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
1.
금화의 마녀가 떠나고 홀로 남은 린네.
그녀는 차게 식은 차로 입술을 축이는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신시우의 소유권은 오롯이 린네의 몫이었다.
모두가 주춤거리던 ‘토끼 사냥’에 선뜻 발을 들인 것이 린네인 까닭이다.
누구도 허락 없이 데려갈 수 없으며 그들의 목적을 위해 소모할 수 없다.
다만 매파와 비둘기파 간의 알력다툼이 심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리디아가 직접 교섭을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들의 대립이 치열해질 수록 신시우의 신변이 위태로워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린네의 그늘이 충분한 역할을 해주겠지만 머지않아 어떤 이변이 생겨날지 모른다.
원래부터 공적이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
충분히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이젠 예전처럼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지겠지.
머릿속 자욱하던 헥센나흐트의 권력관계가 지워지고, 또 다른 안건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아무리 린네라도 사방에서 뻗어오는 마수를 전부 뿌리칠 순 없다.
신시우에 대해 알아가는데 시간제한이 생겨 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신시우의 마력 증폭 작용을 유도해야 하는데….
바로 어젯밤 도로시와 신시우가 관계를 나누던 모습을 떠올린 린네는 학을 뗄 수밖에 없었다.
마력 증폭을 유도하기 위해 그 꼬락서니가 돼야 한다니.
강함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린네라도 한계치가 존재하는 법이다.
“아, 안녕하세요….”
고민 끝에 린네는 예빈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일전까지 린네에겐 아무런 메뉴얼이 없는 상태였다.
대충 뒤만 내어준다면 저 좋을 대로 허리를 흔들다가 언젠간 만족해 마력 증폭을 발산하겠거니 단정 지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도로시라는 실험쥐가 신시우의 성벽을 보다 낱낱이 파헤쳐주었고, 린네는 자신이 너무 일을 쉽게만 여겼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가지.
몹시 못마땅하지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왜 부르신 건가요?”
느닷없이 불려 온 예빈은 불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린네를 힐끔거렸다.
그동안 린네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예빈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도로시와도 크기가 비슷하다.
남성은 통계적으로 가슴이 큰 여성을 선호하니 예빈 역시 많은 남성에게 구애를 받았겠지.
게다가 의사인 만큼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의학적으로나 남성의 에로스를 규명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상담하기엔 꽤 적격인 상대다.
“의사, 지금부터 여기서 나누는 대화를 외부로 발설한다면 죽이겠다.”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건 린네의 상담은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는 천박한 목적이다.
주위 평판엔 하등 신경 쓰지 않는 린네일지라도 그 정도 추문이 나돈다면 적잖은 곤욕을 느끼리라.
따라서 단단히 입을 막아두는 건 필수였다.
“네…넵, 반드시 비밀로 할게요!”
예빈과 마주앉은 린네는 확인 작업을 거쳤다.
“넌 처녀인가?”
“네?”
“남성과 관계한 경험이 있느냐 물었다.”
휘둥그레진 예빈의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묻는 린네.
처음엔 갈팡질팡하던 예빈이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처녀는 아니에요.”
“좋다.”
졸지에 비처녀 아웃팅을 당한 예빈의 수치와는 별개로 원했던 답변에 만족한 린네.
“질문이 있다. 성실하게 답해라.”
“네.”
이쯤되자 예빈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애시당초 시우와 린네가 어떤 연유에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정에서 시우가 린네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까지 상세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제 구도의 마녀와 시우의 파격적인 섹스 이후 컬쳐쇼크를 받은 린네가 남녀 관계에 관해 조언을 구하려는 것일 테지.
“남자는 큰 가슴을 좋아하나?”
“…….”
린네의 첫 질문이었다.
그는 어젯밤 도로시의 가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젖통이니 맘마통이니하는 멸칭도 그렇고, 젖소 흉내를 내게 한 점도 어찌 보면 가슴을 향한 관심의 연장선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네, 보통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왜지?”
“그, 글쎄요? 보기도 좋고…. 그래서인가?”
“제대로 대답해라.”
지엄한 린네의 명에 예빈은 쩔쩔매며 답했다.
“아무래도 큰 가슴은 수태능력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큰 가슴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역설하다 보니 학습된 성적 지향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신시우가 린네에게 성적 만족을 느끼지 않는 건 가슴의 사이즈 탓일 가능성이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린네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노력으로 커버되는 영역이라면 몰라도 타고난 영체의 특성은 어찌할 수 없다.
가슴을 키워주는 묘약도 없진 않지만, 이 경우 완벽한 영체의 비율을 깨게 되므로 마냥 플러스라고 하기 어렵다.
“나로는 부족한가?”
“네?”
“앞으로는 되묻지 마라. 나는 성적 매력을 느끼기에 가슴이 작은가?”
그 순간 예빈은 성격 고약한 여왕 앞에서 대답해야 하는 마법 거울의 심정을 느꼈다.
확실히 린네의 가슴은 마녀 중에서도 작은 편이다.
과거 시우와 관계를 맺을 때 그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예빈의 가슴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그 역시 큰 가슴을 선호할 터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엔 린네가 너무 무섭고, 애초에 시우와 예빈이 아는 사이였다는 것부터가 비밀이다.
