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73화 (673/917)

#673

1.

침묵의 마녀의 저택은 굉장히 ‘호화로움’이라는 지반에 ‘사치’라는 기둥을 세워 만든 것처럼 으리으리했다.

규모 면에서는 제머나이 백작가보다 작다해도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 역시 유서 깊은 왕실의 건축물처럼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대충 인사를 끝낸 이후 응접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시우.

반짝반짝 빛나는 대리석 바닥.

궁둥이를 붙이고 앉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푹신한 소파.

어두운 실내와 환한 조명을 대비시켜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인테리어는 어쩐지 쌍둥이네를 떠올리게 해 괜한 향수가 피어올랐다.

지금은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지만 말이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오늘 이른 아침.

도로시가 향월루를 나서자마자 시우는 린네를 찾았다.

밤새 도로시와 벌였던 홀스타인 쇼 덕분인지 시우를 바라보는 린네의 시선은 경계와 혐오의 기색이 완연했다.

‘듣기로는 침묵의 마녀가 마냐와 말리샤를 소유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우는 잠시 망설였다 준비한 대사를 풀어놓았다.

‘모처럼이니 두 사람도 한번 맛보고 싶습니다. 마침 침묵의 마녀님이 어떤 분인지도 궁금하고 한번 만나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확실히 애매하게 착한 컨셉으로 잡는 게 아니라 반쯤 미친놈 흉내를 냈던 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무슨 부탁을 요구하건 ‘섹스하고 싶다’라는 한 마디로 동기가 설명되었다.

‘…….’

그 순간 린네가 보여주었던 싸늘한 눈빛은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입을 꾹 다무는 린네.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어제 도로시와 그 짓거리를 하고도 부족해?’라고 하는 듯한 느낌.

그녀의 분위기는 이미 경멸을 넘어 그로테스크한 생김새의 괴생명체를 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며칠 전 만해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던 린네를 이 정도 수준의 입체적인 리액션이 가능하게 만들었다니.

소소한 업적 달성을 느낀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짓고는 말했다.

‘그게 대련을 쉴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뻔뻔하게 말하고 난 뒤, 이어지는 건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린네 앞에서 연출한 캐릭터는 변태 섹스에 환장한 개망나니 제자다.

이런 컨셉은 시우의 꿍꿍이나 물밑의 의도를 상당 부분 가려주어 왔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개 짓거리를 해도 좋다는 보장까지는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시우가 제자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헛짓거리가 용인되는 것도.

순전히 린네의 강함에 보탬이 되리라는 잠재력 덕분이다.

남은 건 저울질.

시우의 방종과 그 방종을 눈감아주게 하는 린네의 기대치.

그 사이 어딘가에 적당히 발을 걸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시우가 판단하기에 아직은 세이프 라인이었다.

‘스승님, 들어보시죠.’

‘말해라.’

‘어차피 저는 앞으로 이쪽 세계에 발을 담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자체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쓸데없이 올곧기만 한 티페레트 공작의 눈치를 보느라 절제할 필요도 없어졌고요.’

스승님 죄송합니다.

보고 싶어요.

‘언제까지 향월루라는 안뜰에서만 지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다방면으로 인맥도 넓혀 두어야겠죠. 침묵의 마녀 정도면 괜찮은 인맥 아니겠습니까? 또….’

‘됐다.’

린네는 손을 휘저어 말을 끊었다.

‘네 좋을 대로 해라.’

반쯤은 포기한 느낌이었지만 쉽사리 1일 외출권을 얻어냈다.

단독으로 방문하는 것까지 허가받은 것은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침묵의 마녀의 저택은 향월루부터 그리 멀지 않았고 예로부터 친분이 있던 것이 주효했던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길 5분.

“자, 홍차.”

짤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묵의 마녀가 홍차를 내왔다.

맑고 투명한 오렌지빛의 홍차가 고급스러운 잔 안에서 빙그르르 돈다.

“이야, 참 신기하네. 살다 살다 남자 마녀를 볼 줄이야.”

침묵의 마녀, 로지 알루는 맞은 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턱을 괸 채 흥미로운 시선을 한없이 쏘아 보낸다.

집은 거주자의 성향을 한눈에 드러내기 마련이지만 로지는 본인이 거주하는 저택과 상당한 부조화를 이루는 인물이었다.

정적인 분위기의 저택과 달리 상당히 요란한 외향이란 뜻이다.

우선 아이돌이나 걸밴드 메인 보컬이나 할 법한 투톤 염색을 당연하다는 듯하고 있다.

색상은 딥 블루와 민트.

마녀는 기본적으로 절세미녀이기에 어울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상당히 낯설다.

마녀는 대체로 예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니 말이다.

여기까지라면 시우도 그러려니 넘겼을 것이다.

뭐 투톤 염색이 별거라고.

당장 서울 번화가만 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고리타분한 마녀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로지의 과감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잘그락 잘그락

아주 작게만 몸을 움직여도 들려오는 금속이 짤랑이는 소리의 음원지는 그녀의 귀다.

귀걸이는 물론이오 보기만 해도 아플 정도의 피어싱이 박혀 있다.

거기에 가죽 자켓을 포함한 펑크한 코디가 더해지니 흡사 사랑만 받고 살아온 금수저 따님의 반항기를 보는 듯하다.

