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
1.
“거기서 멀뚱멀뚱 뭐해? 들어와!”
“아뇨, 저는 괜찮은데요.”
“어서 들어오라니까?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니야.”
로지는 잔뜩 들뜬 음색으로 손짓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우가 오지 않으면 이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양 채근하는 로지 탓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 마마 어때? 예쁘지?”
로지는 마치 커다란 곰 인형을 껴안듯 마녀를 뒤에서 안은 채 뺨을 비비며 물었다.
“참 고우시네요.”
마음에도 없는 답변을 하는 시우의 모습이 그 마녀에겐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쯤으로 여겨진 것일까?
검은 머리 마녀의 옥빛 눈동자에 파문이 일렁인다.
로지에게 보이는 것보다 한결 선연한 거부감의 기색이었다.
“거짓말.”
영혼 없는 대답에 로지는 흥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본심을 간파해낸 것은 아니다.
아직 자랑할 것이 잔뜩 남았다는 양 기대감의 찬 미소가 두 뺨에 빵빵하게 차올라 있을 따름이다.
“아직 마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 보여주지도 않았는걸?”
“그런가요?”
우선은 이 시답잖은 장단에 맞춰주자고 대충 대답했다.
마녀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던 로지의 손이 헐렁한 나시 원피스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기다려 봐, 가만히 있어. 마마는 착하니까 말 잘 들을 거지?”
“읏…!”
흑발의 마녀의 몸이 뻣뻣이 굳는다.
흡사 독사가 옷 안으로 기어든 듯한 반응이었다.
“짠!”
로지는 원피스의 양어깨 자락을 휙 젖혀 보였다.
원체 헐렁했던 옷이 그 모양이 되자 유방이 삐쭉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엔 기묘한 호칭 탓에 곧장 파악할 수 없었지만, 로지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곧 답이 나온다.
아무리봐도 검은 머리의 마녀는 로지의 성노예였다.
당장 도움을 줄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 새빨간 타인의 앞에서 능욕당하며 수치심을 느끼는 건 막아주고 싶다.
“뭐야! 왜 고개 돌렸어. 이거 보라니까?”
“위치보드나 하면 안 될까요?”
“이것만 보면 할게. 진짜로.”
그러나 로지는 이미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만인 듯했다.
한사코 고개를 돌려도 재촉해대는 탓에 시선을 바로 했던 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로지의 가느다란 검지에 링이 끼워져있다.
링은 마녀의 젖꼭지를 관통하고 있었으며, 그 첨단을 강제로 잡아당긴 탓에 쭈욱 늘어나 있었다.
학대의 흔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벌어진 가슴팍에는 로지의 잇자국일 게 분명한 원형의 흉터가 빼곡하게 수 놓여 있다.
“내가 선물해 준 거야.”
“그렇네요. 그럼 이제….”
“아냐아냐, 아직 안 끝났어. 마마 다리 좀 더 벌려봐.”
마녀의 귓불을 깨물거나 핥으며 명령하는 로지의 행패에 침대에 앉아 있던 마녀의 다리가 천천히 벌어진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레스 안쪽을 파고든 로지의 손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에서 껴안은 채 대신 자위를 해주는 듯한 포즈였다.
“아흣… 흣….”
마녀는 눈을 꾹 감은 채 신음을 억눌렀고, 로지는 그런 그녀의 입을 강제로 열어 보이겠다는 듯 격하게 손을 움직였다.
-딸랑! 딸랑!
-철퍽! 철퍽!
동시에 들려오는 두 선율.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점액질이 늘어지는 소리.
“이게 무슨 소리게?”
“피어싱인가요?”
로지는 알아줘 기쁘다는 듯 싱긋 웃었다.
“정답이야. 구멍도 잔뜩 뚫고 방울도 잔뜩 달아줬어. 진짜 야하다? 절정할 때 손 떼도 막 짤랑짤랑 거리거든. 마마 빨리 시우한테 보여줘.”
“하읏… 아… 아아앙…! 가, 갈 것 같아… 로지….”
상냥한 배려의 손길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손길.
그럼에도 검은 머리의 마녀는 순식간에 허리를 바들바들 떨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치맛자락 밑에서 로지의 손이 빠져나온다.
-딸랑! 딸랑! 딸랑!
“흐그으윽! 그으윽!”
아무런 자극도 없는데도 경쾌하게 울리는 방울소리와 마녀의 거친 호흡이 함께 방을 채운다.
로지는 대단한 마술을 선보인 마술사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어때?”
“…….”
그 시점에 시우의 비위는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상황극 따위와는 전혀 다른 리얼함.
인권과 존엄이 뿌리 끝까지 유린당하는 처참한 모습은 흥분이 아닌 구토감을 유발한다.
가장 두려운 건 로지에게서 양심의 가책은커녕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지조차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마마랑 한 번 해볼래?”
손에 묻은 애액을 새빨간 혀로 핥아 보이며 로지는 말했다.
“원래는 이거까지는 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특별히 하게 해주는 거야.”
“로, 로지….”
여태 온갖 수모를 겪고도 큰 변화가 없던 마녀의 표정이 단박에 창백해진다.
간원을 담아 로지의 이름은 불렀지만 로지는 그녀에게 대꾸조차 않았다.
“너는 위치보드 광팬이고 마법도 보여줬으니까 특별히 한 번 하게 해줄게. 마마도 좋지? 내 친구잖아.”
허울 뿐인 구실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시우를 위한 제안이 아니었다.
