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01화 (701/917)

#701

1.

시우는 많은 전투 경험이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는 별개로 시우가 취한 동작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간결하고 신속했다.

순식간에 임전 태세로 끌어올린 신체 능력.

느릿하게 비치는 전투 시야로 일련의 동작이 슬로우모션처럼 비친다.

-쾅!

먼저 앉은 자세 그대로 진각을 밟으며 테이블을 덮치듯 상체를 기울였다.

어떤 무술이건 알파이자 오메가로 취급받는 중요 포인트는 동작에 무게를 싣는 것.

그리고 발경의 극의에 통달한 시우는 설령 앉아있는 자세일지라도 전력을 다한 일격을 휘두를 수 있었다.

신속한 일격을 위해 무장은 최소화.

검은 갑주의 건틀렛만을 구현해 휘두른다.

신나게 떠벌거리다 살짝 놀란 듯 치켜뜨는 로지의 눈과 시선이 맞닿는 순간.

무른 진흙을 파고들듯 주먹이 로지의 얼굴에 격돌한다.

그 순간 적의를 감지한 로지의 본능이 자율방어를 활성화했다.

뺨 옆에 얇게 퍼지는 녹색의 마력.

뱀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녹색 보호막이 공격을 차단하려 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를 초월한 영체에 마력 강화가 더해진 일권은 자율방어만으로 막아낼 수 없다.

검은 건틀렛은 뱀의 비늘을 산산이 부수며 나아갔다.

-빠각!

광대가 짓눌리고, 눈의 실핏줄이 일제히 터져나간다.

뼈가 부러지며 통상 돌아갈 수 없는 각도로 회전하는 로지의 고개.

경추가 부서지는 소리가 충돌음에 묻히는 와중.

충격을 받은 로지의 몸이 고개를 쫓아 반 박자 느리게 회전하며 떠오른다.

-쾅!

소파를 무너뜨리며 저 멀리 날아간 로지가 물수제비처럼 지면에 튕겨 놀이방 한구석 인형 더미에 파묻히는 순간.

한껏 늘어났던 시간이 본래대로 돌아온다.

그 시점에 시우의 전신은 검은 갑옷에 둘러싸여 있었다.

“후우.”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고 창을 꺼내 드는 시우.

아무리 마녀라도 목이 270도가 돌아가 중요 신경이 망가진다면 살 수 없다.

그럼에도 전투 채비를 갖추는 건 만에 하나를 대비한 확인 사살을 위해서다.

아무리 성공적인 기습이었다 해도 ‘이렇게 쉽게?’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벗어나질 않았으니.

왜냐하면 마녀에게 공방이란 연구의 터전임과 동시에 대게 해당 소유주에게 가장 유리한 전장인 까닭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공방은 반드시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임과 동시에 피난처.

따라서 온갖 마법적 트랩과 사전 준비가 까다로운 술식이 걸려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이 공방에서라면 로지가 20 위계 이상의 힘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런 시우의 기대에 부응이라고 하겠다는 듯.

인형더미 속 로지가 몸을 일으킨다.

회복이 끝나기 전 추가적인 공격을 나서려던 시우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아야야야….”

신음을 흘리는 로지의 목이 여전히 비틀려 있었던 까닭이다.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침묵의 마녀’는 20 위계, 주요 자성마법은 저주.

상세한 내역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한다.

기기 괴괴한 현상 앞에 경계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미? 인형? 함정?

시우가 가능성을 더듬는 동안.

-우드득!

“이게 무슨 짓이야. 더럽게 아프잖아.”

반회전한 로지의 얼굴이 휘리릭 정면으로 돌아온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와가 함몰되고 눈알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는데.

지금은 잔뜩 찡그린 얼굴이 되었을지언정 멀쩡히 코피를 핥고 있다.

“게임에서 졌다고 깽판 치는 거야? 너 여기 규율은 제대로 알아? 음?”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우물우물 입안에서 혀를 움직이던 로지.

“아 씨…. 이빨 나갔네. 퉷!”

하얗게 부서진 이빨 조각이 핏빛 분무와 함께 땅에 나뒹군다.

로지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시우를 보았다.

왜 자신이 공격을 받았는지 전혀 짚이는 바가 없다는 피해자의 표정이 역겨움을 가중한다.

“…….”

