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96화 (696/917)

#696

1.

일본에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는 낚시법이 있다.

나룻배 선루에 횃불을 매달고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매어 불빛을 보고 몰려든 은어를 잡게 하는 ‘우카이(鵜飼)’이다.

이렇게 잡은 은어는 그물질로 잡은 것보다 상처가 없어 상등품으로 취급되어 성주에게 진상되었고.

기나긴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 맛 따윈 조금도 떠오르지 않지만, 린네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으로 식사에 오르곤 했었다.

언뜻 까다롭고 번거로우며 그만큼 고풍스러운 풍물쯤으로 여기기 쉬우나, 새삼 린네의 처지와 비교해본다면 골계미마저 느껴지는 낚시법이었다.

가마우지는 목에 줄이 걸려있기에 커다란 은어를 삼킬 수 없다.

목구멍에 걸린 커다란 물고기를 강제로 토해져 가마우지를 다루는 주인의 손에 들어간다.

하여 줄 사이로 삼킬 수 있는 은어만이 허락된 가마우지는 작디작은 물고기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차갑고 검은 수면을 몇 번이나 필사적으로 헤집는다.

오랜 세월 동안 린네는 가마우지였다.

응당 누려야 할 풍족과 평화는 목에 채워진 노끈에 걸려 토해내야 했으며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워야만 새끼 은어 수준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행동양식이란 으레 가치관에서 비롯된 부산물이라는 통념이 있지만, 그 관계 도식이 항상 정방향으로 성립하는 건 아니다.

오래도록 반복된 행동과 습관은 반대로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어부의 손에 의해 착취당하는 가마우지도 결국 새끼 은어를 삼키기 위해 물속으로 잠수하듯 린네 역시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가마우지도 인간도 결국 적응의 동물인 셈이다.

“…….”

린네는 객실에 멍하니 앉아 꼬박 하루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평소라면 홀로 검무를 추거나 명상하거나 제자를 들여 대련을 진행했을 시간.

하지만 지금은 복잡한 고뇌만이 머리를 안개처럼 채우고 있을 뿐이다.

적응의 동물이라는 게 언제나 악조건에 대한 적응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일단 한 번이라도 상위 레벨의 보상을 경험하면 그 아래 레벨의 보상은 진부해진다.

이런 역체감을 느끼며 현상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도 적응의 한 부류라고 볼 수 있다.

쉬운 예시를 들어보자.

단 하루.

목줄이 풀어진 채 통통한 은어로 포식했던 가마우지가 다시 목줄을 차게 된다면.

일전처럼 작은 은어를 삼킬 때 느끼는 작은 포만감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황홀했던 하룻밤의 꿈에서 깨어나고 린네가 느끼는 감정 역시 비슷했다.

고작 하룻밤의 경험은 수백 년간 익숙해졌던 결핍의 나날을 낯설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얄팍한 농간으로 린네를 능욕해대던 제자를 향해 적개심을 키워가는 것으로 그 불편함을 다스리려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명상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하려고도 해보았다.

그러나 점차 안절부절못해진다.

“…….”

비단 쾌락만이 린네를 동요시키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쾌락뿐이었다면 혀를 끊는 인내심을 발휘해서라도 쳐낼 수 있을 터.

이제와 린네가 떠올리는 건 그의 품에 안기며 느꼈던 그 이외의 감정이다.

줄곧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에서 살아왔다.

텅 빈 우주에 홀로 부유하는 듯한 고독은 영원히 해소될 일이 없을 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맥박이 함께 치솟아 한몸이 되었던 일체감.

자고 일어났을 때 외로움을 감싸는 듯했던 살의 온기는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어린 시절 낮잠을 취할 때 귓가를 속삭이던 햇볕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무심코 다시 한 번 그의 품에 무방비하게 안기고 싶을 만큼이나 말이다.

“신시우.”

그를 곁에 계속 두는 것만으로 린네는 행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감정을 계속 느낄 수 있다.

스스로를 내몰며 강해지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정착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가 더해지자 삶의 기조로 삼았던 가치관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신시우는 명목상 린네의 제자다.

일전까지 마력 증폭을 캐내기 위해 그와 동침한 것을 보면 알겠지만 린네는 사제간이라는 터부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정말 견습마녀와 마녀의 관계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불경한 소문이 외부로 나도는 것까지 기꺼워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제자의 앞에서 스승의 위엄은커녕 발정난 암캐처럼 낑낑거리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그 같은 쾌감을 겪게 되면 린네는 또 주체할 수 없는 망가진 모습을 그에게 내비칠 것이다.

아무리 그가 주는 꿀물을 원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키지 않는다.

“아.”

그리하여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린네의 뇌리에 한줄기 섬광이 스친다.

그렇다.

지금껏 의식하지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남녀 문제이다.

자연스레 남녀 관계를 다루는 시점에서 접근해야 올바르다.

그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짓밟히는 린네의 위신이 문제라면 이를 단번에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다.

“혼인….”

그를 파문하고 정식으로 혼인식을 올리는 것이다.

한때 위세를 떨치던 성주의 딸로 태어나고 교육을 받은 린네이다.

그 시기가 에도막부 말기임을 고려하자면 린네의 내조 의식은 실로 고리타분했다.