따라서 완곡하게 거짓을 고했다.
“그건 저도 남자가 아니라 잘…. 하지만 남자가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그 부분만이 아닌 걸로 알아요.”
말끝을 흐리다가 재빨리 덧붙여 설명하는 예빈.
“이를테면 아름다운 용모도 당연히 매력을 느끼는 요소일 거구요. 골반이나 엉덩이 같은 부위도 나름의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요?”
“…….”
“가령 린네 님은 굉장히 날씬하고 뒤태가 굉장히 매력 넘치시니 그쪽을 강조해서 어필하시는게….”
아무 말도 없이 쳐다보는 게 무서워 오지랖을 좀 부려버렸는데, 그건 그것대로 살짝 선을 넘은 것 같아 걱정이다.
“어필?”
하지만 염려와 달리 린네는 제법 예빈의 말을 경청했다.
“그건 어떻게 하지?”
심지어 질문도 던져온다.
“슬쩍 보여주거나 하는 식 아닐까요?”
예빈의 조언을 들은 린네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에겐 언제나 알몸의 뒤태를 보여왔다.
그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정황 증거다.
“다른 방법도 말해라.”
“옷차림도 꽤 영향을 미칠 거로 생각해요. 스타킹이라던가 레깅스라던가 하체 쪽을 강조하는 의복들이 있잖아요.”
“모두 달라붙는 의복이군.”
“그런 셈이네요.”
그렇다면 헐렁헐렁한 정통 복장 또한 그의 취향에 어긋났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정성껏 설명하는 예빈과 나름 분석을 하며 귀를 기울이는 린네.
예빈의 조언이 예상보다 도움이 되었기에 이 김에 전부 캐물을 작정이었다.
“또 물을 것이 있다.”
“네, 제가 아는 거라면 답해 드릴게요.”
“여자가 신음을 내는 건 중요한 문제인가?”
숨하나 거칠어지지 않고 묵묵하게 그의 물건을 받아내던 린네와 달리 지난밤 도로시는 애달픈 혹은 간드러진 비음을 내며 울어 댔었지.
도로시와 린네의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역시 중대 사항이다.
이에 예빈은 살짝 상상해보았다.
만약 시우가 숨이 조금도 거칠어지지 않고, 어떤 욕망도 느껴지지 않는 무뚝뚝한 느낌으로 삽입을 했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섹스돌이랑 다를 게 뭔가?
“음…. 그럴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반응이 있는 편이 더 끌리겠죠.”
“왜지?”
“성교라는 건 교감과 교집합이 많은 행위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신음은 파트너가 기분이 좋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증거고요.”
“그렇다면 짐승의 울음소리와 성적 흥분은 무슨 관계지? 어제 너도 들었을 것이다.”
앞의 내용과 이어진 질문은 린네에게 가장 난해하면서도 도무지 해석할 수 없던 취향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객관적으로 어제 도로시의 울음소리는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신시우가 짐승처럼 우는 도로시를 보며 흥분했다는 건 옆에서 소리만 듣던 린네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도로시에게 억지로 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색기 넘치는, 요염한, 관능적인 이라는 단어와는 극과 극에 존재하는 신음 발성법이 어째서 욕정을 끌어낸다는 말인가?
“그건 말이죠.”
하지만 예빈은 어쩐지 그의 그런 취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어제 ‘만약 시우가 자신에게도 저런 짓을 시킨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허벅지를 비비 꼬지 않았던가?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을 상대의 지시로 강요받고 마지못해 행할 때면 말 못할 피학적 흥분감이 샘솟는다.
이를 되짚자면 반대로 시우가 그런 행위를 요구하는 이유도 추론 가능하다.
요컨대….
“아마도 파트너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라는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모습?”
“네, 부끄러워하면서도 마지못해 요구에 응하는 모습이랑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을 모습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욕구?”
적당한 예시를 즉시 떠올린 예빈과는 달리, 성욕은커녕 성적인 흥분조차 느껴본 적 없는 린네에겐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러니까 정복감이 충족되어서 좋은 게 아닐까요?”
“정복감.”
요점을 정리하는 학생처럼 예빈의 가르침을 되풀이하는 린네.
민망한 주제임에도 한없이 진지하게 반응하는 린네 덕분에 멋쩍음이 줄어든다.
“이제 알겠다.”
한참의 고민 후 린네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남녀 간의 두루뭉술한 감정 따위는 모른다.
하지만 치열한 싸움 끝에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복감이라면 알고 있다.
그거라면 신시우의 행동원리와 그가 어제 보인 낯뜨거운 행적이 이해가 갔다.
그는 도로시를 침대 위에서 굴복시킴으로써 수컷으로서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과시했다.
그러한 행동이 그의 성적 만족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보면 합당할 것이다.
동시에 린네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평생이 가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그의 성벽에 대해 실마리를 찾았다.
그러나 린네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도움이 됐다. 나가봐라.”
당장의 부족했던 정보는 모두 보충했다.
이제 필요한 건 예빈의 도움이나 조언이 아닌 혼자 정리하며 계획을 수립하는 것.
방에 홀로 남은 린네는 정좌한 채 새로운 계획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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