시우는 더는 문답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대화라면 충분히 했다.

그녀가 이해의 여지가 없는 괴물이라는 건 뒤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다 한들 목을 잘라버리거나 낙인을 부숴버리면 되살아나지 못하겠지.

이 정도 거리를 좁히는 데는 단 한걸음이면 충분하다.

시우의 몸이 흑색의 쐐기가 되어 놀이방을 가로질렀다.

-쾅!!!

음속을 돌파한 창격이 놀이방의 벽면에서 뿜어져 나온 녹빛의 연기에 가로막혔다.

“왜 화났는데? 이유라도 듣자.”

다시 한 번 창이 휘둘러진다.

여지없이 놀이방에서 뿜어지는 녹색 연기.

일정량 이상의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단단한 격벽을 생성하며 연격을 모두 차단한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 속에서도 로지는 이것저것 지껄였다.

“내가 옷 갈아입을 때 놀려서 화났어?”

-쾅!

“아니면 진짜 게임 졌다고 이러는 거야?”

-쾅!

“아아…. 혹시 피나 얘기 때문에 화났어?”

자문자답을 반복하던 로지는 애석하다는 듯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너랑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위치보드도 잘하고, 왜 남자는 다들 성욕에 지배당하는 변태잖아.”

혀를 차는 로지가 마력을 끌어올림에 이어 놀이방의 규모에 딱 들어맞는 이면결계가 펼쳐진다.

그에 맞춰 결계 전체에 안개가 차올랐다.

그 색감은 관리되지 않아 관상어가 폐사한 수조, 뿌옇게 낀 녹조를 연상케 했다.

유아적인 디자인의 놀이방에 이와 같은 색감의 대비는 어쩐지 그로테스크함을 연출한다.

“뭐, 어쨌거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대답도 안 해주고.”

우울하던 로지의 얼굴이 가면이 벗겨지듯 뒤바뀌고 빙글거리는 웃음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같은 웃음이지만 색조가 다르다.

짙은 적의가 농밀하게 담긴 질척질척한 웃음이었다.

“노파심에 물어보는 거지만 책임질 자신은 있는 거지? 이상하게 다들 날 개좆밥으로 보더라고.”

“피어라.”

“좋아, 뭐. 이런 게임도 싫진 않아.”

비록 로지에게 이점이 있는 전장이라지만 이토록 좁은 공간이다.

근접전에 특화된 시우에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전장이기도 하다.

로지의 웃음을 무시하고 천사의 고리를 발동한다.

-위이이이잉!

머리 위에 생성된 검은 고리가 회전에 회전을 거듭하며 막대한 양의 마력을 끌어당긴다.

어지간한 대마녀의 출력을 아득히 웃도는 압도적인 힘이 전신에 깃든다.

그에 아랑곳 않고 로지가 흥겨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구웩!”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박수로 박자를 맞추던 로지.

연기의 격벽을 잡아 뜯으며 무방비한 목에 정확히 파고든 장대는 장타를 날리듯 로지의 몸을 놀이방 끝에서 끝으로 날려보낸다.

만화에 주로 사용되는 과장된 기법처럼.

비현실적인 속도로 날아간 로지가 바닥과 벽에 고무공처럼 튕기며 핏물을 흩뿌렸다.

시우는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유효타다.

이만한 힘으로 아무런 방비 없이 얻어맞는다면 설령 린네라 할지라도 버텨낼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벌떡 일어나는 로지.

날붙이가 없는 창대에 맞았음에도 무지막지한 힘으로 너덜너덜해진 로지의 목이 되감기 하듯 수복된다.

“하하하! 진짜 아파! 너 힘 엄청 세네!”

정신병자의 광소처럼 미친 듯이 웃음을 흘리던 로지의 목소리가 멎는다.

“그런데 또 반칙했어. 나는 분명 그대로 멈추라고 했는데. 춤도 추지 말고 말이야.”

전혀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싸움이라기엔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 듯한 로지의 분위기.

“놀이에서 규칙은 중요해. 어겼으니 벌칙은 쇠약, 무력화, 고갈 삼종 세트야.”

시우는 몸을 감싸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꼈다.

고리가 단단히 체결되는 것처럼 맞물리는 감각.

이는 과거 스승님에게 계약 마법을 부여받았을 때와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마법이 저주라는 것에 있다.

