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00화 (700/917)

#700

1.

시우는 멍하니 피나를 바라보았다.

달군 못을 삼키는 기분이 드는 와중에.

복잡한 사고과정 따위는 정지한 듯 그저 망연자실함만을 느낀다.

제 심장 박동이 생생히 귓가에 전해지며 불쾌한 이명이 들린다.

로지는 그런 시우의 곁을 지나쳐 피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피나, 잘 지냈어? 요즘엔 같이 안 놀아줘서 섭섭했지?”

내팽개쳐둔 인형을 다시 안아 드는 아이처럼 로지는 피나를 앉혀 세운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헝클어졌던 머리카락도 빗으로 쓸어내린다.

로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였을까.

또 무슨 생각으로 자랑하듯 시우에게 보이고 있는 걸까.

“어때? 깜짝 놀랐지?”

“…….”

로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시우는 마른 세수를 했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래도 약속을 전부 어긴 건 아니야. 심지어 내가 죽인 것도 아니라고. 그렇지 피나?”

생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을, 복숭아빛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한 로지는 힘없이 늘어진 피나의 손을 들어 깍지를 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피나의 머리카락을 마저 빗겨준 로지는 조심스레 그녀를 눕혔다.

“다음에는 꼭 놀아줄게. 그때까지 자고 있어.”

로지의 입술이 피나의 입술에 가볍게 부딪쳤다 떨어지고.

피나는 깊고 오랜 잠이 든 숲 속의 공주님처럼 평온을 되찾았다.

“아, 맞다. 내기 이야기하려고 온 거였지? 그러니까 이번 위치보드 내기를 이기면 내가 뭘 요구할지 말해줄게.”

뜻밖에 시우가 느끼는 건 인외비도의 악행을 목격한 자의 분노가 아니었다.

다만 정체불명의 괴로움과 심장을 꽉 옥죄는 통증 뿐.

인간은 공감의 동물이다.

타인의 절망과 고통 또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요소이다.

피나가 느꼈을 절망과 고통이 삼투현상을 일으키며 시우에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우의 뇌는 그걸 이해하길 거부하고 있었다.

너무도 까마득한 나머지 마음의 안전장치가 수용을 잘라내는 것이다.

“먼저 케이크와 폭죽을 준비해야겠어. 꼬깔모자도 빼놓을 순 없지. 왜냐하면 마마가 10년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피나와의 재회 시간이니까.”

그런 시우의 반응 따윈 아랑곳도 않은 채 로지는 노래하듯 자신의 계획을 나불거렸다.

“내가 먼저 마마의 방에서 케이크를 같이 먹으면서 그동안 고생했다는 둥 말을 늘어놓을 거야. 그다음에 안대를 씌우고 피나의 방으로 데려오는 거지.”

“…….”

“여기서 네 협조가 필요해. 너도 막상 하면 좋아할걸? 피나는 비록 영원히 잠들었지만 내가 정말 열심히 보존하고 꾸며 두었거든. 살아있을 때랑 아무런 차이가 없다니까?”

“…….”

“정말 믿어도 좋아. 간뇌에 간섭해둬서 마력을 살짝만 실어주면 숨도 쉬고 움찔움찔 거리기도 해. 게다가 체온도 조절된다니까? 반응이 좀 심심한 게 문제이긴 한데. 뭐 어때?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걸.”

“…….”

로지의 흥분은 그녀가 마치 날벌레처럼 시우 주위를 떠돌게 하였다.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청각기관에 로지의 투명한 잔혹성이 좌우로 메아리를 일으킨다.

“무슨 말이죠 그게?”

모든 것이 암시되어 있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공적이라도.

적어도 같은 인간이라면 그런 행위를 떠올릴 수는 없다고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로지는 하얀 이가 보일 정도로 배시시 웃어 보였다.

“헤헤, 뭐 당연한 걸 묻고 그래? 피나와 하게 해준다는 얘기잖아.”

삼투를 막던 얇은 막 한 겹이 벗겨진다.

무리에게 썩은 고기를 권하는 하이에나처럼.

로지는 태연히 내기의 대가로 그녀의 악행에 동참하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가식 피울 거 없어. 내가 피나를 보여준 건 너밖에 없거든. 네가 무슨 짓을 하건 우리 둘의 비밀이 될거야.”

“…….”

“아무튼 내가 마마한테 안대를 씌우고 들어오면 너는 피나랑 놀고 있으면 돼.”

미래의 일을 떠올리는 것인지 로지의 숨이 거칠어져 간다.

두 뺨에 떠오르는 홍조가 성적 흥분의 증거임은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마마는 소리를 듣고 엄청 불안해하겠지? 침대가 흔들리는 소리나 찌걱찌걱하는 소리가 들릴 테니까.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날 거부할 수 없을 거거든. 그래야 피나랑 다시 만날 수 있고, 10년 동안의 인고가 결실을 보는 목전이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하지만 안대를 벗기면 알게 되겠지. 제 견습마녀가 두 번 다시 마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로지는 숫제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제 몸을 감싸 안았다.

“서프라이즈! 어떡하지? 그런데 여기서 또 끝이 아니야. 다정한 마마라면 분명 피나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할 수도 있어. 그때 바로 알려주는 거지. 미안~ 마마 피나는 여기 온 지 사흘 만에 죽어 버렸답니다!.”

상상만으로 오르가즘에 도달한 듯 떨리는 로지의 목소리.

꾹 감고 하늘을 올려보는 그녀의 눈꺼풀 위로 불룩불룩 눈동자가 오가는 것이 보인다.

