내린다.

겁에 질린 로지의 얼굴 위로 처형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히이이익!”

지금껏 박자에 따르며 저 무지막지한 공격이 내려쳤어야 하는 타이밍.

그러나 시우는 냉담한 눈으로 로지를 내려보고 있을 따름이다.

“그, 그래…. 잘 생각했어! 우리 건설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자 응?”

까마득한 절망 속 일말의 희망을 느낀 로지가 반색하는 순간.

굳게 비틀려 있던 시우의 입술이 열린다.

“난 널 용서할 권리가 없어.”

가느다란 희망을 인정사정없이 끊어내는 냉혹무비한 음색.

로지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모든 희망을 잃은 로지가 죄다 부러진 이빨을 드러낸다.

“이 시발 새끼! 니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

-콰직!

핏빛의 굉음과 함께 로지의 팔다리가 고장 난 듯 뻣뻣하게 하늘을 향해 뻗었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로지를 향해 시우는 조금의 손속도 없이 창대를 내리쳤다.

-콰직!

경련하다 축 늘어지는 사지.

더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후우….”

시우는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숨을 골랐다.

첫 살인.

디아나를 납치해 몹쓸 짓을 하려던 잭을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은 적은 있지만 직접 숨통을 끊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후회나 두려움은 없었다.

인간이 아닌 사람을 무는 미친개를 도축했다는 감회만이 맴돌 뿐이다.

설령 스승님이 이 자리에 계셨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셨겠지.

이제는 뒷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다.

그림자의 창을 흩어 보내던 시우는 곧장 다시 창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짝 짝 짝

“훌륭한 싸움이었어.”

어느샌가 열려있는 놀이방의 문틈.

그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며 누군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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