순간 천사의 고리를 유지하지 않고 있음에도 영체의 마력의 삽시간에 빠져나간다.

활력이 들끓던 육체는 병자의 것처럼 무겁게 변했다.

평소 입고 있다는 인식조차 못했던 갑옷의 무게감이 새삼 전신을 짓누른다.

“어때? 움직일만해?”

“…….”

시우는 저주의 특성에 대해 얼추 알고 있었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도서관을 정리할 때 나름 흥미롭게 읽었으니 말이다.

본디 저주란 전투에 부적합한 마법이다.

까다로운 의식과 제물 따위를 요구하며, 막상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도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즉발적인 저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 즉, 일정한 전제조건을 충족해야만 발동한다는 것.

로지는 저주를 놀이의 한 방편으로 끌어들였다고 보는 게 옳다.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에서 움직인 시우에게 벌칙이 주어진 것처럼, 본디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구축해야 할 선행과제를 유치하고 부조리한 규칙에 끼워 맞춰 강제한다.

로지의 ‘놀이’를 돕는 게 무엇인지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마법의 상징체계 구축이란 심상이 반영된 만큼 직관적이다.

이 놀이방이 로지에게 방장 사기맵 역할을 대신하는 거겠지.

하나씩 정보를 수집한다.

애초에 쉬운 싸움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일을 벌였으니까…. 너를 내 콜렉션으로 삼아도 린네도 아무 말 못 하겠지.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로지가 좌우로 팔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르릉

폐를 울리는 저주파음과 함께 그녀의 양옆으로 나타나는 짐승의 형상.

배를 비쩍 곯은 듯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녹빛의 개떼다.

“그럼 이번엔 술래잡기를 해볼까?”

그 숫자는 수십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것만으로 놀이방을 까맣게 뒤덮을 물량.

“식사시간이야 얘들아. 배고팠지?”

주둥이에서 침을 흘리며 먹잇감을 노려보는 개떼의 정체는 고독술의 일종인 견고(犬蠱)이다.

개를 머리까지만 내놓고 땅에 묻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코앞에 음식을 놓고 굶주림과 포식의 갈망 속에 몸부림치다 죽게 만든다.

이후 로지의 손에 의해 되살아난 개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굶주림을 채우는 악귀가 된다.

하지만 이 견고의 무서운 점은 날카로운 이와 손톱 따위가 아니다.

부정한 술식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눈꺼풀을 철사로 꿰맨 광견의 뇌에는 각종 저주 패키지가 듬뿍 담겨 있다.

지금까지 지켜봐 온 그의 전투 방식.

그리고 티페레트와 린네가 제자로 삼은 점을 미루어보길 시우는 근접전에 특화된 마녀.

가까운 거리에서 견고를 상대하려면 필연적으로 극독과 다름없는 저주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통상 인간과 달리 마력이 충만한 마녀의 영체는 저주에 대해 기본적인 면역력을 갖추고 있겠지만 열 번 스무 번 씩 중첩되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쇠약의 저주만으로도 심장이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의 패착은 앞뒤 분간 않고 로지의 놀이방에서 싸운 시점에서 결정이 난 셈이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로지가 선언했다.

“내 꼭두각시가 되면 다음엔 마마 앞에서 피나를 범하게 해줄게. 이 역겨운 위선자 새끼야.”

그러나.

시우는 로지의 모든 노림수를 예측하고 있었다.

“다음은 없어.”

더는 필요 없게 된 갑옷을 벗는다.

평소 3할이 넘는 마력과 연산력을 소모하던 붉은가지도 지금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가용한 마력을 마법전을 위한 마법에 전부 투자한다.

-위이이이이잉!!!!

너울거리며 피어오르는 리본과 그 위에 새겨진 찬란한 금빛의 마법식.

순리를 비틀고,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대마녀의 마력에 공기가 부서질 듯 떨린다.

실전 도중 갑작스레 전투 스타일을 바꾸는 건 오른손잡이 검사가 왼손으로 검을 드는 것만큼 위험한 행위.

그만큼 여러 시행착오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시우에게는 이미 훌륭한 레퍼런스이자 표본이 있었다.

육체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일신의 마법을 활용해 비앙카를 압도하던 검은 기사.

무의식 속 신시우가.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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