혼인한 여성의 미덕이란 언제나 남편의 두 걸음 뒤에서 걸으며 몸가짐을 조신히하고 지아비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것 아니겠는가?

일일히 말하기 낯뜨거워 달리 거론되지 않지만, 남편을 향한 순종은 비단 날이 밝을 때에만 한정되진 않을 것이다.

만약 침소에서 남편의 음란한 취향을 강요받는다 해도 미소를 띤 채 기꺼이 응하는 게 올바른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일 터.

즉, 그와 혼인을 올리게 된다면 스승의 위신과 위엄을 보이려 발버둥칠 필요가 없어진다.

암컷 같은 헐떡임과 칠칠치 못한 신음을 내게 된다 하여도 그것이 지아비의 요구이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그것이 이상적인 아내이니까.

이러한 사고 흐름이 논리적 비약으로 점철되었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사제’에서 ‘부부’로의 관계 설정 변화 하나로 모든 게 편해지면 왜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소리를 듣겠는가?

린네도 내심 눈치채고 있음에도 눈을 돌려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 절박한 목표가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당장 신시우를 불러 혼인식을 올리자고 제안할 수 있다.

거절 따윈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내의 헌신이 아닌 스승의 권위로 신시우를 찍어 누르는 것이다.

이제껏 그에게 엄격한 모습만을 보여주었으니 다른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부부 생활의 앞날을 결정할 테니까.

린네는 반나절이 넘는 장고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예비 신부로서 신랑에게 보일 수 있는 가산점엔 무엇이 있는가?

가무의 재능?

통달한 학식?

물론 위의 둘도 중요하지만 가사 전반에 걸친 능통함.

그중에서도 좋은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린네는 가타부타 모든 말을 털어놓기 전에 신시우에게 요리를 대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린네는 태어나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견습마녀 이전엔 가문의 충복들이 깨어나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수발을 들었다.

견습마녀 이후엔 식사가 필요 없다는 스승의 지시하에 곡기를 끊었고, 마녀가 된 이후엔 맛을 느낄 수 없기에 요리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선택한 사람은 일전 시우의 정력제를 사기 위해 들렀던 디그니티 타운의 약재상점.

그 주인인 자유의 마녀다.

그녀라면 이미 시우와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으니 불필요한 잡음이 밖에 새어나갈 이유도 없고, 영체에 이로운 식자재를 잔뜩 보유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발이 넓은 로지 알루로부터 그녀의 음식이 훌륭하다는 호평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유의 마녀. 용무가 있다.”

“미안, 장사 방금 끝났는데.”

한편 대마와 코카인을 안주로 유유자적 술을 즐기던 자유의 마녀에게 린네의 등장은 소규모 아포칼립스에 필적했다.

싫은 기색을 대놓고 풍기며 문을 걸어 잠그려는 자유의 마녀.

“대가는 넉넉히 치르겠다.”

린네는 그런 그녀에게 묵직한 주머니를 툭 내려놓았다.

“그냥 가주면 안 될까? 진심 개싫은데….”

자유의 마녀는 폭탄이라도 확인하는 표정으로 주머니를 열어보곤 표정이 환해졌다.

시리얼 넘버가 지워진 24K 금괴가 겹겹이 쌓여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게의 총량을 더하자면 족히 1kg은 되어 보인다.

미화로 환산하면 대략 6만 불 상당.

대체로 부유한 마녀에겐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닐지 몰라도 꽁돈이라면 누구든 기꺼워할 액수였다.

상대는 공적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검의 마녀.

어차피 억지로 등 떠밀어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에 용돈 벌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자유의 마녀는 입을 열었다.

“좋아, 부탁이 뭔데?”

대답 여하에 따라 금괴를 돌려주기 위해 금고에는 집어넣지 않던 자유의 마녀는 ‘부탁’의 상세 내용을 듣고 아연해졌다.

괜히 이리저리 돌려 표현하지만 요약하면 간단하다.

“그러니까, 남자한테 좋은 음식을 해달라고?”

“넌 요리에 능하다고 들었다.”

“그렇긴 한데….”

“당연히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넌 죽는다.”

협박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유의 마녀는 린네를 보았다.

굳이 린네의 의복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한 자루의 일본도 같은 여자였다.

잘생긴 애인을 끼고 음행을 일삼는다는 소문 역시 들어본 적 없다.

저 비쥬얼, 저 성격에 그런 취향이 있다는 것만으로 입방아에 오를 법한데 말이다.

그런데 일전엔 남자 마녀와 함께 정력제 재료를 잔뜩 사가더니 이번엔 남자에게 좋은 상차림을 의뢰한다?

그 반반했던 남자 마녀에게 아주 골수까지 푹 빠진 모양이다.

직접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린네에게 캐묻기는 더 힘들었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받은 게 있으니까 나도 힘 좀 써야겠는데…. 재료 사오는데 4시간, 요리에 8시간 정도?”

“재료?”

“여긴 약재상점이야. 장어처럼 신선도가 중요한 식재료는 따로 사와야지.”

헥센나흐트의 영세 입주자가 별 힘이 있겠는가?

그냥 잠자코 요리나 해주고 비밀 지킨 뒤 용돈이나 벌어가면 되는 것이다.

린네를 가게에 남겨둔 자유의 마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접선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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