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
1.
최근엔 서브 컬쳐나 게임 등지에서 야릇한 복장으로 재해석되곤 하지만 본디 수녀복의 본질은 금욕과 청빈에 있다.
실제로 도로시가 입고 있는 검은 수녀복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가리는 부분도 많고 몸매의 노출을 최소한으로 한달까.
그러나 도로시의 수녀복 차림은 금욕도, 청빈마저도 거부한다.
두꺼운 옷감을 뚫고 먹음직스럽게 그려지는 굴곡진 라인.
화사한 외모와 신비로운 은빛 눈동자 덕에 좔좔 흐르는 부티.
특히 터질 듯이 옷감을 들어 올리는 미드 라인의 폭발력은 성직자의 신실함을 시험하는 듯하다.
“얼~마나 변태 같은 취향인지 볼까?”
그런 수녀복이 한 겹씩 벗겨져 간다.
가장 먼저 베일이 바닥에 떨어지고, 등 뒤로 팔을 돌리자 허물 벗겨지듯 스르륵 떨어지는 나머지 의복.
그 아래에는 저렇게 큰 가슴임에도 군살 하나 없는 허리와 적당히 살집이 오른 허벅지.
백자처럼 매끈한 피부와 어깨보다 월등히 넓은 순산형의 골반이 등장한다.
치료를 위해 꽤 여러 번 보았지만, 몇 번을 봐도 참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단숨에 속옷 차림이 된 도로시는 마치 과시하듯 머리를 흩어 보이며 시우 앞에 모델처럼 섰다.
[잘 들려? 침 그만 흘리고]
홀리듯 멍하니 그녀의 몸매를 감상하고 있자니 염파가 머리를 웅웅 울렸다.
[다행히 파장이 잘 맞네~ 역시 우린 통하는 게 있다니까?]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도로시의 입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시우의 눈으로 보아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마력 흐름만이 존재했으니까.
도로시가 구사하는 의사전달 종류의 마법 같았다.
[마음속으로 말 걸어볼래?]
처음엔 그저 당황스러웠지만 어느샌가 어엿한 일류마녀가 된 시우다.
머릿속에 속삭이듯 울리는 의념의 끈을 더듬어 의사를 표출했다.
[이렇게요?]
[응, 처음인데 잘하네. 그렇~게 경악한 듯이 보면 상처받거든?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그 말대로였다.
영락없이 도로시가 철부지 같은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작게나마 ‘누구는 심각해 죽겠는데’라는 불평도 했었다.
[이건 무슨 마법인가요?]
[‘계시’야. 두 사람의 연결만 확실하다면 주위에서는 간파할 수 없어]
그러나 아무리 은밀한 마법이라도 린네가 바로 옆에 있다면 위화감을 느낄 터.
도로시가 부린 강짜 덕분에 단둘이 같은 공간에 남을 건수가 생겼고, 자연스레 계시를 통해 대화할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키스 먼저 해볼까?”
“좋죠.”
진실된 대화는 계시를 통해.
옆에서 엿보고 있을 린네에게 들려줄 대화는 입을 통해.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다가온 도로시의 허리를 붙잡고 입술을 포갰다.
맨살에 맞닿는 푹신한 가슴의 촉감.
브래지어 위로도 감출 수 없는 부드러움이 출렁출렁 남심을 자극한다.
“쮸웁…. 츄웁….”
도로시의 얄상한 혀가 입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며 자연스레 모의가 시작되었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지만~ 네 상황을 알려줘]
2.
린네는 벽을 마주 본 채 여느 때와 같이 정좌하고 있었다.
이 얇디얇은 문 너머에는 새로 제자로 들인 남자 마녀와 도로시가 함께하고 있다.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침소리와 서로의 살갗이 스치며 부스럭대는 소리가 린네의 귓가를 파고든다.
머리가 아프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던 차가운 불.
