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1.
술래잡기.
동서양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이 놀이는 이름을 되짚어보자면 꽤 기묘한 놀이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술래잡기란 술래를 잡는 게임이 아니라 술래가 복수의 참가자를 잡는 게임이니 말이다.
하지만 로지가 제안하고 놀이방이 구현한 술래잡기는 이름대로의 상황을 연출해냈다.
술래는 신시우.
술래잡기를 하려 사방에서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견고.
고작 지름 20M 남짓한 돔형 공간에서 벌어지기엔 지나치게 부조리한 규칙이다.
견고가 일제히 날뛰는 것만으로 돔형 공간은 회피할 공간이 거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컹! 컹!
-으르르르
눈꺼풀이 철사로 꿰어졌다 한들 사냥감을 포착하는 견고의 능력은 우수했다.
뿌리깊게 각인된 식탐으로 하여금 향상된 후각기능은 시우의 냄새를 확실히 포착했으며, 이내 무리지어 버팔로를 사냥하는 암사자떼처럼 사방에서 덮쳐들었다.
일개 사역마라 한들 마법 강화를 거친 악귀의 기동력은 이미 일반적인 짐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설령 돔 한가운데 서 있는 존재가 버팔로가 아닌 코끼리라 할지라도 삽시간에 뼈만 남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쾅! 쿠쾅!
고속으로 휘둘러진 검은 리본에 휩쓸린 개떼의 머리가 터지듯 폭발한다.
비산하는 두개골 조각 사이로 녹색의 저주가 허공에 흩어진다.
고리형태를 이룬 마법식에서 방사된 3중의 충격파가 날벌레를 때려잡듯 견고를 터뜨린다.
내부부터 파열된 견고는 비명 지를 새도 없이 검은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이따금 검게 타오르는 불길이 굶주린 짐승을 불사른다.
뼈까지 웰던으로 구워진 짐승은 새까맣게 탄 채 바닥을 나뒹군다.
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한걸음도 떼지 않은 채 벌어진 술래의 저항.
이만한 압도를 연출했음에도 시우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상황은 언뜻 보이는 것처럼 순조롭지 않다.
술래잡기의 규칙은 까다로웠다.
이 놀이방이 예상대로 ‘놀이’를 구현한 것이라면 지금 시우는 반칙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술래잡기에서 도망자는 추격자를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룰.
견고를 상대로 한 시우의 공격은 명백한 룰 위반이다.
실제 구사하는 마법의 위력의 반의반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방금 피떡이 되어 죽은 악귀의 사체가 원유처럼 끓어오른다.
검은 웅덩이 속에서 투레질을 하며 몸을 일으키는 건 부상 없이 복구된 견고.
견고의 숫자는 단 한 마리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우는 놀이의 규칙이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가졌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도로시가 구현했던 예배당보다는 못해도 충분히 강력하다.
붉은 가지가 없는 이상 완전한 파훼는 어렵다.
공방이 상대에게 안겨주는 메리트를 측정하고, 다시금 되새긴다.
“…….”
“와.”
그러는 한편 로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탄을 토한다.
로지 역시 대마녀.
시우가 펼치는 폭위(暴威)를 다른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는.
같은 마녀의 개입이 없다면 일신으로 일국(一國)을 초토화할 수 있는 자연재해다.
시우가 부리는 가지각색의 마법을 일일이 좇은 로지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너 정체가 뭐야?”
그의 마법은 명백히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마녀의 자성마법은 저마다 고유의 색을 지닌다.
설령 다른 계통을 마법을 연구한다 해도 수렴진화하며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 일례로 저주를 근간으로 삼는 로지가 구축한 회복 마법은 ‘회복력과 신체 내구도가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대신 추출해 두었던 절망을 제물로 삼는다’라는 저주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펼치는 마법은 공통된 수렴점이 없다.