“왜 그렇게 빤히 봐?”

시우의 눈길을 눈치챘는지 피식 웃는 로지.

“안 아파요?”

“이거?”

“네.”

로지는 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귀를 보여주었다.

꽃이 핀 것처럼 만개한 피어싱이 반짝반짝 조명 속에 빛난다.

“이건 하나도 안 아팠어. 근데 여기랑 여기는 눈물 찔끔 났어. 볼래?”

이어 제 가슴과 아랫도리를 척척 가리키며 배시시 웃은 로지는 반응을 살피듯 빤히 시우를 본다.

아마도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취향이라면 앨리스에게 귀띔을 들은 후다.

해실해실 웃고 있지만 그 알맹이는 남의 몸에 구멍 뚫는 것이 취향인 잔인한 새디스트.

가까이할 엄두도 들지 않는 화려한 독버섯에 속한다.

타카쇼는 여자가 예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예쁜 썅년에게 시달린 적이 많은 시우는 쉽게 동감할 수 없었다.

또한 그녀가 퓨어한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새삼 엄한 기대를 할 필요도 없다.

“네, 한 번 보죠.”

태연히 대꾸하니 ‘변태변태’하고 까르륵 대는 로지.

원래 하이텐션인 것도 있지만 시우를 만나게 되어 적잖이 흥분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너는 낙인이 어디 있어? 나는 여기에 있는데.”

제 아랫배를 쓰다듬던 로지의 시선이 시우의 장대 음봉으로 향했다.

안대를 벗었다.

“거긴 아니고 여깁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마안이 드러나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즉각 관심을 보이는 로지.

“가까이서 볼래.”

“그러세요.”

좀 보여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지금은 호감작을 해야 한다.

마냐와 말리샤를 자연스럽게 빼내기 위한 빌드업을 짜야 하니 말이다.

단숨에 테이블을 뛰어넘어 시우의 옆자리에 앉은 로지.

가까이서 보니 연홍색 홍채 안에 또 하나 존재하던 띠가 서클렌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잘 안 보이네.”

안과 의사처럼 두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빤히 바라보는 로지.

그거론 부족했는지 아예 말 안장에 앉듯 시우의 무릎 위에 걸쳐 앉아 관찰을 시작했다.

“예쁘다. 살아 움직이는 페르시안 러그 같아.”

그녀는 홀린 듯이 기하학적인 문양이 촘촘히 새겨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특이한 눈동자이긴 하다.

아직도 거울을 보면 가끔 신기하니 남이 보기엔 더한 것이겠지.

“빼서 가지고 싶어.”

“여보쇼.”

“히, 농담이야.”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한 로지는 미련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별로 대화가 오가진 않았지만 이제껏 지켜본 침묵의 마녀의 인상은 뭐랄까….

진짜 제 마음대로 사는 마녀 같다.

언뜻 천진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누님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이면에선 형용할 수 없는 투명한 광기가 엿보였다.

어디까지나 선입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홍차 줬으니까 넌 마법 보여줘.”

“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이후로는 간단한 장기 자랑 시간이었다.

그림자로 갑옷을 만드는 모습, 간단하게 역장을 전개하는 모습 따위를 보여주었다.

별거 아닌 마법임에도 돌고래쇼를 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관람하는 로지.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모르고 똘망똘망한 눈빛은 시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오! 오! 오!”

리액션이 괜찮았기에 아주 작게 만들어낸 천사의 고리를 통해 마력을 뻠삥하는 것도 보여주자 좋아 죽는 로지.

“관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우는 공연을 끝낸 마술사처럼 근사하게 인사를 했다.

손뼉을 짝짝치던 로지는 조금 전보다 흥분한 기색을 보이며 침을 뚝뚝 떨어뜨렸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침이 흐른다.

“쓰읍…. 와, 린네한테 칼빵 넣었길래 범상치 않은 놈이구나 싶었는데 진짜 대단하긴하네.”

“과찬이십니다.”

방실방실 웃던 로지의 웃음기가 가시고, 철없던 아가씨처럼만 보이던 그녀의 홍채에 빙그르르 광채가 돈다.

“그런데 말이지. 갑자기 날 보고 싶다고 한 이유가 뭐야? 린네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어.”

레크리에이션은 끝나고 지금부터가 본론.

그녀의 목소리엔 여러 추측과 기대, 그리고 희미한 의심의 향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임시 제자라 해도 시우는 잡혀 온 몸이다.

그런 그가 일면식도 없는 침묵의 마녀와 독대를 요청한 건 로지에게 충분히 의아한 상황일 터다.

“아, 그건 말이죠….”

그에 대한 대책은 충분히 준비해두었다.

도로시가 제공한 정보 덕택이었다.

참고로 이 정보는 마냐와 말리샤를 확보하는 과정까지 교두보가 될 예정이다.

“위치보드 잘하신다고 들어서요.”

“위치보드?”

위치보드 네 글자가 나온 순간 로지의 눈빛이 재차 뒤바뀐다.

훼까닥 돌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한번 붙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당장 하자!”

침묵의 마녀 로지 알루는 위치보드라면 환장하는 중증 듀얼 중독 환자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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