“아아, 그때 마마가 느낄 절망은 정말…. 아름답게 타오를 게 분명해.”

2.

시우와 로지 앞에는 조금 전 세팅한 위치보드가 놓여있었다.

선공은 시우.

이에 맞서는 후공은 로지.

각기 정석에 따른 마력원을 세팅한 이후 정석적인 초중반 싸움 이후 후반 국면에 들어선 와중.

대국의 유불리는 명확했다.

로지가 6 시우가 4.

이 게임이 일반적인 유저들의 일반적인 대결이라면 그렇게 큰 격차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위치보드는 초중후반 모두 변수투성이인 게임이니 말이다.

하지만 로지와 시우는 두 사람 모두 변수를 허락하지 않는 실력자이다.

모든 분야든 최상위권의 대결이 극적인 반전보다는 사소한 디테일에서 갈리는 법.

선공을 취했으면서도 오히려 게임의 흐름을 로지의 손에 쥐여주게 되었다는 건, 이 대국 내 신의 한 수를 두지 않는 이상 뒤집을 수 없는 격차가 벌어졌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시우의 손은 기계적이고 통상적인 수를 거듭한다.

특별한 시도도 없이, 기책도 없이 반전의 기회가 한둘씩 떨어져 나간다.

만약 로지가 조금 더 열심히 게임에 임했다면 대국은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로지 역시 위치보드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피나는 정말 예뻐. 게다가 얼마나 당차고 씩씩했는지 알아? 잡혀 왔으면서도 스승님의 털끝 하나라도 손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늘어놓질 않나. 아무리 괴롭혀도 입술을 꾹 깨물고 버티질 않나. 정말이지 사랑스러웠어.”

아무리 시우의 연기가 뛰어나다 해도 로지를 향한 생리적 혐오감은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로지는 그런 부분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도리어 제집에 있는 인형의 예쁜 점을 늘어놓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어조로 저 혼자만의 소중한 추억을 떠벌렸다.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면 왜 죽였나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의문에 시우는 말도 섞고 싶지 않은 공적에게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피나를 내가 죽였냐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때를 생각하면 벌써 눈물이 나오는걸. 정말 슬픈 일이지만 깨진 유리로 손목을 그어버렸더라고….”

“그러니까 왜요?”

“왜 죽었긴. 그냥 조금 마음이 여렸던 거지. 미리 고려해주지 못했던 내 잘못이야. 그냥 마녀가 될 수 없게 됐을 뿐인데 설마 죽어버릴 줄은 몰랐어.”

여기서 그 원인을 직접 입에 담지 않은 건 최소한 남아있는 수오(羞惡)의 발현인가.

그럴 리 없다.

로지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궁금해? 너도 이런 쪽에 흥미있어? 음…. 살짝만 알려줄게.”

로지는 수심에 잠긴 채 말을 이었다.

“그날 따라 피나가 빼액빼액 소리치길래 기분이 안 좋았어. 아무리 윽박질러도 말을 듣지 않더라고. 그래서 홧김에 실험용으로 데려온 노예들을 룸메이트로 넣어줬지.”

실험용 노예, 룸메이트, 마녀가 될 수 없게 됐을 뿐, 자살.

하나하나 불길한 단어의 조합은 곧 끔찍한 과거의 진상을 파헤칠 삽이 된다.

“하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후회돼. 아니다. 그렇지만 그날 밤만큼은 정말 즐거웠는걸. 여기서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은 마시멜로 실험은 다 구라라는 거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시우는 위치보드를 보았다.

로지가 기세를 더하자 순식간에 8대 2로 기울어버린 게임.

“그나저나 엄청 살살하네. 그렇게 체면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니까? 사실 너도 내 서프라이즈에 동참하고 싶은 거지?”

뒤집을 수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 3수로 로지의 승리가 확정될 것이다.

“…….”

린네와 적당한 거리 조절에 성공했다.

도로시가 시우의 상황을 게헨나 쪽에 알렸다.

곧 차원 이동식을 완성할 코드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로지가 내기로 요구한 대가도 다른 것으로 바꿀 자신이 있었다.

비록 그 대가로 관계가 틀어져 마냐와 말리샤를 포기해야 할 공산이 있지만, 둘을 되찾아오는 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문제였다.

소유권은 린네에게 있으니 여차하면 그녀를 통해 두 사람을 빼낼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라도 예빈과 앨리스만큼은 확실하게 빼돌리며 탈출할 수 있다.

그러나 시우가 로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 여태껏 쌓아온 것이 와르르 무너질지 것이다.

헥센나흐트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행위는 클리포트가 직접 나서 응징하니까.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간의 본질은 잔악하다.

타인의 비탄과 유열을 미주 삼아 음미하는 음습한 악성이 존재하는 한.

이 세계에 비극이란 두 글자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비극을 시우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피나와 마마의 비극에 비분과 의분을 느낄지언정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응징할 의무는 없다는 훌륭한 타협거리가 있다.

“내가 이겼네.”

눈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게임의 종료를 선언하는 로지.

그녀는 이 모든 비극을 빚어낸 역겨운 악인이다.

그러나 이 순간 더욱 역겨운 것은 갖은 핑계를 대며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나약함이다.

여기에 다짐한다.

뒷감당도 하지 못할 설익은 정의.

안일함과 낙천주의의 발로라 여겨져도 좋다.

“피어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간의 탈을 쓴 개를 패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겠노라고.

도덕 없는 유희에 휘말려 비관 끝에 스스로 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비극 속에 죽어가야 했던.

불쌍한 견습마녀에겐 없던 힘이 시우에게는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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