견고를 후려치는 리본은 착각이 아니라면 에아 사달멜리크의 ‘처녀의 베틀’과 닮았다.
기시감이 드는 저 고리는 도로시 사하퀴엘의 ‘천사의 고리’와 닮았다.
둘의 근간을 이루는 건 생전 처음 보는 그림자.
클리포트 유명인사들의 마법을 다루는 것만으로 충분히 수상쩍다.
그런 주제에 오리지널을 카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리본 위에 마법식을 새긴다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역장을 전개하고, 그 역장으로 파도와 같은 마력의 파동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 정통 원소마법의 일종으로 보이는 검은 불길을 뿜어댄다.
언뜻 소문으로만 듣던 게헨나의 대현자, 에렐림 공작의 ‘천상의 허공록(虛空錄)’을 연상케 하는 다채로운 마법의 향연이나 실제로는 명백한 하위호환에 불과하다.
대마녀의 마법이 강대한 것은 하나하나의 자성마법이 시너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졸속으로 쌓아둔 듯한 그의 마법은 서로의 상승을 도모한다기보다는 위대한 마법을 얼기설기 쌓아둔 블록 더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강력한지라 술래잡기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견고는 사전준비를 위한 시간 벌이에 불과하다.
“좋아. 제대로 시작해볼까?”
사역마에게 전투를 일임한 채 마력을 응축하며 대규모 마법식을 준비하던 로지.
그녀의 손끝이 지휘하듯 우아하게 허공을 휘젓는다.
-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바닥을 지탱하던 지면이 사라지며 새로운 공간이 등장했다.
반구형의 공간의 지면에 거울을 붙인 것처럼 상하 대칭의 구 형태를 취하게 된 놀이방.
그 사이를 녹빛 안개가 생성한 격자가 거미줄처럼 가로지른다.
“내 호적수와 겨루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아쉬워서 준비했어. 어때?”
발디딜 지면이 사라진 즉시 염동으로 몸을 띄운 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형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건 거대한 정십이면체.
그리고 각기 다른 면에 내접하여 또 한 번 형성된 다수의 작은 정십이면체.
이 정도 규모를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매우 익숙한 공간이다.
로지가 구현한 새로운 놀이는 실로 일목요연했다.
그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며 실제로도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보드게임.
위치보드.
그것도 일개 패스와 룬을 이어 만들어 기초적인 마법으로 자웅을 겨루는 것이 아닌 각자의 자성마법을 활용하는 현실 규모의 위치보드이다.
전투에 집중 중이던 시우도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로지는 어린 마녀가 망상으로 만들 법한 스케일의 장난을 자성마법의 일부로 구현해냈으니 말이다.
어이가 없어지는 심정과는 별개로 규칙의 파악을 시도했다.
본디 위치보드 자체가 마법 전투의 축소판이다.
룰을 조금만 수정한다면 현실 전투에도 접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수정이 가해진 규칙이느냐’이다.
“…….”
시험삼아 정해진 ‘패스’ 이외의 공간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곧장 강렬한 부하가 걸리며 금빛의 스파크가 일었다.
-파츠츠츠츠
사실 굳이 실험해보지 않아도 마안에 보였다.
패스를 제외한 일대의 마력 저항이 한계치까지 치솟아 있는 것이.
거대한 규모로 구현된 보드의 외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되 불필요한 소모를 감행해야 하는 수준.
육탄전을 벌인다 해도 마력강화를 사용하는 한 수중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려지고 많은 힘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놀이의 규칙은 로지에게 일방적 우위를 안겨주었다면 이번 게임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했다.
룬 대신 꼭짓점 군데군데 떠오른 마력 중계기(中繼器) 역시 중립 상태의 것.
시우에게 적용되는 마력 운용상 페널티 역시 로지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마법이란 제약이 강할수록 그 힘이 올라가는 법.
그렇기에 이번 게임이 지닌 강제성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하다.
로지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시우를 끌어들인 것이다.
