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74화 (674/917)

#674

1.

어젯밤.

‘침묵의 마녀는 뭐랄까…. 위치보드에 정신 나간 년이야.’

쓸데 없이 진지한 말투로 도로시는 말했다.

말리샤와 마냐를 되찾기 위해 로지 알루에 관한 상세 정보를 요청했던 건 시우지만, 그렇다고 적합하다 여기기엔 생뚱맞은 설명이었다.

보통 무슨 마법을 쓰고, 몇 위계고, 공적 중에 어떤 위치고 이런 걸 답해주는 게 정상 아닌가?

‘그게 답니까?’

‘아, 저주 계열의 자성 마법을 주로 사용해. 20 위계이고 꽤 많은 마녀와 함께 일을 하지. 아무래도 저주 계열은 서포팅에서 진가를 발휘하니까.’

아무리 봐도 먼저 말했어야 할 말을 뒤늦게 덧붙인 도로시였으나,

막상 로지를 보니 왜 도로시가 위치보드를 가장 먼저 입에 담았는지 알 수 있었다.

“플레이룸으로 가자. 거기에 있거든. 술 좋아해? 술도 줄까? 브랜디 괜찮은 거 있는데.”

“아, 네네.”

시우의 손목을 잡아끌고 빠른 발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지르는 로지.

원래도 딱히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지만 지금은 굉장히 살갑다.

10년 만에 만난 소꿉친구를 대하는 듯한 기꺼움이다.

로지로선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다.

가령 시우가 홀로 저택을 방문하고자 한 이유라던가.

린네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준 이유라던가.

남자의 몸으로 마녀가 된 사연이라던가.

티페레트 공작과 사제 관계로 알려졌었는데 어떻게 린네의 제자가 되었냐 등등.

한번 앉은 자리에서는 풀기 어려운 수많은 대화거리가 존재한다.

그 많은 것을 등 돌린 채 고작 보드 게임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쯤되니 ‘흠, 지금은 별로 안 땡기는데? 남자 마녀가 눈앞에 있잖아’ 따위의 말을 하며 심드렁하게 반응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했던 게 바보 같다.

좋다.

어디까지나 탈출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서브퀘스트였던 만큼 상세하지 못한 작전이었는데 보란 듯이 첫 번째 계단을 클리어했다.

“이쪽 이쪽.”

1층 응접실에서 두 층을 올라 도착한 방.

그녀의 플레이룸은 극장에나 있을 법한 방음 소재의 문으로 굳게 가로막혀 있었다.

그러나 안대를 벗고 있는 시우는 곧장 판단을 마쳤다.

이건 일반적인 방이 아니다.

무더운 대지에 피어난 장기(瘴氣)를 연상케 하는 음울한 마력을 실낱 삼아 촘촘히 자아낸 결계가 수백 겹이나 존재한다.

빛 한점 들지 않는 막막한 감옥이 자연스레 심상에 피어나는 가운데, 마법적인 시점에서 보자면 방공호나 다름 없는 견고함을 구축하고 있었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갑작스러운 이변이 반갑진 않다.

더군다나 이 장소는 어딘가 신경을 긁어내는 불쾌함이 존재한다.

따라서 들어가기 앞서 대놓고 물어보았다.

“그보다 여긴 조금 이상한데요? 무슨 꿍꿍이 있는 거 아니에요?”

첫 데이트에 나온 명랑한 히로인처럼 들 떠있던 로지의 동작이 우뚝 멎었다.

잠시 문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서 있던 로지가 뒤를 돌아본다.

숨겨야 할 흉계를 간파당했다기보단 뜻밖에 뭔가 매우 쑥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초대는 해주겠는데 놀리면 화낼 거야.”

“네?”

“보고 놀리지 말라고. 알았지?”

제대로 된 답이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결계가 엄청 빼곡한데요? 뭡니까 이게?”

“남자를 들여 보이는 건 처음인데…. 어쩐지 자랑하고 싶네.”

“…….”

이번에도 역시 뭔가 대화가 어긋난다.

무슨 꿍꿍이가 있냐고 묻자 놀리지 말라고 답하고, 결계의 용도를 묻자 남자를 들이는 건 처음이지만 자랑하고 싶단다.

마녀 중에 마이페이스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긴 해도 이건 대화 자체가 겉도는 느낌이랄까.

“약속해.”

“무슨 약속이요?”

“아까 말했잖아, 놀리지 않기로.”

결국 제대로 된 답 없이 들어가는 건 이미 확정되었다는 듯 단정 짓는 로지.

그만큼 위치보드를 하고 싶어 혈안이 된 걸까?

아니면 공방을 자랑하고 싶다는 걸까.

“…….”

상대는 20위계.

붉은가지가 없다 해도 고리를 사용하면 어찌저찌 감당 가능한 상대다.

설령 이 방의 목적이 함정이며 로지가 미리 꼼수를 부려놓은 것이라해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설마하니 린네의 비호가 있는데 섣부르게 수작을 부리려 들까? 라는 믿는 구석도 있었다.

“뭐, 약속할게요.”

“꺄아! 너무 떨려!”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저혼자 떨며 문을 번쩍 연 로지.

도대체 뭔 방이길래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 의아해하고 있던 시우를 맞이한 건, 겉보기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었다.

아마 이 결계의 절반가량은 아마도 공간 굴절을 위한 마법식 같았다.

방의 형태는 한마디로 정의가 가능하다.

지름이 20M 정도 되는 돔형이다.

다만 로지가 왜 저렇게 뜸을 들이며 부끄러워했는지를 부연하려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했다.

“아이 참, 부끄럽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많이 못 받아서 그런지 이런 동심 넘치는 게 좋더라고. 어때?”