그저 마마라고 부르는 눈앞의 마녀를 괴롭히고 능욕하는 게 즐거울 뿐이다.
“로, 로지의 친구라면….”
“홀딱 빠지지 않게만 조심해. 마마는 엄청 뜨거운 여자라 잘못하면 흐물흐물 녹아버릴 거 거든.”
번번히 말허리를 잘리면서도 찍소리도 못한 채 찌그러지던 마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로지…. 부, 분명 이런 건 저번이 마지막이라고….”
“마마, 이번이 지이이인짜 마지막이야. 피나를 위한 일이잖아. 우리 약속했잖아. 응?”
“…피나….”
“빨리 가서 유혹해 봐. 로지는 마마가 교태부리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로지는 뱀처럼 마녀의 허리를 감던 다리를 풀어주었다.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자 단두대로 향하는 사형수처럼 주춤주춤 발길을 옮기는 마녀.
절망과 비탄 이외의 감정은 허락받지 못한 두 쌍의 눈동자가 시우를 향한다.
“로지 님. 저는 이런 거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해. 그러니 가만히 있어.”
단호한 로지의 말이 끝나고 마녀는 애원하듯 시우를 바라보았다.
거절해달라는 눈빛이 아닌, 제발 그녀의 말을 거스르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의사가 강하게 꽂혀오고 있었다.
“멋진 신사님, 제발 저의 몸을 품어주세요….”
굴욕과 수치심에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가까스로 꺼낸 말.
기어들어가듯 작은 목소리에 로지의 재촉이 더해진다.
“마마. 너무 점잖은데. 맞선 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녀는 이미 반쯤 벗겨져 있던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전라가 되었다.
“부디…. 부디! 이 멍청한 암캐 년을 범해주세요….”
얇디 얇은 옷감 아래 감춰져 있는 건 무수한 멍 자국과 잇자국.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유린당한 정원.
바르게 선 자세임에도 로지가 그녀의 몸을 피어싱 진열대 정도로 취급해왔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당장에 만류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모종의 협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에야 시우가 거절하는 것으로 수치를 피할 수 있겠지만, 그 뒤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책임질 능력이 없다.
이 잠깐의 망설임 동안 마녀의 애원이 계속되었다.
“신사님이 원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 젖꼭지도 클리처럼 민감하게 개발되어 있어요…. 남성분과 하는 건 처음이지만 목숨을 다해서 봉사할게요…!”
하지만,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
이쪽까지 이 불쌍한 마녀를 짓밟는 가해자가 되는 기분이다.
“이쯤 하죠.”
참는다고 애를 썼지만, 시우의 목소리는 잔뜩 거칠어져 있었다.
“왜? 마마가 별로야?”
하지만 로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의 일방적 호의가 타인에게 불쾌감을 선사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하는 태연자약한 말투다.
“아, 아…. 아니야 로지… 다시 할게! 신사님…! 신사님 제발 자비를…!”
“쉿쉿.”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린 로지는 마녀의 옆에 섰다.
안절부절못하던 마녀의 어깨가 이젠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미안해. 마마가 남자 앞에서는 처음이라 낯을 가렸나 봐. 내가 봐도 좀 밍밍한 유혹이긴 했어. 평소엔 엄청 잘하는데 날 이런 식으로 실망하게 하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왜 거절했는데?”
“위치보드 해야죠.”
좋은 변명이라면 이미 있었다.
가능하면 이 마녀에게 돌아갈 화살도 이걸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
로지가 나지막한 탄식을 토했다.
그러더니 깔깔깔 큰 소리로 웃는다.
어찌나 웃는 동작이 커다란지 그녀의 귀걸이가 요란하게 짤랑거릴 지경이었다.
“맞아 맞아, 우리 그러려고 왔지?”
“그렇죠. 제가 어렵사리 시간을 낸 거거든요. 일류 위치보드 플레이어인 로지 님과 듀얼이 코앞인데 더 시간 낭비하기엔 아쉽습니다.”
“깜빡했네. 미안해. 내가 정신이 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말끝마다 뚝뚝 떨어지던 기학(嗜虐)의 자태는 간데없다.
응접실에서 보았던 명랑하고 밝은 로지로 되돌아왔다.
그럼에도 시우는 더는 그녀가 좀 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가죽을 오려내어 뒤집어쓴 추악한 괴물로 보일 뿐.
“마마 미안해. 로지가 너무 흥분했지?”
“아냐. 마마는 괜찮아.”
“응, 들어가서 쉬고 있어. 나중에 꼭 피나랑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자. 안녕.”
쇠창살과 철문이 굳게 닫히고 다시 놀이방으로 돌아왔다.
로지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양 선반에서 위치보드를 꺼내와 준비했다.
“내가 세팅할게.”
아까 말했던 브랜디는 준비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새삼 술이 아까워졌다기보다는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잊은 듯했다.
“…….”
입맛은 더럽게 쓰고, 기분은 더럽게 찝찝하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저기 저 마녀도 구하면 좋겠지.
그러나 공적의 도시에서 높은 배분을 지닌 침묵의 마녀에게 시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비겁한 변명밖에는 읊조릴 수 밖에.
기껏해야 내기 대상에 저 마녀도 포함해 데려가면 좋겠다는, 희미한 낙관을 바랄 뿐이다.
“그럼 시작할까? 선수는 양보할게.”
“감사합니다.”
마력원 3개를 각기 점한 뒤 한 수씩을 주고받으며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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