누가 더 우월한 계산력을 지녔는지.
누가 더 우수한 자성마법을 발휘하는지만을 겨루는 철저한 두뇌싸움의 분야로.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고?”
위치보드의 룰을 준수하고 있다고는 하나 지금의 전투는 실전이다.
스포츠맨십을 갖추어 한 수 한 수를 번갈아 둘 필요는 없다.
그점을 알고 있던 로지가 선수를 취했다.
마력을 중앙으로 확장한 것이다.
목표는 중립 상태의 중계기.
마력 부하가 한계까지 치솟은 공간 속 패스와 패스를 잇는 중계기는 점하는 쪽의 원활한 마력 운용을 돕는다.
위치보드로 따지자면 ‘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얗게 빛나던 중계기가 녹물이 주입되듯 녹색으로 변하더니 꿈틀거리던 짙은 마력이 삽시간 저주의 형상화를 끝낸다.
독사의 날카로운 이빨을 연상케 하는 수십 쌍이 패스를 따라 시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우웅!
그에 응하여 금빛의 마법식이 새겨진 리본이 부풀어 오른다.
폭발하듯 퍼져 나가는 파장의 힘은 예소드 백작의 보호장.
-핑! 핑! 핑!
총탄처럼 날아든 독니는 역장의 사면을 따라 새된 소리를 내며 도탄 되었다.
시우 역시 방어만을 준비한 건 아니다.
역장을 펼치며 중계기를 선점하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콰광! 콰과광!
눈부신 섬광과 폭굉(暴轟)을 동반하여 공중에서 얽히고설키는 마법.
강철을 녹이는 용광로의 불길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로지의 독니를 불사르고,
부식의 저주가 용오름과 같이 몸을 비트는 리본 다발을 삭은 밧줄처럼 끊어낸다.
중계기의 도움을 받아 강맹해진 역장이 그 영향력을 부풀리면,
침투의 저주를 지닌 고리 형태의 저주가 역장을 찌그러뜨린다.
위치보드와 다르지만 위치보드의 규칙을 차용한 전장.
제한된 투로의 수 싸움에서 로지의 강함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하하하하하!!!!”
작은 이득을 바탕으로 더욱 큰 이득을 도모하는 극한의 스노우 볼링.
일련의 착수는 기계장치라 여겨도 좋을 만큼 냉철하고 정교하다.
마법과 마법 간 연계가 약한 시우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한편 본인은 더욱 치명적인 자성마법의 연계를 준비한다.
고작 수초 남짓한 시간에 펼쳐지고 세워지고, 부서지고, 재조립되는 마법의 잔재 속 끝없이 소소한 이득을 챙긴다.
그 결과 순식간에 중계기의 6할을 점거한 로지.
마법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위치보드 상으로 제한된 만큼 중계기와 패스를 얼마나 점거했느냐가 가용 마력을 결정한다.
즉, 전체적인 판세 역시 로지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해도 좋았다.
-쿠구구구구!!!
부서진 마법의 잔해를 엮어 완성되어가는 응축된 저주가 시우를 겨냥했다.
만약 직격하게 된다면 교황조차 신을 저주하며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 칠 저주가.
“아아, 역시 게임은 재밌어. 최고야! 짜릿해!”
보드게임으로서의 위치보드보다 압도적인 실력 차를 과시한 로지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시우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지금쯤 낭패감에 젖어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줄로만 알았던 신시우.
그는 한점의 동요도 깃들지 않은 표정으로 로지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포기를 모르는 투지가 금빛 마력 반사광을 타고 흐른다.
“…….”
확실히 로지는 강하다.
공평을 가장한 채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들고, 순수한 기량으로 압도하는 수 싸움까지.
동족상잔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공적 무리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이 이해가 될 만큼이나 인상 깊다.
하지만 준비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로지에게 알려줄 시간이다.
이건 게임 따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