“예쁜데요?”

우선 바닥은 푹신푹신한 양털 카펫이 둥그런 벽면을 따라 빈틈없이 깔려있다.

하늘색 바탕에 하얀 뭉게구름이 그려진 동화 풍의 벽지, 그 곳곳에 붙여진 별모양 스티커.

치렁치렁한 프릴이 잔뜩 달린 침대라던가 아기자기한 테이블 등, 곳곳에 놓인 가구가 어우러져 어린 여자애들이 갖고 노는 인형의 집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일반적인 마녀는 가구 도색을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조로 하지 않으니 말이다.

심미적 감각보다는 시각적 자극에 치중하는 어린아이 때나 예쁘다 생각할 디자인이다.

“유치하진 않아?”

“전혀요.”

“히히,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쁘다.”

표정 관리에 조금 힘써야 했다.

언뜻 보기에 나잇값 못하는 인테리어에 우스움 대신 기이함을 느낀 까닭이다.

“플레이룸이라고는 했지만 여기가 내 공방이야. 마법 연구도 여기서 하고.”

“과연 그렇네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놀이방이라기엔 과도하다 여겼던 결계도 ‘공방’이라면 설명이 된다.

각종 실험 장비라던가 보안을 위해서라도 마녀의 실험실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것이 보통이니 말이다.

“그보다, 저 문은 뭔가요?”

워낙 정신 사나운 공간이었던지라 인지가 늦었다.

시우와 로지가 들어선 문이 6시 방향이라면 9시, 12시, 3시 방향 총 세 곳에 또 다른 문이 있다.

“아 저거? 내 소중한 컬렉션을 보관하는 장소야.”

마냐와 말리샤가 저기에 있겠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찌르르 직감이 왔다.

어차피 둘을 데려오기 위해 위치보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니 한번 둘러보는 게 흐름상 자연스럽다.

‘저 녀석들 마음에 드네요. 내기하죠’ 같은 상황을 조성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경해봐도 되나요?”

“구경? 에이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좋아.”

재차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로지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양 신이 난 발걸음으로 폴짝폴짝 뛰었다.

오히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방에 정신없는 로지를 끼얹으니 정신 나갈 것 같다.

“자, 그럼 첫 번째 콜렉션 개봉박두!”

-끼익!

가장 왼쪽 방의 문이 열렸다.

자폐아의 동심을 연상케 하던 방의 분위기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돌연 돌변한다.

“어때?”

붉은 벽돌과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이 그곳에 있다.

다만 피해자를 수감하는 목적이라기엔 시설이 제법 고급스러웠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공간엔 별도로 몸을 씻을 수 있는 욕실도 마련되어 있었고, 침대와 소파도 고급품이다.

입구가 단단히 막혀 있다는 것과 방 조명이 요사한 붉은 빛인 걸 제외하자면 플레이룸 같은 임펙트도 없었다.

“로지 왔니?”

문이 열리기 무섭게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들리더니 나른한 인상의 흑발 여인이 몸을 일으킨다.

마녀였다.

“응, 마마. 나 왔어!”

“오랜만에 왔네?”

로지는 열쇠를 넣어 창살을 걷어내자마자 쪼르르 달려가 헐벗은 마녀의 품에 폭 안겼다.

마녀는 로지를 꼭 끌어안고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보고 싶었어?”

“당연하지, 마마가 로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얼마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이게 도대체 무슨 광경이지?

시우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견습마녀와 스승이 유사 모녀 관계를 이루며 서로를 엄마, 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로지는 대마녀.

당연히 계승을 끝낸 존재이다.

마녀의 상식에 따져보면 그녀의 스승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로지가 ‘마마’라고 부르는 마녀는 누구이며, 어떤 연유로 이 감옥에 ‘콜렉션’이 되어있는가?

조금 전부터 감돌던 미묘한 불쾌감이 다시금 자극받는 기분이다.

현악기의 불협화음 이중주가 마구 울리는 것처럼 신경이 곤두선다.

“…….”

문득 로지를 끌어안고 있던 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공포와 두려움에 젖은 채 떨리고 있었다.

떨림이 거기서 멎지 않고 그녀의 손끝에 이르는 것을 확실히 포착한다.

그 순간.

“그것밖에 안 사랑해?”

손바닥을 뒤집는 듯한 날카로운 로지의 힐난.

“아, 아냐! 훨씬 더 하늘보다 땅보다 훨씬 더 사랑해!”

“그치?”

“물론이지!”

고작 그것만으로 마녀는 턱밑에 칼끝이 파고들고 있는 것처럼 거품을 물며 외쳤다.

그 히스테릭한 반응은 로지가 그녀를 얼마나 몰아붙여 왔는지를 방증하는 듯하다.

“마마가 로지 사랑하는 만큼 키스해 줘.”

로지가 금속 조각이 박힌 혀를 내밀었다.

그러자 마녀는 마치 숭배하듯 그 혀를 천천히 빨아들이며 애무한다.

반쯤 드러난 마녀의 가슴도, 음란한 두 미녀의 키스도 성욕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그림이다.

하지만 시우의 욕정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로지 님. 이게 무슨….”

“츄웁, 아 맞다. 너도 있었지? 미안미안.”

마마의 뺨을 가볍게 밀어 키스를 끝낸 로지는 시우를 바라보곤 해맑게 웃었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미소였다.

“이쪽은 마마. 마마 인사해 저쪽은 신시우, 무려 남자 마녀래.”

“아….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정중한 인사를 받았기에 인사는 해주었다.

하지만….

으슥한 골목.

길을 걷다 캐리어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가로등 근처에 놓여 정체불명의 액체로 축축하게 젖어들어 간.

유독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가득한.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크기의 캐리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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