강렬한 생강의 향기 속 새콤함, 그 이후로는 기억이 흐릿하다.
실로 추태였다.
고작 술 한 잔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모습을 보인 것도 모자라, 구도의 마녀 앞에서 옷을 벗고 보채었으니.
그 모습이 타인에게 어찌 비칠지는 명약관화였다.
그리하여 막무가내나 다름없는 도로시의 조건을 수용한 게 아닌가?
“…….”
하지만 린네는 아무 대책 없이 도로시와 거래한 것이 아니다.
그의 성벽을 감당해 내라는 조건을 끼워 넣었다.
익히 알고 있지만 신시우의 성벽은 어지간한 여자는 감당하지 못할 파렴치함 자체.
도로시는 달콤한 과실을 취하듯 신시우를 깨물려 들었으나, 조만간 그 과실이 시고 떫은 개살구라는 걸 알게 될 터다.
“하아…. 그렇게 너무 빨면 안 된다니까~”
“쮸웁! 쮸웁!”
지금은 나름 즐거워 보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둘의 관계를 바로 옆방에서 관람하는 건 비단 도로시가 골탕먹는 모습을 보기 위함만이 아니다.
린네는 여태 그와 여러번 관계를 나누었다.
그의 성벽을 충족하기 위하여 뒤를 내어주는 초강수까지 두며 말이다.
그러나 과거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던 마력 증폭 작용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 린네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하나, 신시우가 처음부터 거짓을 고했다.
다른 하나는 그를 만족하게 하려는 린네의 노력이 부족했다.
전자는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후자는 아무리 린네라도 그 이상을 하는 것은 꺼려진다.
그런 상황 속에 도로시는 아주 훌륭한 실험용 쥐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도로시쯤 되는 대마녀라면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건 당연한 노릇.
신시우의 조건을 전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도로시가 역정을 내며 신시우를 내친다면 사전 계약에 따라 린네의 추태는 자연스럽게 묻히며, 그녀에게 진 사소한 빚도 청산된다.
반대로 도로시가 신시우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 과정에서 마력 증폭까지 일어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말이다.
린네가 그런 꿍꿍이를 지니고 제자와 과거 동업자의 찐득한 애무 행각을 엿듣는 사이.
시우와 도로시는 계시를 통해 서로 간의 정보를 교환한 이후였다.
[이게 웃겨요? 남은 심각해 죽겠는데]
[미안….짐작은 했는데~ 너무, 너무 웃겨….]
[아까 얼마나 식겁했는지는 알아요?]
시우에게 자초지종을 전달받은 도로시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씰룩씰룩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한껏 억누르고, 폭소를 터뜨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까닭에 맺힌 것이다.
그도 그럴게.
린네와 시우의 관계도,
어떻게든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비틀며 쇼를 벌이는 시우도,
그 수작에 천진난만하게 놀아나는 중인 린네도.
당사자는 한없이 심각하지만 멀리서 보면 또 이만한 희극이 없던 것이다.
[내가 특별히 정상참작해서 르뤼에에게 이르지는 않을게]
[저도 꼴사나운 건 압니다. 그러니까 그만 좀 웃어요]
[눈물 나…. 눈물….]
못마땅하게 그런 도로시를 바라보는 시우.
항상 그렇지만 진지함이 결여된 누님이다.
[아무튼, 그럼 적당~히 너랑 뒤로 즐기면 되는 거지? 거짓말이 린네에게 들키지 않게?]
도로시의 상황정리에 시우의 머릿속에서 짤그락짤그락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 섹스를 엿보고 있을 린네.
시우의 성벽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약조한 도로시.
린네에게 미리 일러두었던 ‘거짓된’ 마력 증폭의 조건.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조각이 맞물리자 새로운 큰 그림이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들어보시겠어요?]
[뭔데?]
[오늘 밤, 린네를 떨쳐낼 겁니다]
[응?]
[뒤로 하다가 앞에 쌀게요]
도로시는 웃음기를 거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돼? 마력 증폭의 요건은 조작하고 있다며]
도로시의 말대로다.
시우는 린네에게 ‘성적 흥분이 최대치’에 이른 상태에서 사정했을 때 마력 증폭이 발생한다 일러두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
앞으로 한 번만 해봐도 쉽게 벗겨질 얇은 기만에 불과하다.
그 증거로 오늘 린네는 그것도 예쁜 화장도 하고 순순히 데이트에 따라왔다.
그녀 나름대로 실험에 변수를 대입하려 한다는 증거.
지지부진한 진행에 답답함을 느낀 린네가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본다면 금세 들통 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번 실험에서 성공적인 마력 증폭을 보여준다.
차곡차곡 누적되었을 린네의 의심을 깔끔하게 씻어내리면서, 동시에 시우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연출한다.
담보는 뜻밖에 쑥스러움이 많은 린네가 도저히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할 도로시의 치태.
즉, 밀크 카우보이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
눈치 빠른 도로시답게 시우가 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히죽거리던 얼굴에 웃음기가 하얗게 가시더니 다급하게 의념으로 외쳤다.
[나는 그냥 앙~ 앙~ 정도만 할 생각이었는데…?]
[이 사단이 누구 때문에 났는데요. 이용해야죠]
[무슨 말이야! 나는 너랑 단둘이 대화할 상황을 만들려고 그런 거라고!]
알기 쉬운 변명이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굳이 섹스 말고도 독대할 환경을 조성할 방법은 많았다.
거기에 굳이 외줄타기를 하게 만든 건 듬뿍 얹어진 도로시의 사심 아닌가?
[아무튼 협조해주셔야겠어요]
-꾸욱!
“하읏!”
시우는 그대로 팬티 뒤로 손을 넣어 도로시의 촉촉한 속살을 어루만졌다.
잠깐 가슴을 빨고 키스한 것만으로 흥건해져 있는 보짓살.
“벌써 푹 젖어 있네요?”
“내가 물이 많~은 편이긴 해. 아직도 겨우 이정도 밖에 안젖은 걸 보면~ 네 손길이 변변찮은가 본데?”
이건 도로시의 의도가 아니었다.
조카나 다름없는 르뤼에와 쓰리썸도 한 마당이다.
린네 앞에서 섹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딱히 괘념치 않다.
오히려 살짝 매콤한 흥분의 향신료가 되어줄 정도.
하지만 젖소처럼 울부짖는 치태를 보이면서 린네의 의심을 떨쳐내는데 일조하라고?
그건 아무리 대담한 도로시라도 수용할 수 없는 부끄러운 계획이다.
“여유로우시네요. 조만간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자지러지실 모습이 기대됩니다.”
“흐응~ 그럴 능력은 있니? 그 전에 엉엉 울면서 싸버리는 건 아니고?”
동의도 없이 시동을 거는 시우 앞에 도로시는 샐쭉한 눈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속행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해봐~ 하지만 내가 예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난폭하다 못해 철저히 굴복당했던 그와의 첫 경험.
그 이후론 의외로 자중했던 시우다.
첫 치료 이후엔 르뤼에도 같은 침대에 있었으니 말이다.
즉, 첫경험을 제외하면 도로시는 시우에게 그리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고, 뒤로 하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그런 형편없는 몰골을 보이고 말았지만….
지금은 다른 것이다.
아무리 도로시라도 옆에서 린네가 지켜보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런 치태를 보일 것 같진 않다.
의외로 성감이란 정신의 영향력을 많이 받으니 말이다.
얼떨결에 벌어진 매치.
망가지지 않으려는 도로시 VS 어떻게든 망가뜨리려는 시우.
“살아있는 게 입뿐이라면 따~끔하게 혼내줄 테야.”
도로시 특유의 말버릇을 신호탄으로 그 처절한 콜로세움이 지금.
향월루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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